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리지가 보기에, 모든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거나 플라톤적으로 태어난다. 플라톤적인 사람은 이데아가 현실이라고 직관적으로 파악하며,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람은 이데아란 일반화라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람들에게 언어란 자의적인 상징체계일 뿐이지만, 플라톤적인 사람에게 언어란 우주의 지도이다. 플라톤적인 사람은 우주를 코스모스 즉, 질서라고 생각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람에게 이 질서란 오류이자, 인간이 파편적인 지식으로 만들어낸 허구이다. 이 불멸의 두 적대자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 언어와 이름을 바꾸었다. 한쪽은 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스피노자, 칸트 그리고 프랜시스 브래들리요, 다른 쪽은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흄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다. 중세에 고군분투한 학파들은 한결같이 “인간 이성의 스승”(단테의 『향연』, IV, 2),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고 있으나 유명론자는 아리스토텔레스요, 실재론자는 플라톤이었다. 조지 헨리 루이스는 철학적 가치를 지닌 중세의 유일한 논쟁은 유명론과 실재론 논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판단은 경솔하지만, 이 끈질긴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보에티우스가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놓은 포르피리우스의 문장 하나가 9세기 초엽 보편논쟁을 야기했고, 11세기 말에는 안셀무스와 로스켈리누스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4세기에는 윌리엄 오캄이 다시 이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절충적인 견해나 특이한 주장을 한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그렇지만 실재론의 기본은 보편자이고(플라톤이 이데아와 형상을 얘기했다면, 우리는 추상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유명론의 기본은 개별자이다. 철학사는 오락이나 언어유희로 채워진 쓸모없는 박물관이 아니다. 진정 이 두 명제는 현실을 직관하는 두 가지 방법에 상응한다. 모리스 드 불프는 이렇게 썼다. “극단적 실재론은 처음으로 지지를 얻었다. 11세기 연대기 편찬자 헤리만은 변증론(논리학)을 가르치는 학자를 고대파라고 지칭했다. 아벨라르는 이 변증론을 구학설이라고 했으며, 12세기말경에는 적대자들을 현대파라고 불렀다.” 지금은 가당치도 않은 명제가 9세기에는 자명하게 여겨졌으며, 어느 면에서는 14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유명론은 예전에는 몇몇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고였으나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이 승리는 너무도 방대하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그 이름은 무용하다. 그렇지만 중세인에게 실재는 인간이 아니라 인류였고, 개체가 아니라 종이었으며, 종이 아니라 유였고, 유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알레고리 문학은 이런 개념에서(가장 명백한 표명이 에리우게나의 4과이리라) 유래했다. 소설이 개인에 대한 우화인 것처럼, 알레고리 문학은 추상에 대한 우화이다. 추상은 인격화되었고, 따라서 모든 알레고리는 소설다운 데가 있다. 소설가들은 개체가 유가 되기를 열망하므로(뒤팡은 이성이며, 돈 세군도 솜브라는 가우쵸다) 모든 소설은 알레고리다운 데가 있다.


      알레고리에서 소설로, 종에서 개인으로, 그리고 실재론에서 유명론으로 이행하는 데 몇 세기가 필요했지만, 나는 여기서 감히 그 이상적인 날짜를 암시하려고 한다. 1382년 어느 날이다. 이 날 제프리 초서는 ―아마 초서를 유명론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보카치오의 시구, “E con gli occulti ferri i Tradimenti”(배신은 쇠를 감추고)를 이렇게 영어로 옮겼다. “The smyler with the knyf under the cloke”(외투 밑에 칼을 숨기고 웃는 자). 원문은 『테세이다』7권에 실려 있고, 영문 번역은 「기사이야기」에 들어있다.


보르헤스, 또 다른 심문들



보르헤스 피셜) 초서가 처음으로 알레고리에서 소설로 넘어갔다

이거 읽으니까 좀 마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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