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아낙시만드로스의 잠언을 번역하고자 한다
··· 카타 토 크레온. 디도나이 갈 아우타 디켄 카이 티신 알레로이스 테스 아디키아스.
··· κατὰ τὸ χρεών· διδόναι γὰρ αὐτὰ δίκην καὶ τίσιν ἀλλήλοις τῆς ἀδικίας
필요에 따라 ··· 즉, 그것들은 적합함을 속하게 하고, 따라서 또한 부적합을 [극복하는 가운데] 서로 간에 배려한다[어떤 것의 배려를 다른 것에게 속하게 한다].
우리는 이 번역을 학문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고, 또 어떤 권위에 의거하여 그것을 단순히 믿을 필요도 없다. 학문적 증명은 결코 오래가지 않으며, 믿음은 사유 속에서 어떤 자리도 갖지 못한다. 그 번역은 오로지 잠언을 사유하는 동안에만 숙고될 수 있다. 그러나 사유한다는 것은 사상가들 사이의 역사적 대화 속에서 존재의 진리를 시 짓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그 잠언을 단지 역사학적으로나 문헌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 잠언은 결코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잠언, 마르틴 하이데거
학생: 선생님께서는 이론들을 지지하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으십니다. 진실들의 가치를 검토하지도 않으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해석학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으며, 총체성을 요구하지도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선생님을 믿어야 합니까?
푸코: 그러실 이유가 전혀 없죠.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사학과 학생들과의 토론, 미셸 푸코
고수: 그럼 죽어
푸코는 역시 머리카락 다 떨어져서 그런지 모든걸 내려놓은 느낌이 난다.
원래 씹고수들이 다 빡빡이잖아
그냥선험화용론이나굴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