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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영화가 있다. 건조하고 무던한 투로 일상적인 풍경을 보여주다가 마찬가지 투로 슥, 다음 장면을 보여주는데 이 흐름에 익숙해져 있던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를 보고 넘어간다. 그리고 잠시, 자기가 뭔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하다가 기겁하며 머리를 바로 든다. 이를테면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등.1) 아무것도 특별한 건 없이, 그저 컵을 옆으로 계속 밀었을 때 컵이 언젠가 떨어지는 것처럼 나오는 폭력. 영화는 카메라의 초점이라는 분명한 장치의 힘을 빌려 이를 연출할 수 있다. 문학에서는 오히려 그보다 더 쉬울지도 모른다. 담배를 피는 것을 서술하는 문장 바로 다음에 누군가가 죽었다고 쓰기만 하면 끝 아니겠는가? 하지만 많은 하드보일드 범작이 보여주듯,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은 그 쉬운 일을 너무나 손쉽게 해보이는 글이다. 딱히 폭력이 만연한 장소로 묘사되지도 않는 한 빈곤하고 무더운 미국 남부의 마을에서, 조금도 개의치 않고 등장인물을 조금씩 밀어 넘어뜨린다. 하지만 <마음은>의 놀라운 점은 딱히 그 점이 이 소설의 주된 장점조차 아니라는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마음은>의 핵심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 아니면서도 늘 주변과 통하지 않는 외로운 마음들. 여러 남매로 둘러싸여 있지만 마음 통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소녀 믹, 빈곤한 남부의 상황을 바꾸고자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 노인 제이크, 마찬가지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흑인의 상태를 개선하고자 자식을 포함해 흑인들을 돕고 계몽하려 하지만 전혀 소득을 거두지 못한 늙은 흑인 의사 코플랜드까지. 이들이 "이해받는다고" 느낀 유일한 대상인 벙어리 싱어는 정작 자신에게 전혀 마음을 열지 않는 다른 벙어리 친구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친구가 병으로 죽자 바로 슬픈 마음을 안고 권총으로 가슴을 쏴 죽는다.
이 벙어리 싱어는 소설의 중심에 있으면서, 온 마을의 외로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아무도 싱어를 제대로 이해하진 못하며, 그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상대를 그에게 투영하곤 한다.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믹은 싱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터키인은 자신이 터키어로 말하는 것을 싱어가 이해한다고 생각해 그가 터키인이라고 믿으며, 코플랜드는 흑인의 소외된 상태를 공감하는 유일한 백인 싱어를 마찬가지로 소외된 유대인2)이라 여긴다. 싱어가 그 전부터 이 마을에 살고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의 과거를 떠올리지 못하며, 싱어에게서 자신의 이상적인 말상대를 찾지 않는 유일한 인물인 카페 주인 비프만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를 이해한다. 그는 싱어가 한때 다른 벙어리 친구와 함께 지냈다는 것도 떠올려내며, 어째서 사람들이 싱어에게서 그렇게나 많은 것을 기대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비프 역시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유일하게 싱어를 그 본연의 모습 그대로 대해준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마음은>에서 폭력과 고독 이외에 또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제시되는 사회적 파탄이다. 미국에 부는 넘쳐나는데도 그 부는 남부에는 전혀 도달하지 않는지 빈부격차는 극심해지기만 하고, 저명한 노인 의사 코플랜드는 여전히 백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당하며 구치소에 끌려가며,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런 것에 신경 쓰지도 않는듯 총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아이가 다른 아이의 머리를 쏴버리는 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가난과 인종차별이라는 두 개의 큰 문제를 해결해보려 하지만 개중 하나도 성사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두 문제가 함께 얽혀 패싸움을 하는 등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더욱 더 고통받는다. 작중에서 생긴 어떤 비극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며, 고독한 사람들은 계속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하게 죽을 것이다.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모든 소외받은 이들에게 남모를 애정을 품고 공짜 술을 한 잔씩 대접하는 비프조차 그 이상은 해줄 수 없는데 말이다.
싱어가 일종의 왜곡된 예수3)의 모습으로 제시된다는 점이 <마음은>의 가장 잔혹한 점이다. 비프처럼 그는 모든 소외된 외로운 마음의 구세주가 되며, 자신이 원하는 말상대를 싱어에게 투영하는 많은 추종자를 만든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연락을 하는데도 그와 마음이 통하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벙어리조차-믹은 꿈을 저버리고 평생 점원으로 살아야 할 때, 제이크는 길고 꾸준히 준비한 노동자의 폭동이 단순한 인종 간 혈투로 바뀌었을 때, 코플랜드는 자식이 감옥에서 두 발을 잃고 돌아왔을 때, 이 파국 속에서 싱어는 그저 자신만의 문제로 인해 사라진다. 고독한 마을에서는 예수조차 고독한 법이다. 가장 싱어가 필요할 때 싱어가 사라지자 이들은 절망하며,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기대도 딱히 없이 억지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보려 노력한다. 그리 성공적이진 않다.
덕분에 <마음은>은 참 고요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 글이 뛰어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그래서 이 글을 싫어할 이들도 참 많겠구나 싶다. 게다가 놀라운 점은 매컬러스가 <마음은>을 첫 장편소설로 23살 때4) 썼다는 것인데, 그 천재성이 놀랍다는 것보다도 어떻게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리 단순하게 냉막한 글을 썼는지가 놀랍다. 십대 때부터 온갖 열병을 심하게 앓으며 여러 책만을 읽으며 지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게 꼭 이상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단순히 염세적인 이상으로 세상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듯한 이 무심함을 견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매컬러스의 다른 글은 시간이 꽤나 흐른 뒤에야 읽을 듯하다. 이런 글을 짧은 시기에 연달아 읽기란 심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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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목록은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 있을 테다. 사실 이 목록은 영화보다는 연출의 목록에 더 적합할 터인데, 그렇게 된다면 목록은 더욱 더 길어질 것이다. 눈앞에 들이밀지 않고 배경에서 폭력을 마치 서브리미널 삽입 광고처럼 던져놓는 연출. 풀썩, 하고 누가 쓰러지는 소리가 그 다음에 이어지고 나서야 방금 전에 자신이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아마 실제 살인은 어쩌면 이런 식이 더 흔할지도 모르겠다는, 안온함의 연약함에 대한 막연한 깨달음. 이 목록을 더욱 확장해 나가다 보면 심지어 만화 <진격의 거인>의 고백씬까지 들어갈 수 있을 테다. (애석하게도 이 씬은 애니에서는 훨씬 더 평범하게 나왔다)
2) 사실 싱어는 소설 기획 단계에서는 유대인이었다는 점이 묘한 부분이다. 홀로 자기 마음속에 침잠하는, 방랑하는 유대인.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속에서 주인공 미쉬킨 공작이 어떻게 인간 예수를 구현하고 있는지, 그 인간적 실패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묘하다. 덕분에 <백치>와 <마음은> 사이에는 꽤나 뚜렷한 유사성이 엿보이며, 미쉬킨 공작이 파국 속에서 백치로 돌아가듯, 싱어 역시 스스로 사라진다. 코플랜드가 싱어를 보며 스피노자와 닮았다고 여기며 그가 유대인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코플랜드가 스피노자의 글을 즐겨 읽던 것을 생각하면 이것 역시 코플랜드가 자신의 이상적인 말상대를 투영한 것에 더 가까우리라.
3) 왜 예수인지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시대적 맥락이 존재한다. 싱어는 소설 구상 단계에서 유대인이었는데, 그의 원래 이름은 해리, 바로 믹의 이웃 유대인 소년이다. 그는 믹에게 자신이 파시스트를 제일 싫어한다며 몇 번이고 강조하는데, 소설이 나온 해 1940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유대인 탄압이 이미 충분히 가시적으로 살인적이었던 시기다. 싱어가 예수로서 해결해야 했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저 바다 건너에서 이뤄지고 있는 유대인 탄압이었으며, 당연하게도 이 문제 역시 전혀 해결되지 않고, 해리는 믹과의 성관계 이후 도망가며 또 하나의 고향 잃은 방랑하는 유대인이 된다. 매컬러스 본인이 집필 당시 알지는 못했겠지만, 아우슈비츠 이후 신의 사랑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는 세간의 평을 생각하면 싱어의 실패에는 일종의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4) 마찬가지로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녀의 남편은 <마음은>을 읽고 그녀에게 강렬한 질투심을 품게 된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가정폭력으로 자신이 받은-반어적으로 말하자면-'폭력'을 되돌려주었고, <마음은> 출간 1년 이후 매컬러스는 남편과 이혼한다. 매컬러스 본인도 평생을 알코올과 함께 살았으며,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음은>에 등장해도 될만한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러니 사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이런 글을 썼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 셈이다: 그녀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ㄹㅇ 천재성 느껴지던데 그게 하나도 부럽진 않던...
벙어리 싱어 에피소드, 페소아가 쓴 어떤 글하고 완전 흡사하던데 그게 뭔지 떠오르지가 않농.. 심지어 페소아가 썼는지도 의문이라 헷갈리노
슬픈 카페의 노래는 읽었었는데 에밀리에게 바치는 장미가 생각나는 그런... 사랑 이야기라기엔 기이한 글이었던 기억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