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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사에서 나온『고대 영시선』을 읽어봤음. 유명한 서사시인 베오울프를 포함 총 9편의 고대 영시가 실려있음.
국내에서 베오울프 역본은 민음사 세계시인선에 실린 것이 아마 가장 유명할 거임. 그건 세이머스 히니라는 아일랜드 작가가 현대 영어로 번역한 걸 다시 옮긴 것이라고 함. 반면에 이 판본은 고대 영어를 그대로 옮겼다는 것 같음. 역자 서문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더라. 그런 의미에서도 특이한 포지션에 있다고 볼 수 있겠음.
여기 실린 시들은 분명히 영어로 쓰였지만 현대 영어 지식만 가진 일반 화자들은 원문을 읽지 못 함. 고대 영어는 현대 영어와 표기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임. 실상 우리로 치면 이두나 향찰 같은 거라고 봐야겠지. 영문학 전공자들이나 원문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함.
주목할 점은 사실 하나 더 있음. '고대' 영시들이니까 당연히 고대 문학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음. 고대 영어로 쓰인 시라서 고대 영시인 거임. 사실 중세 영어가 따로 있기 때문에 이 언어가 고대 영어로 불리는 듯함. 앵글로색슨족이 처음 브리타니아에 당도했을 시점이 5세기 즈음인데 이때면 초기 중세잖아. 고대 영어는 앵글로색슨족이 사용하기 시작한 언어이니 사실상 정립된 것 자체가 중세였던 셈임. 그러나 보통 노르만의 윌리엄 공이 잉글랜드를 침공한 뒤로 쓰인 언어가 중세 영어로 불리므로, 그 이전에 쓰인 이 언어가 고대 영어가 된 거겠지. 요는 이 책에 등장하는 시들은 사실 분류상 중세 문학이라는 거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고대 서사시들이나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다소 엿보임.
이제 개별 작품들에 대해 적어보겠음. 분량이 좀 있는 건 베오울프 뿐이고 나머지 시들은 모두 짧음. 그러므로 감상의 분량도 다소 편중적일 것임.
『베오울프』
베오울프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만큼 유명한 서사시임. 주인공 베오울프의 업적을 세 가지 전투를 통해 보여줌. 첫번째는 덴마크에서의 괴물 그렌델과의 전투, 두번째는 같은 장소에서 그렌델의 어미와의 전투, 세번째는 기트족의 왕국에서 보물을 지키는 드래곤과의 전투.
특히나 1부의 그렌델과의 전투 장면이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음. 다만 내 경우에는 직접 읽어봤을 때 이 부분이 전투 장면 중 가장 재미없었음. 왜냐하면 정말 조금의 난관도 없이 베오울프가 그렌델에게 압도적으로 승리하기 때문임. 아무리 영웅 서사시라고 해도 이 정도로 먼치킨스러움만 보여주면 재미가 있을 수가 없음. 물론 일리아스에서도 아킬레우스가 그런 경향을 보여주긴 함.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굉장히 긴 빌드업을 통해 모두가 그의 무용을 기대하게 만든 다음에 나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음. 이 서사시에서는 첫 전투 장면이 이것이고, 빌드업 할 만한 지면은 분량상 존재하지 않음. 서사시는 어느 정도 분량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처음으로 공감하게 된 대목이었음.
그런 의미에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같은 대서사시들급으로 재밌는 작품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봄. 물론 이 작품도 굉장히 유명한 고전이고 나도 나머지 두 전투 장면은 재밌게 봤지만. 개인적으로 마지막 드래곤과의 전투 장면이 가장 재밌었음. 표현도 가장 긴장감 넘치는데다가 주인공도 상당히 고전하기 때문임. 그리고 끝내 베오울프가 전사하며 막을 내린다는 전개도 인상적이었음.
사실 이것도 분량 문제라고 봐야겠는데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빠름. 갑자기 50년 후로 건너가는 장면은 다소 뜬금없었음. 이쪽도 서사시 전통의 연장선에 선 작품답게 회상을 통해서 시간의 문제를 완화하려고 시도하긴 함. 오디세이아에서 9년 간을 회상으로 떼운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야겠지. 그러나 그 회상 부분이 분량 문제로 오디세이아에 비해 세부적이지 않다는 게 흠임. 너무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지속적으로 듦.
상기한 대로 이 작품 역시 서사시 전통의 연장선에 있음. 인물의 호칭을 ~의 아들, ~의 아버지와 같은 식으로 한다던가, 각 이름들에 숨겨진 뜻이 있다던가 하는 부분이 특히 그러함. 이외에는 갑자기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중간에 삽입된다던지 하는 부분도 있음. 인도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물론 분량이 엄청난데다가 역본도 없어서 읽어본 적은 없음) 역시 그렇다고 하지.
여담으로 영국의 전통 시이기 때문에 배경도 영국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음. 배경은 덴마크와 기트(게르만족의 일파)의 왕국으로 한정됨. 참고로 주인공 베오울프도 기트족 출신으로, 이야기 전반에서 영국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그렇다면 왜 영국에서 구전되었는가? 이 서사시의 골자는 앵글로색슨족이 영국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임. 그러니까 본래는 북유럽의 게르만족들 전반에서 공유되던 구전문학이었다는 것.
글로는 8세기에 이르러서 수도사들이 처음으로 남겼다고 함.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같은 부분은 이때 들어간 것으로 추정됨.
그리스도교적 가치관 자체는 작품 전반에서 빈번하게 보임. 그리스도교적 상징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두 부분에서 볼 수 있음. 첫번째는 베오울프 휘하의 장군이 12명이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베오울프가 왕국을 위해 보물이 지닌 저주를 안고 죽는 것으로 묘사되는 부분임. 이는 모두 베오울프와 예수의 행적을 대응시키기 위해 사용한 상징이라고 봐야겠지. 참고로 내 뇌피셜이 아니라 역자가 주석에서 제시한 내용임.
『방랑하는 사람』
이 시는 방랑자가 들려주는 구슬픈 서정시라고 볼 수 있음. 그는 한때 어떠한 왕국의 신하였으나 현재는 주군도 국가도 잃고 떠돌아다니는 처지임. 그는 자신의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음. 다음은 화자가 과거에 전장에서 누렸던 영광들을 회상하는 장면임. 이 대목에서는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토로가 드러남.
"오호라, 번득이는 술잔이여! 갑옷 입은 전사들이여! 재왕의 영광이여!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두운 밤 그림자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구나!"
그러한 가운데 결국에는 허무주의에 가까운 결론으로 귀결되는 듯하다가 다시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찬양하는 축으로 선회하며 끝을 맺음.
"한 인간에게 복된 일은, 하늘에 계신 아버님으로부터 자비와 위안을 찾음이니, 우리의 안식은 그곳에 있소."
위 부분은 마지막 시구임. 개인적으로 이 구절이 들어간 것은 다소 어색하다고 봄. 분명히 앞 부분에서는 '인간의 창조주가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으니 인생은 허망하다'고 원한 섞인 감상을 내뱉고 있기 때문임. 한 시에서 완전히 모순된 이야기가 같은 화자에게서 나온다는 건 다소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생각이 듦.
『바닷길 가는 사람』
이 시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점이 굉장히 혼란스러움.
전반부에서는 뱃사람으로서의 고난과 그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가지는 자부심에 대하여 논하고 있음.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갑작스럽게 종교에의 귀의에 대하여 논하는 구절들이 펼쳐짐.
역자는 이에 대해 사실 두 시는 별개의 것인데 잘못 합쳐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 그러나 전통적인 해석은 험하지만 보람 있는 항해의 과정을 세속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하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함.
개인적으로 전반부에서 보이는 표현들이 굉장히 생생한 점이 인상 깊었음. 후반부도 전통적인 해석처럼 알레고리적으로 읽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는 않음. 그러나 역자도 말했듯, 전반부는 '이미 그 자체로 본연의 역할을 가지기에' 서로가 조응되지 않는다는 감상이 드는 게 사실임.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음.
"그러므로 나의 상념은 닫힌 내 가슴에 넘치나니 나의 마음은 저 먼 고래들의 영역에 전개되는 넓은 파도를 따라 번져 나가고, 이는 지상에서의 한계를 휠씬 뛰어넘는 것이라서, 나에게 되돌아 몰아치며 불안과 열망을 함께 가져온다오. 외로운 새 소리는 나의 가슴을 거역할 수 없게 바다로 끌어당기나니, 넓은 파도 위로 말이오."
『캐드몬의 찬가』
구약의 창세기를 아주 짧게 요약한 찬가.
이건 뭐 너무 짧아서 별로 할 말도 없음. 총 10행도 안 됨.
『십자가의 환영』
이 시가 모음집 내에서 가장 신선한 것이라고 생각함. 이 시의 구성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 자체를 의인화 했음.
화자는 꿈 속에서 의인화된 십자가와 마주치고, 그의 설교를 듣게 됨.
아무래도 이를 통해서 말하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상징물로서의 십자가 같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십자가라는 건 본래 형벌의 도구였음. 십자가형은 반역과 같은 중대한 정치범죄에 대하여 처하는 극형이었지.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한 이후 십자가는 더 이상 형벌의 도구가 아니게 되었음. 그것은 오히려 예수의 순교를 상징하는 신성한 기호가 되었음.
이 시에서 굳이 십자가 자체를 의인화한 것에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봄.
다음의 인용문을 보면 내가 왜 그런 해석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거임.
"이제 바야흐로 온 세상 사람들과 이 영광스러운 창조된 만물이 온누리에 걸쳐 나에게 영예를 부여하고, 이 십자가를 찬미할 때가 도래하였네. 바로 내 위에서 주님의 아들이 얼마동안 고통을 겪으셨다네. 그런 연유로 지금 나는 하늘 아래 영광스럽게 우뚝 서 있고, 나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구|원(금지어라서;)해 줄 수가 있다네. 오래 전에 나는 형틀 중에서 가장 혹독한 것이었고, 사람들이 제일 혐오하는 물체였으나 마침내 나는 인간들을 삶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었어."
『폐허』
이 시에서는 오래 전에 멸망해 폐허가 돼버린 한 지방의 터를 돌아보며 그 회환에 관해 논하고 있음. 역자에 따르면 고대 로마의 군단이 건설했다는 바스의 온천장 터가 그 대상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함.
쓸쓸하고 구슬픈 감상을 잘 녹여낸 표현들이 매우 인상적임.
내가 알기로는 조선시대 문인 중 한 명이 고려시대의 터를 돌아보며 남긴 거의 흡사한 내용의 시가 있었음. 이 시는 읽자마자 그게 생각나더라. 그 둘이 주는 감상도 거의 동일함. 그 주된 정서는 황량함과 씁쓸함, 그리움이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음.
"재앙의 날이 닥쳐, 사나이들 죽어 넘어지고,
죽음은 용맹스런 전사들을 다 데려갔도다. 비교의 방들은 텅 비어 폐허가 되고,
도시는 쑥밭이 되었도다. 건물 수리공들 스러지니, 이교의 성역들도 땅에 묻히고 말았도다. 그리하여 황량함만이 휠쓸게 되니, 붉은 궁륭의 지붕에선 기와가 떨어지고,
폐허의 대지 위엔 돌더미만 쌓일 뿐이더라."
『버림받은 자의 탄식』
이 시는 현대 영어로는 흔히『The Wife's Lament』라고 번역된다고 함.
그 말인 즉슨 보통은 화자를 여성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임. 그런데 역자는 화자가 여성형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 시를 단순히 연애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함. 역자는 오히려 이 시에서 여성형을 사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라고 설명함. 요컨대 이 시의 화자는 유배 상태에서 그에 대해 탄원함과 동시에 군주에 대한 자신의 충정을 표하기 위해 그런 장치를 사용했다는 거임. 실제로 역자는 이 국면에서 조선의 정철과 대응시켜서 설명하고 있음. 우리도 잘 알다시피 정철이 쓴 가사들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장치를 보여주지.
만약 역자의 추정이 맞다면 그러한 우회적 장치 또한 시대와 문화권을 넘어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거임.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다음과 같음.
"나를 보고 숲 속 어느 참나무 아래에 있는
토굴에 기거하라고 내 님은 내게 명하셨다오.
이 토굴은 오래된 것ㅡ나는 그리움에 지쳤소.
골짜기는 어둡고, 산은 가파르고 높으며,
내 집을 둘러싼 덤불은 가시가 얽혀 험한
을씨년스런 거처라오. 내 님이 나를 떠났음이
견딜 수 없게 내 가슴을 쥐어짜오. 이 세상에는
다정히 살며 침상을 함께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홀로 새벽녁이면 참나무 아래
이 토굴을 가로질러 걸어야만 한다오."
역자의 해석 대로라면 이 부분은 유배생활을 표현한 구절이 될 거임.
『말돈 전투』
말돈 전투는 실제로 말돈 지역에서 있었던 바이킹과의 교전을 그린 서사시임.
가상의 영웅 서사보다는 현실적 참혹함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지 않을까 함. 전반적으로 당대 기준으로 모범적이었던 전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 주군의 복수를 위해 죽음을 감수하고 바이킹에 맞서는 잉글랜드 측 전사들이 주인공들임.
맨 첫 대목에서 바이킹과 잉글랜드인들 간의 화친 여지가 단번에 단절 되어버리는데, 이 부분은 일리아스가 떠올랐음. 일리아스에서도 그리스 연합군과의 트로이 연합군 간 화친 노선이 잠시 있을 뻔 했으나 곧바로 단절되었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음.
"나는 이 자리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을 계속하며 죽기로 싸워, 나의 사랑하는 주군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기로 맹세하였소. 스투르메레의 충성스런 사나이들은, 나의 주군이 세상을 떠나 버린 지금, 내가 주군을 잃고도 전선을 뒤로 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며 나를 질책할 필요가 없소. 아니, 창이든, 검이든 병장기가 내 목숨 앗아 가리다."
이 구절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적과 대결하겠다는 전사적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음.
『브루난브루흐 전투』
이 작품 역시 실제로 브루난브루흐에서 있었던 스코틀랜드인+바이킹과 잉글랜드인의 교전을 그리고 있음.
위의『말돈 전투』에서 전사들의 굳은 의지를 강조한다면, 이 작품은 좀 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음. 이외의 전반적인 경향성은『말돈 전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다음과 같음.
"들판에 널려 있는 시신들을 마음껏 포식하라고 어두운 색깔의 외투를 걸친 식객들인 검은 까마귀–뿔같은 부리를 갖추고 음산한 날개를 떨쳐입은 갈가마귀들이며, 꼬리가 하얀 독수리, 탐욕스런 청소꾼인 독수리, 숲에 사는 잿빛 짐승인 늑대들을 뒤로 하고 떠났소. 이보다 더한 살육전은 그때까지 이 섬에서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 책에 쓰여 있거나 박식한 노인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에 의하면, 일찍이 동쪽으로부터 앵글 족과 쌕슨 족 사람들이 브리튼 섬을 찾아
넓은 바다를 건너와, 용맹스러운 전사답게 웨일스 사람들을 정복하여, 영광을 자랑하는
용사들로서의 명성을 이룩한 이래, 이보다
더욱 잔혹하고 치열한 전투는 없었다 하오."
이 구절은 해당 전투의 참혹함에 대해 굉장히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함.
베오울프를 현대영어로 번역한 선구자가 톨킨 - dc App
베오울프 현대영어 번역은 19세기부터 쭉 있었고 톨킨 번역은 미출간으로 가지고 있던거 10년전즘에 출간된거임
톨킨이 베오울프 비평 관련해서 기여가 있다면 모를까. 10년전 출판됐다는 번역도 톨킨찐팬들 외에는 잘 안읽힘. 대부분 셰이머스 히니꺼 읽지
고대인척하는 중세문학... 괜히 깡촌랜드라 멸시받은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