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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니스와프 렘의 가상의 책 서평 모음집.
보르헤스 등의 영향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렘이 이런걸 쓴 이유는 완성까지 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아이디어들을 그냥 썰 푸는 방식으로 해소하거나, 아니면 본인이 말하듯이 "정보의 홍수에 기여하지 않기 위해서" 인 듯 하다. 아니면 그냥 귀찮았거나. 게임을 만드는것보단 가상의 게임 공략을 쓰는게 더 쉽고 재밌는 법이다.
어쨌든 렘은 비꼬거나 아이러니하거나 시니컬한 유머에 강하니까, 이런 방식은 잘 어울리기도 한다.
대략적으로 3가지 패턴으로 나뉘는데.
1. 소설화할만한 아이디어인데, 그냥 서평 형태로 썰만 푼 것
2. 다른 책이나 문학에 대한 비판을 가상의 책의 형식을 빌어 비꼰 것
3. 개인적인 철학을 서평 형식으로 풀어 낸 것.
각 서평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들. 내가 볼때 몇번 패턴의 글인지를 적어둠.
절대 진공
지금 독자가 읽고 있는 이 책에 대한 가상의 서평의 형식으로 서문을 써냄..
로빈슨 연대기 (1번 패턴)
자신이 상상해낸 것에서 벗어날수 없고 도망칠수도 없는 표류자에 대한 이야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식의 한계까지 가는게 전형적으로 렘다운 이야기지만, 별로 완성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 내가 보기에도 실제로 글로 써내면 구성이 너무 복잡해져서 ??? 했을거 같고, 이런 식으로 볼때만 재밌을거 같다.
기가메시 (2번 패턴)
기가메시라는, 책의 모든 내용을 어디서 어떻게 읽든 숨겨진 뜻이 있고 해석 가능한 가상의 책에 대한 서평. 하지만 이 해석가능성은 너무나 방대하여, 되려 "문화적 조현병"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율리시즈에 대한 블랙 조크로 읽혔음.
섹스플로전 (1번 패턴)
성교의 쾌감이 사라져서, 성교 자체가 중노동이 되어버린 세상에 대한 이야기.
루이 16세 중장(1번 패턴)
2차대전 후, 나치 장교가 돈을 잔뜩 들고 도망쳐서 남미의 정글에 자신의 조악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프랑스 왕실을 만듬. 처음에는 호의호식할수 있는 어리석은 역할 놀이로만 느껴서 참여하던 짐꾼, 창녀 등은 점점 더 거기에 빠져들게 되고... 소설로 썼어도 재밌었을 듯 한듯.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 (2번 패턴)
문학은 근본적으로 거짓말인데, 이것을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결국 거짓을 함유할수밖에 없다. 그러면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것만이 진실이 아닌가? 라는 발상으로 시작하는 얘기. 재밌었는데, 뭔가를 비꼰다고 느껴졌지만 잘 모르겠음. 해당 시기 문학적 유행이나 그런 것에 대한 것일지.
페리칼립스(3번 패턴)
현재 세상은 정보 과다라서 좋은 이야기가 묻힌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듯. 아무것도 쓰지 않아야 연금을 받는 작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함...
백치(1+2번 패턴)
동명의 도끼 소설을 비틀어서 만들어낸 이야기.
두 유어셀프 북(2+3번 패턴)
내용중에선 개중 평범한 편. 문학적 엘리트에 대한 비꼼인지 대중에 대한 비꼼인지.. 뭐 양쪽 다 아닐까.
이타카 출신 오디스 (1+3번 패턴)
페리칼립스랑 논조가 비슷함. 밝혀지지 않은 천재를 밝혀내려는 재단에 대한 이야기로, 결국 시간의 흐름에 묻혀버린 과거의 잊혀진 천재는 우리가 가지 못한 길을 혼자 파내려다 잊혀진 자일 뿐이다.. 뭐 이런 식.
너 (2번 패턴)
'아무것도 아닌, 혹은 원인에 따른 결과'와 논조가 비슷함. 잘 모르겠는것도 비슷하다.
존재주식회사(1번 패턴)
자기가 원하는 인물이 될 수 있게 "운명"자체를 바꾸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 이것의 범위 폭을 좁히면 토탈 리콜이 될 것 같다. 꽤 재밌었음.
오류로서의 문화(3번 패턴)
과학만능주의적 사상을 보여주는 책에 대한 서평인데.. 어디까지가 작가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비꼼인지 알기 힘들었다.
생명의 불가능성에 관하여 (1+3번 패턴)
확률론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나는 태어났고 어째서 나는 나인가? 라는 내용이라고 말할수 있을거 같긴 한데.. 그것보다는 가상의 작가가 자신의 출생에 얽힌 수많은 조건들을 다 훑어보는데, 이 신상명세 읊는 내용이 진짜 웃김. 렘 특유의 점입가경식 패턴이 잘 나오는 이야기. 처음엔 또 골치아픈 자기 생각 썰 풀려나 보다 하다가 나중엔 걍 웃으면서 봤음.
논 세르비암 (3번 패턴)
복잡한 배경 설정이 나오지만, 결론적으로 "가상 인간"을 만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데, 그 가상 인간들이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을 길게 푼다. 렘 자신이 신에 대해 하는 생각과 논리를 이런 배경을 빌어 풀어낸 이야기로 읽힌다.
새로운 우주생성론 (1번 패턴)
우리가 보는 물리학과 우주의 규칙들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초기 우주문명중 하나가 정립해놓은 어떠한 패턴이고, 그것과 대립하는 다른 문명도 존재한다. 그 문명들은 서로 대립되는 규칙들을 충돌시키며 여전히 싸우고 있다. 현재의 물리학은 그 게임의 결과일 뿐이다. 라는 내용으로, 그 배경 설정을 푸는데 치중한 내용. 꽤 재밌는 발상이였음.
전체적으로 렘 특유의 패턴이 잘 나타남. 뭔가 하나 파고들면 끝까지 파고들어서 극단까지 가는 타입인데 여기서는 서평의 형식을 빌리다보니 그게 더 극단적이다. 그래서 논리를 따라가면서 읽는게 좀 피곤한데, 그래도 발상 자체가 재밌는 작가라는 점이 변하지 않아서 즐겁게 읽을수 있었음. 그외에도 모든걸 할수 있는 자유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것과 똑같다..라는 다른 책에서도 몇번이고 사용된 소재가 여기서도 몇번씩 다시 언급되는데 뭔가 반가웠다.
오..이거 전자책 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재밌겠네
http://ul.rs/3B
고맙다 잘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