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에코의 문학 강의
『공산당 선언』의 문체에 대해
그것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처럼 가공할 만한 고막의 울림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당시 우리는 아직도 고딕 소설 의
낭만주의적 번창과 가까이 있었으며, 따라서 유령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실체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곧이어 고대 로마에서부터 부르주아지의 탄생
과 발전에 이르기까지, 계급투쟁의 역사를 날아가는 독수리의 눈으로 훑어보는데, 그 새로운 <혁명적>계급이 성취한 정복들에 할애된 페이지들은 오늘날의
자유 시장 경제 지지자들에게도 유효한 건국 서사시처럼 보인다. 자신의 상품들을 판매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에 이끌려 전 세계를 섭렵하고 (내
생각으로는 여기에서 유대인 출신에다 메시아 같은 마르크스는「창세기」의 서두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낮은 상품 가격은 바로 중국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
리고 외국인에 대한 증오로 무장된 야만인들을 굴복시키는 중무장 대포이기 때문에 머나먼 나라들을 전복하고 변화시키며, 자기 권력의 토대이자 징표로서 도
시들을 세우고 발전시키며, 다국적화하고, 세계화하며, 심지어 이제는 더 이상 민족 문학이 아닌 세계 문학을 창안하기도 하는 이 걷잡을 수 없는 힘을 본다
(말 그대로 영화를 보듯이 <본다>).
이러한 찬사 (진정으로 경탄함으로써 나오는)의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이 등장한다. 자신이 주문으로 불러낸 어둠의 세력들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된 마
법사처럼, 승리자는 자신의 과잉 생산에 압도당하고, 자기 자신의 시체 매장인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신의 품안에서 생성시키고, 자신의 내장 속에서 탄
생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새로운 세력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기계들의 파괴 과정에서 와해되고, 부르주아지에 의해 자기 적의 적들(
절대 군주제, 토지 소유자, 소부르주아들)과 싸우는 수단으로 이용되지만, 차츰차츰 대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화하는 자신의 적들, 가령 수공업자들, 상인
들, 토지 소유 농민들의 일부를 흡수하고, 폭동은 조직화된 투쟁이 되고,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전시켰던 또 다른 힘, 즉 커뮤니케이션
덕택에 서로 접촉하게 된다. 여기에서 『선언』은 철도를 인용하지만, 새로운 대중 커뮤니케이션도 생각한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신성 가족』에서 당
시의 텔레비전, 즉 신문 연재소설을 집단적 상상계의 모델로 사용할 줄 알았으며, 또한 거기에서 널리 유행된 상황과 언어를 사용하여 그 이데올로기를 비
판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계획적으로 말하기 전에, 『선언』은 오만한 수사학적 움직임으로 그들을
두려워하는 부르주아지의 관점에 서서 몇몇 이론화된 질문을 제기한다. 정말로 여러분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은가? 여자들의 공유를 원하는가? 종교, 조
국,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가?
여기에서 게임은 섬세해진다. 왜냐하면 『선언』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마치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안도감을 주는 대답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
국에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그 급소를 때리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환호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하는가? 천만에, 소유 관계는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었으며, 프랑스 대혁명은 봉건적 소유를 부르주아적 소유로 바꾸지 않았던가? 우리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가? 어리석은 소리,
사적 소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 국민 90퍼센트의 희생에 기초한 10퍼센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우리를 비난하는가? 바로 그렇다. 그것은 정확하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다. 여자들의 공유? 아니 천만에, 우리는 오히려 여자에서 생산
수단이라는 성격을 없애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자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는가? 여자의 공유는 바로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내
를 사용하는 것외에도 노동자들의 아내를 이용하고 있으며, 당신들과 처지가 같은 사람의 아내들을 유혹하는 것을 최고의 오락으로 삼고 있다. 조국의 파괴? 하
지만 노동자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승리함으로써 민족으로 형성되기를 원한다 …….
다음 블로그 퍼옴.
‘숭고미가 산출하는 고양된 언어의 효과는 청중들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ㄴ룽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오늘 조지 오웰로 갤이 뜨거울 수 있었던 건
약간의 정치떡밥과 무엇보다 오웰의 문학이 뛰어나서이다
허접했다면 쿤데라가 건들지도 않았겠지
『공산당 선언』의 문체에 대해
그것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처럼 가공할 만한 고막의 울림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당시 우리는 아직도 고딕 소설 의
낭만주의적 번창과 가까이 있었으며, 따라서 유령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실체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곧이어 고대 로마에서부터 부르주아지의 탄생
과 발전에 이르기까지, 계급투쟁의 역사를 날아가는 독수리의 눈으로 훑어보는데, 그 새로운 <혁명적>계급이 성취한 정복들에 할애된 페이지들은 오늘날의
자유 시장 경제 지지자들에게도 유효한 건국 서사시처럼 보인다. 자신의 상품들을 판매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필요성에 이끌려 전 세계를 섭렵하고 (내
생각으로는 여기에서 유대인 출신에다 메시아 같은 마르크스는「창세기」의 서두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낮은 상품 가격은 바로 중국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
리고 외국인에 대한 증오로 무장된 야만인들을 굴복시키는 중무장 대포이기 때문에 머나먼 나라들을 전복하고 변화시키며, 자기 권력의 토대이자 징표로서 도
시들을 세우고 발전시키며, 다국적화하고, 세계화하며, 심지어 이제는 더 이상 민족 문학이 아닌 세계 문학을 창안하기도 하는 이 걷잡을 수 없는 힘을 본다
(말 그대로 영화를 보듯이 <본다>).
이러한 찬사 (진정으로 경탄함으로써 나오는)의 마지막에 극적인 반전이 등장한다. 자신이 주문으로 불러낸 어둠의 세력들을 더 이상 지배할 수 없게 된 마
법사처럼, 승리자는 자신의 과잉 생산에 압도당하고, 자기 자신의 시체 매장인들,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자신의 품안에서 생성시키고, 자신의 내장 속에서 탄
생시킬 수밖에 없다.
이제 이 새로운 세력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우며, 기계들의 파괴 과정에서 와해되고, 부르주아지에 의해 자기 적의 적들(
절대 군주제, 토지 소유자, 소부르주아들)과 싸우는 수단으로 이용되지만, 차츰차츰 대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화하는 자신의 적들, 가령 수공업자들, 상인
들, 토지 소유 농민들의 일부를 흡수하고, 폭동은 조직화된 투쟁이 되고,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발전시켰던 또 다른 힘, 즉 커뮤니케이션
덕택에 서로 접촉하게 된다. 여기에서 『선언』은 철도를 인용하지만, 새로운 대중 커뮤니케이션도 생각한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신성 가족』에서 당
시의 텔레비전, 즉 신문 연재소설을 집단적 상상계의 모델로 사용할 줄 알았으며, 또한 거기에서 널리 유행된 상황과 언어를 사용하여 그 이데올로기를 비
판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점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무대에 등장한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계획적으로 말하기 전에, 『선언』은 오만한 수사학적 움직임으로 그들을
두려워하는 부르주아지의 관점에 서서 몇몇 이론화된 질문을 제기한다. 정말로 여러분은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은가? 여자들의 공유를 원하는가? 종교, 조
국, 가족을 파괴하고 싶은가?
여기에서 게임은 섬세해진다. 왜냐하면 『선언』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마치 상대방을 진정시키려는 듯이 안도감을 주는 대답을 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결
국에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그 급소를 때리고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환호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하는가? 천만에, 소유 관계는
언제나 변화하는 것이었으며, 프랑스 대혁명은 봉건적 소유를 부르주아적 소유로 바꾸지 않았던가? 우리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 하는가? 어리석은 소리,
사적 소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체 국민 90퍼센트의 희생에 기초한 10퍼센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소유를 폐지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우리를 비난하는가? 바로 그렇다. 그것은 정확하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다. 여자들의 공유? 아니 천만에, 우리는 오히려 여자에서 생산
수단이라는 성격을 없애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가 여자들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는가? 여자의 공유는 바로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며,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내
를 사용하는 것외에도 노동자들의 아내를 이용하고 있으며, 당신들과 처지가 같은 사람의 아내들을 유혹하는 것을 최고의 오락으로 삼고 있다. 조국의 파괴? 하
지만 노동자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승리함으로써 민족으로 형성되기를 원한다 …….
다음 블로그 퍼옴.
‘숭고미가 산출하는 고양된 언어의 효과는 청중들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ㄴ룽기누스의 숭고미 이론
오늘 조지 오웰로 갤이 뜨거울 수 있었던 건
약간의 정치떡밥과 무엇보다 오웰의 문학이 뛰어나서이다
허접했다면 쿤데라가 건들지도 않았겠지
- dc official App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난 안 읽어 봤어! - dc App
어쨌든 말하고 싶었던 건, 오웰의 소설이 프로파간다이든 닫힌 구조이든, 그의 소설이 단순히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고 겁먹게 만들고 끝내 승화 즉 카타르시스가 있는 숭고미에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