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25년의 1/3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에 치여 살다가 이번 달 들어 대소사를 마무리 짓게 되었는데 그덕인지 책읽는 데 쏟을 수 있는 여유 시간이 더 늘어나서 독서량이 제법 늘어났다. 또 한달 간 읽었던 책들을 살펴보며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한창 독서할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알고보니 딱 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골라 읽었었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읽었던 책들이 하나같이 다 훌륭해서 즐거운 한 달을 보낸 것 같다. 다음 달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읽어볼 것을 다짐하며 지난 한달간 읽었던 책들을 정리해보겠다.
1. 마이클 K의 삶과 시대 (Life & Times of Michael K)
“K는 자신이 기어 나와 일어나서 어둠에서 불빛으로 나아가 자신을 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전장으로 떠나 전쟁이 끝난다면 정원을 가꿀 시간도 생길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있었지만, 반면 전쟁통에도 남아서 정원이 살아있도록 가꿔나가거나 최소한 정원을 가꿀 생각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K knew that he would not crawl out and stand up and cross from darkness into firelight to announce himself. He even knew the reason why: because enough men had gone off to war saying the time for gardening was when the war was over;)”
- 마이클 K의 삶과 시대 中 -
남아프리카 공화국 태생의 소설가이자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J. M. 쿳시(J. M. Coetzee, 1940 -)의 장편소설인 마이클 K의 삶과 시대를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재작년에 읽었던 같은 작가의 책인 추락(Disgrace) 덕분이었다. 그 작품을 꽤나 인상깊게 읽으면서 이 책이 작가에게 1999년 당시에는 전례가 없었던 두번째 부커상을 안겨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쿳시에게 첫번째 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이번에 이 책을 읽어봤다.
본작은 가상의 내전에 휘말린 남아공의 도시 케이프타운에서 시의회 정원사로 일했던 마이클 K라는 사나이가 와병중인 어머니 안나 K의 소원에 따라 어머니를 모시고 그녀의 고향인 프린스 앨버트로 가는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이다. 무작정 어머니의 소원 성취만을 위해 떠났던 여행길에서 마이클 K는 역경과 고난을 겪는데, 가공할만한 고통의 삶 속에서 그는 자신의 근본적인 존재의의를 되새깁니다. 한때는 도시에서 근근히 생활하는 임금노동자로만 살아왔었고, 하나뿐인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는 의무에만 묶여왔던 마이클 K의 삶은 케이프타운을 완전히 벗어나고, 안나 K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조금이나마 있었던 돈으로 음식을 사먹으며 끼니를 떼웠던 여정 초기와 달리 프린스 앨버트에 거의 다다른 상황에서의 마이클은 식욕 조차도 느끼지 못해 밥을 챙겨먹지 못해 기아 상태에 이르렀지만 어떤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았던 덕에 그간 누리지 못했던 자유의 존재를 깨닫고 이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마이클은 정원사로서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직접 호박 재배를 해서 맛보는데 이제까지 못 느껴왔던 식욕을 다시 일깨우게 되면서 스스로 일궈낸다는 것의 가치를 알게된다. 그 이후로도 마이클을 옥죄어 오는 속박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며 꿋꿋이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추구한다.
이토록 마이클 K는 초인적인 의지로 자유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정신을 지녔지만, 반대로 그의 행색은 날 때 부터 가지고 있던 구순열로 외모가 이질적이고, 고된 여정으로 피골이 상접한데다가 생활양식도 땅속에 굴을 파고 나무껍질을 파먹는 등 육체적으로는 동물에 가까워진다. 작중 서사도 그렇고 주인공의 이름도 마이클 ‘K’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사람을 난데없이 동물로 바뀌는 내용이나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는 동물의 이야기를 써내며 인간성에 대해 탐구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연상되었다. 보편적인 인간 실존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배경이 남아공인만큼 지역적인 색채도 짙은 편이다. 가령 남아공이 내전의 수렁에 빠져있고, 사람을 인위적인 분류에 따라 수용소에 가둬 노역을 시키는 걸 보면, 남아공의 아픈 역사이자 절멸수용소가 처음으로 등장한 보어 전쟁과 지금도 그 반향이 남아있는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은유가 돋보인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이면 쿳시의 작품답게 문장은 간결하지만 내용이 밀도가 있고 은유적인 요소가 제법 있고 챕터 구분없이 이야기가 달려나가다 보니 생각보다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절대적인 양 자체가 많은 편은 아니고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깊은 사유가 있는 책이므로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2. 콜레라 시대의 사랑 (El amor en los tiempos del cólera)
“두 사람은 마치 부부 생활의 지난한 고통의 언덕을 뛰어넘은 듯했고,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직접 사랑의 심장부로 들어간 것 같았다. 열정의 함정과 환상의 잔인한 조롱, 그리고 환별의 신기루를 극복하고,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은 늙은 부부처럼 조용히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사랑은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랑이지만, 죽음이 가까워올수록 그 사랑의 농도는 진해진다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 콜레라 시대의 사랑 中 -
콜롬비아의 국민작가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이자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ía Márquez, 1927 - 2014)의 대표작 중 하나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어봤다. 요전에 같은 작가가 썼던 백년의 고독(Cien años de soledad)과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El coronel no tiene quien le escribe)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책 자체는 작년부터 구해서 책장에 꽂아뒀다. 그러다 다른 책들부터 읽고 생업도 바빠서 읽지 못하다가 이번달 들어 시간에 여유가 생겨서 이책을 꺼내서 읽어봤다.
본작은 겉으론 모범적인 상류층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페르미나 다사 부부와 페르미나를 평생에 걸쳐 사랑해왔던 사나이인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 자체도 황당한 사고로 81세에 세상을 떠난 우르비노 박사의 장례식에서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페르미나 다사에게 51년간의 짝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이들의 과거사를 따라가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들의 가슴아린 사랑이야기를 톺아보면 작가의 또다른 대표작인 백년의 고독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그 이전까지 문학의 정석적인 서사를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숨가쁜 템포로 전개되는 이야기에다 다소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사건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백년의 고독과 비교하면 본작은 정반대로 어느정도 템포도 조절이 된데다 문장도 19세기 사실주의 문학이 생각날 정도로 현실적인 묘사로 들어차 있고 소재도 사랑이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세계 문학사에 손꼽히는 대문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니만큼 본작은 단순한 연애소설의 수준을 넘어선 깊이와 섬세함을 담아내고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본인이 지닌 가장 탁월한 장기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본작에도 유감없이 발휘하였는데, 사실주의적인 필치하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듯한 구전동화 풍의 서사전달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어 이야기에 감질맛을 더해준다. 또 작가가 자국 역사에 관해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도 마찬가지로 드러나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수많은 콜롬비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내전과 콜레라 창궐도 본 작품의 주요사건에 녹아들어 있어 풍파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근현대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작중 특기할 만한 점을 한가지 더 꼽자면 사랑에 관한 작가의 관점인데, 다른 연애소설에서는 긍정적으로만 묘사되는 사랑을 이 소설에서는 부정적인 면도 빠짐없이 담아낸다. 즉흥적인데다 사실관계를 심히 왜곡시킬 정도로 대상을 우상화하기에 이르는 사랑을 콜레라에 빗대어 병적인 감정으로 묘사한 점은 꽤나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마지막으로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작년에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 이후 실로 오랜만에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면서 재밌게 읽었던 작품인 것 같다. 상술하였던 작품의 통속적인 요소들이 어찌보면 그만큼 대중친화적이다 보니 진입장벽을 낮춰주기도 해서, 백년의 고독보다 이책이 가르시아 마르케스 입문작으로 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기 쉬우면서도 뛰어난 작품성을 갖춘 작품이므로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이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3. 지하생활자의 수기 또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인간이란 자기의 참된 이익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밀어젖히고 아무에게도 아무것에게도 강제되고 있지 않은데도 다른 모험의 길로 돌진하는 법이다.”
- 지하생활자의 수기 中 -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러시아를 넘어 세계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문호로 꼽히는 표도르 도스토옙스키(Фёдор Достоевский, 1821 - 1881)의 중편소설인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밀리의 서재로 읽어봤다. 예전에 도스토옙스키의 대표작인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과 백치(Идиот)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는데, 독서모임을 위해 가입했던 밀리의 서재에 이책이 있어서 읽어볼 책 목록에만 등록해뒀었다. 그러다 더이상 전자책 읽을 일이 없어서 밀리의 서재 구독을 해약하기로 한 찰나에 이책이 생각나서 구독기간 종료 전에 부랴부랴 읽어봤다.
이 책은 자신을 지하생활자라고 자칭하며 스스로를 고독 속에 가둔 한 남자의 잡상과 과거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야기의 구성도 화자의 생각을 늘어놓은 1부와 과거의 회상이 잠긴 2부로 확연히 나눠져 있다. 1부에서는 화자가 본인을 병적인 인간이라고 소개하며 평범한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사고방식을 고백한다. 그는 항상 자기에 대한 불신, 부끄러움, 혐오감을 느끼고 살고 있고, 타인의 관심과 온정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당대 평범한 사람들이 유행따라 맹종하던 이성중심주의에 경멸을 표하고, 시쳇말로는 인싸 정도로 볼만한 실천적이고 활동적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우둔하고 부박하다고 까내리며 전혀 타인과 어울릴 기색이 없어 보인다.
이런 잡상들이 1부 내내 두서없이 쏟아지다보니 첫인상은 대체 무슨 개똥철학을 설파하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쭉 읽다보면 맥락없고 비이성적이기 짝이 없는 잡상들이 꽤나 사실적이고, 이성적인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인간의 본질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또 관념과 의식에 천착한 소설이니만큼 제법 현대적인 구석도 있어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와닿는 내용이기도 하다. 과장을 좀 보태면 배경을 19세기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실에서 공책을 끄적이는 사람이 아니라 2025년 서울 반지하방에서 스마트폰으로 개인 블로그나 커뮤니티에서 끄적이는 걸로 바꿔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이다.
종잡을 수 없었던 1부에서 화자의 젊은 시절을 다룬 2부로 넘어가게 되면 어느정도 실마리를 풀 수 있게 된다. 2부에서 드러나는 화자의 소외로 점철된 인생을 되짚어가면서 1부에서 얼렁뚱딴지 같던 사상이 어떻게 배태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2부에서 보여주는 화자의 온갖 기행과 막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난잡해보이면서도 치밀한 구성으로 소외된 인간상을 사실적으로 묘파해냈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탁월한 필력을 다시 한 번 체감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감상을 조금 더 보내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꽤나 만족한 책이었지만 책 자체가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소도 적지 않다. 다만 심리학자에 비견될 정도로 심리 묘사에 정통한 도스토옙스키의 재능이 아낌없이 발휘된 수작이니만큼, 이전에 도스토옙스키 작품을 읽고 만족했던 사람들에게는 이책을 주저없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4. 피그말리온
“귀부인과 꽃파는 여자의 차이는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따라 갈리죠. (The difference between a lady and a flower girl is not how she behaves, but how she’s treated.)”
- 피그말리온 中 -
아일랜드 태생의 극작가, 평론가이자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문학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 - 1950)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영어 원서로 읽어봤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쇼가 알려진 계기는 그의 시니컬한 어록들 덕인데, 내가 그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다만 그의 유명세에 비해 정작 그의 저작을 읽어본 적은 없어서 언젠간 그의 작품을 읽어볼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한 서점에서 염가형 문고본을 한화로 1000원 남짓한 금액으로 할인해 팔고 있어서 냉큼 집어왔다가 한동한 책장에 고히 모셔두었다. 그래도 너무 오랬동안 묵혀있던 이책이 자꾸 눈에 밟혀 이번에 책장에서 꺼내 읽어봤다.
이책은 영어 발성과 사투리에 관해 연구하는 헨리 히긴스라는 언어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일라이자 둘리틀이라는 가난한 소녀에게 6개월 동안 상류층 억양의 영어를 가르쳐 귀부인으로 둔갑시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제법 기시감을 느낀 분들이 적잖을텐데 착각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오드리 헵번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고전 영화 중 하나인 마이 페어 레이디의 원안을 제공한 작품이기도 하고,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는 킹스맨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만 이들의 원작격인 작품임에도, 본작은 아류작들과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작은 현실의 여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여인 조각상을 빗고는, 자신의 작품에 생명을 불어달라고 신들에게 기도했던 조각가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원본 신화는 일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교훈을 주는 듯하고 낭만적으로도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쇼는 여기서 피그말리온의 피조물을 향한 음험한 소유욕을 포착해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였다.
히긴스 교수는 일라이자에게 상류층 억양을 가르쳐 귀부인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그녀를 사람이 아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표본이자 인형으로만 여긴다. 또 그녀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다는 점을 악용하여 교습외에 시간에는 자신의 집에서 그녀를 거의 하녀 다루듯이 부려 먹었다. 다만 후대 아류작들과 차이점이 하나 돋보이는 게 바로 히긴스의 홀대에 대응하는 일라이자의 태도이다.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일라이자는 히긴스의 행태에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고 그에게 저항하면서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하려고 하는 근대적인 인물이다. 이 작품은 쇼 후대의 창작가들도 종종 선보이는 신데렐라식 서사에서 탈피하는 양상을 띄고 있는데, 여기에는 쇼가 존경해 마지 않던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의 대표작인 인형의 집(Et Dukkehjem)의 영향이 돋보인다. 이점에만 주목하면 피그말리온을 여성주의 문학으로만 보일 수 있겠지만,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히긴스 교수와 일라이자의 관계는 꽤 많은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경제적인 여유를 갖추고,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상류층 학자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영 글러먹은 히긴스와 교습을 통해 단기간에 상류층의 매너와 언어습관을 갖췄지만 정작 이를 활용할 경제적 기반도 없고, 피상적인 매너 이외에 다른 지식은 전혀 갖추지 못한 일라이자의 대비에서 겉모습에만 치중하고 위선적이기 짝이 없는 영국의 계급의식을 향한 쇼의 신랄한 조소가 엿보이기도 한다. 또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도도 눈에 띄는데, 이는 쇼가 주로 활동하던 국가인 영국과 쇼가 태어난 곳이자 모국으로 여기던 아일랜드의 관계를 드러내는 은유로 볼 여지도 있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본작은 깔끔한 구성에 쇼의 전매특허 블랙 코미디가 잘 녹아든 맛깔나는 대사까지 갖춘 휼륭한 작품이다. 다만, 현대를 살고 있는 나의 시선에서는 퍽 인위적이고 진부한 부분도 적잖이 눈에 밟혀 이야기에 푹 빠져들진 못한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부담없는 분량의 수작이니만큼 기회가 있다면 한 번 정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5. 희랍어 시간
“눈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침묵이라면,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끝없이 긴 문장들인지도 모른다. 단어들이 보도블록에, 콘크리트 건물의 옥상에, 검은 웅덩이에 떨어진다. 튀어오른다. 검은 빗방울에 싸인 모국어 문자들. 둥글거나 반듯한 획들, 짧게 머무른 점들. 몸을 구부린 쉼표와 물음표.”
- 희랍어 시간 中 -
한국의 소설가, 시인이자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1970 - )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을 읽어봤습니다. 작가의 유명세가 유명세니만큼 저도 예전에 작가의 명성에 이끌려 대표작들인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를 읽어봤는데 둘 다 제 취향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볼 기회를 엿보다가 짧게 싱가포르를 여행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한국책을 파는 서점을 발견했다. 거기서 한강 작가의 책들을 서가에 진열해 놓았길래 이건 운명이다 싶어 가격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서 읽어봤다.
이책은 서서히 시력을 잃어 가는 남자 고대 희랍어(그리스어) 강사와 알 수 없는 이유로 간헐적으로 실어증에 걸려 말을 잃어가는 여자 학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감각이 하나씩 퇴화가 되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작의 작풍은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감각적인 작풍을 간직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정하면서 남긴 단평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었는데 본작은 그중에서도 '시적 산문'이라는 특징이 더더욱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시각 장애를 지닌 남자가 그나마 시력이 괜찮았던 어린 시절 봤던 이미지를 몽상을 더해 회상하는 장면이나, 듣고 말하는 과정을 한강 특유의 육체적 묘사를 더해 말하는 과정이 한없이 육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해 여자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심리를 전달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또 두 사람의 고립감과 방황을 드러내는 비와 눈이라는 자연에 빗대었는데,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작품 자체가 긴 서정시 한 편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책에서 괄목할 점을 하나 더 고르자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단절이다. 작품 서두에서 문학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언인 '우리 사이에는 칼이 있었네.'를 인용하는데, 이는 두 주인공의 처지를 함축하고 있다. 두 인물은 각각 시각 장애와 실어증으로 인해 세상과 온전히 교류하지 못하며 단절된 상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이들의 과거사를 보더라도 이들은 본인들이 지닌 장애로 인해 남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남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적이 많았다. 작품의 구성을 뜯어보더라도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단절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남자의 이야기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고, 여자의 이야기는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둘이 직접적으로 접촉하게 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이 교묘히 섞이게 되지만, 서로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나머지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한다기 보다는 두 사람의 생각이 일방적으로 나열된다는 느낌으로 두 사람의 파트가 유리되어 있다. 두 주인공의 사례가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온전히 느끼지 못함으로 인해 몰이해를 낳는 장면은 배려는 커녕 자기성찰 하기도 바쁜 현대인의 단절된 생활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을 보태자면, 본 작품 또한 예전에 읽었던 두 작품에 이어 꽤나 만족스러웠다. 한강 만큼이나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양가성을 잘 묘사한 작가도 흔치 않아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가의 또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밑도 없이 침잠하는 절망이 담긴 소년이 온다나 기괴하고 선정적인 분위기가 풀풀 나는 채식주의자에 비해 훨씬 일상적이고 차분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보니 훨씬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물론 줄거리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작품을 견인하는 확고한 서사가 없기도 하고, 작품 자체에 난해한 점도 적잖아서 호불호는 분명 갈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본작이 한강의 문장가로서의 재능이 잘 드러나는 수작인만큼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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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네
아직 생각나는 잡상들 휘갈기는 수준 밖에 안되지만 좋게 봐줘서 고맙다 - dc App
거의 잡지 에디팅을 했네. 멋지다.
원래 읽은 책마다 짧은 감상평 정도만 남긴다가 목표였는데 이런저런 사족을 달다 길어진듯...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