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료코쿠대학 강연 번역
여러분 오늘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츠메이칸 대학의 치바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종교가 테마입니다만, 저는 철학이 주된 전공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세속적이라고 할까요, 종교적인 것이 아닌 세속적인 생활, 세계의 이치라는 것을 기반으로 사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박하게 말하자면 그다지 종교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이런 기회를 얻었으니, 제게 있어 종교는 거리가 있지만, 그 점을 솔직하게 먼저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거기서부터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종교에 대한 나름의 관심가는 소재를, 오늘 이야기를 통해 저 스스로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P P T를 사용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교적인 것'이라는 것을 지금까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종교를 어떻게 봐왔는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다지 연구자다운 강연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제대로 참고 문헌을 인용하거나 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제가 정말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고 몸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런 개인적 실감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역시 철학이나 문화 연구를 하다 보면 많든 적든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어떤 종류의 종교관을 가지게 되었다고는 생각합니다.
개인사부터 시작해서 그 종교관을 향해 가보겠습니다. 떠올려보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됩니다만, 제 친가, 저는 도치기현 우츠노미야 출신인데, 불단이 있거나 절에 성묘하러 가기도 해서, 그런 식으로 가족의 연중 의례로서 불교가 있었습니다. 또는 신년 참배를 가거나요.
특히 저에게 있어 여름 오봉은 매우 특별한 시기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에 담긴 어떤 종류의 개인적인 문학적 생각이 있기도 하고, 매미가 울거나, 그리고 역시 일본의 경우 종전 무렵이죠. 그러면 저희 어머니가 친정으로 귀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묘하러 가는 거죠. 그런 일들이 겹치거나 합니다. 연말연시에 신사에 가는 건,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근대적인 습관일 테니, 그런 것보다 저에게는 그 오봉이라는, 시간이 순환하는 듯한 이 시기가 중요했습니다. 상실된 것들의 시간이죠.
제대로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오봉에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조상 신앙이기도 하고, 불교도 물론 있지만 도교의 맥락도 있거나 여러 가지가 들어 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역시 저에게 있어 오봉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한 가지 의문이 남게 됩니다.
'의례로서'라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그렇다고 불교의 가르침 같은 게 있었는가 하면, 그다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소중히 한다거나 하는 아주 평범한 도덕이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는 부모님의 직업 관계로 신흥 종교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기도 해서,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언가를 강하게 믿는다는 것은 무섭구나 하는, 그런 소박한 실감을 가지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역시 기본적으로 종교심에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줄곧요.
친가에서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 대부분에 대해서, 예컨대 뭔가 특별한 효과를 가진 상품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싫어했고, 그런 의미에서 아주 건전하게 세속적이었습니다. 저희 집은 그런 것들 전반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습니다.
또 다시 추억 이야기를 꺼내면, 이것도 돌이켜보면 대체 뭐였을까 싶은데요, 제가 아직 5살, 6살 정도였을까, 젊은 미국인 부부였나 남성 둘인가가 자주 놀러 왔었어요. 지금의 저보다 훨씬 젊었던 부모님과 친해져서 차를 마시거나 했었죠.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아무래도 선교사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계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몇 번 온 뒤로는 어느샌가 오지 않게 되었어요. 그래서 기독교가 저희 집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런 장면도 떠오릅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물론 불교에도 그런 성격이 있고, 또는 신토도 그렇지만, 뭐랄까 유일신교라는, 하나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신앙에 대한 거리감이랄까, 역시 그런 건 잘 모르겠구나 하는 것이 아주 옛날부터 지니고 있던 감각입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요.
어릴 적, 미국인 선교사가 왔던 시절일지도 모르겠는데,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 도감 같은 것에 제가 아주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요괴 도감이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여러 종류가 있었죠. 여러 요괴가 있고, 그걸 베껴 그리면서 이름을 외우는 겁니다. 부모님과 퀴즈를 하거나 해서, 이건 뭐냐고 물으면 제가 바로 대답하는 거죠.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곳에 그런 여러가지 존재가 있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요괴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다종다양성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괴는 다양하고 복수적 존재인 셈입니다.
그것은 당시 아이였던 저의 관심인 도감과 이어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무렵에는 미생물, 짚신벌레나 볼복스, 종벌레 같은 것들을 아주 좋아했고, 또 희귀한 식충식물도 좋아했습니다. 또 공룡이나 고대 식물 같은 것도 좋아했고요. 아무튼 저는 포유류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어요. 그런 마이너한 생물이 잔뜩 있다는 것이 매우 즐거웠는데, 이 또한 어딘가 요괴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표면적인 세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다종다양한 마이너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명확하게 구별된 저편이라는 의미의 피안(彼岸)은 아닙니다. ‘조금’ 벗어난 곳입니다. 조금 벗어난 곳에 재미있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리얼과 픽션의 경계를 방황하는 듯한 복수적인 것. 저는 성소수자로서의 발언도 얼마 전에 했습니다만, 저에게 있어 그 소수자의 존재라는 것은 요괴적 복수성이라는 것과 어딘가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불교도 신토도 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죽은 사람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은 있었습니다.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자, 또는 정령 같은 것이랄까, 사물을 관장하는 존재의 영역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순수한 유물론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애매한 영역이 명확한 피안은 아닙니다. 가령 그것을 준피안(準悲願)이라고 불러보기로 할까요?
그런데 생활인으로서, 혹은 서양의 학문을 하는 인간으로서 제 기본적인 감각은, 어디까지나 이 세계는 유물론과 인간관계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 이외의 특별한 힘이 결정적인 힘을 미친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에 불과하다고 아주 냉정하게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생각해왔고 저희 가족도 모두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아마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도 신불의 힘으로 세상이 어떻게 된다고는 아마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그 유물론 플러스 인간론으로 전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기본이었던 겁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즉 유물론은 이과고, 그렇지만 모든 것이 수학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며 말이란 것의 비논리라 단정할 수 없는 어떤 레토릭 같은 것에 의해 사람이 움직이는 부분이 있으니, 이 둘의 조합 (그 레토릭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 문과인거죠) 으로 세상이 대략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거기에 준피안적인 것이 희미하게 존재한다. 마이너한 것의 일탈, 어긋남 같은 것. 제가 <현대사상 입문>에서 어떠한 단정할 수 없음이라든가, 이치를 통해서는 붙잡을 수 없는 것 같은 것의 중요성을 프랑스 현대사상에서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제가 계속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어떤 준피안적인 것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차이의 철학, 그 디퍼런스(difference), 데페랑스(différance)의 철학이라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미즈키 시게루적 세계 같은 느낌인거죠.
그래서 저로서는 우선 종교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거기에 저 자신이 어떻게 관련될까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부분적인 종교 실천이 가족의 계보와 연중 시간의 흐름에 관련된 의례로서 존재했을 뿐인 거죠.
어느정도 일반성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꽤 흔한 이야기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면 엄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서 항상 하느님이 보고 있으니 제대로 해야 한다고 혼나면서 강박적으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역시 집안은 각자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태어나 자란 도치기현의 미야노하라 중학교 근처는 대략 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구자로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는 신앙이 아니라 의례의 문제에서 접근하는 것이 저에게는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종교적인 가르침 같은 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는 하기 힘듭니다. 실은 여기도 제가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서 상당히 막연한데, 어쩌면 여러 종교에서 공통된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종의 무분별함 같은 거랄까요? 누구든 구1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의 관용이라고 할까요? 세속적인 옳고 그름의 이원적인 것을 넘어서는 그 지점에 종교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나쁜 놈은 벌한다는 세속의 법을 넘어버리는 무언가. 그런 넘어버리는 것을 논해버리기 때문에, 급진적인 종교가는 세속에서 배척당하곤 하죠. 이것은 철학, 특히 고대 철학자들에게도 역시 공통된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도 그런 부분이 있고, 요컨대 속세에 사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생활할지가 아닌, 선이란 무엇인가 라든지, 근본론을 파고드는 셈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포리아(aporia)가 되어 결국 사고가 리셋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 에이로네이아(eironeia)인데, 그것이 인도하는 일종의 제로 지점을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저 같은 사람도 트위터에서 여러 사회 현상에 대해서 '아니, 잘 생각해보면 이건 어느 쪽이 옳다고도 말할 수 없는 문제에요' 같이 말하면, 활동가같은 사람들에게 냉소주의처럼 여겨지거나 하는데, 그러면 저는 매우 슬프기도 하지만, 역시나 고대 철학자가 가지고 있던, 사물을 보는 원리적 사고라는 것은, 냉소라고 한다면 냉소일지도 모르지만, 원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죠. 그리고 역시 그것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선악을 넘는다는 터무니없음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철학은 고대에 종교와 아주 밀접한 부분이 있습니다. 타르수스의 디오게네스 같은 사람을 보면 거의 성인 느낌이기도 하고요.
그렇습니다. 선악이라는 이야기로 들어가 보면, 어릴 적 외가 친척 쪽에서 오봉 성묘를 하러 갈 때, 절 근처에 지옥 그림이 있어서 친척 아주머니가 '이런 건 아이에게는 제대로 보여주는게 맞아' 라고 말해서, 저는 싫었지만 염라대왕 그림 같은 걸 보곤 했어요.
어쨌든 그런 존재가 피안에 있어서 벌을 받는다는, 이런 전형적인 이야기도 일단 제 개인사적으로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할까요, 예컨대 '거짓말하면 혀를 뽑힌다' 같은 게 저에게 있어서 그 후 중요하게 되었다고는 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런 것이 초자아로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다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던 적이 있습니다만, 어느 쪽인가 하면 제가 무서운 것은 언제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연성에 의한 불행이라는 저에게 중요한 테마입니다. 제가 뭔가 나쁜 일을 함으로써 제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쪽은 전혀 문제 없고, 사람들과도 제대로 지내고 있는데 그것이 갑자기 어떤 카타스트로피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그런 죄 많은 존재라든가, 원죄를 짊어지고 있다든가, 악인이라든가 하는 감각에 위화감이 있고, 그런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이야기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지만, 이 세계가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것이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들뢰즈 연구 후에 퀑탱 메이야수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유한성 이후>를 번역했는데, 이 세계가 언젠가 우연에 의해 완전히 아무 의미 없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철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일종의 사고 실험으로서 그런 것을 말하는 셈이죠. 하나의 우연성의 철학에 대해 극한까지 파고들면 그런 것도 나옵니다. 일본이라면 교토에 연고가 있는 구키 슈조라는 사람 역시 뭔가 자신의 인생 속에 따라다니는 모든 것이 우연이라는 것의 무미건조함에 언제나 사로잡혀 있는 듯한, 그런 부분을 포착하려고 했던 철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구키에 대해서도 쓴 적이 있고, 저에게는 그런 우연성이라는 모티프가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애초에 선악을 심판하는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부 종교 해석에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다지 주류파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흔히 이렇게들 말하죠?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선악이라는 것은, 특히 세속에서의 선악이라는 것은 여러 문맥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종교적 명령에 의해 이렇게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종교적 초월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선악으로 다투고 있는 인간 세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밖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제게는 믿는다는 것, 초월자를 믿는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아까부터 말했듯 우선 종교라는 것을 기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제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 역시 제 안에는 없습니다.
그렇네요, 애초에 믿는다는 말을 아마도 고등학교 때까지도 거의 쓰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믿는다는 말을 제가 처음 의식하게 된 것은 대학 3, 4학년? 또는 대학원 들어간 후에 나카지마 타카히로라는 중국 철학과 프랑스 현대사상을 엮어서 연구하는 선생님이 리츠메이칸에서 도쿄대로 온 이후의 첫 제자가 저였습니다. 당시 지도받은 제 졸업논문이 마르셀 모스론입니다만, 그가 당시 역사 인식과 신(信)이라는 강의를 담당하며 여러 아시아 역사학자들, 미얀마나 대만이나 한국 등등 여러 사람을 불러서, 마침 그 시기가 2000년대 전후였으니 역사 교과서 문제라든가 여러 문제들과의 관련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철학적 관점에서 역사 기술이나 아시아의 여러 갈등, 타자를 믿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수업의 조수를 제가 하게 되었어요.
믿는다가 아니라 나카지마 선생님은 신(信)이라고 말했어요. 이 신이라는 것은 신앙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적어도 그 당시 저에게는 이것은 프랑스어 푸아(foi)에서 온 것입니다. 이는 데리다로부터 온 것입니다. 신과 지(信と知), 푸아 에 사부아르(foi et savoir)에서 아마 왔을 테고, 나카지마 씨는 소위 인식론적 문제로서 무언가를 믿는 신념과도 구별하고 또한 종교적 신앙과도 구별된 어떤 철학적 문제로서의 신이라는 것을 논하려고 신이라고만 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한 글자 단어를 쓴다는 사용법에 의해 겨우 신(神)이라는 문제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멋진 꾀임에 빠져서 끌려 들어간 걸수도 있죠. 조금 이야기가 빗나가지만 저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타인에 대한 윤리에 대해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지방의 광고 대리점 경영자였고, 대졸도 아니고 자수성가해서 회사를 일으켰던, 뭐랄까요 좌익적 관심 같은 건 전혀 없던 가정 환경이었어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철학이니 뭐니 다소 좌익적인 것들을 배우면서 일종의 유일신교적 모멘트를 경험하게 됩니다. 즉, 단순하게 잘 살면 된다거나 성공하면 된다거나 멋지면 된다거나 아름다우면 된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인텔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고, 도쿄의 인텔리들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 거죠. 솔직히 처음엔 '아, 그래?' 정도 느낌이었지만요.
아마도 제 안에서 그러한 유일신교적 모멘트는 종교가 아니라 굳이 따지면 철학적 타자론을 통해서 (다만 나카지마 씨의 배경에는 레비나스가 있으니 유대교 문제가 간접적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있습니다만) 들어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야기가 계속 빗나가고 있지만 마침 1998년에 아즈마 히로키가 <존재론적, 우편적>이라는 책을 내서 부정신학 시스템 비판과 복수적인 것의 지향이란 논의를 꺼냈습니다. 부정신학 시스템 비판이라는 것은 어떤 하나의 중심적인 로직이 아닌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아즈마 씨의 그런 문제 제기는 상당히 아사다 아키라 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만, 일본에 느슨하게 퍼져 있는 유일신교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이라든가, 매우 느슨하게 이해된 다신교적인 것에 대한 매우 애매한 호의와도 아마 역시 떼어 낼 수 없는 논의라 생각합니다.
다만 데리다 본인이 그런 것을 논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현대사상이 1980년대 정도부터 하나의 중심이 아닌 복수적인 것을 향해 전개되어갔습니다. 데리다도 그랬고 들뢰즈, 가타리 등도 그랬죠. 그런 것과 일본적인 미묘한 종교관이 뒤죽박죽 얽히는 형태로 80년대, 90년대 일본의 현대사상 수용이 일어났고 저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역시 복수적인 것이 중요하다' 하나만 슬로건처럼 기억하는 느낌이었죠. 일단 단어를 전부 복수형으로 바꾸자 같은, 아주 경박하지만, 실제로 특정 시기 데리다는 단어를 복수형으로 바꾸거나 하기도 했어요. 뭐 어쩄건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제 안에서도 복수적인 것과 단수적인 것이라는 것이 뒤죽박죽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선 마이너한 것의 복수성이라는 것이 어릴 적부터 존재했었고 동시에, '역시 ~해야만 한다'는 단일한 것과의 연결로 사람을 흔드는 충격. 이것이 방금 언급한 대학 입학때 느꼈던 유일신교적 모멘트와 함께 제 안에서 계속 진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애초에 믿는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채로 대학에 들어가서 나카지마 씨의 영향으로 신(信)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좀 더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믿는다는 것 자체는 성장함에 따라, 즉 고등학생에서 대학에 들어감에 따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무언가를 이것은 이렇다라고 결정하는 신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렇다라고 말할 때 그 근거는 대체 무엇인가 하는 발상이 성장하며 점점 생겨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평론 흉내나 여러 가지 글을 쓰기 시작해서, 거기서부터 지금의 제 직업으로 이어졌는데, 아직 17, 18살이라 제대로 된 근거를 댈 수는 없었고, 대학에 들어가서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그건 당신의 감상이죠?'(*2ch 설립자 히로유키의 유행어) 같은 지적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제대로 된 이론적 증명을 해야 한다거나, 참고 문헌을 제시해야 한다는 개념을 점점 배워 갑니다. 학문이란 우선 근거 제시이다, 그런 근거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하는 것을 대학에 들어가 여러 분야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갑자기 이야기를 건너뛰게 되지만, 사람은 일종의 근원적인 무근거에 어떻게든 대처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 또한 하나의 이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철학에서도 언급되지만 특히 정신분석적인 생각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결국 무언가에 근거를 제시할 때, 예컨대 거기서 쓰여지는 단어의 정의가 문제가 되고, 그 단어를 정의하는 단어의 정의가 다시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근거 제시는 소위 말해 무한 퇴행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사실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사고를 정지시키며 이 이상 해도 의미가 없으니 이걸로 마무리짓자, 라고 하는 것이 현실인거죠. 이건 법률 같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의 경우에는 이것이 공리계를 처음에 설정하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문과적인 분야에서도 그 이상 거슬러 올라가서는 안 되는 지점이 우리 안에 애매하게, 명확하게 의식하지 않아도 존재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실은 모든 근거 제시는 어느 지점에서 적당히 덮어 두는 셈이며, 근본에 존재하는 무근거를 은폐하고 있는 셈이기도 합니다. 정말로 극단적으로 말하면요.
그렇기에 인간은 사실 엉성하다...같은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근원적인 무근거는 근원적인 무근거이기 때문에, 덮어 두지 않으면 우리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로직 또는 아로직(alogic)을 주장한 사람이 프랑스의 피에르 르장드르라는 사람입니다. 좀 재밌는 사람인데, 라캉 정신분석을 공부한 후에 세속법과 종교법과의 관계에서 근대법이 어떻게 성립해 왔는가를 연구하며 근거 제시의 무한성 문제에 대해 인간이 근본적으로 더 이상 '이건 그냥 이래'라고 고정할 수밖에 없는 도그마를 지니고 있고, 그런 도그마적인 것 없이는 사회는 성립할 수 없으며 인간이 주체화될 수 없다는 이론을 성립한 사람입니다. 이걸 도그마 인류학이라고 부르죠. 뭔가 굉장히 꺼림직한 명칭이지만요.
왜냐면 그 도그마적인, 독단적인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인 사고로 나아가자는 것이 근대 철학의 역사였기 때문인데, '아니 그렇게 말해도 도그마 없이는 살 수 없어' 라는 걸 아주 아이러니컬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르장드르는 도그마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속임수가 어떻게 성립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의례를 꺼내듭니다. 의례란 무엇인가. 의례 자체를 행하는 데에는 의미가 없고, 단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일 뿐이고, '이건 그냥 이래' 같은 동어반복을 물리적으로 형상화하는것, 또는 신체화하는 것이다.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원리를 '이건 그냥 이렇다고 하자'라고 공유할 때 모두가 일정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거나 절을 하거나 하면서 심한 말로 하면 속임수가 시작되는 거죠.
그렇게 동어반복을 공유합니다. 그 이상의 '그건 당신의 감상이죠?' 라는 지적을 차단하기 위해 신체를 움직이는 의례를 행한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대로 괜찮은건가 싶은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즉 머리로 이치를 따지는 걸 멈추고 몸으로 납득할 수밖에 없는 영역으로 넘어간다는건 체육계적 권력이 아닌가? 보수파가 최종적으로 말하려는 지점 아닌가? 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죠. 실제로 르장드르는 프랑스에서는 보수 성향의 논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멈춰서 의례의 신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우선 의례를 행하고 일단은 납득한다는 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폭력 행사와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련된 의례라고 해도 강제적으로 사람들에게 시키고 있는 거니까 간접화된 폭력 행사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쪽으로 더 밀고 나가면 의미를 알 수 없는 절차 같은 건 전부 그만두고 모든 걸 이성적으로 납득한 다음 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갈 수도 있죠.
여기서 푸코를 꺼내자면, 푸코가 분석한 근대적 제도에서의 규율 훈련, 소위 디시플린(discipline)은 예를 들면 시간표를 정하고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듯이 모두 함께 조용히 남의 이야기를 앉아서 듣는다거나 하는 것도 하나의 의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신체를 일정한 시공간에 구속하고 운동을 제한하고 있죠.
이런 것을 간접적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푸코는 구별했습니다. 왜냐면 푸코는 <감옥의 탄생>에서 우선 신체형이라는 것을 처음에 언급한 후 이후에 감옥이라는 제도를 논해 둘을 구별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폭력 행사와 의례의 신체성을 구별한 필요가 있고, 의례의 신체성을 감옥에 대응하는 건 좀 그렇지만, 적든 많든 우리는 규율 훈련 속에서 살아갑니다.
왜 그런 구분이 필요한가 하면,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의례적 제도들의 신체적 납득 없이는 운영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이성적인 논의로 한다면, 앞서 말했듯 단어의 정의의 무한 퇴행같은, 트위터 같은 데선 그런 식으로 지적하는 사람이 가끔 출현합니다만, 의미 없는 지적을 계속 반복하며 아무것도 성립하지 않게 되버립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이건 그냥 이렇다 하자'는 일종의 타협을 해야만 하고, 그걸 위해 시간 제한을 둔다거나 글자수 제한을 둔다거나 서류의 형식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타협을 강요당하는데, 의례라는 것을 그러한 형식이라는 상당히 확장된 의미로 파악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생활의 모든 곳에 그런 의례적인 스토퍼가 작용해서 세상은 성립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이야기가 빗나갑니다만, 인터넷에선 그게 작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트위터의 싸움은 끝나지 않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대면으로 이야기할 떄는 보통 그 정도의 지적 공방으로 번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체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되어서, 물론 이는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할 지 모른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신체가 마주하는 물질성, 거기서부터 생겨나는 공간성이란 것이 타협을 성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사람을 만나 사교를 하거나 식사를 함께 하는 건 단순히 노는게 아니라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이성주의자는 알 수 없는 이성의 본질, 즉 이성적으로 사람이 행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이성적인 모멘트가 신체적인 마주보기와 그것에 의한 시공간 공유인 겁니다. 믿는다는 것은 신체성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즉 종교에서 접근한다기보다 신념의 무근거에 대한 무한 퇴행을 어떻게 멈출까 하는 문제에서 여러 종교의 존재 의의에 접근하는 식으로 종교를 바라보았습니다. 즉 무근거에 대처하기 위해서야말로 종교가 의미를 지니며, 특히 신체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근대화된 종교는 의례나 기존의 도덕을 점점 포기해 가면서, 과거라면 이런 걸 하면 안된다 같은 여러가지가 점점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만,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근거에 대한 방파제로서의 최소한의 의례적 신체성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종교라는 것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명제를, 도덕적 명제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해야 한다'는 것을 뛰어넘는 메타 시스템이 종교이며, 그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 즉 의례의 넌센스함, 종교의 넌센스함이라 하면 좀 그럴 지도 모르지만, 세속의 합리성에서 보면 왜 그런 걸 믿고 있냐고 하죠. 세속적으로 의미를 갖는 신념을 지니기 위해서 그 뿌리에선 어떤 합리화할 수 없는 하나의 공리계 같은 걸 믿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근본에서의 무근거와 가장 마주하고 있는 것이 종교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속의 법을 어긴 인간이라도 종교의 구1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종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특정 규율을 명령하는 것이 아닌, 어떤 인간이라도 그 인간의 존재 방식을 제로로 되돌림과 동시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제로부터 생각하도록 촉구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회개이고, 그러한 되돌아가야 할 무근거의 방파제로서 종교가 존재한다, 라는 종교관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결국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돌아갑니다만, 종교적인 것이 가장 구체적인 개인적 경험으로서 나타난 게 역시 오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장소에 모인다. 여름에 한 번, 저희 집안 사람들은 모입니다. 상실된 것들을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를 생각한다. 그런 시간이죠. 거기선 뭐랄까 시간이 좀 특별한 형태로, 일본적으로는 지옥의 가마솥 뚜껑이 열린다고 하는데,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아요. 세속의 시간 흐름이 아닌거죠. 하지만 피안의 초월자를 믿는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제게는 뭐랄까 준피안적 시간인 셈입니다. 그런 주변부에 존재하는 듯한 시간은 역시나 규범에 의해 은폐되어 있는 마이너한 것들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흙 속에 숨어 있던 매미가 나와서 우는 것 같은, 마이너한 것의, 감춰진 요괴적인 것이 목소리를 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땐 오봉 이야기를 너무나도 쓰고 싶어져서 <데드라인>에서도 나오고 <오버히트>에서도 나옵니다. 또 앞으로도 아마 오봉 이야기를 쓸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게 아닌 서스펜션(suspension)의 시간이죠. 서스펜션에도 이중적 느낌이 있어서, 굉장히 멍한 아무 것도 아닌 해방된 시간이면서 동시에 서스펜스(suspense)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완과 긴박이 함께 있는 듯한 시간.
오봉이란 무엇인지를 추구하는 게 제 문학적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제게 있어 프루스트적 사명이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오봉을 찾아서 같은. 요즘은 옛날 같은 오봉이 아니니까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런 이야기는 여러 곳에 존재합니다. 오르페우스 이야기라든가. 오르페우스, 에우리디케, 우연성에 의한 상실, 또는 세계의 근본적 우연성이라는 근거의 상실에도 불과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믿으려 하는 것.
무언가를 상실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우연히 돌아가시는 거죠. 친척이 죽는다는 것에서 뭐랄까 세계의 우연성이 노인의 신체를 통해 느껴져 오고, 그 장소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족의 결속이라기보단 더욱 추상적인,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우연이며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세계까 어떻게 변할 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먹고 웃고, 또 그 시기가 지나면 헤어진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우연성에 견디며 어쩄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믿는 수밖에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아마 저는 그런 걸 생각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