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고 생각할 때 내가 알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뿐이다. 따라서 삶의 목적은 존재하는 세계에 사는 것이다. 세계에서 사는 것 외에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 것이다.
"왜 행복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행복한 사람은 좋고 불행한 사람은 나쁘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은 그 자체로 정당화 될 수 있는 유일한 삶이기 때문이다. 만일 "왜 행복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동어반복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 질문이 되지 않는 질문을 한 무의미한 물음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일까?" 그것은 행복한 삶을 정의하고 그것에 부합하는지 확인함으로서 행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누리는 행복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행복한 삶을 살 뿐이다. 따라서 행복의 정의에 대해 기대할 것이 아니라 행복한 자의 삶을 통해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알아 볼 수 밖에 없다.
2.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에 대해 좌절하게 된 이후 부터인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없게 되고 목적과 의미의 상실 이후 정신적으로 방황하다 보니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을 변함없이 하고 있다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삶의 의미를 알게 되면 삶이 달라질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가지고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것은 정답이 존립할 때 질문이 성립되는 것인데 삶의 의미는 애초에 정답이 존립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게 되면 그 동안 현실적인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삶의 의미를 고심하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한다. 삶의 의미는 답을 알게 됨으로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멈춤으로서 해결된다. 즉 삶의 물음는 정지된다.
책 <비트겐슈타인의 종교관과 철학 - 하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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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에 대해 좌절하게 된 이후부터인 경우가 많다 공감.. 그래서 가끔은 내가 지금 자기위로하는걸까 이런 생각도 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