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석

포스트 휴머니즘이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인간을 중심적으로 두는 것이 아닌, 인간과 여러 요소들을 이용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인간마저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보며, 인간이 만든 구조나 사회를 세상 위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 <<채식주의자>>에는 어떠한 포스트 휴머니즘의 형식이 있는 것일까? 소설이 나타내는 바엔 그 형식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각각 등장인물이 지향하는 도착점에 포스트 휴머니즘의 형태를 볼 수가 있다.

우선 주인공인 영혜는 인간의 기본적인 식욕인 잡성의 영향, 즉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을 시작하려는 것에 벗어나려 첫 걸음을 내딛는다. 그러다 점점 채식마저도 벗어나고 인간을 넘어선 식물이 되기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이는 곧 영혜라는 인간이 자신이 이때까지 살아왔던 세상으로 쌓여진 사상과 멀어져 곧 기존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식을 벗어나 스스로 허물을 벗어 식물이 됨으로써 세상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바로 이러한 결심과 자신의 한계를 맞딱트리고 극복하려 시도하여 다양한 추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포스트 휴머니즘의 형태다.

이러한 형태는 영혜의 형부에게도 볼 수가 있는데, 바로 그가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해서는 안 될 금기를 깨뜨린 것에 우리는 그 시도를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의 이성으로 작품을 이끌어내지 않았다. 물론 중간중간 사회적 인간에 대한 자책을 볼 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자연적으로 뿜어져 나온 본성, 즉 성욕에 몸을 맡기며 금기를 깨트리고 만다.

(작품에서 영혜의 몸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것에 흥분을 느끼고 나체에 꽃을 그리는 것과, 그런 영혜의 모습에 성적 흥분을 느껴 그녀를 순간 덮친 것에 그는 작품 내에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보단 이미 자연적인 본성에 맡긴 그의 모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마치 동물처럼, 더 나아가서 그가 갈망했던 하나의 꽃처럼, 그는 일관적인 생각만을 가지고 영혜를 임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포스트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작품일까? 우리는 이 해석에 살짝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해석 방식은 바로 여러 폭력의 비판이다. 산업, 질서 등, 이 작품은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방면의 폭력을 영혜라는 인간으로 비춰 비판한다.

그렇기에 영혜라는 인간은 자신의 지향점(자연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욕망)마저 주변의 사회와 질서에 방해받다가, 고립된 정신병원에서도 자신마저 피했던 인간이라는 한계에 도달해 결국 완전한 자유를 가지지 못했다.

포스트 휴머니즘은 이러한 영혜의 모습에 극심한 위로를 보낸다. 영혜는 이제까지 자신의 존재를 넘어서 자신에게 둘러쌓인 폭력과 고통을 없셀려 들었지만, 결국 위급한 상황까지 치닫는 것을 보면, <<채식주의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근본적인 폭력이 극복되지 않으면 결국 인간은 계속해서 연약해질 것이란 걸 작품은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준다.

하지만 이 소설이 완전하게 포스트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소설은 아니다. 작중 영혜의 형부는 자신의 자연적인 본성을 이룸으로써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만일 이 작품이 포스트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소설이라면 그는 어쩌면 사회의 틀을 깨뜨린 선구자로 표현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는 끝까지 처절하게 나락을 간 인물로만 비춰진다.

그리고 작중 영혜도 오직 자신의 힘으로 포스트 휴머니즘의 절정에 도달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구.원을 얻었다는 묘사도 없이, 오직 철저하게 연약해지고 있다는 묘사만 나타낸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가장 큰 주제는 바로 폭력의 비판이기에, 그 속에서 포스트 휴머니즘 또한 폭력을 숨기고 인간을 병들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을 작품은 가지고 있다.


본인이 조사한 내용은 <<채식주의자>>의 포스트 휴머니즘의 방향으로 일부분을 새로 해석한 것 뿐이다.


뭔가 애매하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지식인들 쪼메 도와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