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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막스 슈티르너의 두 주저,『유일자와 그의 소유』그리고『비평가들』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이 글은『월간 독갤』에 투고하기 위한 의도로 쓰였다.
최대한 균형적으로 구성하려고 고심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히 불균형한 구성이라는 생각도 든다.

1. 슈티르너 사상과 '찐따'의 연관성
'찐따'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 그것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해당 인물이 속한 사회와 잘 융화되지 못하거나 혹은 융화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을 지님." 아마도 이 글에서 언급하는 슈티르너는 후자에 좀 더 직접적으로 해당되리라 본다. 그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모든 인위적 가치들을 두고 '유령'일 뿐이라며 부정했다. 그의 유명한 "모든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혹은 "나는 어떠한 대의로부터도 비롯하지 않는다"(사실 괴테의 시인『헛되다! 헛되고 헛되다!』의 첫 행에서 따온 것이다)라는 글은 바로 이러한 경향을 함축한 것이다. 슈티르너는 오직 개인만을 긍정한다. 그리고 상기한 모든 것에서 완전히 해방된 개인이 바로 '유일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유일자는 찐따라고 분류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찐따의 철학'(뒤에서 내가 그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이는 비하적인 의미가 아니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술한 대로 '찐따'는 사회와 유리된 자들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반대되는 개념은 사회 내지 공동체일 것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이들 간의 대립 관계를 숱하게 목도해왔다. 이는 역사 속에서는 물론이고, 실상 우리의 눈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개인주의적인 자들인 '찐따'는 절대로 타협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어떠한 선택에 있어 공공의 이익을 고려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구상에 그들만 가득하다면 인류는 다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반면 공동체는 언제나 타협을 강요한다. 때로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짓밟기도 한다. 요컨대 그들은 본질적으로 '다수'를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이미 역사 속에서도 여러 번 보았듯이, 그들의 시선에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빈번히 정당화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정답인가? 당연히 둘 다 아닐 것이다. 이러한 소재에 있어 최선이 되는 것은 언제나 중용이다.
이 뒤로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상술한 두 가지 측면의 대립,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중용을 다루고 있다.

2. 슈티르너 사상의 내용과 그 이질성에 대한 개관
막스 슈티르너라는 철학자의 주장을 가장 심도 있게 담고 있는 저작,『유일자와 그의 소유』에 대해 살펴보자. 슈티르너는 '자유'를 모든 인위적 교의인 '유령'들에서 해방되어 유일자로서 서는 것으로 해석한다. 당연히 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도 사회도, 시장도, 재산도 모두 사라져야 한다. 그 방면에 있어 무엇보다 그의 견해를 잘 요약해주는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인민의 자유는 나의 자유가 아니다."(『유일자』의 제1부-인간 제2장-고대인과 근대인 중 '자유인'.) 이 문장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 되어있다. 첫번째는 '인민'이라는 인위적 개념이 '나'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국가 체제 하에서 주어지는 '인민의 자유'는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일 뿐,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자유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 또한 개인이 협력할 수 있음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일시적이며 스스로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만 포함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협력이 지나치게 장기간 이어질 경우 그것은 또다른 교의의 영속화를 낳는다. 이 점에서 그의 사유는 단순히 '무정부'라는 말로는 요약될 수 없다. 그는 완전한 '무세력화'를 희망한다.
또한 슈티르너는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서사에 있어 단순한 거부를 초월했다. 그는 논거를 이용해 그것이 '거부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또다른 무정부적 자유주의자인 미하일 바쿠닌 역시 자유로운 개인들의 느슨한 사회의 필요성은 인정한다는 점에서 슈티르너 사상의 이질성은 두드러진다.
슈티르너 사상의 이질적인 부분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질서가 철폐됐을 때에 대한 가정이다. 사회의 성립을 다룬 학자들은 대부분 자연상태에서는 중앙 권력의 부재로 인한 단점이 따른다고 보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슈티르너는 완전히 다른 가정을 펼친다. 그는 완전한 무세력 상태를 가정하면서도 폭력과 정념으로 가득찬 사회는 부정한다. 폭력과 정념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그 또한 새로운 '유령'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 폭력과 정념이 들어서는 것을 진정한 자유 상태로 보지 않는다. 그의 관점에서 진정한 인간 해방이란 모든 질서가 부재하면서도 모든 개인이 유일자로 남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비폭력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일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자율적인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인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제도화 되거나 공동체적 가치로 조직되는 순간, 유령으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혁명 자체에도 부정적이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특정한 가치가 체제 안에서 완전히 무시 받을 때, 그 정당성을 호소하기 위해 행해지는 정치적 활동이다. 그러나 평등, 박애, 인간, 계몽, 연대 등도 모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치가 아닌가? 그렇기에 그의 관점에서 혁명이란 또다른 유령을 집단적으로 실현시키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그는 당시의 계몽주의와 자유주의에도 직접적인 비판을 가했다. 그 두 가지 사상에 종교적 광신 및 불관용을 타파하고 개인의 권리를 성취해낸 업적이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슈티르너에 따르면 그들은 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도덕', '인간성' 등으로 불리는 또다른 신앙을 채워넣었을 뿐이다. 결국 상기 사상들은 명시적 신성만 없을 뿐, 실질적으로 종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대목에서 '신'의 자리를 '인간 일반'으로 대체하려고 직접 시도한 포이어바흐를 비판하기도 한다. 여기에 포이어바흐는 재반박 하였는데, 그들 간의 설전은『비평가들』부분에서 따로 다루겠다). 다음에 나올 긴 인용 부분을 참고하면 그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확정되는 것이란 '인간은 종교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도 그러한 신성한 개념의 하나다. 즉 인간은 도덕적이어야 하며, 그렇게 될 수 있는 올바른 길, 바른 존재방식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덕 그 자체를 결코 의문에 붙이지 않고, 그 자체가 하나의 기만적인 환영이 아닌지를 묻지도 않는다. 도덕은 모든 회의 위에 숭고하며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것은 한걸음씩 승화되어 '성스러운' 것에서 '최고로 성스러운' 것으로 계속 나아간다."(『유일자』의 제1부-인간 제2장-고대인과 근대인 중 '위계질서'.)
상기의 이유로 그는 인위적 가치의 철폐는 폭력 혁명이나 사회 개혁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고 본다. 모두가 자신은 그저 자신일 뿐임을 깨달을 때 자연히 그 모든 교의가 붕괴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경험적인 측면에서 검토했을 때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사상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슈티르너 저서의 다른 시사점들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그의 문장을 직접 인용해보려고 한다.
그는『유일자』의 서문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공허함이라는 의미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조적인 무, 곧 아무 것도 아님에서 나 자산은 창조자로서 모든 것을 창조한다." 이거 어디서 본 적 없는가? 우리는 후대의 니체, 그리고 그를 계승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거의 흡사한 이야기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아나키즘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의 선구자였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카뮈 같은 경우 그의 저작(『반항인』의 제2부-형이상학적 반항 중 '유일자')에서 슈티르너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비록 카뮈는 슈티르너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를 '반항인'의 선구자 중 하나로는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슈티르너는 같은 저작의 제1부에서 계속해서 몽골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의 예시를 인용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여기서 몽골족에 대한 역사적 반성을 삽화처럼 삽입하고자 한다."(『유일자』의 제1부-인간 제2장-고대인과 근대인 중 '위계질서'.)
역자에 따르면 이러한 인용은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당대의 프로이센 왕국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장치였다. 이는 철저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된 전략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슈티르너를 흔히 비타협적이고 파격적인 철학자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이처럼 검열을 의식해 표현을 우회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 역시 당시의 정치적 현실을 고려하며 신중하게 언어를 다듬었다. 이를 통해 가장 파격적인 철학자도 고위층을 직접적으로 지목하여 비난할 수는 없는 시대였음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비평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슈티르너는 단순히 주장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비판자들에게 직접 반박했다. 이는『리바이어던』의 비판자들에게 일일이 반박하는 글을 보냈던 토마스 홉스를 연상하게 한다.
이제 예의 그 저작이 받은 세 학자의 비판과 이에 대한 슈티르너의 답신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번째 비판자는 스첼리가이다. 그는 프로이센 왕국의 장교이자 청년 헤겔학파 모임인 '자유인'(슈티르너, 엥겔스 등도 소속 되어있었다)의 일원이었다.『북독일 신문』의 칼럼에서 슈티르너를 비판하였다.
두번째 비판자는 포이어바흐이다. 그는 청년 헤겔학파의 실질적인 수장을 맡고 있었던 학자로, 마르크스-엥겔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비간트의 계간지』의 마지막 권에서 슈티르너를 비판하였다.
세번째 비판자는 헤스이다. 그는 독일 사회주의 사상의 선구자 중 하나였다. 자신의 주저인『최후의 철학자들』에서 슈티르너를 비판하였다.
구체적으로 답변하기에 앞서, 슈티르너는 이들이 자신의 중요한 두 가지 표현에 대해 오해했다고 지적한다.
그 첫번째는 '유일자'이다. 그에 따르면 유일자는 어떠한 함의가 있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표현일 뿐이다. 슈티르너의 글을 직접 인용해서 설명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유일자는 그저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일자는 그대는 그대이고, 그대는 그대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대는 유일한 그대이거나 그대 그 자신이라는 것을 말할 뿐이다. 이리하여 그대는 속성이 없지만, 그런 일로 동시에 그대는 규정되지 않는, 소명되지 않은, 법칙이 없는 등등의 사람이다."(『비평가들』의 서문.)
그 두번째는 '자기중심성'이다. 그에 따르면 자기중심성의 추구란 도덕, 윤리, 국가 등의 유령에게서 해방되는 것이다. 슈티르너는 세 비평가들을 비롯한 이들이 이에 대해 단순한 도덕적, 종교적 방종 정도로 축소해 읽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자신이 말하는 '소유' 개념에 대해서도 해명한다. 그가 말하는 소유는 자본주의적 소유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단지 '나'는 본래 나의 것이라는 의미만을 지닌다. 어떠한 교의도 나를 제한하지 않고 오직 '나'만이 나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후 세 명의 비평가들에 대한 재반론이 이어진다.
첫번째는 스첼리가에 대해서이다. 슈티르너에 의하면 그는 정확히 상기한 두 가지 개념을 오해한 비평가였다. 그는 '유일자'를 일종의 절대자인 것처럼 바라보았으며, '자기중심성'을 단순한 나태 정도로 해석했다.
두번째는 포이어바흐에 대해서이다. 이 부분이 해당 저작에서 가장 중점이 된다고 보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포이어바흐는 슈티르너에게 있어 비중 있는 비평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비판도 실은『유일자』에서 적었던 표현들이 수없이 반복된다. 요컨대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인간의 본질'은 '나'라는 단일의 개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슈티르너의 예시를 인용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포이어바흐가 확실히 단순한 동물의 수컷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그는 인간다운 남성에 불과한가? 그가 자신의 '기독교의 본질'을 남성으로서 저술했는가? 그리고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남성으로 존재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는가? 반대로 책을 쓰기 위해 '유일한 포이어바흐'가 필요하지 않았는가?"(『비평가들』중 '포이어바흐'.)
'남성'이라는 '본원적 속성'이 '포이어바흐'라는 유일한 사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는 헤스에 대해서이다. 슈티르너는 헤스를 세 비평가 중 가장 매섭게 비판하는데, 이는 헤스 자신부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슈티르너가 지적하는 사항들을 보면 우리는 헤스가 의도적으로 슈티르너의 저서를 곡해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슈티르너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된 부분의 단어들을 바꾸는 등의 조작을 보여주기도 했다. 헤스가 가지고 있던 오해의 대부분도 이러한 잘못된 해석에서 기인하므로, 그것을 지적한 것이 인신공격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슈티르너의 사상에 있어 포이어바흐 다음으로 중대한 비판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그 비판이 중점적으로 제시된다는『독일 이데올로기』는 나 뿐만 아니라 슈티르너도 읽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이데올로기』가 출간된 것은 슈티르너 사후 수십년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슈티르너 본인도 해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에 대한 재반박 논거를 내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서는 논하지 않겠다.
사실 어느 지점에서 대립되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기도 한다. 마르크스-엥겔스와 슈티르너는 방법론적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한 근대 유럽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를 어떠한 기준으로 바라보는지 묻는다면 차이가 뚜렷하다. 전자는 역사를 언제나 물질적인 상황과 결부시켰다. 후자는 반대로 언제나 관념적인 상황과 결부시켰다. 아마도 마르크스-엥겔스는 이러한 차이를 두고 슈티르너를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술했듯, 나는『이데올로기』를 직접 읽어본 적이 없다. 또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는 않겠다.
슈티르너 사상의 수용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며 이 부분은 마무리 하겠다. 그의 사상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실에 수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가 주장한 순수하게 호혜적인 '에고이스트 연합'이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는 훌륭하게 보인다. 그러나 수단적인 측면을 논할 때, 그것이 본래 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을까? 현재도 도처에서 보이듯, 다수의 인간이 타자를 그가 원치 않는 입장에 묶어둘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또한 에고이스트 연합에는 '연합이 개개인의 이익에 부합할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규범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다른 에고이스트 연합과 합치되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이를 바탕으로 한 추가적인 설명은 다음에 전개될 3번째 부분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상기한 철학자들의 견해와 내가 하려는 말은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듯 싶다. 나는 좀 더 실용적인 관점을 견지했다. 요컨대 그의 사상 기초를 반박하기보다 무엇이 더 보편적으로 유용한 측면이 될지를 점검해보고자 했다. 나에게는 그의 토대를 무너뜨릴 만한 지성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주장에도 슈티르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공화주의, 공동체, 중용적 자유, 공리주의 등도 모두 유령일 뿐이다. 아니, 그러한 사상을 통해 다수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유령일 따름이다. 너는 지금 고정관념에 휩싸여있다. 유일자는 그러한 모든 것에서 탈피하므로, 너의 비판과 이어지는 주장, 그리고 그것을 위해 인용되는 사상가들의 견해마저 완벽히 무효다."
그럼에도 나는 다음 지점을 쳐다볼 것이다.

3. 슈티르너적 자유와 자유주의–오해와 해명
아마도 "자유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슈티르너를 제외한 그 어떤 자유주의자도 그와 같은 답을 내놓지 않을 것이다.
존 로크는 자연권의 한계 안에서 스스로의 소유를 처리할 수 있는 권리가 곧 자유라고 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는 법이 금지하지 않는 모든 것이 곧 자유라고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타인에게 직접적 해악을 불러오지 않는 행동 및 사유가 곧 자유라고 했다. 로버트 노직은 타인의 합법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모든 행위가 곧 자유라고 했다. 존 롤스는 타인의 권리와 양립 가능한, 평등하고 광범위한 기본적 체계의 보장이 곧 자유라고 했다.
이 사상가들의 자유에 대한 지론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완전한 방종이 아니라 무언가 규범적인 면을 내포한 것이 자유라는 점에서 그렇다. 루소의 말마따나 결국 인간은 더 이상 완벽한 무제한의 자유로 돌아갈 수 없다. 또한 그런 방종적인 자유는 타인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고 신체적 불평등을 인간의 본질적 지위로 환원시킨다. 당연히(전제정, 군주정, 공화정–몽테스키외의 정체 구분을 따름) 모든 정체 중 가장 개인적 자유를 중시하는 공화정에서도 슈티르너식 자유는 용인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자유주의자들의 사상은 많은 경우 슈티르너와 같은 부류로 오인 받는다. 독갤에서도 자유주의를 비판한답시고 "독재자처럼 모든 것을 내 마음 대로 하는 것이 곧 자유"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글을 목도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자유'라는 개념은 어떻게 정의되는 편이 이로운가? 개인적으로 한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싶다.
나는 자유란 "해당 사회의 실정법령이 내재적 규범에 위배되지 않을 때 그것이 허용하는 행동 및 사유 중 타인에게 명시적, 직접적 해악을 불러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절대적인 교의가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것의 기반은 세 명의 사상가들에게서 얻어왔다고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몽테스키외이다. 자유에 있어 '법이 허용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붙인 건 명백히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자연법' 개념을 도입한 것 역시 그렇다. 일반적으로 자연법론은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합당하게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자연법론은 신의 존재 없이도 설명될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몽테스키외도 자연법 내에서 신을 가정한다. 그러나 로크 등의 전통적 자연법론자들과 다르게 그 자체가 신의 존재에서 유래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법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존재의 구조에서만 유래하기 때문에 '자연법'이라 불린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인식 능력일 것이다."(『법의 정신』의 제1편-법 일반 중 제2장-자연법.)
두번째 인용문 대로 그가 제시한 자연법이라는 것도 지극히 간단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자기보존과 성적 결합의, 그리고 두 가지에서 파생되는 집단(대표적으로 가정) 형성의 경향' 정도로 요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자연법이라는 개념은 왜 도입되어야 하는가? 어떤 국가의 실정법은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를 완전히 억압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정법이 허용하는 행동 및 사유만이 자유라고 말하면 그러한 법령을 옹호하게 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 자연법 부분은 매우 간략하여 상기한 해악의 포괄적인 방지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벤담의 견해도 도입될 필요가 있는데, 이는 후술하겠다.
두번째로 바로 위에서 언급한 내재적 규범의 또다른 측면은 전적으로 벤담의 견해에 기반한다. 벤담은 모든 중요한 논증에 있어 공리의 원칙을 기초로 한다. 그는 어떠한 행위에서 발생하는 쾌락이 전체 사회의 시점에서 고통보다 크다면 그것은 제한될 수 없다고 말한다. 제한될 수 없다는 것은 곧 개인의 재량에 달렸다는 뜻이므로 그가 생각하는 자유는 이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리의 원칙의 장점은 그것이 굉장히 명료하다는 것이다. 명료함은 수용 가능성에 있어서도 상당한 이점을 가지기에 그 자체로 유용한 요소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리주의 사상에 대해 중대한 우려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사회 전체의 효용만 중시하는 방향으로 극단화 된다면 전체주의를 낳을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벤담은『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에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모두의 안전에도 해악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변을 한 적이 있다. 그러한 처분은 공공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사회 전체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몽테스키외의 자연법론이 공리의 원칙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벤담은 왜 인류 전체에게 공리의 원칙이 통용된다고 가정하는가?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쾌락과 고통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의 자연법도 같은 방식으로 증명되었다. 그 또한 인간 일반이 상기한 경향을 지닌다는 전제를 직관을 통해 끌어내었기 때문이다. 벤담은 왜 모든 사회적 규범이 최대다수의 쾌락 극대화를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는가?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감쇄를 바라는 것은 인간 본성이므로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장기적 효용을 낳기 때문이다. 공리의 원칙이 '인간 본성이기 때문에' 보장되는 편이 '효용적'이라면, 같은 방법으로 증명되는 몽테스키외의 자연법에도 그러한 판단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실정법은 공리의 원칙과 자연법이라는 두 측면으로 이루어진 '내재적 규범'에 기반해야 한다는 전제가 만들어진다.
물론 벤담이『정부론』에서 "자연법 운운은 망령된 소리"라고 일갈한 적은 있긴 하다. 그는 '자연법'이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사변적인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몽테스키외는 인간 본성에 대해 경험적으로 접근하였다. 인간 일반이 '쾌락'과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자명하다면, 그들이 '자신의 안전', '성적 결합', 그리고 그 두 가지에서 파생되는 '집단의 형성'을 욕망한다는 점 또한 그러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두 가지 개념을 합치시키는 것이 벤담 사상의 근본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아마도 이러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내재적 규범을 형성하는 보편적인 두 가지 기준을 상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한 사회의 도덕과 관습, 법의 모습에서 차이를 발견한다.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서도 몽테스키외의 해석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쾌락과 고통은 보편적 감각이다. 자기보존과 성적 결합 및 그 두 가지에서 파생되는 집단의 형성에 대한 경향 역시 보편적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요소를 비롯하여 문화와 제도의 양식은 그것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적용한다."라고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는 밀의 영향을 받았다. 밀은『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가 타인에게 직접적 해악을 유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에게 해악을 불러오지 않는 것이 자유라는 구절은 명백히 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저 '명시적, 직접적 해악'은 모호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실정법 체계가 그것을 측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밀 역시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직접적 해악이라는 건 본래 벤담이 주창한 개념이다. 직접적 해악이란 행위와 인과적으로 직접 연결되어 발생하는 피해를 말하며, 명시적 피해자가 실존해야 한다는 것이 그 성립 요건이다. 즉, '명시적이며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는 행위의 경우, 자유의 범위에 있지 않다'는 말의 적확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어떠한 행위에서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는 해악이 발생했는가? 그리고 그것의 명시적 피해자가 실재하는가? 그렇다면 해당 행위는 자유의 범위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은 이 모든 절충 자체가 밀의 영향 하에 있다. 이 부분은 그저 밀이『벤담론』에서 지적한 벤담 사상의 맹점을 보완하고자 시도했을 뿐임을 알린다. 심지어 몽테스키외의 견해로 벤담 사상이 보완될 수 있다는 실마리 역시 그가 선제하였다.
사실 밀 또한『'자연을 따르라'는 윤리』에서 자연법과 관련된 윤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대표를 던진다. 그러나 내 생각에 여기에는 해당하는 바가 없어보인다.
그는 어떠한 것의 본성이란 단지 일반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동일한 상황에서의 동일한 경향이라고 말했다. 몽테스키외의 자연법은 오히려 이 설명에 알맞게 부합한다. 그것은 밀 본인이『법의 정신』의 1장에 대해 말했듯 '법'이 아니라 단순히 일반적인 경향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몽테스키외는 그가 말한 '자연'의 개념을 오도한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을 따르라는 주장의 권위가 타산의 원칙을 넘어서는 경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자연법은 단순히 '상기한 본성적인 측면이 타자에게 직접적인 해악을 끼치지 않을 때는 제한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 쓰였을 뿐이다. 이는 순전히 타산적인 적용이고 실상 공리주의에서 공리의 원칙이 작동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또한 그것이 존중될 때 인간 일반에게 유용할 것이라는 가치판단을 거친다. 따라서 '무분별한 자연적 본성의 당위화'를 범하고 있지도 않다.
상기 이유로 이 글에서 전제하는 바는 해당 저작에서의 비판과는 크게 연관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3항이 마치 '인간의 자연적 본성은 전부 옳은 것'으로 단순 환원하는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다고 느껴 덧붙인다. 내가 이 부분에서 의도한 것은 인간 본성적인 측면도 사회 전반의 복리를 위해서 고려하되, 그것은 구성원 일반에게 효용적인 선까지만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타인에게 직접적 해악을 주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다"라는 대전제는 인간 본성적인 측면에도 역시 적용된다. 이 대목이 바로 밀의 '타산의 원칙'이 적용된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이 부분은 '자유' 개념의 실천적인 면과 법적인 면을 포괄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것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덧붙인다. 이것은 개인적인 의견일 뿐 어떠한 권위가 있는 교의가 아니다.

4. 요약–마치며
슈티르너는 모든 인위적 가치를 부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교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이만이 진정한 '유일자'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인위적 가치는 '유령'일 뿐, 그것은 유일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논변으로 대부분의 반박을 차단했다.
솔직히 인정하자. 나에게 그의 사상을 근본부터 논박할 만한 지적능력은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좀 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말하는 '유일자'가 실존할 수 있는 존재인지, 모든 질서가 사라진 세계에서 오직 자신만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를 지적하는 데에 그쳤다. 나는 자유에 있어, 그의 것보다는 실천적이며 법과 사회에 합치되는 규범이 더욱 유용하다고 본 것이다. 그뿐이다.
물론 슈티르너주의는 여기에도 '보편적인 관점에서 유용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유령이라고 답하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공동체'는 '찐따'가 하는 말에 합당하게 반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찐따의 주장이 공동체의 것보다 정합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타협을 이끌어내려는 자와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려는 자의 충돌은 사회 전체의 해악을 낳는다. 혹은 적어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왜 어떤 순간에는 자신을 내려놓고 타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야기했듯, 개인이 공동체의 어떠한 요구에도 반드시 타협만 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회는 전체주의로 이행될 뿐이다.
그 둘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에 그어져야 하는가? 그에 대한 이야기는 3번 부분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아직 글을 마칠 수는 없다. '찐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찐따'는 정녕 '모두의 이익에 훼방을 놓는 무익한 부류들'일 뿐인가? 평시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정당화하려 할 때, 이를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찐따'뿐이다. 다수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에 동조하는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된다면 그 결정에 대한 비판 의식은 쉽게 무마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에 합류하지 않는, 슈티르너와 같은 '찐따'들만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고정관념'과 '유령'에 속박되어 있을 때 '유일자'인 '찐따'는 그것의 부조리함을 폭로할 것이다. 그러한 가감없는 비판은 많은 이들에게 공동체의 결정에 대한 의문을 심어줄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이 단순한 방해꾼이 아니라, 전체주의로의 이행을 막는 제동장치라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