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여러번 보면 처음에는 안 보였던 디테일들이 보임. 책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작품은 재독할 가치가 있음. - dc App
오블리가토(superior8359)2025-05-04 01:19
그러나 하나의 복수태를 확립하고자 시도하는 우리로선 독서의 문들에서 이 복수태를 중지시킬 수 없다. 독서 역시 복수적이어야,다시 말해 진입의 순서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읽기의 ‘근본적’ 버전은 지난 번 버전이 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텍스트가 재구성되어 결국 연속성의 기교로 끝나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그때 기표는 보충적 수사^!辭) 형식인 미끄러짐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상업적 . 이데올로기적 습관은 일단 이야기가 소비되면(‘탐욕스럽게 먹어치워’지면),그것을 ‘던져버리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다른 책을 살 수 있도록 하라고 권장한다. 그것은 독자들의 일부 주변적 범주들(어린이들, 늙은이들 그리고 교사들)에서만 용인된다. 여기서는 그런 습관과는 반대되는
추운날엔붕어빵(u33fewh2tfwj)2025-05-04 01:25
답글
반복(다시 읽는 것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도처에서 동일한 이야기민을 읽지 않을 수 없다)으로 구하고,텍스트를 다양태와 복수태로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텍스트를 내적 연대순(“이것은 저것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일어난다”) 밖으로 끌어내고, (앞도 뒤도 없는) 신화적 시간을 되찾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고 싶은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일차적 독서가 순진하고 현상적인 근본적 독서이며 다만 그 다음에 그것을 ‘설명하고’ 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메치 독서의 시작이 았는 것처럼,마치 모든 것이 아직 읽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일차적 독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텍스트가 설득적이기보다는 눈길을 끄는 인위적 기교인, 서스펜스의 몇몇 조작 요소들을 통해 우리에게
추운날엔붕어빵(u33fewh2tfwj)2025-05-04 01:27
답글
그런 환상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할지라도 말이다. 재독은 더 이상 소비가 아니라 유희이다(이 유희는 상이한 것의 회귀이다). 따라서 표현에서 의도적인 모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즉시 텍스트를 다시 읽는다면,마약(재시작과 차이라는 마약)의 효과에서처럼 ‘진정한’ 텍스트가 아니라 복수태적 텍스트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동일하면서도 새로운 복수태적 텍스트를. -롤랑 바르트 S/Z 91~92쪽
할 필요 없음 다만 굳이 할 생각 없어도 재독할만한 책은 알아서 하게됨
영화도 여러번 보면 처음에는 안 보였던 디테일들이 보임. 책도 마찬가지. 좋아하는 작품은 재독할 가치가 있음. - dc App
그러나 하나의 복수태를 확립하고자 시도하는 우리로선 독서의 문들에서 이 복수태를 중지시킬 수 없다. 독서 역시 복수적이어야,다시 말해 진입의 순서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읽기의 ‘근본적’ 버전은 지난 번 버전이 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치 텍스트가 재구성되어 결국 연속성의 기교로 끝나는 것처럼 말이다. 왜냐하면 그때 기표는 보충적 수사^!辭) 형식인 미끄러짐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상업적 . 이데올로기적 습관은 일단 이야기가 소비되면(‘탐욕스럽게 먹어치워’지면),그것을 ‘던져버리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다른 책을 살 수 있도록 하라고 권장한다. 그것은 독자들의 일부 주변적 범주들(어린이들, 늙은이들 그리고 교사들)에서만 용인된다. 여기서는 그런 습관과는 반대되는
반복(다시 읽는 것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도처에서 동일한 이야기민을 읽지 않을 수 없다)으로 구하고,텍스트를 다양태와 복수태로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텍스트를 내적 연대순(“이것은 저것보다 먼저 혹은 나중에 일어난다”) 밖으로 끌어내고, (앞도 뒤도 없는) 신화적 시간을 되찾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고 싶은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일차적 독서가 순진하고 현상적인 근본적 독서이며 다만 그 다음에 그것을 ‘설명하고’ 지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메치 독서의 시작이 았는 것처럼,마치 모든 것이 아직 읽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일차적 독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텍스트가 설득적이기보다는 눈길을 끄는 인위적 기교인, 서스펜스의 몇몇 조작 요소들을 통해 우리에게
그런 환상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할지라도 말이다. 재독은 더 이상 소비가 아니라 유희이다(이 유희는 상이한 것의 회귀이다). 따라서 표현에서 의도적인 모순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즉시 텍스트를 다시 읽는다면,마약(재시작과 차이라는 마약)의 효과에서처럼 ‘진정한’ 텍스트가 아니라 복수태적 텍스트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동일하면서도 새로운 복수태적 텍스트를. -롤랑 바르트 S/Z 91~92쪽
처음 읽을 때는 내가 아는 것만 보임 두번째 읽을 때부터 새로운 시야가 생김
읽을 책도 많은데 굳이 재독을 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