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쓴 거 살펴보니 시랑 극우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서 약간 부연
이미 말했다시피 2000년대 초반에 터져나온 신경향 아방가르드 시들은 단순히 어디서 갑자기 일시에 천재들이 튀어나와서 형성된 게 아니라 97년 IMF 구제금융을 거쳐 경제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가혹한 구조조정을 모두 받아들이고 이른바 가족 동반 자살 등 그칠 줄 모르는 아비규환 속에서 중국이 신자유주의로 편입되는 조류를 타고 한국 경제가 중계 무역으로 급성장하던 정신 없는 변화가 지린 똥이라는 게 내 주장이다. 물론 폄훼하려고 똥이라고 부르는 건 아니고 어제 얘기했던 은유의 연장선에서, 문화지체 현상 때문에 현대시가 융성한 한국에서 생산된 지구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빛내던 자본주의 아방가르드 시와 우리가 요새 허구헌날 대중매체에서 접하고 있는 소위 극우의 준동은 배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한 몸이므로 똥이라는 것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는데, IMF외환위기는 그냥 나라 망했다는 선고였음에도 다들 나가떨어지는 듯하더니 그걸 금세 (주류 서사에서는) 극복해 버리고 오히려 엄청나게 성장해버렸다. 유시민은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박정희 시절의 성장의 몇 배를 해 냈다고 했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박정희가 통치하던 시절에 국가 경제 규모는 중공업에 몰빵해 절대 빈곤을 겨우 벗어난 정도였고 문민 정부 이후의 성장은 미약한 계획경제 모델의 정부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사회의 복잡성이 갖춰졌는데 마침 중국과 세계 시장의 무역 사슬이 형성되며 한국이 엄청난 수혜를 본 경우라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좋은 정치 어느 쪽이 나쁜 정치라는 얘기는 아님)
즉 고통과 신음 비명 절망이 미래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희망적 전진과 마구 뒤섞이던 시대의 공기가 귀청 떨어질 것 같은 불협화음의 대비를 드러내며 그 아름다운 아방가르드 시들과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황당한 극우 준동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그중 최고라고 생각하는 황병승 시를 조금 뜯어보자.
독서갤에서 황병승을 많이들 모르는 것 같아 생경했다. IMF 얘기 하는 거 보면 내 나이가 많다는 건 짐작되겠지...
당시 시를 읽거나 쓰던 젊은이들한테 황병승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었다.
가령 김수영, 기형도 같은 시인들이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것과도 다른 차원이다.
비교하기 미안하긴 한데, 황병승과 동시대에 문단의 아이돌로 꼽혔던 김경주가 그런 전형을 이었다면 황병승은 시쓰기 프레임 자체를 바꿔버린 사람이었고 이 사람만이 진짜 시인처럼 보였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계속 비교하자면 김경주 시는 매우 세련됐고 밀도가 높지만 황병승 시는 기존의 시쓰기가 은밀히 전제하고 있던 틀거리를 뛰쳐나간 상태에서 쓰여진 것들이어서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가 어렵다. 작품 간 수준도 고르지 못한 것 같고 '이거 퇴고는 함?' 이런 의심마저 드는 시들이 많다.
한국어 망이 있다고 한다면 그 망을 최대한 잡아당겨서 찢고 주먹을 내민듯한 극단적인 타자의 시들이고 그럼에도 가장 리얼하게 들렸다.
그건 우리가 신자유주의의 통로가 되면서 겪은 절망과 희망의 만화경과 같은 성질이었고 시에서 여러번 언급한 갓스피즈의 황홀한 음악과도 통했으며 마크 제이콥스의 길거리 패션과도 닮았다.
부드럽고 딱딱한 토슈즈라는 시의 한 대목을 보자.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그것이 머리의 차가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비옷을 입은 기자는
장마통에 집이 무너져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고 전한다
나 아끼코에게 집이라는 건 빗소리를 듣기에 참 좋은 장소인데....
비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보도는
언제 들어도 즐거움과 초재미를 준다
이 막돼먹은 비윤리적 진술이 지난 이십여 년 간 한국 대중매체를 점유했던 윤리적 당위 서사와 얼마나 심각하게 충돌하는지 느껴질 것이다.
다만 극우의 "피씨 시러 워크 시러 프로불편러 시러시러"와 달리 황병승의 시는 정치적 선언이나 대결이나 도발이 아니라 천진성에 가깝다.
이 천진함이 매우 리얼하다는 것, 즉 힌쪽에서는 비명을, 다른 한쪽에서는 환호성을 지르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리얼한 초상이라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안성기라는 배우가 군부 독재 시절을 통과하며 유별나게 바보 역을 많이 맡은 것 역시 황병승 시에서 아끼코니 뭔 장이니 하는 지목 불가능하며 무슨 말이든 허용된 유령 화자가 출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그때의 혼란과 신자유주의의 혼란은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차창의 불빛 환한 밤 기차처럼
이렇듯 나는 너무 빤하고 선언은 늘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선언의 천재
모든 것을 선언한 뒤 알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겠습니다
사성장군협주곡이라는 시의 일부인데, 역시 말할 수 없음이 결국 수다스러움으로 표현되고 마는 불협화음이다.
황병승은 신자유주의의 가장 꽃같은 날들에 통일적 자기 진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연했고 이것들이 오늘날 극우의 기원 운운하는 대중매체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애초에 통일된 적도 없고 통일될 수도 없으며 습관적으로 우리의 소원이 통일이었던 우리 사회의 관성적 믿음이었다.
여기서 위기에 대한 해답이랍시고 제시되는 상식(김용옥), 양심(최재천) 같은 개념들은 어쩌면 안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함정에 불과하다.
그 말들은 결국 상식으로 비상식을, 양심으로 비양심을 처단한다는 정치적 집행을 최후통첩으로 장전하고 있다.
그게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여러 번 겪고도 우리는 처단에 매달린다.
처단 외에는 아무런 정치적 아젠다가 없다는 것과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는 요즘이다.
흠
리버럴 먹물의 징징거림일뿐 실재앞에 포즈나 취하던 짓거리를 빨아대는게 고작이지
imf도 안 겪어본 풀피련이라 맞는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황병승 바이럴 하나는 존나 잘 하시는듯
풀피련이 머임? IMF 안 겪어도 그걸 모를 수 없어. IMF의 위기 상태가 보통 상태가 된 게 오늘날의 한국 사회임. 그 상태에서 왤케 출산율이 안 나오냐고 묻는 코미디를 매일 보잖아.
풀피련은 뭐 늙은이 보고 딸피라고 하는데서 나온 거고 imf는 뭐.... 내가 그 이전 시대를 경험해보지 못 했으니 imf 이후 한국이 뭐가 달라진 건지 알 수가 없지 않나 싶고
아 그치 IMF 이전을 모른다는 건 좀 클 것 같다. 딸피련들이 흔히 말하는 가난했어도 정이 있었던 삶이, 일면적인 서술이긴 하겠지만 있긴 했어. 공동체가 작동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처단 없는 정치가 가능할까요? 일단 이쪽부터 처단하고 바로 잇달아 동전의 양면 같은 코리안 리버럴 86세대와 페ㅁ1니스트들과도 맞서싸우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의 문학이라면 그런걸 해야 되구요
실재은 안전한곳에서 잔혹함을 지켜보는 천진함(잉여향유)을 즐기면서 윤리적으로 고상한척 하기는.
본인이 자칭 극우였다가 이번에 실체가 나타나 충격받으신듯.
오오..
한국 시 G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