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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별것 아닌데도, 가끔 참을 수 없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어린 왕자」의 여우가 그렇다. 「어린 왕자」를 소설로 친다면, 아마도 「어린 왕자」가 내가 최초로 읽은 소설일 것이다. 몇 살 때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러나 까탈스러운 장미꽃을 싫어했던 것, 그리고 '인연'이라는 것의 의미를 여우로부터 배우고 크게 감동했던 것은 아직도 기억한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이라도 잠깐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에 「어린 왕자」를 읽었다. 최초의 기억이라 그런지, 활자를 눈에 넣는 것만으로 뜻 모를 애수가 느껴진다. 심지어 그때 읽은 판본은 버렸는지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데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왕자 눈에 이상하게 보이던 어른 그대로 자라고 만 것 같다. 나는 어린 왕자의 그림을 보면 '모자를 닮았으나, 실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라고 기계적으로 정답을 떠올린다. 사업가처럼 숫자에 관심이 많아졌고, 전혀 무의미한 통치를 하는 왕을 나름대로 괜찮은 군주라고 생각하게 됐으며, 술 취하는 것이 부끄러워 술을 마셔 잊으려는 주정뱅이를 이해하게 됐으며, 군대에서 융통성 없이 남아 있는 지시를 융통성 없이 지키는 가로등지기처럼 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이런 따분한 세상에서 그럭저럭 행복하게 지낸다. 여우가 가르쳐 준 것처럼, 이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이어주는 사랑이 의미를 피우고 있다. 인연들이 있는 한 내가 있는 이 땅은 소중하다. 인연들은 나를 길들였고, 나도 내 인연들을 길들였다. 정말 여우가 말한 그대로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햇빛이 비치는 것 같을 거야. 나는 다른 모든 발소리와는 다른 발소리를 알아듣게 될 거야. 네 머리카락은 황금빛이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거야! 황금빛 밀을 보면 네 생각이 날 테니까. 그럼 나는 밀밭에 부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가 되면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겠지.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되는 거지!"
세상에는 80억 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왕자의 별만큼 좁은 우리나라에도 5000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사람들이 내게 의미가 있지는 않다. 오히려 무의미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5000만 명의 사람들 중에 50명도 안 되는 사람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기적 같은 확률로 만난 우리는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고 행복이 된다. 그렇게 서로가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에 지금 여기가 소중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만날지 모르는 인연들, 사막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우물들을 찾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살아간다. 이 점을 생각하면 나는 「어린 왕자」로부터 예전보다 더 큰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예전보다 외로워진 만큼 예전보다 더 인연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어른이 된다는 것의 유일한 순기능일지도 모른다.
도시의 밤하늘에는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광해(光害)라고 하던가? 환경 파괴로 사막은 넓어졌는데 어린 왕자가 있는 별은 보기 어려워졌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이 어린 왕자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하지만 어린 왕자 덕분에 나는 내 주변의 빛나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오백 송이의 장미꽃 중 장미꽃 한 송이처럼, 80억 명의 사람들에 속하는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내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요한 것이 느껴진다. 내가 그 사람들과 보내온 소중한 시간이, 그리고 앞으로 보낼 시간이, 우리가 나누었고 앞으로도 나눌 사랑이 느껴진다. 그것만으로 삶은 설레고 의미로 충만하다. 이 교훈을 가르쳐 준 어린 왕자, 여우, 그리고 생텍쥐페리에게도 나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