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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건성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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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도나 해러웨이


여성학 책을 읽을 때면 늘 느끼는 감정이 있다. 읽기는 참 어려운데, 얻어가는 건 정말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솔직한 감상. (물론 페1미니즘에 대한 개인적 불쾌도 크게 한몫한다) 특히 정신분석과 얽히는 순간 그 느낌은 두 배로 증폭되어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시적인 이미지를 느끼며 넘어가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1) 그래도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처럼 악명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도 솔직히 읽기 좋은 글은 아니다. 별로 도움은 되지 않는 용어표와 다이어그램, 학술적 내용에 대한 보고와 그 보고 방식에 대한 이미지적 비평("수렵하듯" "주어 뒤에 숨은"), 빼놓을 수 없는 단어 어원 분석, 갑작스러운 단언 등. 특히 개중 [사이보그 선언문]은 기존까지의 논의를 어느 정도 따라가 이해하고 있기에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여태까지의 핵심을 전부 서로 연결되지 않는 글 토막으로 마구잡이로 연결해 늘어놓는다.2) 과거의 과학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이 어째서 유해한지, 여성이라는 포괄적인 분류가 왜 현재 페2미니즘 이론에서 문제적인지, 그리고 도대체 왜 '사이보그'라는 SF스러운 이름과 개념이 필요한지 등등.


내용을 따져보자면 사실 꽤나 괜찮기는 하다. 해러웨이는 이런 류의 이론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과학 및 기술을 향한 열정을 품고 있으며, 말 그대로 사람의 이 몸뚱이가 어떤 식으로 과학 지식으로 포착되었는지를 분석한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 곧 성차를 완전히 무시하며 사회적 차이에만 집중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3) 여기에는 인간의 이상적인 문화 및 사회를 위해 어떻게 인간과 가장 가깝되 문화가 헐벗은 상태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영장류를-다시 반복하자면-'어떻게' 연구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며, 그 지식이 제안되고 수용되는 방식에서 성적 편향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주거나, 기존의 유기체적 과학이 사이버네틱스로 무게추가 옮겨가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 편향이 작용하거나 작용하기를 멈췄는지를 요약한다. 생물학적 차이와 사회적 차이를 분리해 생산해내는 지식이 영장류 분석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편향을 보여주며, 둘 사이의 구분이 각 종 사이의 구분을, 개체 사이의 구분을 점차 흐려놓는 사회생물학의 대두와 함께 더더욱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을 논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이보그 선언문]의 당돌한 동물/인간, 인간/기계, 물질/비물질 경계 해체가 나오는 것이고, 생물적/사회적 측면이 서로 떼어놓을 수 없게 합쳐진 여성과 인간/기계의 합성 사이보그를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것이 앞으로 이뤄져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이미 실현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거창함에 비해 실속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나 해러웨이를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 자체가 여성의 한계를 넘는 방식으로서 포스트 휴먼을 논하는 이론을 보고 싶었던 것인데, 해러웨이가 보여주는 정교함은 과학사회학 및 페3미니즘 비평에 가깝고 포스트 휴먼에 한해서는 선언문의 당찬 포부에 비해 볼 것이 그리 많지는 않다. 캐서린 헤일스의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 휴먼이 되었는가>를 읽었을 때와는 영 느낌이 다르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여성과 포스트휴먼 중 전자 쪽에 훨씬 기울어 있어서 그렇기도 할 테다. 실제로 [부치 에메체타 읽기]에서 그녀의 글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상당히 균형 잡힌, 다양한 지역 및 문화의 여성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자세가 엿보인다.4) 그래서 그냥, 들어간 시간이 아쉬웠다. 사이버네틱스 관련 책을 직접 보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해서. 점점 더 인간이 해체되고 있는 이 시대에 보자면 확실히 선구적인 학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심리철학> - 김재권


예전에 한 수업에서 일부를 읽었다가 얼마 전에야 새 번역으로 책 전체를 읽었다. 꼭 그 수업이 아니더라도 대다수 심리철학 수업에서 교재로 쓰는 모양이던데, 그럴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리철학>의 필체와 정리, 논증은 잘 모르는 문외한이 보더라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명료한데, 심리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매모호한 것을 다루는 학문인데도 그 정식이 말끔하다. 심리철학이 데카르트 이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아갔으며, 의식을 다루는 많은 연구가 어떤 틀 안에서 이뤄지는지를 철학이라는 큰 틀에서, 현상학과 물리주의적(인지과학, 뇌과학 등) 관점을 아울러 소개하며, 특정 관점이 제시하는 논증과 반박을 핵심만 잘 간추려 기호논리로 정리했다. 직전에 이 명료한 글쓰기와는 가장 거리가 멀 페4미니즘 해체주의 책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읽고 있었다보니 그 말끔함이 더욱 상쾌하게 다가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엄밀히 말해서 새로 얻어간 것이 그리 많은 독서는 아니었다. 어쨌든 <심리철학>은 전체 심리철학을-김재권 본인의 수반에 대한 생각을 꽤나 가득 담아서-정리하는 개론서이고,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이미 그 전에 다른 책에서 읽은 것이 많은 탓이다. 데닛이나 네이글처럼 이미 직접 저서를 읽은 학자도 꽤 되고, 프레게, 퍼트남 등이 다루는 의미와 지시체에 대한 생각은 언어철학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루는 것이다보니 더더욱. 실제로 이병덕의 <표상의 언어에서 추론의 언어로>는 언어철학 개론서이되, <심리철학>에서 다루는 의미, 지시체, 지향성 등에 대한 분석을 좀 더 언어 자체에 집중하여 설명한다.5) 대신 평소에도 느끼던 의식의 부재, 혹은 부수현상론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을 얻어갈 수 있었다. 의식을 포함한 심리적 현상이 물리적 현상의 결과일 뿐, 다른 현상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이 관점은 물리주의를 넘어선 심리적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듯하며, 신체에 대한 폭넓은 연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몸 자체의 유능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6) 그러니 우리의 책임이 의식 자체보다는 그 너머의 총체적인 신체 작용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카오스> - 제임스 글릭


카오스/복잡계에 대한 내 지식은 예전 고전역학 수업에서-아주 자연스럽게-비선형 방정식에 대한 챕터를 넘어간 데에서 끝난다. 당시에 나는 약간의 궁금증을 갖고 해당 챕터를 읽었고, 그래서 이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딱히 아무런 이해도 하지 못한 채 다음 수업으로 넘어갔다. 궁금증도 더 이상 없었기에 관련 수업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이 분야에 대한 관심도 딱히 없었다. 이 책 역시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처럼 현대 사회의 복잡성이라는 사회학적 테제를 위해 카오스 이론을 적당히 주워섬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그저 관심 밖으로 나가 있었다. 최근에야 비로소 거대 인공 신경망 구조에서의 창발성7)이나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관심 탓에 잠시 눈독들였다가, 목차를 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이 아니라 안심하고 읽어보았다. 


결과는 약간 애매하다. 비선형 방정식, 불규칙한 데이터 속의 규칙성, 프랙탈, 난류 등 다양한 혼돈 속에서의 학문적 성취가 갑자기 인정받으며 쿤의 패러다임 시프트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는 걸 안 건 좋았지만, 너무 다양한 사례를 인물 중심으로 모아둔 느낌이라 정작 다루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를 이해하기란 어려웠다. 꽤나 많은 경우, 직접 위키백과를 통해 이를 검색해봐야 했고 어떤 것은 사실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8) (무수한 계산 속에서만 보이는 규칙성이라는 함의와 난이도를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다음으로 저자가 직접 추천한 호프스태터의 <Metamagical Themas>, 스튜어트와 J. M. 톰슨의 <Nonlinear Dynamics and Chaos>, 망델브로의 <The Fractal Geometry of Nature>9), 그리고 (아래 도표가 수록된) 프리고진의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읽어보지 않을까 싶다. 쉬운 길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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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아토포스> - 진은영


최근 읽은 문학 평론 중 제일 정석적으로 좋은 평론이면서, 동시에 평론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평론이었다. <문학의 아토포스>는 문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여러 방면에서 다루며,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윤리적이어야 하는지, 문학이 어떤 장소에서 펼쳐지고 펼쳐져야 하는지, 문학의 우열 평가가 그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유지되어야 하는지 등을 여러 이론과 함께 논한다. 랑시에르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를 핵심으로 삼아 문학이 기존 질서를 유지한 상태로 이익 다툼을 하는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그 질서 바깥의 존재를 불러내거나 질서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00년대 소위 미래파 시인에 대한 옹호 및 비판을 수행하는 동시에 참여문학과 순수문학 중 어느 쪽으로도 떨어지지 않는 제3의 길을 늘 탐색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에서 제창한 현대의 복잡성에 승복하는 "숭고"의 길보다는, 현대의 복잡성을 총체성으로 종합하려는 의식적 시도 대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문학의 본분에 치중해야 한다는 문학가의 솔직한 마음이기도 할 테다.


하지만 단순히 좋다고 넘기기 힘든 건 역시 문학의 정치성과 윤리성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보여준 후기 김수영의 시론을 예시 삼아, 문학의 정치성이란 문학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에 납득하기란 힘들었다. 문학인이라는 것이 정말로 그런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것일까? 이후 올바른 소통과 함께하는 사회를 다루는 [소통, 그 불가능성의 가능성]에서도 "말하는 입과 먹는 입"10)으로 암시하듯, 입바른 말과 별개로 돌아가는 현실정치를 알고 있는데도? 정말 그럴 각오가 있다면 시론보다는 차라리 철학을 포기하고 EU 건설에 기여한 코제브처럼 사회 제도의 건설에 투신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문학이 하기 어려운 것처럼, 정치를 하기 어려운 것도 똑같은 이치일 테니까. 문학이 단순히 현재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한에서의 윤리성을 띠는 걸 기피해야 하듯, 문학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정말로 긍정적인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이 목소리는-특히 현대에는 오히려 더더욱-그리 가치가 없는 것 같다.


<어릿광대의 나비> - 엔조 도


참 신기한 소설이다.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를 연상시키듯 짧은 챕터마다 메타픽션에 메타픽션을 유유자적 이어나가는데 그 방식이 당시 일본 통속소설답게 상당히 유쾌하다. 문학과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가 인문학의 그것보다는 컴퓨터의 그것에 가깝고, 덕분에 [어릿광대의 나비]에 나오는 다중 언어 구사자에 대한 묘사는 어딘가 언어 모델 AI에 대한 묘사에 가까운 구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글이 술술 읽히는 것이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보급형 보르헤스 같기도 하고, 마이조 오타로 붐 한참 뒤인 2012년에 이 글이 나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아니면 2012년이면 가까스로 마이조 오타로 붐의 끝인 도코후 대지진 전에 썼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데뷔작 제목이 <Self-Reference ENGINE>인 걸 보면 그냥 처음부터 이런 글을 좋아했던 것 같긴 하다만) 흥미롭게도 본인은 아베 고보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터뷰했다는 걸 보면, <어릿광대의 나비>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SF 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베 고보의 <제4 간빙기>처럼 엔조 도의 다른 SF 소설이 번역되는 날이 올까? <어릿광대의 나비>가 절판 상태인 걸 보면 무리일듯해서 참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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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쪽은 단순한 문학 비평을 선호하는 편인데, 나는 아직도 라캉식 정신분석에서 기인한 이론이 진지한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 이론에서 펼쳐지는 현란한 수사와 이미지는 좋아하는 편이다. 언어와 사회의 미끄러움에 크게 치중하는 이론이라 더더욱 문학 친화적인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번역된 엘렌 식수의 <리스펙토르의 시간>을 크게 기대하고 있다. <Reading with Clarice Lispector>와 같은 내용일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을지......


2) 비슷하게 기술광의 열정이 느껴지는 닉 랜드의 <멜트다운>도 비슷한 느낌이라, 둘 다 들뢰즈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글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나의 총체적인 구조로는 포섭할 수 없는 미시적인 것들의 연접을 포착해내고자 하는 글이다 보니 이상할 건 없지만, 맥락 없이 툭 던져줬을 때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겠다는 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도 비슷하다. 


3) 물론 여기에는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의 기여가 크나크다. 신기한 점은 정작 이 책은 읽기 그리 어렵지 않아 초등학생 시절에도 적당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있는 수많은 난해함에 기여한 이들을 어릴 적에 읽을 일이 없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4) 샌드라 길버트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 같은 비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혜진의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도 그렇고, 이 비평들은 적당히 부유한 교육받은 여성에 한정되는 특수한 이야기를 보편적인 윤리로 부상시키려 하며, 조금 더 나은 이익을 위한 분투가 도덕적 언어로 포장된다. 분투의 현장 속에서 자그마한 경계를 치고 그 경계 안의 피해자로 남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게 올바르지는 않지 않을까?


5) 셀라스는 김재권이 보기에 이런 저서에서 다루기에는 살짝 초점에서 벗어난, 혹은 그러기에는 너무 미묘한 학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셀라스 및 김재권의 학문적 입장을 생각해보면 크게 이상할 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심리철학>은 물리주의가 건너뛸 수 없는 몸과 심리 현상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되, 그 간극 너머의 무지의 영토를 부드럽게 무시한다. 어쨌든 심리적 현상은 물질적 토대 위에 수반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것도 대체로 여기까지일 테니까.


6) 실제로 <심리철학>에서 이 관점은 대다수 철학자들이 절망적으로 거부하는 관점이자, 뇌과학자 사이에서는 꽤나 만연한 관점으로 소개된다. 최근 읽은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에서만 해도 그런 인식이 엿보이는 걸 보면 굳이 더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7) LLM의 대규모 성공과는 별개로 그 성능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다. 클로드를 제작한 Anthropic에서 <Mapping the Mind of a Large Language Model> 논문으로 전체 구조에서 각 세부 모듈이 어떤 feature에 기여하는지를 분석한 것 외에 눈에 띄는 학술적 성과는 없다. 이 블랙박스는 사실상 인공 신경망으로 구성되었을 뿐, 복잡성까지 실제 뇌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다. 물리주의적인 시도가 사람 뇌도 분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8) 약간의 푸념으로, <카오스>는 지면에서 계속 이 현상을 관측하는 데에 컴퓨터의 컬러 매핑이 중요했다, 화려한 색채로 여러 그림을 그렸다, 하는 인용을 하고 있지만 정작 책에서 사진은 흑백이다. (나는 전자책으로 20주년 개정판을 봤는데, 전자책이라고 컬러가 흑백이 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래 뉴턴법에서 고정점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주는 사진처럼 프랙탈의 매력은 정말로 시각적 측면에서 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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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망델브로의 책 중 번역된 게 있나 찾다가, 예상 외로 망델브로의 경제 분석 저서 <프랙털 이론과 금융 시장>이 있는 걸 발견했다. <카오스>에서도 언급하듯 망델브로의 프랙탈 이론은 가격 분석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기에-두 가격 사이에 '중간값'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거나, 동일한 상황이 쭉 이어지거나 갑자기 튀는 요셉/노아 이론 등-구할 수만 있다면 먼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0) 시쳇말로 '먹고사니즘'이라고 부르는, 공적인 소통에 늘 개입하는 돈과 권력과 사회적 입지와 여타 '현실적인' 문제를 지칭하는 용어 치고 정말 고급스러운 표현이다. 의견을 말하는 입은 동시에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는 입이기도 하다는......  삶의 부침을 크게 겪은 한나 아렌트에게 할 만한 비판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렌트의 사회에 대한 생각이 이 '먹는 입'을 너무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