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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은 그렇다. 소설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보고 지나쳤던 풍경, 광경들이 눈 앞에 선히 들어내진다.

내 손과 턱이 벌벌 떨리기 시작하고, 사람 취급 안하고 풍경으로 봤던 사람들이 풍경 안에서 모두 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입체파와 야수파 그림이 움직이는 이미지다.

모두 앉아있거나 일어서있던 그림 안의 사람들이 내 머릿속과 다르게 모두 일어나

바깥쪽으로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죄책감과 공포가 온 몸을 겹친다.

투명인간의 백수와 석수 사이 만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때 몸이 서릿장을 맞은 것처럼 으슬으슬 떨려온다.

나의 실존적 시선이 주변인들이나 지나가던 사람들에게까지 사용해달라며 다가온다.


책을 읽다가, 평소 사회의 사람들을 오브제로 볼 때 그들이 투명인간이 되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나의 이전부터 투명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을 때가 생각났다.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꼽아보면 두 장면이 있는데, 245p에 석수가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자신을 유물론자처럼 생각하는 장면.

두번째는 252p에서 타란티노가 영화 '조커'를 설명할 때 머레이 쇼에 나온 거대한 차원의 전환이 만수의 입장에서 일어날 것 같을 때였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시대적 상황과 인물을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레 말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신의 생각이 튀어나올 것을 생각하지 못한듯이, 

독자가 그것을 유추할 수 없다는 듯이 투명인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넣어버렸다.

마치 발기를 하듯 불수의근이 후반에 난동피우는 모습은 아쉬웠지만 시대를 포착한 작품은 역시 아름답다.


그리고 최근 2일정도 동안 갤에서 젊은 작가상에 관련해 많은 실망의 이야기가 오갔던걸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보고나선 근본도 없는 땅에서 목숨걸고 자식들 키운 어미와 애비가 보였고, 그 위의 배 곪지 마라는 할애비, 할미가 보였다.

자식들의 태동하는 자유를 누구보다 바랐을 것이다. 

서양의 철학과 문학에 비해 기록된 역사가 짧은 철학과 문학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학식의 본분대로 갈 수 있게 선행자로서 많이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비난도 구체적으로 해주고.


오랜만에 긴 글을 써 짧은 글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썼는데, 그래도 중간마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엔 페이지마다 고찰했던 것과 하고싶은 이야기를 북적북적에 쓸 수 있을듯. 띠지도 사용하고.


내가 책의 투명인간을 정의한다면 '인지하며 책임져 타인에게 티가 안나는 사람'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