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반(反)전체주의 전문가들에게 늘 참고문헌으로 애용된 책, 오웰의 <1984>다. 가상 전체주의 사회의 무시무시한 초상화이고자 하는 이 소설에는 창문이 없다. 이 소설에는 항아리에 물이 차기를 긷기다리는 연약한 어린 소녀를 보는 일이 없다. 이 소설은 시에 물 샐 틈 없이 닫혀 있다. 소설이라고? 소설을 가장한 정치사상이다. 이 사상 역시 물론 명철하고 정당하지만 일그러져 있다. 소설적 가장이 그 사상을 부정확하고 개략적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소설적 형식이 오웰의 사상을 흐려 버린다면, 이에 대해 뭔가 보상해 주는 것이 있는가? 여기서 소설 형식은 사회학도 정치학도 다룰 수 없는 인간적인 상황들의 미스터리를 밝혀 주는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는 상황이나 등장인물이 광고 포스터처럼 진부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좋은 이념들을 대중화한다는 구실로 정당화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소설화된 이념들은 더는 이념으로 작용하지 않고 바로 소설로 작용하며, <1984>의 경우 그것들은 나쁜 소설로 작용하면서 나쁜 소설이 끼칠 수 있는 온갖 악영향을 끼치는 까닭이다.
오웰 소설의 악영향은 어떤 현실을 순전히 정치적인 측면으로 감쪽같이 축소하는 데 있으며, 또한 바로 그 측면을 그 측면의 완전히 부정적인 일면으로 축소하는 데 있다. 나는 전체주의 악에 대한 투쟁의 선전에 유용하다는 이유로 이러한 축소를 용서해 주길 거부한다. 왜냐하면 인생을 정치로 축소하고 또 정치를 선전으로 축소하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 악이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오웰의 소설은 전체주의 정신에, 선전 정신에 가담한다.
인터넷 돌아다니다보니 원글을 찾았네. 일단 1984 및 오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자 한다. 각자 어떤지 생각해보셈.
+) 다시 읽어보니 소설에 이데올로기가 들어가는걸 비판하는 이유가 소설에 녹아들면서 왜곡될 가능성이 커서 그런건가? 그렇게 보이네
여윾시 까도 존나 잘 까네. 까려면 이렇게 까야지. (그렇지만 난 쿤데라도 이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ㅋㅋ) - dc App
거의 100% 동감하는 내용들임.
캬 띵문이다
혹시 출처 좀 알려줄 수 있어? 전체 글을 보고 싶어서
쿤데라 에세이집 <배신당한 유언들>. 좀 뒷장에 나오는 내용임.
와우
시에 대해 물샐틈없이 닫혀 있다? 대놓고 작품이 정치적 예술임을 인정해버리면 해결되는 문제. 소설적 가장이 사상을 부정확하게 만들었다? 정치사상을 소설적으로 풀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므로 소설이냐 사상이냐 이분법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 게다가 사상에 구체성을 더했으면 더했지 흐렸다고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비판의 주요 골자는 전체주의를 비판한다면서 선전 형식을 취하는게 말이 되느냐일 텐데, 이건 좀 생각이 필요할듯.
그리고 이대로 하면 장르문학 대부분이 부정된다. 장르문학은 한번 성립하면 자체의 논리로 존속하는 것이지, 그게 '시에 대해 닫혀 있어서' 등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번지수 잘못 짚은 것. 이 부분에서만큼은 오웰이 아니라 쿤데라가 닫혀 있다.
사실 쿤데라라면 장르 문학 대부분 부정하지 않을까 생각함.
그러겠지 아마... 할배... 만수무강하이소...
잘 모르겠다. 솔직히 좀 편협한 공격이 아닌가 싶음. 소설의 형식이 어떻든 소설이 꼭 ‘인간적인 상황들의 미스터리’를 밝혀야 할까? 그점을 깐다해도 오웰은 오웰의 방식으로 인간을 단순화하고 그럼으로 명확하게 인간의 본 모습을 표현하지 않았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또 정작 쿤데라 본인도 그 미스테리를 밝히진 못하지 않았나 싶고. 또 물을 긷는 소녀와 같은 시적 창구의 존재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문제없는 장치인 듯싶다. 결국 소설을 어떻게 재미있게 쓰느냐는 작가의 표현 방식 나름인 부분이라고 생각함. ‘13시를 쳤다’라는 도입도 이미 충분히 문학적으로 멋지지 않나. 뭣보다 여기서 이렇게 서로의 해석과 평이 갈리는 걸 보면 작품 분위기가 닫힌 거지 소설 자체가 닫히 소설은 안니라고 생각된다. - dc App
사실 그게 쿤데라의 예술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비판하는 거니까. 누군가 탐미주의를 최고로 생각해서 쿤데라 공격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할 말이 없는거고.
우왕 번역한 사람도 대단하다 우와
퍄 글빨 씹오지네
필력 소름 돋네.
글쎄. 밀란 쿤데라의 삶을 돌아봤을때 약간 꼰대감성 같은데. '나는 이런 일도 겪어봤는데~ 외국 놈들은 이런 이야기가 뭐가 대단하다고~ 쯧쯔' - dc App
그나저나 선전 없이 악에 투쟁하는 방법이란 대체 무엇일까? 아니, 이미 저명한 인간이 악이라는 글자를 입에 담는 것 부터, 그것부터 이미 선전은 시작되고 있는 것 아닌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