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대중매체에 많이 나오는 탐사 주제지. "이들은 대체 어디서 나왔나?" 이런 호들갑 떠는 기사들 많이 보인다. 엊그제 보니까 elle reeve라는 귀요미 cnn 기자가 트럼프 투표 지역에 가서 인터뷰 하는 것도 있고... 흠... 이 기자 귀여워서 인터뷰 더 찾아봤는데 black pill이라고 아마도 미국 온라인에서 일었던 안티 fe미니즘 운동의 red pill을 빗댄 것 같은 제목의 책도 썼더라. 의분은 이해하는데 나는 이런 관점들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헤겔 말마따나 진리는 전체고 극우는 알 수 없는 어느 신비한 곳에서 조커처럼 탄생하는 게 아니라 그 극우를 관찰하는 관찰자와 연동돼 있는 현상이다. 즉 그들을 극우라는 이름 또는 색으로 칠할 때 관찰자에게는 이미 말하여지지 않은 색이 이미 부여돼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극우는 '정상'과 한 몸이다. 똥이 내 몸에서 나온 것과 마찬가지다. 스팸을 구워먹고 설사를 했는데 왜 정상인 내 몸에서 설사가 나오냐고 대장과 소장을 탐사하는 건 시야를 지나치게 제한한다. 내 식습관이 그걸 초래했다. 극우적 현상에 대해 우리는 적절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고, 그저 당파적 서사나 주류 리버럴 서사만을 끊임없이 대입하는 중이다. 가령 내란선동세력 같은 말이 그렇다. 나는 오늘날 극우로 지목되는 현상이 신자유주의라는 고소한 스팸이 우리 소화기관을 통과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그때 맛있었기 때문에 스팸 섭취까지 고집스레 정상이라는 범주에 넣고 똥만 손가락질하는 게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서사의 모순점이다.



정치 얘기 더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지워질 가능성이 더 높으니까 걍 이거 한번 얘기해 보고 싶다

한강이 노벨상을 받았음에도 한국 문학은 소설보다는 시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 소설 구려서 못 읽겠다...

그게 한국어나 한국의 무슨 정신 어쩌고 하는 게 구려서 그런 게 아니라 한국은 소설 시장 자체가 너무 얕고 문단도 경직돼 있다.

경직돼 있는 건 거기에 꼰대들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열악하다 보니 그런 거.

하지만 시는 특별한 게 다른 웬만한 신자유주의 국가들은 오래 전에 이미 시라는 장르를 버렸다.

미국 정도가 힙합과 함께 시를 쓰고 있을 뿐 대부분 시는 늦어도 20세기 초에 끝났다.

근데 한국은 역사가 어째 이래저래 꼬이면서 뒤늦게 쓰기 시작한 현대시가 신자유주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던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까지 융성했고 여기서 기이한 마술이 관찰됐다.

나는 그게 소위 미래파라고 생각한다.

미래파라는 간판이 너무 성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때 나왔던 시들은 보들레르 부럽지 않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황병승인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시들을 일종의 자본주의 비명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온몸에서 철철 피를 흘리면서도 무서운 줄 모르고 나아가던 당대의 혼돈과 실험성이 특히 시와 영화에 많이 반영된 것 같다.

단순히 황병승이 천재여서, 김언희가 또라이여서, 김경주가 철학을 읽어서, 조연호가 칩거를 해서 그런 시들이 나온 게 아니라 당대 자본주의 밤과 낮의 극명한 역동성 속에 놓여 있던 한국 사회가 시와 영화에 반영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영? 그냥 한국 사회가 그 시를 썼다고 하면 어떨까.


한국 사회가 이제 그 가속도로 호되게 넘어지고 있다고 본다면 이 사회는 어떤 시를 또는 어떤 소설을 써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