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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글 논쟁을 지켜보았습니다. 사실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취향은 철저히 주관의 영역입니다. 어떤 작가가 낫고 어떤 작가가 낮다는 식의 줄세우기에 소위 '비평가'들 사이에 통용되는 합의는 존재합니다. 다만 독서는 비평가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비평가들의 평론과 대중의 취향은 별개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나보코프의 작품을 최근 인상깊게 읽었지만 나보코프가 토마스 만을 두고 비아냥대는 것은 솔직히 유쾌하게 넘기기 싫습니다. 다른 예로 저는 서머싯 몸, 오 헨리의 작품들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었는데 비평가들이 그들에 대한 언급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의문스럽습니다. 저는 비평가들이 대체로 호평하는 작가들, 가령 조이스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도 분명 좋아합니다만, 그들보다 더 좋아하는 작가들이 분명히 있고 이런 제 취향은 비평에 개의치 않고 독서 경험을 쌓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성됐을 따름입니다. 말을 많이 돌려서 했는데, 거두절미하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우선 자신에게 끌리는 작가를 찾고, 그와 연관된 책들을 읽으면서 차차 '자신의 독서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해진 커리큘럼 같은 것은 없습니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프톨레마이오스 황제의 면전에서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교양을 쌓고 마음을 기르는 독서에 왕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들, 그리고 그 접촉 끝에 사랑하게 된 것들을 계속 따라가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샛길을 발견해나갈 뿐입니다.


다만 입문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작가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같은 뜻의 문장을 말하더라도 누군가는 만연체를 써서 세세히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누군가는 장황한 대화체를 써서 사상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누군가는 이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독자와 수월히 소통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아무래도 독서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마지막의 경우가 가장 친근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또 사상을 주입하는 작가는 필연적으로 독자와 벽을 둔 상태로 관계를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새로운 사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책 한 권으로 사람 생각이 쉽게 바뀐다면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종으로 존속하겠죠. 그래서 사상을 직접 드러내는 작가일수록 입문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제 나름대로 '받아들이기 쉽고, 사상적 거부감이 덜한' 작가들을 추려서 입문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저도 딱히 독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제 취향을 구축한 독자로서 이 가이드라인을 감히 제시해 봅니다.


1. 단편 소설 작가들

사실 입문자들에게 제가 가장 추천하는 것은 '단편소설집'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루한 싸움에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그 길이가 짧다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도 쉽고, 작가 입장에서도 짧게 쓰려다 보니 군더더기를 많이 제거하게 됩니다. 추천하는 작가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니스트 헤밍웨이 : 언어를 간결하게 쓰면서도 분위기를 자아내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2) 니콜라이 고골 : 다소 기독교 사상에 절어있기는 하지만, 불쾌하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짧은 판타지가 매력입니다.

(3)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동양의 고골이라고 생각합니다.

(4) 루쉰 : 당대 중국의 상황만 대충 알아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 국문학 단편선 : 국문학 단편소설들은 작가들을 구분하지 않고 작품들을 골고루 수록한 선집이 많습니다. 이상 같은 특이한 작가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2. 추리 소설 작가들

아무래도 추리라는 장르 자체가 흔해져서 추리소설은 격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복선이나 구조를 이해하려면 추리 소설이 분명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추리 소설 마니아여서 자신의 작품에 추리 기법을 넣은 작가들도 많습니다. 추천하는 작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화차」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책 말고는 같은 작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어서 아래에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1) 에드거 앨런 포 : 사실 추리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오귀스트 뒤팽' 시리즈 작품은 3개 뿐이고 그나마 「마리 로제 수수께끼」는 특정인의 입맛에 맞추려고 어설프게 짜맞춘 느낌이 강하지만, 아무튼 이 분야의 시초 중 한 명으로서 굉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추리 소설이 아니어도 포가 쓴 강렬한 단편들은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특유의 아우라를 상상하며 읽으면 입문자라도 쉽게 빠져들 것이라 확신합니다.

(2) 아서 코난 도일 : 그냥 이 분야의 최고봉이라고 봅니다.

(3) 레이먼드 챈들러 : '캐릭터성'을 가장 강렬하게 사용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추리 구조 자체는 산만하지만 추리 소설의 형식을 따른 탐정의 모험기라고 생각하면 평이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단, 「리틀 시스터」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4) 인싸픽들 : 말그대로 인싸들이 읽을법한 소설들입니다. 이런 소설들은 광고가 많이 뜹니다.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소설이라니 무언가 거부감이 들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느끼는 가벼운 재미가 독서를 이어나가게끔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유행에 편승해서 읽었는데, 남는 것은 없었지만 추리 소설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희곡 작가들

희곡은 정말 특수한 작가들을 제외하면 쉽습니다. 묘사를 괄호에 욱여넣고 대화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니, 묘사에 매몰되지 않고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많습니다. 특히 현대 작가로 갈수록 파격적인 시도를 한 작가들이 많아서 난해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극이 없는 희곡은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 점에 유의해서, 희곡을 읽기 전에 희곡의 난이도에 대한 정보를 얻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작가는 따로 추천하지 않겠지만 「파우스트」는 나중에 읽으라고 말하고 싶네요. 


4. 신화 작가들

신화를 모티브로 삼아서 창작을 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신화를 현대판으로 재창작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이해는 다른 책을 읽을 때에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가 가장 잘 정리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서사시를 그대로 읽는 것도 재밌습니다. 서사시라고 하니 뭔가 새로운 분야처럼 보이는데, 어차피 번역을 하면 운율을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산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호메로스는 어느 정도 기본 소양이고,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편 그리스 로마 신화만큼이나 큰 영향력을 미친 것이 기독교인데, 기독교 신화는 이렇다 할 입문서가 지금은 딱히 생각나지 않네요. 다만 성경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창세기」, 「출애굽기」, 「마태복음」 정도가 수월할 것 같습니다.


5. 일반 소설들

이 항목만큼은 작가가 아니라 책을 직접 지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명작 하나를 내놓고 변주를 남은 커리어 내내 반복하는 작가들도 많으니까요.


(1) 「오만과 편견」 : 모든 로맨스 소설의 기초입니다. 단순히 연애 소설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함의, 인간 관계에 대한 교훈 등 많은 것을 줍니다.

(2) 「성채」 : 비교적 최근에 쓰인 소설이라 배경도 그리 멀지 않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보람이 있습니다.

(3) 「고리오 영감」 : 세속적인 사람들을 풍자하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발자크 유니버스의 넓음을 생각하면 입문작으로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4) 「데이비드 코퍼필드」 : 마술사 이름이 아니라 책 주인공 이름이고, 오히려 이쪽이 원조입니다. 많이 두껍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고 흥미진진함이 계속 이어져 도전해볼만 합니다.

(5) 「돈 키호테」 : 방금 말한 「데이비드 코퍼필드」보다 훨씬 두껍지만, 이야기는 오히려 정말 쉽고 재밌습니다. 두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분께 특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6) 「톰 소여의 모험」 - 「허클베리 핀의 모험」 : 어른들이 읽는 동화로 보일 수도 있고, 블랙 코미디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상당히 다면적인 작품들입니다.

(7) 「반쪼가리 자작」 - 「나무 위의 남작」 - 「존재하지 않는 기사」 : 동화풍의 설정을 전제로 심오한 성찰을 하는 작품들입니다. 크게 어렵지 않아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나무 위의 남작」은 좀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세 작품이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앞과 뒤의 두 작품만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8) 「도련님」 : 정의가 박하게 대우받는 시대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래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는 주인공과 작가의 노력이 비상하게 느껴집니다.

(9) 「모모」 :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이라면 특히 공감할 요소가 많을 것입니다. 두꺼워 보이지만, 동화라서 읽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10)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사실 이건 제 사심이 담긴 픽인데, 저는 독서를 이 책을 계기로 시작했습니다. 주인공 맥머피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의로운 영웅은 아니지만, 나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후로 막연히 맥머피처럼 현실적이고 멋있는 인물로부터 교훈을 얻으려고 독서를 시작한 것이 벌써 9년 전이네요. 입문자분들도 자신만의 맥머피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