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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희곡 중에 가장 히스테릭하다. 희곡을 넘어서 문학 전체를 포함한다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보다 히스테릭한 작품은 「악령」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간 괴인들이 나오는 작품들은 많이 읽었다. 그런데 불쌍해 보일 정도로 히스테릭한 사람들이 나오는 작품은 처음 읽는다. 오늘 아침에 갓 읽었건만 지금 생각해도 영 불쾌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당대 미국을 대표하는 희곡으로 꼽힌다니, 그 시절 미국은 무언가 단단히 미쳤었던 모양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전차는 한자로 電車다. 요즘 교통수단으로 치면 전철 쯤 될 것이다. 그런데 작중에서 무자비하게 주변을 짓밟는 주역들의 욕망은 戰車를, 즉 앞에 무엇이 있든 짓밟으며 진격하는 탱크가 떠오르게 만든다. 스탠리는 그냥 옷 입은 짐승이고, 블랑시는 꿈꾸는 불쌍한 짐승이고, 스텔라는 인간이기는 하지만 짐승에게 예속돼있다. 원하는 대로 밀어붙이는 것밖에 할줄 아는 게 없다면 인간으로 대우해주기도 어렵다. 주역들의 동력은 의지가 폭력에 가깝다. 블랑시의 사연은 많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녀는 정상이 아니다. 나는 스탠리가 보인 행동들 중 유일하게 상식적인 것이 결말에서 나왔다고 본다.


이들을 이렇게까지 만든 세상을 아예 탓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을 장신구처럼 쓰는 남성 중심의 사회, 폭력에 둔감한 인식들이 주역들을 망가뜨렸다고 볼 여지도 있다. 사람들이 서로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욕망을 채울 도구로 보는 시대상은 분명 잘못됐다. 어쩌면 지금도 이 시대상이 이어지고 있는데 단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은밀해져서, 막연히 '지금은 그나마 낫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고, 서로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참아내는 품성이 있는 세상이었더라면 이들은 이렇게까지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블랑시가 그렇게 병적으로 찾던 것은 '기댈 곳'이었다. 물론 그 곳에 이르기 위해 온갖 말을 꾸며낸 것은 문제였다. 그녀가 말하던 가치관을 순식간에 위선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진실이어야만 하는 것을 말해요."라는 항변에는 가슴아프게도 일리가 있다.


결국 이 정신나간 이야기가 많은 인기를 끈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사회상에 무언가 공감을 했다는 것이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욕망이 행동에 논리를 부여하는 실제 세계에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껴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극단적인 상황에 공감한 것이다. 둘째는 그래도 사람들이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으로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들이받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서로 기댈 버팀목이 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힘든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옳다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욕망이라는 전차는 묘지를 경유해 이름뿐인 극락으로 향한다. 욕망의 무분별한 발산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죽이고 허황된 행복에 빠뜨려 무한한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그 전차를 애초에 타지 않는다면, 타더라도 묘지에 이르기 이전에 내려서 동료의 손을 잡고 자기 발로 걷는다면, 조금 답답하더라도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블랑시와 함께 이 바람을 공유하기 때문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지금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내멋대로 이런저런 의미를 붙여본다.


이상으로 감상문을 마친다. 마지막으로 아무래도 좋을 내 이야기나 해 본다. 나는 사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아니라 말론 브란도에 관심이 있어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었다.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보다 비토 콜레오네에 무언가 매력을 느꼈고, 「지옥의 묵시록」에서 커츠 배역을 맡아 보여준 연기도 인상 깊게 보아서 말론 브란도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영화로 보지는 못했다. 사실 앞의 두 작품도 풀버전을 본 것은 아니고 가위질을 제법 많이 거친 것들을 보았을 뿐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의 말론 브란도의 연기를 꼭 보고 싶다. 유튜브에 지불할 2000원은 있는데 눈에 지불할 2시간이 없다는 점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