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는 헤겔과 맑스가 어떤 경로로 불란서에 소개됐는지 아는데, 그것은 꼬제베니꼬쁘(꼬제브)라는 재무부 고위직을 맡고 있던 러시아 출신 망명자였다. (중략) 나는 그 사람이 쓴 글을 전부 다 읽었고, 전쟁 전 라깡을 포함해 모두 그 사람 얘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지만, 헤겔이나 맑스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꼬제브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죽음에 이르는 투쟁과 역사의 종말을 중심으로 돌아갔는데, 그 역사에 대해 어이없게도 관료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역사, 즉 계급투쟁의 역사는 끝났으나 역사는 계속 진행되는데, 단지 거기서는 일상적인 사물의 관리(생시몽 만세!)밖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철학자로서 자기 욕망과 고위 관료라는 직업적 조건을 결합시키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헤겔에 대한 불란서인들의 완벽한 무지는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해서 꼬제브가 이 정도로 자신의 청중들, 즉 라깡과 바따이유, 크노와 다른 수많은 이들을 현혹시킬 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에 나는 이뽈리뜨라는 자의 박식하고도 용기 있는 작업에 대해 무한한 경의를 품었는데, 이뽈리뜨는 헤겔을 해석하는 대신에 <정신현상학>을 훌륭히 번역해내어 헤겔의 사상을 직접 전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철학적 정세 속에서 나는 '사고를 해야' 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헤겔에 대해 논문을 썼는데, 폭넓은 철학적 지식을 갖고 있던 친구 자끄 마르땡이 이끌어주었다. 나는 꼬제브의 제자들인 불란서 '헤겔학파'가 헤겔에 대해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쉽게 파악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헤겔 자신의 책을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사람들은 모두 주인과 노예의 투쟁, 그리고 '자연변증법'이라는 전혀 얼토당토 않는 소리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슐라르조차 그것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그 사실을 바슐라르가 내 논문에 대해 지적할 때 알아차렸다. 게다가 바슐라르는 헤겔에 대해 전혀 알려고 하지 않았고 헤겔의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헤겔에 대해 적어도 불란서에서는 온통 새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 것들뿐이었다."
- 루이 알뛰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37p~238p
"나는 신앙이 무척 돈독했기 때문에 곧 포이어바흐와 <기독교의 본질>에 흥미를 느꼈다. 몇 년 동안 그것을 번역했다. 너무 긴 작업이었는데 그 중 10분의 1만 출판했다. 포이어바흐는 끝없이 되풀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포이어바흐는 내가 맑스의 청년기 저작들에 환히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줬는데, 그 이후에 나는 그것으로 맑스에 관한 온갖 문제들을 헤쳐 나갔다.
놀라운 인물인 포이어바흐는 제대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위대한 철학자로, 사실 현상학을 실질적으로 기초했으며(주체-객체 관계의 지향성 이론), 니체나 야콥 폰 우엑스퀼의 몇몇 견해도 그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비범한 철학자이자 생물학자로 깡길렘이 높이 평가한 야콥 폰 우엑스퀼은 포이어바흐한테서 생활세계로서 세계라는 개념을 빌려왔던 것이다. 나는 포이어바흐의 책을 주의 깊게 읽음으로써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물론 맑스의 청년기 저작들도 읽었는데, 나는 맑스가 처음으로 주장한 사상이라고, 즉 맑스의 결정적인 사상이라고 그 당시 사람들에게 알려진 훌륭한 글들이 군데군데 포이어바흐의 것이라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리고 <독일 이데올로기>가 좀 일찍 예고한 '과거에 지녔던 우리의 철학적 의식의 단절'까지도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맑스는 거기서 생산양식과 그 '결합'의 요소들에 대해 일련의 혁명적 결론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포이어바흐에서도, 헤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다음 나는 고통스럽게 맑스를 파고들었다."
- 루이 알뛰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74p~275p
"(나도 인정해야 하듯이 그것은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적인 해석이었다. 헤겔이 스피노자를 '가장 위대하다'고 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해석이 틀리다고 보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나는 스피노자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적이거나 더 나중에는 칸트적인) 모든 인식 이론을 거부한 사상가였으며, 코키토와 같은 데카르트적인 주관성의 창시자 구실을 거부하고, 단순한 하나의 사실로 "인간은 생각한다"라고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 거기서 어떤 선험적 결론도 끌어내려 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하이데거를 능가한, 그러나 하이데거가 알지 못했던 디쯔겐을 인용하면서 철학은 '숲길 중의 숲길', 즉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는 길들 가운데 있는 길이라고 즐겨 말했는데, 헤겔 역시 그 이전에 훌륭한 은유를, 즉 숲과 들판 속으로 스스로 자기 길을 열어 나가는 '홀로 나 있는 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었다. 스피노자의 사상 속에 이미 깔려 있던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거나 아니면 그렇게 되었다. "개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명제, 특히 과학적이며 개념론적인 한 사상을 이해하는 상태에서 바로 그 사상의 감각적인 지시 대상의 개념, 다시 말해 그 당시 나로서는 '체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덮개였던 그 지시 대상의 개념을 뚜렷이 드러낸 이 명제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만큼 후설주의적 현상학, 특히 드장티의 후설주의적 맑스주의는 내게 이론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 루이 알뛰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286p~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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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쯔겐이 누구임?
요제프 디츠겐. 노동자로 살면서 독학으로 칸트, 포이어바흐 학습하고 변증법적유물론자 돼서 맑스, 엥엘스한테 인정까지 받은 인물. <유물론적 경험비판론>에서 레닌도 코멘트함. 레닌의 경우는 살짝 인색하게 말했던 걸로 기억함. 헤겔 자리에 칸트가 들어간 게 이색적인데 디츠겐 책 읽어본 분 견해론 그 점 때문에 혼란한 부분도 보였다고 함 - dc App
몇년 전 작고하신 은사님께서 헤겔 전공이셨는데 그분이 코제브는 말씀하신 적이 있어도 알튀세르를 입에 담지는 않으셨는데... 역시 맑스주의자라서 자기만의 헤겔 이론이 있나보구나
오히려 알뛰세르 자신도 레몽 아롱이 자기에게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한 걸 인정할 정도니 말 다 했지. 꼬제브를 둘러싼 얘긴 흥미롭긴 했음 - dc App
영수증 사진은 왜 올리는거임?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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