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마의 신들은 자신들을 상상하는 것에 관대한 듯하다. 그렇기에 베르길리우스는 부끄러움없이 아이네이스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단테의 문체는 어딘가 조심스럽다. 모종의 가책을 느꼈을것이다.


2. "당신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저자이시니, 나에게 영광을 안겨 준 아름다운 문체 (주석에 따르면 달콤한 새로운 문체를 가리킨다고 한다.)는 오로지 당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제1곡 85~87절-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자신과 동일시한 데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서사시를 쓰는 데 있어 베르길리우스가 호메로스에게 빚을 진 것과 마찬가지로, 단테 본인도 베르길리우스의 전범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새로운 문체Dolce stil novo. (하느님의 영역을 상상하는 일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즐거움을 느꼈던 걸까?)


"나에게 영광을 안겨 준 아름다운 문체" 단테는 자신이 얻게 될 명예를 짐작했던 걸까.




3. 지옥에 들어선 뒤 베르길리우스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네가 (단테) 믿는 신앙의 본질인 세례를 받지 못해서 지옥에 있는 자들에 대해 알려준다. 그들은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으니 (4곡 39절) 하느님을 공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스승, 주인이시여, 말해 주십시오.

모든 오류를 이기는 그 믿음을 확신하고 싶어서

나는 말을 꺼냈다. 자기 공덕이나 타인의 공덕으로 이곳을 벗어나 축복받은 자가 있습니까?"-제4곡 46~50절-


이에 베르길리우스는 아담,아벨,모세 등등 하느님이 손수 지옥에서 구1원해주신 인물들을 열거한다. 베르길리우스가 언급한 이들은 모두 구약의 인물들로 그리스도 이전에 살아서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단테가 믿는 신앙의 본질을 행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타인의 공덕(세례)이 아닌 자신의 공덕(믿음)으로 구1원을 받았다. 그렇다면 단테의 믿음이란 이렇게 풀어쓸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진실되게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은 세례를 받지 못하더라도 구1원을 받을 수 있다. (설령 그곳이 지옥일지라도)



4."마치 욕망에 이끌린 비둘기들이

활짝 편 날개로 허공을 맴돌다가

아늑한 보금자리로 날아오듯이."

-제5곡 82~84절-


5. 제8곡과 9곡에선 어딘가 불안한 분위기가 계속 맴돈다. 그동안 베르길리우스의 지혜에 힘입어 순조롭게 진행되던 여정이 무력에 의해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상냥한 아버지는 떠나셨고

나는 의혹 속에 혼자 남아 있었으니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싸움질하였다."

-제8곡 109~111절-


베르길리우스 또한 두려운 기색을 보여준다.


"어쨌든 싸움은 이겨야해.

그렇지 않으면......아니야. 도움을 약속했어.

아. 오실 분(하늘의 사자)이 왜 이리 늦으시는 걸까! -제9곡 7~9절-


단테 또한 베르길리우스의 말에서 공포를 눈치채고 두려움에 떤다. 이런 상황에서 둘은 에리니에스를 마주치는데, 이 장면은 나에게 상징적으로 다가온다.복수의 여신들로 불화와 고통의 씨를 뿌리는 이들의 등장이 둘의 위태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에리니에스가 말한다.

"메두사여 오라, 저자를 돌로 만들도록"-제9곡 52절-


에리니에스가 메두사를 부르자 베르길리우스는 손수 단테의 몸을 돌려 눈을 가려준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시구가 나온다.

"오, 건강한 지성을 가진 그대들(독자)이여,

이 신비로운 시구들의 베일 아래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시오."-제9곡 61~63절-

단테는 이 시구를 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을 회상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막막한 여정길에 마주친 에리니에스는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은 이성을 돌처럼 마비시킬 정도였는데 옛 현인이자 친구인 베르길리우스의 지혜 덕분에 (단테는 그의 자상한 손길을 자세히 적는다 58~60)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6. "예전에 카토의 발에 짓밟혔던 곳의 형상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제14곡 14절-


황무지같은 폭력 지옥의 셋째 둘래를 묘사하는 구절이다. 주석에선 소 카토의 생애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단테가 대 카토를 지칭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소 카토는 정복자라기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단테는 카토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파괴된 시가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Ceterum censeo Carthaginem esse delendam.

(게다가 나는 카르타고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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