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의 작품들을 계속 읽다 보면 “작품이 재미가 있든 없든 일단 산다”라는 영역에 도달하게 되곤 하는데,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신간 <미소녀를 먹다>를 읽을 때 또한 뭐 일단 아예 기대가 없던 건 물론 아니고 재밌을 거라 기대는 하긴 한다만 재미가 없더라도 딱히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지금 리뷰를 쓰는 시점에서 돌이켜볼 때 그러고 보니 읽기 전 그 기대를 각각 절반씩 충족한 단편집이었군.. 이라는 감상이 든다.
가장 만화적인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기 위해서는 만화적인 만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그간 봐온 족히 수백 명은 될 만화 작가의 이름을 쭉 훑어봐야겠지만, 어쨌든 1위까지는 아니더라도 넉넉히 스무 명 안에는 들 만한 작가로는 판판야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오직 만화에서만 가능한 실험을 했다거나, 만화의 특성을 해체하고 확장하는 그런 예술론에 입각한 평가가 아니라 단순히 이야기의 작법에 관한 것이다. 이쯤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책에 대한 리뷰에 판판야를 거론한 이유를 언급하고 넘어가자. 단편만화라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 사이에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떼어낼 수 없는 유사점, 즉 “현실에 녹아든 비현실적 요소를 작중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밀어붙임(언변이 눌어 다소 장황한 문장형 개념이 되어버림)”이다. 『아리송했던 마음』의 ‘장난감’이나 『계산기의 마음』의 ‘돌고래’ 등을 비롯해 이런 작법이 적극적으로 차용되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며,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작품에서도 또한 『새의 숙소』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인간처럼 생긴 ‘새’가 그렇고, 『알레스』의 오버테크놀로지 로봇 알레스가 그랬으며, 『월동』 『성동』에서는 월동이라는 인형사가 있고 월동과 똑같이 생긴 인형인 성동이 있는데 둘은 서로 몸을 바꿀 수 있으며 늙지도 않지만 왠지 주인공을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거참 신기하군”이라는 반응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뭐 기타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이런 능청스러운 비현실 끼워넣기는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마냥 거의 대부분의 단편에서 이용되곤 한다. 판판야와 다른 점은 판판야의 만화가 그런 기묘함이 그림에 반영되는 종류의 기묘함인 데에 반해 모로호시의 단편은 공모전에 투고된 작가의 데뷔작에 대하여 “외국 SF 작가의 단편을 표절한 것이 아닌지 심사위원들이 몇번이고 확인을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만화적이라기보다는 문예적인 면이 있다.
이런 작가적 특성을 염두해 두고 읽는다면 이 와중에 일본 동화를 모티브로 한 『새의 숙소』가 임팩트가 없고 『알레스』는 망했으며 『타임머신과 나』는 소품이고 『내가 늘어난다』는 결말만 좋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월동, 성동』이 그간 그려온 중국풍 단편 중 평타만 치는 식으로 부진을 거듭하는 와중에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재밌었던 『미소녀를 먹다』가 음흉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인 제목과는 달리 평범하게(?) 인육 요리를 소재로 삼은 단편이란 점은 꽤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간 여러 인육 요리 스토리가 나왔지만 이야기의 골자는 대게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기 요리를 먹었다->인육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내가!!! 먹은 게!!!! 인육이었다니!!!!! 너무 끔찍해!!!!!’일 수도 있고 ‘그날 밤 내가 먹은 고기의 이름을 나는 아직 모른다’인 경우도 있는데, 요점은 기지에서 미지로의 이행이다. 뭐 결국 인육 요리 스토리란 괴담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런 만큼 여기서 파생된 인육 요리 스토리들이 재미를 주는 구조 자체는 특별히 복잡한 게 아니라 결말에서 반전이라는 임팩트를 주는 단순한 구조이다.
『미소녀를 먹다』가 재밌었던 이유는 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의미를 정반대로 도치시키기 때문이다. 이 단편에서 주인공은 어떤 클럽에서 미소녀의 고기로 만든 요리를 대접받는다. 요리를 준비한 사람은 코스 요리가 나오는 내내 요리의 재료가 된 소녀를 어떤 과정을 통해 요리했는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소녀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소녀가 생전에 쓴 일기장을 낭독하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은 시식을 이어간다. 그런데 이때 인육 요리 스토리의 끝부분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주인공은 의심한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이 정말로 미소녀 고기일까? 여고생이 신던 팬티라며 중고 팬티에다 프리미엄을 붙여 팔듯이 요리의 풍미를 더하기 위한 거짓말에 내가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인육 요리 스토리의 도입부가 기본적으로 그것이 거북스프든 갈매기 요리든 다른 요리로 알고(기지) 시식을 한다는 점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이 단편은 주인공이 자기가 먹는 요리가 인육 요리임을 알고(기지)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정작 다른 이야기였다면 진실에 도달한 상태인 주인공은 인육 요리를 앞두고 그것이 인육 요리인지를 의심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이후 주인공의 행동으로 인해 ‘기지인 줄 알았던 미지에서 미지라고 믿고 싶은 기지로의 이행’을 뒤집은 ‘미지라고 믿고 싶은 기지에서 기지인 줄 알았던 미지로의 이행’으로의 도치를 이루며 끝을 맞이한다.
이거 결말까지 이야기하자면 메타 픽션이랑 믿을 수 없는 화자 얘기까지 나와서 좀 더 복잡해지는데 이미 글이 길어져 이만 줄임.
별점을 매기자면 2.5/5점
저런
작가를 좋아하는 팬심이 글에 담겨있다
분명 꽤 높은 타율로 개노잼 만화가 나오긴 하는데 돌이켜보면 단편만화가 중에 이만한 작가가 없긴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