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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교보문고에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본의 전쟁역사가인 이시즈 토모유키씨의 '군사전략입문'이란 책이 있었다. 그 책은 클라우제비츠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까지의 10명의 근현대 군사사상가의 사상, 전쟁관을 설명해주는 책인데 그 책을 보고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전쟁론>이란 책은 매우 방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고 그 서술방식이 매우 철학적이고 난해하다고 정평이 나있는 책이다. <전쟁론>은 제1부부터 제8부까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충의 목차는 이러하다.

제1부 전쟁의 성질

제2부 전쟁 이론

제3부 전략 일반

제4부 전투

제5부 전투력

제6부 방어

제7부 공격

제8부 작전계획

 이 8개의 부를 모두 쓰기에는 당연히 텍스트의 압박이 있기에 무리지만 각 부마다의 대충의 내용은 적을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전쟁의 성질 -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의 본질

제2부 전쟁 이론 - 전쟁학의 방법론

제3부 전략 일반 - 전략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제4부 전투 - 전투의 성격

제5부 전투력 - 전투력을 구성하고 있는 병종, 야영 및 행군방식, 병참

제6부 방어 - 강력한 전쟁형태로서의 방어

제7부 공격 - 제6부 방어를 참고해, 그 대척점으로서의 공격

제8부 작전계획 - 전쟁의 정치성(제1부와 깊게 연관되어 있음)


<전쟁론>의 배경

 그런데 이 <전쟁론>이라는 책은 사실 미완성의 유작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아내는 남편한테 생전에 전쟁론을 내보면 어떻겠냐라고 계속 물었지만 클라우제비츠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내가 죽으면 네가 간행해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클라우제비츠는 서론에도 적혀있지만 생전에 낼 생각이 없던 작품이고, 미완의 작품이 된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일단 첫번째로,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 전쟁후 베를린군사대학의 교장직을 맡게 되는데 이 교장직을 맡는 중에 짬시간을 내서 전쟁론을 12년 이상 계속 써왔다. 전쟁론은 사실 처음의 내용으로만 보면 지금의 내용이랑은 다른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1827년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정치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전쟁론의 내용을 급히 바꿔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번째로, 클라우제비츠는 1830년에 일어난 폴란드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당시 프로이센령이였던 포젠지방에 파견되었는데 여기서 콜레라에 걸려버리고 그 병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클라우제비츠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관이자 은인이였던 그나이제나우도 같이 콜레라로 죽었다. 즉, 전쟁론의 내용을 모두 다듬기 전에 죽어버리고 만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클라우제비츠가 작성한 메모를 통해 전쟁론의 집필 의도를 알 수 있다. 클라우제비츠는 자신의 저서에 미흡한 점이 많은 것을 인정하였는데, 그 미흡한 내용 중에서 유일하게 '완전'하다고 인정한 챕터가 있다. 그것이 바로 제1부 제1장이다. 이 제1장의 제목은 '전쟁이란 무엇인가'이며, 즉 전쟁의 본질을 다루는 챕터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전쟁론의 이 챕터만 읽어도 클라우제비츠가 논하고 있는 전쟁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쟁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제1부 제1장의 내용을 정리해보려 한다. 물론 전쟁론은 이 제1부 제1장의 가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머지 부분도 물론 시대에 뒤쳐진 내용이 많지만, 그 나름의 의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전술과 전략의 구분이라든가,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라든가, 예비군의 중요성이라든가, 정군관계라든가.


전쟁의 정의

 클라우제비츠는 바로 전쟁의 정의부터 시작한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확대된 양자간의 격투'로 파악하고, 그 목적을 '상대를 굴복시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바로 폭력행위이다. 두 명이 격투기를 하면 당연히 주먹을 휘두르게 되니 그 수단이 폭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에 이르는 목표가 바로 '적의 타도'이다. 이 요소들을 군사학적 개념으로 등식화해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전쟁의 목적: 의지의 관철=정치목적

전쟁의 수단: 폭력행위=군사행동

전쟁의 목표: 적의 타도=무장해제

 그런데 이론상, 전쟁이 격화되면 자연스럽게 적 자체를 파괴하려는 경향이 강해질테니 전쟁의 목표(적의 타도)가 전쟁에서 전면에 나오게 되고 전쟁의 목적인 의지의 관철(정치목적)은 잠시 후방으로 빠지게 된다.


상호작용

 클라우제비츠는 또한 전쟁을 이렇게도 정의한다. '전쟁이란 살아있는 힘들의 충돌이다.' 즉, 전쟁이란 싸우는 양자가 존재하고, 이 양자는 한쪽이 능동적으로 행동하면 한쪽이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양자가 능동적으로 행동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쪽을 패는 것은 더이상 싸움이라고 볼 수 없지 않을까.

 클라우제비츠는 이 상호작용을 '무제한성'으로도 표현한다. 즉, 이 상호작용의 과정은 그 본질상 중간에 멈춰지지 않고 극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상호작용(무제한성)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1.단순하게, 서로 싸우는 양자는 서로를 능가하기 위해 무제한적인 폭력 행사에 나선다.

2.내가 상대를 타도하지 않는 이상, 상대가 나를 타도하지 않을까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나의 행동은 상대의 행동에 의해 조건지어지게 된다. 이것은 상호작용이며, 상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상대를 타도하려는 움직임은 계속해서 강해진다.

3.전쟁에서 적의 힘을 판단하는 요소에는 (1)수단의 크고 작음 (2)동기의 강약이 있다. 이 중에서 수단의 크고 작음은 양적으로 측정가능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동기의 강약은 양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두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상대의 전투력을 판단했다면, 상대의 전투력에 맞춰 우리의 전투력을 배치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도 똑같은 행위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투력의 배치는 극한까지 치닫게 된다.


이론에 대한 현실의 제약

 이렇게 전쟁은 이론적으로는 무제한으로 치닫게 된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이러한 무제한성은 결국 이론에만 존재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보고, 전쟁에 있어서 현실적인 제약이 가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을 귀류법적으로 생각하여 타당성을 입증한다. 즉, 전쟁이 이론과 같이 현실에서도 무제한적인 성격을 띄기 위해선 다음의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전쟁이 발발전의 국내, 국제적 상황과 무관하게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

2.전쟁이 단 하나의 결전, 혹은 일련의 동시적 결전으로 이루어진 경우

3.전쟁이 그 자체로 자기완결적이여서, 전후 이 전쟁의 결과를 결코 뒤집을 수 없을 경우


 먼저 첫번째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서로 싸우는 양자는 상대의 오늘의 의지력을 감안해 내일의 의지력도 예측하게 된다. 즉 본성상 전쟁이란 한순간에 일어나서 확대되는 것이 아니다.

 두번째 조건에 대해선, 만약 전쟁이 단 하나의 결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 결전에서 진다면 결과는 뒤집을 수도 없고, 뒤집을 수단 자체도 남겨져 있지 않을것이다. 즉, 그 단 하나의 결전에 모든 전력을 투입해도 문제가 없게 된다. 하지만 전쟁이란 단 하나의 결전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오늘의 전황이 미래의 전황의 척도가 되며 전쟁의 무제한성을 완화하게 된다. 그리고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단 하나의 결전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원인의 요소를 3가지 든다.

(1)좁은 의미의 전투력 (2)국토면적 및 인구 (3)동맹국

 국토면적과 인구는 (1)의 전투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두 요소의 차이점은 (1)은 동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데반에, (2)는 동시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것이다. 즉 한 전장이 있으면 그 전장의 풍토 및 지형(예를 들어 그 전장이 강인가 산악인가 주민이 얼마나 살고 있는가)의 영향만 받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3)동맹국의 요소일 것이다. 동맹국 역시 하나의 플레이어인 이상, 전쟁당사자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인형이 아니다. 이 동맹국은 국제정세를 감안하여 일부러 늦게 참전하거나, 균형상태가 깨지거나 회복되는 것을 보고 참전하는 경우가 있다. 1차대전에서 이탈리아가 그 대표적인 예일것이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첫번째 전투에서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 첫번째 전투도 엄연한 전투인 이상, 그 다음의 전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첫번째 전투에 전력을 투입하지 않는 이유는, 인간 본성자체가 단 하나의 행위에 도박을 건다는 큰 리스크를 지고 싶어하지 않기때문이다. 이런 인간본성에 의해 전쟁의 무제한성은 완화된다.

 세번째 조건에 대해선, 패전국은 전쟁의 패배를 잠시동안의 재앙으로만 보고 이 후의 정치상황에 따라 극구 그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즉, 하나의 전쟁 자체가 절대적인것이 아니고 얼마든지 추후의 상황에 따라서 뒤집을 수 있는 것이기에 서로 싸우는 양자는 첫번째 전투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위를 주저하게 되어 전쟁의 무제한성은 완화된다.

 전쟁이 이렇게 현실의 제약을 받게 되면 앞에 서술한 전쟁의 무제한성으로 인해 전쟁의 본성으로부터 후방으로 빠진 의지의 관철(정치목적)이 다시 전쟁을 지배하는 법칙으로서 부상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의 제약이 크면 클수록 서로 싸우는 양자는 자신의 목적을 파기하기 쉬워지고 이러한 것으로부터 전쟁의 절대성은 완전히 완화된다.


군사행동의 정지의 이유, 전쟁의 양극성

 이론상, 전쟁에 있어서 군사행동이 정지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적극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자가 계속해서 소극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자를 공격하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 가르치는 바로는, 전쟁중에서 군사행동이 이루어지는 시간보다 군사행동이 정지되고 있는 시간이 더 길다. 하지만 여기서 현대전과는 다른 양상의 기술이 발견된다. 현대전이 총력전의 성격을 띄게 됨에 따라 전선이 비대해지고 무기의 화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결과, 전선에서의 끊임없는 공세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클라우제비츠는 18세기의 왕조전쟁(관방전쟁)을 고려했을 것이다. 

 전쟁에서 서로 싸우는 양자는 무조건 승리를 향해 싸우기 때문에 적극적 의도와 소극적 의도는 서로 모순된다. 만약 전쟁에 단 하나의 수행형태, 여기서는 공격을 예로 들면, 한쪽의 우세는 무조건 다른 쪽의 열세가 되어서 양극성이 성립하게 된다. 하지만 전쟁에는 두가지의 수행형태가 있는데, 바로 공격과 방어다. 군사행동이 빈번히 정지되는 이유는 바로 공격과 방어간의 관계성에서 구해지는데, 방어가 더 강한 수행형태이기 때문이다. 즉, 양극성은 공격과 방어의 사이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하나 예를 들면, A라는 자가 4주 뒤에 공격하는 것을 원한다고 한다면 B라는 자는 A가 강해지는 4주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공격당하는 것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B가 지금 당장 A를 공격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방어가 공격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쟁에 있어서의 양극성이고, 군사행동의 정지의 근본적 이유이다. 이렇게 방어가 더욱 강하기에 전쟁은 또다시 절대성이 옅어지고 현실의 제약을 받게 된다.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계속되는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

 이상의 기술은 전쟁의 객관적 성질에 주로 초점을 맞췄는데, 전쟁에는 객관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요소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우연성'이다. 전쟁만큼 인간의 사회적 행위중에서 우연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없다고 클라우제비츠는 말한다. 그렇기에 전쟁이론은 이 '우연성'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쌩도박은 아닐 것이다. 전쟁이 사람의 실제 목숨을 걸고 이루어지는 이상, 전쟁이란 가장 엄숙한 사회적 행위이다. 그리고 전쟁이란 항상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정치적 목적이 전쟁수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전쟁론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명제, '전쟁은 다른 수단을 가지고 계속되는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라는 명제가 등장한다.

  또한 전쟁은 카멜레온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성격은 '기묘한 삼위일체'를 이룬다. 각 측면은 다음과 같다

1.증오와 적개심으로 이루어진 인간본래적인 격정

2.전쟁을 자유로운 심적활동으로 만드는 도박의 성질

3.전쟁을 완전한 이성의 산물로 만드는 정치의 성격.

 이 각각의 요소를 국가를 이루고 있는 요소로 등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1.국민

2.군대 및 장군

3.정부

 여담으로 나는 여기서 플라톤의 <국가>에서 나오는 국가의 구성원의 이론이 떠올랐는데 그렇게 중요한 착안은 아닐것이다.

 어찌됐건, 전쟁이란 이 세가지 측면이 일체화한 카멜레온과 같은 것이다. 이 '기묘한 삼위일체'이론으로 제1부 제1장은 끝나게 된다.


맺으면서

 클라우제비츠의 위와 같은 전쟁관에서 나온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규정은. 현대에서 전쟁을 정의할 때, 클라우제비츠의 견해에 동의하든 안하든 가장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정의이다. 대학에 다닐때 전쟁사 교양강의 시험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삼위일체'이론에 대해 서술하라는 문제가 있어서 적은 기억도 난다. 어찌됐건, 클라우제비츠의 통찰은 현대까지도 그 빛을 바래지 않고 이어진 위대한 것이고, 그렇기에 <전쟁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전쟁론>자체를 오독, 의도적으로 단편화하여 원용한 국가적 예는 수도 없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1차세계대전의 슐리펜 계획, 루덴도르프의 전쟁지도, 제2차세계대전에서의 독일군,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의 프랑스조차도 클라우제비츠를 잘못 해석, 또는 자신의 형편에 좋게 해석하여 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전쟁론>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체계의 정교함은 다른 군사학서적과도 한획을 그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전쟁론>은 미완성작이면서도, 또 난해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쟁학 고전으로서 현대까지 사람들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제1부 제1장말고도 그 뒤의 내용도 매우 흥미로운게 많으니 전쟁과 역사, 군사사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것이 클라우제비츠가 <전쟁론>을 집필하면서 말한 일생의 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