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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재밌었다
얼마 전 읽은 '베스트 오브 코니 윌리스' 와 너무 비교됐다
그러니까,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이 쪽이 더 좋았다
왜냐하면 그 책에서 좋았던 이야기는 반 정도였는데 반해 이 책은 거의 모든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집으로부터 일만 광년' 도 타율이 아주 좋았다. 내가 이 작가와 아주 잘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페35미니즘... 분명 페26미니즘이긴하다. 표지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저 표지는 좀 의미불명이다...
왜냐하면 팁트리가 여성을 그리고 남성을 다루는 방법은
결코 '너희들때문에 여자가 핍박받고 있으니 남자들이여 여자를 놔주어라' 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이는 남자와 도망치는 여자, 그 영원한 순환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소비사회, 그 사회를 만들고 떠받치는 인간 본성,
그 본성을 간파하고 두려워 도망치지만, 어디에도 갈 곳은 없다. 왜냐하면, 나도 인간이니까.
그것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이야기들의 대체적인 주제다
단편집이니 역시 단편 하나하나, 최대한 스포 없이 이야기하겠다
참 다시 초반 부분을 펼치니 생각났는데 책의 맨 처음에 수록된 듀나의 추천사는 그냥 읽지 않기를 권한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어설프게 스포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추천사다. 어차피 이 책을 꺼내든 순간 읽을텐데 왜 추천사를 책에 실어놨는지도 모르겠다
1. 체체파리의 비법
처음부터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건버스터' 를 떠올렸다
인간이, 인간보다 거대한 (물리적인 크기가 아니라) 무언가에 의해 삭제되는 감각
인간이 체체파리에게 하듯이.
이 첫번째 이야기는 이 단편집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제목은 너무 아쉽다. 좀 더 그럴싸한 제목이 많이 떠오르는데. 이전에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인데 그 때 제목이 이거였다고 한다. 그냥 바꿔도 될 것 같은데
2. 접속된 소녀
이것도 정말 충격적이고 재미있었다
사실 나무위키를 돌아다니다 스포를 당한 작품인데
알고 봐도 재밌다
사이버펑크가 탄생하기 전에 만들어진 사이버펑크적인 미래에서
인간이 자본을, 자본이 인간을 움직이는 이야기
결국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야기. 몸으로, 마음으로.
그것이 오히려, 자본의 목적 아닐까. 눈 먼 기도로 인도되는 칼날.
3. 보이지 않는 여자들
그저 그랬다
그러나 지루하지는 않았다
이렇게까지 여기가 싫은가?
라는 생각은 들었다
정말 싫은가보다
정말 정말 싫어하는 것 같다.
4.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개꿀잼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부정하는-아니, 오히려 극한까지 긍정하는?- 인간들이, 여기에 나온다
휴스턴에 누가 있을까? 교신을 넣은 우주선에는 누가 있을까?
내가 있다.
이건 추천사의 듀나에게 가볍게 스포를 당했다
그런데 역시나 스포를 당하고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기대하시라.
5.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좀 별로긴 했는데, 짧고 간단해서 괜찮았다
굉장히 노골적이다. 그런데 역시 뒤통수 한 대는 때리고 간다
'아씨발 또 페35미니즘이야!' 라고 생각할 사람에게는 특히나 세게 들어갈 것이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거든.
6. 덧없는 존재감
아주 아주 좋았다. 아주 재밌었다
"인간도 결국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동물' 이라구? (후훗)"
이런 태도의 쿨찐들이 요즘 디씨에 자주 보이는데
과연 이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사실 인간이 반쪽짜리 동물이라면?
그것 참 개좆같을 것 같다, 정말로.
7. 비애곡
역시 아주 좋았다
처음에는 페34미니즘적이면서 굉장히 시니컬한 '케모노 프렌즈' 인가 했는데, 보다 보니 '엘든 링' 혹은 '블러드본' 이 떠올랐다
발전된 기술의 산물이 발에 채이듯 널려 있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쓰고 있는 미래인
차는 '죽어' 있고 인간은 말과 이야기를 나눈다
변칙적인 척하는 정통파 느낌. 바람직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였다.
마지막 두 이야기는 노미네이트 되었을 뿐 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앞의 수상작들 못지 않은 명작이었다
정말로 훌륭한 작가다
나는 언젠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에 대해
PKD와 할란 엘리슨을 같이 믹서기에 넣고 돌려서 나온 엑기스를 페23미니즘적으로 블렌딩한 작가 같다는 말을 독갤에 쓴 적이 있다
이 단편집은, 할란 엘리슨의 냄새가 더 강하다
끔찍하고, 잔인하고, 희망이 없다. 인류 단위로.
그것이 좋다. 그 부분이 좋다.
http://ul.rs/3B
PKD와 할란 엘리슨을 같이 믹서기에 넣고 돌려서 나온 엑기스를 페23미니즘적으로 블렌딩한 작가 같다는 말을 독갤에 쓴 적이 있다 <<< 이 표현 너무 잘 쓴거 같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