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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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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워드 탓에 삭제되어 재업


가라타니 고진은 나카가미 겐지, 특히 <고목탄>을 언급하며 이 글을 통해 일본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평한 바 있다. 고진은 <고목탄>을 일본 문학이 아닌 세계문학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중심부에 의해 해체되고 있는 혼란스러운 주변부에서는 역사와 신화가 뒤섞인 혁명적인 문학이 나오며, 일찍이 제임스 조이스나 사무엘 베케트 같은 모더니스트가 그랬듯, 또한 나카가미 겐지가 영향받은 윌리엄 포크너가 그랬듯, 첨단 현대의 중심부의 작가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글이 나오게 된다. 물론 이런 비평 도식과는 별개로, 나카가미 겐지의 직접적 원천은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이었으며, 포크너가 마르케스에게 영향을 줘 <백년의 고독>이 나온 것처럼 일본에서는 <고목탄>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고목탄>은 <백년의 고독>과는 전혀 다른 글이며, <압살롬! 압살롬!>에 보다 가깝되 그만의 방식으로 일본의 악덕과 파탄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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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탄>이 어떤 글인지는 이 가계도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혹은, 사실상 요약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테다. 가운데에 있는 주인공 아키유키는 참 복잡한 환경에서 태어났는데, 그 어머니 후사는 전 남편과의 관계에서 네 남매를 낳았다가 전 남편이 전화로 죽은 뒤 아이들을 키우며 살다가 류조와의 관계로 주인공을 임신했다. 그런데 이 류조라는 사내는 사실상 정력의 상징 같은 덩치 큰 사내로, 후사 외에도 기노에와 요시에 두 여자를 임신시켰고 이를 알게 된 후사는 분노하며 류조와의 관계를 끊었다. 대신 후사는 마찬가지로 홀아비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시게조와 재혼하는데, 다섯 남매를 전부 데리고 재혼하느니 이미 스무살이 넘어 준 독립한 아이들을 포함해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네 남매를 제외하고, 그 당시 갓난아기였던 아키유키만을 데리고 가정을 꾸리기로 한다. 다케하라 가문에는 시게조의 자식 후미아키 외에도 시게조의 동생의 양자 요이치, 시게조의 형의 첩이 낳은 자식 도루가 있었고, 아키유키는 완전히 외인에 가까운 도루와 명실공히 다케하라 가문의 자식인 후미아키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서, 시게조의 일을 도와 인부 겸 현장감독 일을 하고 있다.


이 복잡한 가계도의 인물들은 실제로 대부분 고목탄에서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며, 빈번히 과거 회상 및 현재 사건 속에서 등장한다. 제목으로 쓰인 이 고목탄이란 곳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공간이라 가계도의 인물 대부분은 전부 인근에 있으며, 죽음 외에는 각 인물이 빠져나갈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러니 전쟁 통의 혼란 속에서 아무렇게나 뒤엉킨 이 덩쿨 같은 핏줄 사이로 어찌나 많은 애증이 쌓이고도 또 곯았을까. 어머니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네 남매의 증오를 대표하듯 장남 이쿠오가 후사와 아키유키를 죽이려다가 결국 포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 배가 다르지만 아키유키를 늘 형이라고 생각하던 히데오를 보며 멀쩡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다는 열등감에 가득 차 자기 손으로 자기 동생을 죽여버리는 순간.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다른 남매를 키우며 유사 부부 생활을 하던 남매 이쿠오-미에와, 이복동생인 창녀 사토코와 관계를 가져버려 자신의 성욕을 증오하는 아키유키와, 어차피 중요한 것은 가정에 득이 되는 남자뿐이라고 여기며 최대한 많은 씨를 뿌릴 수만 있다면 족하다고 보는 류조까지. 자신의 부모를 부모라고 여기지 못하는 이들과,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심지어 빼곡히 모여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증오와 경멸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증오는 <고목탄>의 중심이 아니다. <고목탄>은 그보다는, 이렇게 복잡하게 뻗어나가며 아무렇게나 증식하고 붙어먹고 서로를 방해하며 옭아매는 사람들로 구성된, 칡덩쿨 같은 사람들의 생명력을 다루고 있다. 남자는 자신의 가문을 유지하고 더 낫게 만들어줄 좋은 아들을 찾고자 하고, 여자는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문에 속하고자 하며, 돈과 피가 아무렇게나 유출되었다가 묶이고 꼬이되 그 안에 응축된 생명력이 너무나 강해 방해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를 뚫고 나가며 회복하는, 메마르고 갈라진 사람들의 안에서 박동하는 뜨거운 피. 아키유키는 그 강인함을 품은 인물이자, 자신에게 강인함을 물려준 친부 류조를 원망하면서도 거기에 이끌린다. 가족을 찾고, 가족을 일구고, 다른 가족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생명력. 가짜 조상을 위한 검은 비를 마치 남근처럼 우뚝 세우고, 자신의 핏줄을 위한 미래 구상을 꿈꾸는 류조의 넋나간듯한 그림 속에서 혼란은 나름대로 제자리를 찾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은 오직 가족만을 위한 울타리에 가깝다. 다른 가족과 연결되기보다 그 피에 흐르는 생명력에 이끌려, 자기들끼리 연결되기를 원하는 근친상간의 신화와 함께 하는.


덕분에 <고목탄>은 포크너가 펼쳐내는 서사와 갈등을 일본의 전통 문학 기법 및 인간관계로 풀어낸 주변부의 혁명적인 명작으로 탄생했다. 너무나 고여서 썩은내가 가득하는 악덕의 고목탄에서 요크나파토파의 광활한 공간이나 마콘도의 순환하는 시간을 찾아볼 수는 없다. 대신 아무렇게나 중심부로 빨려나갔다가 간헐적으로 극소수에게, 개인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주입되는 돈과 권력만큼은 볼 수 있다. 아무도 예상 못할 행운과 불운, 기존의 상식과는 배치되는 모순된 현실 앞에서 가족 외에 누굴 믿을 수 있을까? 다만, 이 꿈틀대는 칡을 요즘 시대에 찾아볼 일이 거의 없으리라는 점이 참 아쉬운 일이다. 한국 현대문학이 어찌나 사소한 도시의 정서를 확대해석하여 개인의 신화를 만드는 데에 집중하는지 볼수록 더더욱. 아니면 그저 내가 이런 글이 훨씬 취향이라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토속적인 성과 폭력을 다루는 이 생명력의 제전에 바치는 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P. S. <고목탄> 책 처음에 이해를 돕기 위해 부착된 가계도에는 이름 오역이 많다. 양부의 자식 '후미아키'는 가계도에서 '후미히로'로 표기되어 있고, 시게조의 동생 '분조'는 가계도에서 '후모조'라고 나와 있으며, 아키유키의 외가 남매 중 장녀의 이름은 '요시코' 대신 '후모코'라고 나와 있다. 일본어를 그리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원문의 한자를 참고하면 소설 속의 이름이 올바른 것 같다. 이미 한참 전에 절판된 책이지만, 나중에 다시 나오게 된다면 가계도를 수정하면 좋겠다. 워낙 인물관계가 복잡한 소설이라, 가계도 탓에 오히려 이해하는 게 힘들 정도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