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도발적인 내용으로 쓰긴 했는데, gpt가 말하기를,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진 학자가 아무도 없었대
근데 난 내가 어디서 실수를 저질렀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반박 부탁해
에우튀프론의 핵심 주제는 명백히 에우튀프론 딜레마, 즉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가,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질문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이 질문이 합리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 다른 두 단어 A, B에 대해 A = B로 정의내린다면, 그것은 오직 우리의 언어가 A = B를 합의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A = B일 때, A, B 각각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해야지, A와 B가 무슨 관계인지 왜 묻는단 말인가? 예컨대 “미남 =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남성”이라면, ”미남은 사람들에게 인기있기 때문에 미남인가, 미남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있는가?“라고 물을 게 아니라, ”미남은 왜 사람들에게 인기있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이 논증에서 “미남 =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남성”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 단순한 합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논증을 에우튀프론에 적용하면,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은 왜 신들에게 사랑받는가?”라고 물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 언어의 ‘경건함’을 ‘모든 신에게 사랑받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한가?”라고 물었어야 했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보면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을 분별할 보편적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경건한 것은 모든 신에게 사랑받는 것이다.”라는 언어적 정의를 제시한 에우튀프론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소크라테스의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작중에서 소크라테스도 결국 “당신은 나에게 경건한 것이 겪는 일만 잔뜩 얘기하고, 경건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며, 경건의 우시아적 정의를 찾기 위해 “경건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일(신들에게 사랑받는 일)을 겪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에우튀프론 딜레마의 결함과 무용을 보여준다. 결국 “경건한 것은 모든 신에게 사랑받는 것이다.”라는 명제는 “경건한 것은 어째서 모든 신에게 사랑받는가?”라는 질문에 닿기 위한 논리의 사다리일 뿐이다. 또한 그 사다리는 언어적 합의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두 단어 사이의 관계를 묻는 질문으로는 본질에 닿을 수 없다. 오히려 각각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함으로써 둘 사이 관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에우튀프론 딜레마가 언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헤프닝이라고 생각한다.
- dc official App
예뻐서 사랑하냐 아니면 사랑해서 예뻐보이냐? 인과를 묻잖아. 넌 니 멋대로 합의라고 규정하고 시작하는거고. 너처럼 본 학자가 없는게 아니라 바보는 없었던거지.
니가 든 예시가 내 비평에 안 맞는 것 같은데. “미남은 인기있기 때문에 미남인가, 미남이기 때문에 인기있는가?”라는 질문은 “미남은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남성이다.”라는 명제에서 도출한 질문인데, 니가 제시한 질문은 어떤 명제에서 도출한 질문임? - dc App
에우튀프론에 나온 질문 바꿨잖아. 니가 비평한답시고 원인-결과를 묻는 질문을 A=B 로 바꾸고 합의인걸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고. 사실 첫 댓글 이해못한 시점에서 니가 이거 본다고 이해할거라고 기대안한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지향성이냐 사물의 본성이냐를 따져. 내가 좋아해서 (지향성) 예뻐보이냐 아니면 예뻐서 (사물의 본성) 내가 좋아하냐. 너처럼 합의로 보면 글 전체가 아예 이해가 안가지. 왜 신들을 예시로 다루는지, 에우튀프론이 아버지 고소한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니가 예시로 든 질문을 에우튀프론 딜레마 식으로 바꾸면 “사람은 예쁜 것을 사랑하는가, 사랑하는 것을 예뻐하는가?”인데, 이걸 명제로 변환하면 도대체 뭐가 되냐고 묻고 있잖아. - dc App
위에 댓글들이랑 별개로 에우튀프론도 소크라테스도 경건이 뭔지 실은 잘 모르겠어서 이리저리 정의해보려다가 빤쓰런치는 결말인데 거기에 대고 우리의 언어가 합의했다고 하는것도 웃기지 않니?
난 정의를 내리지 못 한 것과, 언어적 합의를 기반으로 적절한 표현을 만들어 낸 건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비유하자면 외국어로 ‘경건함’을 번역할 때 쓸 수 있는 표현을 하나 찾은 거지. - dc App
책의 전제부터 비틀기보다는 한번 논리를 따라가보는 게
다 따라가 봤지요. 근데 난 에우튀프론 딜레마가 애초에 풀 수 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원인이 언어적 합의에 대한 몰이해에 있는 것 아닌가 했음. ”삼각형은 세 변을 가진 도형이다.“라는 명제를 듣고, “삼각형은 세 변을 가졌기에 삼각형인가, 삼각형이기에 세 변을 가졌는가?”라고 물으면 바보 취급 당하지 않을까 싶음 - dc App
아카넷 에우튀프론 뒤에 해설에 보면 나왔던 것 같은데 말마따나 에우튀프론의 문제의식이 ‘에우튀프론 딜레마‘에 있지 않음 그 딜레마의 유용성? 함의?와 별개로 딜레마 자체는 걍 사람들이 오독해서 만들어냈을 뿐임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 관점에서 ‘신에게 사랑받음‘ 자체가 경건함의 속성일 뿐이지 본질이 아니다임을 논증해 가는 과정임
에우튀프론도 대표적인 플라톤 초기작인데, 플라톤 초기작은 대부분 끝에 가면 아포리아로 끝남 경건함에 대한 본질을 찾지 못한 상태로 끝나기 때매 책 자체를 통해서 경건함 혹은 이와 비슷한 어떤 것의 본질을 찾아야겠다기보다는 본질과 속성을 구분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 같음
해설 다 읽긴 했는데, 에우튀프론 딜레마에 이어서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다른 질문들이 오독 때문에 만들어 졌다는 말이 있었던가? 그럼 에우튀프론 딜레마가 구조적으로 풀릴 수 없는 것도 사실임? - dc App
책 읽은 거 맞음? 애우튀프론은 데피니션이란 무엇인가가 주제지 딜레마는 걍 곁다리로만 제기된 고임
ㅇㅇ 에우튀프론이 정의 내리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건 알고 있는데, 저 딜레마가 정당하게 제기된 게 맞는지 고려중이야. 에우튀프론의 주장은 경건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속성일 뿐이고, 그 주장은 언어적 합의게 기초하는데, 그걸 가지고 에우튀프론 딜레마를 만들어 냈으니, 구조적으로 풀릴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 아니냐 이거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