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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이미지. AI 생성. 왼쪽이 제러미 벤담, 오른쪽이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중앙이 존 스튜어트 밀.
위 그림이 책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함. 밀은 먼저 벤담 사상을 논하고, 이후 콜리지 사상을 논한 다음에 그 둘을 절충하려는 의도를 보여주기 때문임. 지속적으로 두 철학자의 사상은 '반쪽짜리 진리'이고 이를 결합해야 완전해진다고 평하는 데에서 알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벤담론』과『콜리지론』은 사실상 세트라고 봐도 무방함. 두 논고 모두 '사상 개괄–장점–단점–수용가능성'의 일관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음.
마지막으로 포함된 논고인『'자연에 따르라'는 윤리』만이 별개인 것으로 보임. 그러나 역자에 의하면, 사실 이 논고가 벤담의 계승자로서의 밀을 보여준다고 함. 실제로 읽어본 결과, 이 논고에서의 밀의 견해는 벤담이『정부론』에서 자연주의 윤리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과 매우 흡사함. 아무래도 이 감상문에서는『벤담론』과『'자연에 따르라'는 윤리』측의 분량이『콜리지론』의 것보다 길 듯 싶음. 이유는 다음과 같음. 벤담의 저서들이나 자연주의 윤리학에 대한 서적은 지금까지 꽤 읽어본 바 있음. 그러나 콜리지의 저작은 문학과 철학을 막론하고 전혀 읽어본 적이 없음. 요컨대 다른 두 논고의 소재에 비해 콜리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다는 거지.
『벤담론』
왜 『벤담론』과『콜리지론』이 세트인지는 이 부분의 도입부만 봐도 알 수 있음. 밀은 이 논의를 시작하며 '우리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준 두 위대한 지성이 있다'고 운을 뗌. 그리고 곧바로 그 중 진보적인 축이 벤담, 보수적인 축이 콜리지라고 명시함. 처음부터 둘 모두에 대해 일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할 작정이었던 거임.
가장 처음 이야기하는 것은 벤담에 대한 흔한 오해임. 밀에 따르면 이미 그 당시(벤담 사후 3년 밖에 지나지 않았을 시점)부터 벤담이 공리주의를 창시했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 같음. 밀도 이야기 하다시피, 사실 공리주의를 창시한 건 벤담이 아님. 공리의 원칙에 대한 아이디어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인 엘베시우스가 처음 이야기 했음. 거기에 베카리아의 영향까지 더해져서 비로소 벤담에게까지 온 거임.
그럼 왜 벤담이 공리주의의 대표자 중 하나가 된 것일까? 그가 공리주의를 체계화한 사람이기 때문임. 밀이 벤담을 칭송하는 것도 주로 이런 부분에서임.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공리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음. 보면 공리주의를 단순히 행위 윤리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음. 그러나 벤담이 집대성한 공리주의는 오히려 그 영역에는 거의 있지 않았음. 벤담은 공리주의를 통해 법과 제도의 개혁을 이끌어내고자 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임. 그는 모든 사회적 규칙이 공리의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했음.
그럼 왜 오늘날에는 공리주의를 공공의 영역보다 사적인 영역에서의 윤리로 보는 견해가 더 많을까? 그 점이 밀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겠음. 밀은 벤담이 법과 제도에서 공리주의를 활용해서 만들어낸 혁신적 업적의 대부분을 칭송했음. 다만 공리주의가 더 많은 부분을 포괄하지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음. 그 때문에 밀은 행위 윤리로서의 공리주의를 강조하게 된 거임. 법률에서 공리의 원칙의 작용은 이미 벤담이 완성했으니까. 실제로 이 당시에는 벤담의 영향으로 이미 사법 제도가 대폭 개혁되던 시점이었음. 벤담이 주장한 사항은 1)만인에게 공평한 법의 지배, 2)논리적이고 체계화된 법 조항, 3)명확한 양형 기준, 4)공리의 원칙에 따른 형량 제한, 5)더 생산적이고 수감자의 후생에 도움이 되는 수형 제도 등이 있음. 이러한 사법 체계는 지금까지도 줄곧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을 거임.
그러나 공공 영역에서도 정치체론에 대해서는 밀과 벤담의 의견이 달랐음. 벤담은 완벽한 반-엘리트주의자로서, 보편참정권과 비밀투표 등을 주장하였음. 반면 밀은 어느 정도 엘리트주의적인 경향을 보임. 그는 학력과 지적 능력에 따라 투표수의 가중치를 달리 두자는 다중투표제를 주장하였음. 벤담은 언제나 '개인은 자신의 쾌락과 고통을 가장 잘 안다'는 관점을 견지했음. 그러므로 보편적인 국민 다수가 합의한 직접 대표제가 가장 최대 행복에 기여한다고 본 것임. 밀은 무지한 다수가 이끄는 전체주의적인 정체의 발생을 경계하고자 했음. 그래서 '지성인'들이 더 비중 있는 정치참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본 것임. 밀이『대의정부론』에서 정치체를 벤담처럼 순수한 공리주의적 관점으로만 다루지 않는 이유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벤담은 모든 성인에게 1인 1표를, 밀은 지적수준이 높은 이에게는 더 많은 표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 셈임.
이쯤에서 현대 대의민주제 국가에서는 어떤 원칙이 받아들여졌는지를 점검해보겠음. 그러면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밀이 아닌 벤담의 견해가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음.
이제 위에서 언급했던 공리주의 체계 자체에 관한 부분을 자세히 이야기 해보려고 함.
밀이 벤담의 공리주의에 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건 크게 두 가지가 있음.
첫번째는 그 논증 전반이 아주 엄밀하고 정합적이라는 것. 두번째는 그 내용이 진보적이고 실용적이라는 것.
첫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벤담의 세부적인 분석의 방식이 참으로 배울 만한 것이라고 극찬하고 있음. 실제로 벤담은 논증에 있어 엄청나게 면밀한 편인데, 이는『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의 제17장, '위법행위의 분류' 부분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음. 또한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감명 깊었던 부분이 있음. 같은 저작의 제2장에서 "모든 자의적이지 않은 도덕 및 입법 원칙의 기반에는 공리의 원칙이 있다. 단지 그들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라고 논증한 부분임. 솔직히 말하면 분석철학 이전의 영미 철학 전통에서는 벤담만큼 엄밀하게 논증하는 철학자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봄. 상기한 부분들의 논증은 아주 명료하고 훌륭하지만 내용을 옮기기에는 너무 길다고 생각함. 그런 관계로 궁금한 사람은 한 번 해당 저작을 읽어보길 바람.
두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벤담은 최초로 도덕철학 자체를 체계로 만든 이이며, 또한 입법의 공학자였다고 칭송하고 있음. 벤담은 기존의 도덕철학 전통에 의문을 표하고 새로운 체계를 세우고자 했음. 그의 사상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것이 명료하고 일관성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음. 또한 벤담의 공리주의 체계는 상술한 사법 개혁으로 단숨에 이어질 수 있을만큼 실용적이기도 했음.
그렇다면 밀이 벤담의 체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 다음과 같음.
첫번째는 인간 행동의 동기를 지나치게 단순화 했다는 것. 두번째는 지나치게 편협하여 자신 이외의 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세번째는 벤담식의 보편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첫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인간의 모든 행동이 단순히 양적으로 계산 가능한 쾌락과 고통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고 지적함. 알다시피 이러한 지적은 밀의 저작 중『공리주의』에서도 볼 수 있음. 우리가 잘 아는 '질적 공리주의'가 바로 그 보완책이었던 거지. 실은 이 지점에서 벤담에 대한 거의 인신공격에 가까운 이야기가 나와서 좀 흠칫했음. 밀은 벤담이 12세에 옥스퍼드 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21세에 석사 학위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천재였음을 언급하며 시작함. 여기까지만 보면 오히려 칭송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 그가 유년기부터 연구만 해서 감성이 결여 되었으며, 그래서 그의 문체에는 시적 재능이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음. 뭐 벤담이 상대적으로 감성을 홀대한 것과 그의 문체가 지루하다는 것은 사실임. 문체 관련으로는 나도 국역본이 없지만 중요한 저작인『정부론』을 원서로 읽어보며 느끼긴 했음. 영어 실력이 객관적으로 형편없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독해 난도가 높았음. 그러나 감성에 관한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 실은 거기에는 전략적인 이유도 존재함. 벤담이 대표작들을 저술할 당시 영국 법정에서는 판관이 마음 대로 특정 사안의 질적인 판단을 행하는 일이 흔했음.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실제 형벌의 가감으로까지 이어졌음. 변호사였던 벤담은 이 같은 행태를 몹시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최대한 양적으로 치환 가능한 부분만 가정하려고 한 거임. 근본적으로 그는 법제 개혁을 위해 공리의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 다양한 감성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고까지는 볼 수 없음. 그는 '감수성'이라는 요소에 따라 같은 사안에서 개인이 수용하는 쾌락과 고통이 다르다고 말했음. 이 '감수성'은 아주 포괄적인 표현으로, 흔히 생각하는 감성도 포함됨.
두번째 사항은 앞서 언급했던 그 '반쪽짜리 진리'라는 표현과 관계됨. 밀은 벤담 사상의 독창성과 급진성에 대해서는 긍정함. 그러나 그가 너무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에 빠져서 다른 이들의 견해를 배격했다고 지적함. 그 원인에 대해서 추정할 때는 첫번째 부분과 비슷한 식임. 벤담의 견해는 너무 급진적이라서 그의 청년기에는 수용되지 않았음. 벤담에게 추종자가 생기고, 그의 사상이 세상을 변화시킬 즈음에 그는 이미 노인이었음. 요컨대 한창 사상가로서 활발하던 시기에는 의견을 주고받을 만한 학자들이 적었다는 것임. 그래서 벤담의 사상은 진리를 가리키긴 하나 그것은 반쪽이었다는 게 밀의 결론임.
세번째 사항에 대해서는 앞서 소상히 이야기 한 바 있으므로, 생략하겠음.
『콜리지론』
상기한 또다른 반쪽은 밀에 따르면 콜리지로부터 옴. 나는 콜리지가 철학자를 겸했다는 사실도 이 논고를 통해 처음 접했음. 사실 대부분이 콜리지 하면 낭만주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을 것 같음. 나 역시 그러했음. 물론 시도 읽어본 적이 없기야 하다만. 그러나 실은 낭만주의 시인 중 철학자를 겸한 사람이 콜리지만 있진 않음.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부군, 퍼시 비시 셸리 역시 철학자를 겸했음.
그런데 콜리지의 경우 셸리와는 대조되게 보수주의 노선을 강조했다는 점이 인상적임.
밀은 콜리지가 대륙 철학 전통에 상당히 기대고 있다고 말함. 나는 근대 대륙 철학을 그다지 잘 알지 못하는지라, 정확히 어떤 부분이 그렇다고는 짚어줄 수 없음. 대신 밀이 직접 특정해주는 부분이 있음. 밀은 콜리지가 독일 관념론, 특히 칸트 및 슐라이어마허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하고 있음. 또한 콜리지의 '국가는 유기체'라는 사상은 헤겔적 세계관과 유사성을 가진다고 말하기도 함.
밀은 콜리지의 공헌이 보수적 가치의 복원이라고 봄. 그러한 재발견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고 있음. 첫번째는 전통과 문화에 뿌리내린 유기체로서의 국가, 두번째는 오래도록 존속된 관습을 통한 지혜, 세번째는 종교의 도덕적, 상징적 기능.
첫번째 부분은 구체적으로는 이런 이야기임. 콜리지는 사회계약론과 같은 국가 성립론을 부정함. 그는 국가를 자연스럽게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고 운행하는 사회적 유기체로 간주함. 이는 현대적 보수주의의 효시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의 국가론과도 비슷한 견해임. 사실 이 부분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둘의 견해는 흡사함. 콜리지가 버크보다 후대의 인물인 걸 감안하면 전자가 후자의 영향을 받았겠지.
두번째 부분은 다음과 같음. 콜리지는 관습을 단순히 무지한 구시대의 미신적 산물이라고 보지 않았음. 그는 관습과 전통이 집단지성을 통해 형성된 고래의 지혜라고 생각했음. 따라서 무자비하게 관습을 파괴하려는 급진적 행보에 반대했음. 요컨대 문화적으로 훈련된 측면이 해당 국가의 시민들에게 적절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본 것이지.
세번째 부분은 이러한 이야기임. 종교,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교회가 도덕과 정치적 역량의 함양을 담할 수 있다는 거임. 콜리지는 도덕 판단의 동기에는 도덕 감정, 상상력, 종교적 고양 등이 필요하다고 믿었음.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을 상징하는 교회가 민중의 윤리 교육이 장이 되어야 한다고 본 거임.
그렇다면 밀이 콜리지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부분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첫번째는 급진적인 움직임을 모두 거부한다는 점임. 그는 보수적 질서 유지를 무차별적으로 옹호하였음. 관습과 권위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자연히 현상유지적인 사상으로 고정 되어버린 거임. 밀은 엄연히 사회 개혁과 진보적인 가치의 실현을 중시한 사람이었으므로 이러한 경향에는 반대하였음.
두번째는 실용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임. 이 점은 위의 벤담과는 상반되는 측면이지. 밀의 이야기에 의하면 콜리지는 시인답게 철학서도 직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썼다는 것 같음. 요컨대 사상의 내용이 불명료하고 은유적이라서 현실에서 널리 전달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지.
세번째는 실천성보다 자기관계적인 정신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임. 실은 이러한 경향 역시 실용적 추진력을 크게 감퇴시킴. 상술한 대로 밀은 현실의 개혁을 위해 직접 하원의원까지 역임한 사람이었음. 따라서 일생 내내 내부지향적인 사상보다는 실천지향적인 사상을 좇았음.
이러한 측면들이 바로 콜리지의 사상 역시 '반쪽짜리 진리'였던 이유임. 그는 벤담이 보지 못한 것을 봤지만, 역으로 벤담이 본 건 보지 못했음. 그럼에도 콜리지가 밀에게 끼친 영향은 작지 않은 듯함. 밀이『자유론』에서 이야기한 '상상력'이나 '개성'과 같은 용어들은 본래 콜리지 철학에서 따온 것이라고 함. 게다가 밀의 경우 벤담과 다르게 개인의 인격도야와 같은 내부지향적인 면모도 어느 정도 중시함. 이 역시 이 논고에서의 콜리지에 대한 성찰을 통해 갖춰지게 되었다고 함.
『'자연에 따르라'는 윤리』
앞서 이 논고가 벤담의 방법론을 이어받은 밀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음. 역자 역시 해제에서 그러한 언급을 했지.
상술했듯 밀은『벤담론』에서 벤담의 엄밀한 분석과 논증 방식에 대해 극찬한 바 있음. 이 저작에서 보여주는 자연주의 윤리와 연관된 개념들의 분석은 그 영향이 반영된 듯함. 그가 이 논고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자연주의 윤리는 '자연법' 사상인 것으로 보임. 아무래도 당대까지도 여전히 자연법 사상이 주류에 있었으며, 공리주의자들은 엘베시우스 때부터 이 개념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일 듯함.
생각해보니 도입부에서 벤담의『정부론』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언급했던 것 같음. 확실히 이 둘의 자연법론에 대한 지론은 거의 흡사함. 벤담은 "자연법 사상은 헛소리 위에 헛소리를 쌓아올린 격"이라고 이 사상에 대해 강도 높게 비난했음. 밀도 역시 비슷한 논조로 구체적인 규범으로서의 자연법은 실증될 수 없는 가상의 개념이라고 말함. 그렇다면 아주 기본적인 전제만을 포함하는 자연법론들에 대해서는 어떨까? 벤담은 이를 아예 언급하지 않음. 밀은 이에 대해 이 논고에서 언급하고 있음. 그 언급에서 우리는 벤담의 방식을 이어받은 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음.
밀은 그러한(아주 기본적인 전제만 포함한) 자연법에 대해 판단하기 전에 두 가지 개념을 분리하여 먼저 정의함.
그는 첫번째로 '자연'이 무엇인지 두 가지 의미로 분류함. 그에 따르면 자연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님.
1)인간의 행위를 포함하지 않는 사물의 전체적 상태
2)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실제로 따르는 법칙들의 총합
밀은 자연법론자들이 말하는 자연이 어느 쪽이든 불합리한 결론이 도출된다고 말함. 그에 따르면 첫번째일 시에는 인간이 따르고 따르지 않고를 결정할 수 없는 지점이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게 됨. 두번째일 시에는 '자연적 요소의 무분별한 당위화'를 낳게 됨. 밀은 자연의 섭리가 곧 인간의 당위라는 말의 해괴함을 지적함. 이 대목에서 그는 '대부분의 범죄도 자연적 경향과 결부되어 발생하는 것이며, 심지어 모든 자연재해들은 전부 자연법칙의 운행 그 자체인데', 그렇다면 그러한 속성들이 내재적 규범화 되어야 하는 것이냐고 되묻고 있음.
밀은 아마 거의 두번째 의미로 사용될 것이라고 추측하며, 왜 그러한 주장이 빈번한지를 법의 개념과 결부시켜서 설명함.
그에 따르면 법이라는 개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님.
1)자연 만물이 운행하는 원리
2)인간 사회의 공식적 규범
'자연'의 2번 정의와 '법'의 1번 정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음. 밀은 사람들이 법의 두 가지 의미를 혼동하고, 이를 자연과 연결시킴으로써 자연법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말함. 이 대목에서 몽테스키외의『법의 정신』제1장을 언급하며 아마도 그것이 이러한 혼동의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라고 추측함. 제1장 부분에서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자연법이란 실은 법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 본성의 경향일 뿐임. 몽테스키외 본인 역시 잘 보면 해당 부분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음. 다만 밀은 그것이 곧장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에 곧 인간의 규범' 같은 식으로 연결되는 실태를 지적한 것이지.
그런데 공리주의 역시 자연주의 윤리 아닌가? 이 지점에 바로 밀이 이 저작에서 전하려는 중점이 있음. 밀은 내재적 규범에 대해 타산의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함. 즉, 자연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막론하고 실제로 준수할 때 인간 일반에게 유용한 것만이 내재적 규범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거임. 공리주의가 내재적 규범인 것도 당연히 이 원칙에 따른 결과임. 공리의 원칙을 사회적 규범의 기준으로 도입할 때 인간 일반에게 유용할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들어가니까.
그가 줄곧 논했던 '아주 기본적인 전제만 포함한 자연법'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그의『자유론』을 참고할 때, 자연적인 본성은 타자에게 직접적 해악을 끼치지 않는 선까지만 존중되어야 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음.
상술한 것과 같은 면밀한 분석을 통한 판단은 명백히 벤담의 영향을 받은 부분임. 벤담이 이러한 분석에 얼마나 능했는지는『벤담론』감상 부분에서 언급한 저작의 제17장을 참고하길 바람.
논고 중간에 등장하는 '벤담 사상을 몽테스키외의 견해가 보완할 수도 있었다'는 언급에 대해 무언가 첨언할 필요가 있다고 느낌. 물론 밀은 이를 구체적인 방법의 명시 없이 지나가듯이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대 확실히 몽테스키외와의 연결을 통해 보완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았음. 다만 의문이 든다는 건 밀 스스로는 이런 방식으로 보완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임. 물론 밀은 그의 전성기 저작들에서 벤담을 여러 번 보완했음. 그러나 내 말은 그것이 이 저작에서 지나가듯이 언급한 몽테스키외와의 연결은 아니었다는 거임. 추측이다만 역시 '자연법'이라는 용어가 문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듦. 사실 몽테스키외의 '자연법'은 공리주의의 기본 전제인 '인간의 쾌고감수성'과 같은 방식의 논증을 사용하니까 말이지. 물론 그것이 내재적 규범으로 이어질 만한가는 밀이 주장했듯 별개의 과정을 필요로 함. 다만 개인적으로는 몽테스키외의 자연법론도 공리의 원칙과 같은 과정을 통해 내재적 규범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볼 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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