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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SF 소설가 테드 창은 SF와 판타지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것이 우주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시선을 전제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SF의 지향점은 우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있다. '세계에 대한 적확한 이해, 그리고 풀이’가 SF를 관통하는 핵심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과학이나 수학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문학, 그중에서도 ‘서사 형식’ 자체가 이해의 한 지점을 형성하는 것은 사실이다. SF를 고찰할 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것이 과학과 서사의 결합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SF에 내재된 진정한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SF가 미래에 대해 다루려 할수록, 오히려 신화와 더욱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신화란 세계에 대한 구조적 이해다. 세계의 근원적인 이야기를 찾아가는 일이란 본질적으로 그곳에 구조가 있었음을 상기하는 일이다. SF는 부분적으로 신화학이 하는 일을 행한다. SF는 일정한 이론을 투과하여 세계에 대한 전제를 설정한다. 그곳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세계의 총체를 설명하는 운명적 인물들이다. 그들은 세계의 총체를 대표할 뿐, 그 자체로 완전한 주체로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SF에 한해서는 세계가 실존을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SF의 서사는 결국 세계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일종의 신화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SF가 신화적 요소를 일부 포함하고 있다고 해도, 모든 SF가 신화라고 할 수는 없다. SF가 세계에 대한 방점을 찍는 것이라고 설명할 때, 우린 과학과 문학의 결합에서 비롯된 SF의 ‘시학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르적으로, 신화적 SF라는 건 어떤 것을 칭하는가? SF에서 가장 신화적인 장르를 뽑으라면 단연 스페이스 오페라로 불리는 장르일 것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란 용어 자체는 하위 장르로 여겨지던 서부극이나 소프오페라(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아침드라마쯤 되는 장르)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서 ‘오페라’란 일관된 상투성을 지닌 극 작품들을 뜻한다. 즉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용어가 강조하는 것은 해당 작품들의 장르성, 상투성이다. 서부극이나 소프오페라가 으레 그렇듯 스페이스 오페라 역시 일관된 구조에 의해 서사가 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장르들은 대부분 우리가 원형 서사 구조라 하는 것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신화 시대의 서사 방식과 매우 유사한 것이다. 특히 모험 활극의 성격이 짙은 경우 신화의 영웅들이 겪는 방식의 모험 서사를 그대로 따르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건 비단 서사적인 구성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작품이 시대를 표현하는 방법론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말을 다시 이해해보자. ‘스페이스’라는 말은 이것이 이미 코스모스적인 것, 즉 세계의 총체를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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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결국 스페이스 오페라란 이러한 코스모스의 구조를 탐구해나가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이하 셋하나) 작가의 작품은 겉으로는 SF의 형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사실 그 구조로 보자면 차라리 신화에 더 가까운 것이다. 그중에서도 『찬란한 연방』 시리즈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공식을 일부 답습하는 면이 있다. 이 글에서는 SF와 스페이스 오페라의 신화학을 경유함으로써 그가 그린 작품을 거대한 줄기를 가진 신화의 일부로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찬란한 연방』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가? 표면적으로 『찬란한 연방』은 스페이스오페라의 세 가지 법칙을 그대로 따른다. 동시에 비범한 존재가 넓은 세계로 출가하며 위기를 헤쳐 나가는, 일종의 로망스적인 형식을 취한다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 ‘나비’는 변두리 시골 행성에서 ‘연방 공무원’의 꿈을 꾸는 순진한 소녀다. 그때 자신들이 ‘연방 공무원’이라고 주장하는 ‘형태’와 ‘선장’을 만난다. 막무가내로 그들의 우주선에 들어간 ‘나비’는 마지못해 그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연방 공무원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단연 시골의 변두리에서 태어난 영웅이 고위자들과 여행을 떠난 뒤 돌아와 부족을 일으킨다는 고전적인 영웅담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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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위의 스페이스오페라의 법칙에 따라 이 만화는 연방 공무원인 이들이 행성과 행성을 여행하며 그곳의 다양한 생활상을 접하는 건 물론이고, 행성마다의 에피소드를 통해 일관된 하위 서사를 계속해서 뻗어나간다는 점까지 부합한다. 이곳에 나타난 ‘연방 공무원’이란 존재는 메시아와 다름이 아니다. 행성 사람들은 누구라도 연방 공무원이 나타나면 적대감 없이 반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찬란한 연방의 성격에는 종교적인 순례담까지 가미된다. 이것은 그들을 ‘혜성’이라 부르는 것이 공무원을 찬송하는 찬시讚詩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살펴보면 더 명확해진다. 한편 연방 행성을 다니는 공무원은 행성의 기록자다. 그들은 행성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기억하고, 또 남긴다는 점에서, 이들 자체가 신화의 사도들이며, 행성의 애도자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찬란한 연방』은 (본래 경전 등이 으레 그렇듯) 메타 신화적인 성격 또한 포함한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이 만화는 나비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가 오래전부터 찬송되는 ‘찬란한 연방’이라는 교단을 쫓아 그곳에 합류한 뒤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부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지극히 신화적인 SF이며, 이 이야기 자체가 이미 신화에 대한 하나의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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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극 후반부에 다다르면 이러한 신화적인 서사의 전제는 뒤집어진다. 신화가 현대에서 흔히 진단받는 것은 그 안에 내재된 허구성이다. 신화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비판적인 숭배로, 그것에 내재된 광기는 생각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작중의 찬란한 연방이란 것이 그렇다. 실상 찬란한 연방이란 작중에 등장하지도 않는, 말 그대로 고대에 쓰인 시에나 존재하는 매우 허구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신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허구적 시선을 부서지는 순간 세계의 실재, 세계의 구조, 세계의 ‘형태’가 비로소 드러나게 된다. ‘형태’와 ‘선장’은 실상 찬란한 연방의 소속도, 공무원도 아니었다. 그들은 찬란한 연방의 이름을 빌린, 정확히 말하자면 찬란한 연방을 사칭하는 거짓 공무원에 불과했다. 이들은 본래 ‘반달’이라 불리는 일종의 디아스포라 민족으로, 그들은 조상이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갇힌 채 생활하다가, 강제 노역에 처해진다. 그들의 과거가 낱낱이 밝혀지며 그동안 그들이 겪은 모험의 성격은 완전히 반전된다. 즉 교단의 눈에서 행성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기애도 행위였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엔 살아남기 위해 사칭했으나, 이제는 과거의 삶을 애도하기 위해 이 허구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만화가 신화를 전복함으로써 차라리 신화에 대한 비판, 애도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를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묻게 된다. 그러나 충실한 신화학자인 셋하나는 여기에서 다시금 신화를 복권시킨다. 이제 서사는 나비가 인도자를 따라 운명을 개척하는 것으로부터 역전되어, 오히려 나비가 이들의 메시아가 되는 식으로 탈바꿈된다. 만화 속 표현으로 말하자면 나비는 ‘순진한 메시아’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는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흩뜨리는, 아니 차라리 허구를 무화無化하여 진실이게끔 하는 존재이다. 작중에서 찬란한 연방은 신화화된 존재이다.

실상 그들은 실체가 없이 그저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허구적 존재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러한 허구를 통해 찬란한 연방을 기억하며, 주인공 일행에게 친절을 베풀어왔다. 그건 나비 역시 마찬가지다. 나비는 황량한 시골 행성에서 찬란한 연방이라는 허구적인 존재만을 꿈으로 삼아 살아간다. 이러한 연방에 대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심’이며 ‘순진’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순진’이야말로, 우리에게 애도를 지속하게 하며, 삶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反)신화처럼 보이던 전개는 결말에 이르러 다시금 신화를 보듬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진짜 ‘연방’이며, 형태와 선장은 사기 행각이 발각되고 다시금 영원한 노역에 빠지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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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방 공무원에게서 되돌아온 이야기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이 연방을 자처하는 동안 듣고 기록했던 모든 이야기가 우주 이곳저곳에 전승되었고, 그러자 신화의 허구성은 무너지고 진실한 것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리얼리즘의 승리’라 칭했던 엥겔스의 말을 뒤집어 ‘판타지즘의 승리’라도 칭해도 좋을까. 이야기가 현실을 따라간 것이 아니고, 오히려 현실이 이야기를 따라간 양상이니 말이다. 이러한 두 번의 전복은 작품을 읽는 우리에게 신화에 대해 다시금 재고하게 만든다.

신화는 허구인가? 또는 실재인가? 아니면 그 경계선 자체가 이미 허구적인 것에 불과할까? 우리는 이 글의 첫 단락에서 SF가 세계를 구조적으로 이해함에 따라, 신화와 같은 양상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찬란한 연방』은 그 서사 구조가 이미 신화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또한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신화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므로 이 만화를 일종의 메타 신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찬란한 연방』을 읽으며 접했던 행성들의 이야기 자체가 이미 각자의 신화에 가까운 것이다. 작중 주인공 일행은 신화적 여정을 통하여 세계의 이야기를 전하는 사도들이었다. 이를 통해서 과학(진실)-신화(허구)의 경계는 무너져내렸고, 거대하고도 다성적인 SF-신화가 탄생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셋하나둘은둘셋하나를 SF 신화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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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여기 소개된 만화의 전체적인 구조나 내용에 대해서는 미숙함이 드러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부족한 듯하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를 첨언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작가는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데포르메로 표현하되, 배경은 비교적 세심하고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으로, 배경과 인물 사이의 극단적인 괴리는 허구-현실(더 정확히 말하자면 만화적 허구와 회화적 현실)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게 된다. 이것은 만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만화적 소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기법을 가장 극단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로 일본의 만화가 판판야(panpanya)가 있다. 독갤에 이거 관련해서 다룬 글이 있던 걸로 기억하니 궁금한 갤럼은 한 번 찾아봐도 괜춘)

이 글에서는 전체적으로 작품이 답습하려고 하는 신화적 구조에 천착하여 텍스트를 분석하려 했으나, 사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의 작품을 읽는 것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허구와 현실의 해체, 그리고 직선형이 아닌 순환형으로 그려지는 세계의 구조처럼 생각된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는 이제 막 첫 번째 단행본을 출간한 작가로 그동안 잘 다뤄지지 않았음을 염두에 두었다. 아마 아직 더 할 말이 많이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라고 쓴 글이 있었는데...
복붙이기도 하고 같은 만화 다룬 글도 있어서 걍 대회 끝나고 올림
그리고 <후손들의 이야기> 최신 에피 안 보고 쓴 거라 내용 다를 수도
행성 고립돼서 망하는 에피소드까지 봤었는데...
시간 날 때 다시 읽어야지
감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