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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출판사 달과 6펜스를 읽어 봤습니다. 제 2판임에도, 체스를 장기라고 번역한 걸로보아 1980년대 초판의 영향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내용 이해는 상당히 매끄럽게 되는 편이었습니다. 민음사 등 다른 출판사 것과는 대조해 보지 않아 딱히 번역이 '좋다', '나쁘다' 라 말씀드리기는 어렵겠네요. 워낙 유명하고 많이 추천되는 작품이니, 이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도 이것이 인상파 화가 '고갱' 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란 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고흐와 고갱은 서로 자주 대조되는 화가인데, 고흐의 인생이 연민을 불어일으킨다면 고갱의 전기는 미칠듯한 거만함이 느껴지는 데에 많이들 공감하실 겁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도 고갱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스트릭랜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죠. 처자식 내팽겨칠 때는 넘어가더라도 스트로브에게 한 짓들을 보면(구체적으로 뭔지는 스포일러라서 생략) 읽다가 스트릭랜드 대가리를 후려치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의 서술자는 스트릭랜드를 인습적인 가식과 허영에서 벗어난 존재로 묘사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를 그림을 위해 자신을 불사지르는 예술가로 묘사합니다. 소설 후반부의 타히티에서 그린 작품은 세속적인-심지어 육체적인- 한계를 뛰어넘은, 초인과 같은 분위기마저 읽혀집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고 가장 큰 애착을 갖게된 인물은 스트릭랜드가 아닙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소설 내에서 비중이 극도로 적고, 사실 통째로 날려버려도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칠 인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전 아브라함의 이야기에서 오히려 달과 6펜스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를 발견했습니다.


유망한 의과대생 아브라함은 선의직을 잠깐 맡다가 병원 간부 요원직을 포기합니다. 원래 선의직은 휴가 비용을 충당하려 맡은 것이었지만, 그는 화물선이 정박한 알렉산드리아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합니다. 요원직을 포기한 데에 대해서 먼 훗날 서술자가 "후회한 적은 없었나?" 라고 묻자


"아니, 단 한번도 없었네. 먹을 만큼은 벌고 있고 그것으로 만족하네. 죽을 때까지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뭐가 있겠나.

나는 지금가지 후회 없는 생활을 하고 있네." 


 라고 답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항상 밀리다가 아브라함이 알렉산드라에서의 삶을 택하면서 고속승진을 달리던 알렉 카마이클과 대조됩니다. 카마이클은 자신의 삶을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고 아브라함을 마치 마지막 순간에 탈선하여 실패한 인생으로 묘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서술자의 생각대로 '그것은 자신이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다시 말하면 사회와 개인의 요구를 자신이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좌우되는 것' 일 뿐입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아브라함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스트릭랜드의 기이한 삶보다 더 와닿았고, 또 제가 찾고자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한편으로 찰스 스트로브 또한 여운이 남는 인물입니다. 비록 순진해 빠져서 잘 속아넘고, 스트릭랜드의 갈굼(?)을 시도때도 없이 받지만,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차리고그의 예술세계를 동경합니다. 그리고 스트릭랜드가 아무리 지랄을 떨어도 그를 보살피는 데에 행복감을 느낍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너무 순진하고 착해빠져서 오히려 독자가 열받아 부들부들 떨 지경입니다. 결국 스트릭랜드의 배은망덕하기 그지 없는 행동에 파국에 가까운 일을 경험하지만, 스트릭랜드의 역작-비록 스트로브 입장에서는 파국의 대가였지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훗날 스트로브는 비록 미술계 쪽의 삶을 지속하지 못하겠지만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암시가 남습니다. 


한편 서술자가 스트릭랜드에게 '스트로브에게 아무런 죄책감을 안 느끼냐' 고 묻자 스트릭랜드는 '(스트로브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고 대답합니다. 찰스 스트로브는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항상 치이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남들이 오히려 연민을 느낄 법한 자신의 삶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타인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며 그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데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는 겉으로는 스트로브와 같이 감수성이 풍부하고 연민을 잘 느끼는 체하지만, 인습과 가식을 숨겨놓고 다니는 스트릭랜드 부인과 대조됩니다.


아브라함이나 스트로브와 같은 인물은 작품 속에서 남들에게 조소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남들의 조소와 인습 속에 자신을 처박지 않고 자신의 본성과 이상을 따라감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발견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남들의 비아냥을 피하고 인습을 따르는 것이아니라, 자신이 자기 삶에서 행복을 느끼느냐인 것입니다.


달과 6펜스에서는 이 두 인물 외에도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어떤 이들은 서로간의 신앙심에서 성취감과 행복감을 발견합니다. 

어떤 이는 결혼 생활에서 행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결혼에 의해 구속되는 삶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꿰뚫는 주제로서 인습(6펜스)과 이상향(달) 사이의 대조가 드러납니다. 이로써 우리는 자신의 개별성을 무시한 채 인습을 따르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발견할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발견합니다.


달과 6펜스의 엄연한 주인공은 고갱을 모티브로 한 스트릭랜드입니다. 그렇지만 스트릭랜드의 주변부 인물들 또한 묘한 매력을 내뿜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오히려 스트릭랜드보다 여타 인물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저는 주인공에만 초점이 맞추어지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 속에서 '달'과 '6펜스' 사이의 갈등이 다루어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빼어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줄 요약

1. 문예출판사 달과 6펜스 읽었는데 번역은 꽤 괜찮은 듯.

2. 스트릭랜드는 인성이 개판이고 아브라함이랑 스트로브는 굿굿.

3. 인습 노노. 이상 예스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