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사람들은 고등사범에 있던 내 모든 짐을 엘렌느와 내가 은퇴한 뒤를 생각해 사 두었던 제20구에 있는 아파트로 옮겼던 것이다(내 친구들은 그 일로 며칠을 보냈다). 내 친구들이 내게 이사한 현장 모습을 상세히 그려주었는데 책 상자로 아파트가 꽉 차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병원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것이며 외부 세계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외부 세계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내 아파트에도 들어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쨌든 내가 가서 한 번 둘러보기로 결정됐다. 그렇게 해서 내가 무척 좋아하던 남자 간호사와 함께 어느 날 작은 병원 트럭으로 내 아파트로 갔다. 천장까지 쌓인 책 상자들을 보고 경악한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나는 공포심에 싸여 돌아왔는데, 그 공포심은 있을 수 있는 막연한 형태가 아니라 끔찍하게도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한마디로 나는 끝장이 났다.
바로 그때 내 담당 의사가, 자신이 나중에 ‘기괴한 해결책’이라고 부르게 된 것, 즉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생각해냈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일종의 진짜 ‘의학적-관료적’ 놀이였다. 즉, 병원의 소형 트럭이 내 책 상자들을 실어 와 병원 안에 있는 한 넓은 빈 방에 전부 부려 놓으면, 내가 거기서 내 책들을 분류한 다음 사람들이 다시 그 책들을 분류된 대로 내 아파트 책장에 정리해 놓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장은 어디서 구할 것인가? 그래서 내 친구 중 세 명이 BHV 백화점에서 아무 책장이나 사서 내 아파트에 들여놓겠다고 나섰는데, 친구들은 그 가구들을 전철로 옮겼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일이 제대로 진척되지는 않았다. 나 말고 누가 내 책들을 분류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모든 계획이 머릿속에서 휘청거리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장들을 들여놓은 다음 거기에 가능한 한 그럴 듯하게 내 책들을 가득 채워 놓고 어느 날 내게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이제 언제든지 내가 내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미 말했듯이 사실 나는 1982년 11~12월, 처음으로 ‘퇴원’하게 됐을 때 거기서 지내게 됐는데 그 퇴원은 무척 안 좋게 끝났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느 책이 어디 있는지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그것을 다시 정리해야 했는데 그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수천 권의 책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중 수백 권의 책만 읽었을 뿐이며 나머지는 언젠가 적당한 기회에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또다시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제멋대로 꽂힌 책 속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증거,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까지도 몇 권을 제외하고는 어디 꽂혀 있는지 찾을 수도 없지만 그 무질서 속에서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또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 루이 알뛰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348p~3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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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그는 고등사범에서 32년간 재직하는 동안 도서관 이용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함 - dc App
2만여 권의 책을 가진 조영일이 장서에 대한 환멸을 토로하던 글에서 "알뛰세르의 경우 딱 500권 정도의 엄선된 책만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쓴 적이 있는데 사실이 아닐 뿐더러 사실과 차이가 많이 난단 걸 알 수 있다. - dc App
나랑 비슷하네 나도 남이 이사할때 책 개판으로 꽂아놔서 손놓게 됐었는데 어느날 작정하고 정리하니까 정리가 되긴 되더라 알튀세르만큼은 책 없었지만
배우 이원종이 허지웅이랑 라슨가 나갔을 때도 비슷한 얘기 했었는데 그게 생각나네. 허지웅이 장서 결벽증으로 고통 호소하니까 이원종이 유사한 자기 친구한테 썼던 방법이라면서 책장 맨 위쪽 잡고 그냥 흔들면서 다 엎어버렸더니 첨엔 잠깐 힘들어 하다가 이내 고마워했다고 함 - dc App
ㅋㅋㅋㅋ - dc App
ㅋㅋㅋ - dc App
좋은 글 고마워요ㅕ
^^ - dc App
담당환자가 알튀세르면 어떤 느낌일까… - dc App
집사람 죽이고 사회적 사형선고 받고 폐인 다 돼서 간 거라 프리미엄은 없었음. 병원 이송도 잦았고. 살인하기 전에도 꾸준히 정신병원 입원을 반복했고 전기충격요법도 받고(처음 해준 남자 간호사 별명이 스탈린이였음. 외형이 닮아서) 온갖 약물 치료도 받아왔었음 - dc App
근데 담당 의사들이 대부분 잘해줬고 병원 옮길 땐 기자들이 몰릴 걸 대비해서 이송 시간을 거짓으로 알려준 다음 몇 시간 빨리 내보내는 기지를 발휘한 의사도 있었음 - dc App
"나 말고 누가 내 책들을 분류할 수 있겠는가?" < ㄹㅇ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