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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글쓰기에 갓 입문한 새싹들에게 으레 하는 충고가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도 그 충고를 나름대로 충실히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그 어떤 책을 마주할 때보다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내가 모든 실마리가 풀릴 때 느낀 쾌감을 글로 옮길 수나 있나? 그 쾌감마저도 진실에서 느낀 것이 아니라 나보코프의 함정에 홀린 채로 느낀 것이라면, 나는 남들에게 속은 것을 자랑하는 셈이 아닌가? 천하의 사르트르도 나보코프의 절망을 읽다가 덫에 '보기 좋게' 걸리지 않았다던가?' 그럼에도 나는 감상문을 써보려 한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나보코프에게 속은 사람이 어차피 한둘이 아닐 것이며, 사르트르도 속았는데 겨우 내가 안 속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며, 마지막으로 롤리타는 독자의 교양을 위해 쓰인 작품이 아니라 속이고 보여주고 빠지게 만드는 언어의 축제일뿐이기에 내 감상이 어떤 내용이라도 의미가 없으리라는 것이다. 내가 평소에 쓰는 글과는 출발점부터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취한지도 모른 채로 당당히 걷는 전철역의 취객처럼, 아무도 알아줄 의무가 없는 발걸음을 뻗어 본다.
사실 롤리타는 굉장히 역겨운 작품이다. 험버트는 돌로레스(험버트가 고집하는 애칭을 쓰기도 싫어서 나는 되도록 그녀를 딱딱하게 부른다)를 파괴했다. 일전에 듣기로는 이 작품에서 험버트가 자신의 죄를 다채로운 언어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묘미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언어적 미화라는 것도 딱히 효능이 없으며 오히려 험버트가 그의 죄를 정당화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시적인 표현들은 정말 아름다웠고, 주석이 보여주는 언어유희는 이 책을 원서로 읽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게 만들었다. 그럴 능력도 없으면서. 그러나 험버트의 잔이 흘러넘칠 때 돌로레스가 지르는 비명도 함께 새어 나온다. 열병에 걸린 베누스를 놔두지 않는 장면, 2세를 꿈꾸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내 지성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이 이야기를 홀린 듯이 읽으면서도 이런 장면들에서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나?'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롤리타를 질리게 만드는 이 도덕적 과몰입이 오히려 롤리타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험버트에게 돌로레스는 애초에 돌로레스가 아니다. 옛사랑 애너벨, 그리고 자신의 환상을 돌로레스라는 소녀에게 덧씌운 존재가 험버트의 롤리타다. 환상을 손수 만들었으니, 그 '소유권'은 험버트 자신에게 있다. 돌로레스의 비명? 롤리타를 소유한 험버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자신의 환상을 실재하는 존재에 투영한, 즉 눈뜨고 꿈을 꾸는 험버트의 오성이 멀쩡할 리도 없다. 그런데 내가 지금 혐오하는 험버트 또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설계된 캐릭터'다. 즉 험버트라는 존재 위에, 소아성애라는 악취미가 일찍이 덧씌워져 한껏 혐오스럽게 보이는 험버트가 있다. 그래서 그는 그냥 험버트가 아니라 험버트 험버트인 것이다. "부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 여러분이 상상해주지 않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저지른 죄악의 숲속에서 암사슴처럼 부들부들 떠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지어보라. 미소를 짓는다고 손해 볼 일은 없지 않은가." 존 레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험버트의 수기는, 아니, 이 모든 우주를 창조하고 그 안에 들어가 이야기를 완성시켜가는 비비안 다크블룸은 이 말을 넣음으로써 이미 지적한 셈이다. 진실 위에는 우리의 인식이 박혀 만든 환상적인 이미지가 있으며, 이것이 있는 한 무결한 진실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인간의 정신을 설명하는 이론이랍시고 괜히 끼어들었다가 노골적으로 조롱 받는 프로이트식 정신분석 이론도 결국 진실을 빙자한 판타지이지 않은가?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의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 같은 것." 나보코프가 보르헤스처럼 인용인 듯 창작해 넣은 시구다. 예술은 이미지고, 미학은 이미지의 유희다. 사람들은 자신이 인식한 이미지에 해설을 덧붙인다. 물론 이미지를 창작한 예술가의 의중을 되도록 반영하려는 조심스러운 감상자도 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작품이 예술가의 손을 떠났다는 것을 빌미로, 감상자에게 전권이 있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 과격파들은 여기서 나아가 감상자에게 교훈을 주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고 믿기도 한다. 나보코프는 독자들에게 롤리타를 어떤 의도도 없는, 그저 완성된 이야기일 뿐인 순수 예술로서 제시한다.
여기서 배울 것을 굳이 뽑아보아야 '소아 성범죄를 저지르지 말자!' 밖에 더 있겠는가. 독자들이 롤리타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 내용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고 정교한 언어의 차력쇼, 그리고 초반에 무심코 넘겼던 복선들의 당혹스러운 귀환과 깔끔한 회수, 다양한 문학적 레퍼런스에서 느낄 것이다. 나도 특히 언어 쇼를 끝까지 보기 위해 지루한 2부 초반을 버텼다. 교훈? 사회적 의의? 이것들은 물론 독자들이 습관적으로 찾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는 그것들을 넣을 의무가 없다. 형식미, 문체의 미. 나보코프에게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며, 모든 이미지를 걷어낸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아마도 나보코프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여기에 가장 근접할 것이다. 그릇이 예쁘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 독극물이어도 사진은 아름답다. 롤리타는 순수문학으로서, 독자를 현란하게 기만하며 독자에게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묻는다. 현실에서 겪는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정교히 설계된 연설문이 아니라, 일상과는 철저히 별개로 미적 쾌감을 선사하는 피난처가 예술이다. "지금 나는 들소와 천사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물감의 비밀을, 예언적인 소네트를, 그리고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떠올린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 이 말로 회고록을 마칠 때까지도 험버트는 감옥에 있었다. 현실의 심판을 받아도 회고록을 통해 영원히 박제된 쾌감의 존재에 이차적인 쾌감을 느끼는 험버트는, 인정하기는 끔찍하게도 싫지만 본질적인 예술가다. 뭐, 험버트가 아니라 그 아래에 숨은 나보코프를 칭찬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지만 말이다.
롤리타를 통해 제시되는 아름다움의 관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철저히 독자 개인에게 달려 있다. 나는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오래전부터 쌓여온 '내용에 관한 집착'은 롤리타를 거부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롤리타를 읽으며 느낀 무익한 쾌감은 오히려 복선들을 눈치챈 상태로 롤리타를 다시 읽으며 다시 쾌감을 느끼라고 나를 종용한다. 어쩌면 험버트가 소아성애자인 만큼 나도 교훈성애자일지도 모른다. 롤리타를 받아들이는 것, 아름다움을 재정의하는 것은 내 내면의 고리타분함을 뛰어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뛰어넘어봤자 유익함이랄 것은 없고, 보는 눈이 남들과 달라져 사회성은 떨어질 테다. 다만 험버트가 미국을 여행하며 써내린 스릴러는 나를 그곳으로 끌어당긴다. 설득하는 문장이 없는 설득문. 그 존재 자체가 말도 안 되지만 나를 확장시키려고 하고 있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혼란이다.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 내가 다음에 읽는 작품들이 결정할 일이다. 그런데 롤리타를 기억하는 한 나는 같은 자석이 끌어당기면 저항 없이 끌려갈 것 같다. 이상이 지금 내가 롤리타를 막 완독하고 느끼는 쾌감 섞인 고민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풀어낸 감상문이다.
집으로 가려고 탄 KTX 안에서 롤리타를 다 읽었고, 미처 집에 도착하기 전에 감상이 증발하는 것이 두려워 전철 안에서 두서없이 이 글을 쓰고 있다. 평소에 책 제목을 쓸 때 나름대로 고집하는 《》 기호를 안 쓰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렇게 보니 예쁜 청자를 보고 영감을 얻어 흙덩어리를 모양만 낸 채로 도자기라 우기는 꼴이다. 그런데 지금 이 글보다 내 생각을 더 솔직하게 말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 굳이 퇴고조차 안 하기로 했다. 아무튼 롤리타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퇴폐미가 아니라 그 본바탕에 깔려있는 문학의 미를 체험하게 해준 작품이다. 그 잔향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을 보는 눈이 조금씩 변해갈지도 모르겠다...
창백한 불꽃도 읽자
기차에서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이런 퀄리티의 감상을 써낸다는 게 놀랍다. 잘 읽었음 - dc App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