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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았다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니 좀 더 주의깊게 읽었던 것 같다

사실 폴 오스터를 내가 많이 좋아했냐 하면 딱히 그렇게 좋아하진 않은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은 ”폐허의 도시“ 를 다시 읽어볼 마음은 생겼다

바움가트너는 다분히 자전적인 소설이다.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처럼 폴란드계 유태인이며, 어머니의 성은 오스터다. 주인공에 관한 여러가지 신변잡기가 등장하지만 폴 오스터에 대해 잘 몰라서 어디까지 연관되어있는지는 알 수 없겠다. 하지만 이 정도 힌트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폴란드인” 이나 “홈랜드 엘레지” 를 읽으며 느꼈던 기이한 분위기, 숨이 턱 막히는 이해 불가능성, 부르주아 중년 남성의 좁고 자족적인 세계. 그것을 이번에도 느꼈는데

나는 부르주아가 아니야, 내 부모는 과로에 지쳐 애들 볼 시간도 없는 노동자였어, 대학 다닐 땐 거지같이 지냈어, 부인은 중고 매장에서 만났어,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고 있노라니

내가 느낀 벽은 부르주아다움이 아니라 인텔리다움이었던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저렇게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짓만 매일 하면서, 그걸 하면서 느낀 바를 글로 쓰고 그걸로 또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돈을 충분히 벌어제끼는 인간을

나는 현실에서 알지 못한다. 이런 제반 사정은 이 작품을 읽어내는데 하나의 커다란 벽이자 막으로 작용해서,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다

또 바움가트너는 일생의 사랑인 부인을 불의의 사고로 잃고 그 후유증을 자신의 노쇠한 몸에 갇혀 견디며, 찬란했던 청춘을 돌이켜보는 그의 습관을
통해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는데

나는 이런 경험 -격렬한 섹스, 깊은 사랑, 영적 동지, 애인과 나누는 철학적•문학적 토론, 파트너를 수시로 갈아타는 문란한 관계 등- 이 전무하여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물론 소설이나 영화 상으론 자주 접하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너무 화나서 읽기가 힘들었는데

글 자체는 읽기 쉽다

어쨌든

예전에 폴 오스터를 읽으면서, 얘는 왜케 야구나 야구 카드 얘기를 많이 하는거야? 좆같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야구를 모르고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미국 야구라면 더하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깨달았다

폴 오스터는 뼛속까지 미국 문학이다. 그래서 야구가 나오고, 이민자가 나오고, 섹스가 나오고, 부랑자가 나오고, 정체성의 혼란과 갈 곳 잃은 분노와 환상같은 현실-현실같은 환상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하루키는 너무 싫어서 절대 안 읽으려 하지만 폴 오스터는 그럭저럭 읽어내는 이유는, 이 지점인 것 같다

미국 문학자로서 폴 오스터는 할 말을 다 하고 갔다

괜찮았던 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손색없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