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줄 요약
1. 중국에서 문혁은 비교적 허용되는 주제
2.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 상대적임
3. 서구 사회의 표현의 자유 정도로 허용하는건 아님
1. 중국에는 "공산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라는 말이 있고, 당연히 역사 해석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특히 현대사 해석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2. 이때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1981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입니다.
여담으로 이 역사 결의는 1945년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당의 약간의 역사문제에 관한 결의"의 오마쥬에 해당합니다.
3. 1981년이라는 시기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이 결의는 덩샤오핑이 주도한 것이고 당연히 덩샤오핑의 입맛에 맞춰진 것인데, 덩샤오핑 그 자신이 일방적 피해자였던 문혁은 전면 부정하지만 덩샤오핑이 주도했던 반우파 투쟁에 대해서는 아주 정확하고 필요한 일이었다고 묘사합니다.
4.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당연히 문혁에 대해서 "어떤 의미에서도 혁명이나 진보가 아니었다"면서 "10년간의 심각한 재난을 가져다준 내란"이었다고 아주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면서 문혁의 원인에 대해서는 당시의 제도적 문제(과도했던 개인숭배와 개인 권력 집중), 마오쩌둥의 사상적 문제(극좌주의), 마오쩌둥의 오류를 린뱌오와 장칭 등이 악용했다는 점 등을 꼽습니다.
5.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 지도부도 덩샤오핑의 그림자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 해석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뭐 시진핑은 자신이 장쩌민, 후진타오와 달리 덩샤오핑의 그늘에서 독립한 지도자라고 주장합니다만...
6. 덩샤오핑 등은 문혁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문혁을 비판하거나 언급하는 것에 대해 비교적 포용적이었습니다.
비교적이라는건 1989년 천안문 사태 같은 사건과 비교해서 자유롭다는거지, 서구 사회 같은 수준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문혁은 중국에서 있었지만, 문혁 연구는 중국 밖에서 있었다"라는 한 중국인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물론 문예쪽이 아니라 역사연구쪽이긴 하지만, 문예쪽도 크게 다를건 없죠.
또, 실제로도 공산당은 자신들의 검열을 거치지 않는 한 문혁을 다루는 출판물을 금지한적도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