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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의 네 명의 대표(포퍼, 쿤, 라카토스, 파이어아벤트) 중 가장 악명 높은 이를 꼽자면, 대체로 파이어아벤트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파이어아벤트를 대표 중 논외로 치는 편 아닐까?) 과학철학에 대한 개론서 단 한 권만 읽더라도 그 악명의 원인을 알 수 있는데, 가장 극단적으로 과학의 정의 및 방법론에 반대하는 이가 바로 파이어아벤트인 탓이다. 이 책의 서두에 실린 이언 해킹의 서론에서는 이 책을 "철학의 우드스탁"이라고 표현했는데, 68혁명이 대표하는 들끓는 60년대의 자유분방함이 과학이라는 철두철미한 학문에 대한 공격으로 확고하게 분출된 탓이다. 파이어아벤트는 악명 높은 "공약불가능성"을 쿤보다 앞서 제시한 바 있고,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 자체가 관찰자의 이론에 의해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실제 역사 속 사례와 함께 강하게 밀어붙이며 과학의 객관성, 서로 다른 이론 사이의 비교 가능성 등을 공격해 "과학"이라는 절대적인 이름을 보다 다양하고 서로 번역 불가능한 다양한 과학으로 흩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이론물리학에서 통한 수학적 이론이 다른 과학 분야에서 통할 가망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정하듯)


이런 주장이 가능한 이유는 물론, 과학철학에서 일반적으로 과학이라는 개념에 대해 인정하는 전제들이 사실은 그리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어아벤트는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처럼 주로 갈릴레이에 집중해 각각의 전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과 비교했을 때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은 이론적으로 엄밀하지 못했고, 실제 관측 결과에서 기존 우주관보다 현상을 잘 설명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갈릴레이의 주장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기에는 충분했지만 너무나 엄밀하지 못해 당시 교회에서 "가설 중 하나"로서 주장될 것을 권고받았으며,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새로운 우주관을 정교하게 만든 이후에도 기존의 문제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꽤나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1) 그러나 이미 사람들은 갈릴레이가 탑에서의 자유낙하를 통해 설명한 운동의 상대성, 작용을 하지 않는 운동의 존재를 충분히 이해하며, "변했다". 눈에 보이는 것, 몸으로 느껴지는 것(지구가 돌고 있다면 왜 바위는 곧게 떨어지며, 우리는 그걸 느끼지 못하는가?) 너머의 이론적 인식.


이 내부 인식의 변화야말로 핵심이다. 파이어아벤트는 당시의 시대적 조류가-쿤의 "패러다임 시프트"든, 푸코의 "에피스테메"든-그랬듯, 갈렐리이의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 결과가 당시 사람들에게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을 이해하려면 현대의 세계관과는 다른 당시의 세계관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며, <일리아드>가 보여주는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을 한 예로 서로 다른 세계관이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 관찰/이론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까닭에 이론의 성능을 확인하려면 그 이론 내에서의 관찰이 아니라, 다른 공약불가능한 이론과의 비교가 필요하다며. 과학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반쯤은 반어적으로-부두술과의 비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부두술에서 발견하고 정당화한 지식과, 과학에서 발견하고 정당화한 지식 사이의 비교를 통해서. 좀 더 온건한 비교를 하자면, 무의미하게 이론적인 가정에서 출발하는 유체역학이 그 결과의 부실함 탓에 무시받는 동안 구체적 사례의 집합에서만 싹튼 "수력학"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듯.


물론, <방법에 반대한다>에서 파이어아벤트의 말을 전부 따를 필요가 없는 건 분명하다. 이 책은 원래 라카토스의 점잖은 반박과 함께 공격/방어 한 쌍으로서 제시될 예정이었으며, 라카토스의 때 이른 사망으로 기획이 좌초된 탓에 <방법에 반대한다>는 파이어아벤트가 실제로 의도하거나 표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과격한, "무엇이라도 좋다" 원리 같은 것을 내거는 선동문으로 완성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 이외의 다양한 과학2)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을지, 과학 실험이 얼마나 잘 되거나 실패했는지를 얼마나 무시할 수 있는지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아래 사진은 Jim Carter라고 하는 유사과학 연구1원이 circlon이라고 하는 원형 물체로 온갖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고자 만든 circlon 기반 주기율표로, 아마 이 정도 이론이라면 파이어아벤트가 생각하는 대안-과학이 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이런 이론을 위해 "반-귀납"(실제 결과에 반대되는 이론을 옹호해라)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비교적 온건한 학계의 영역에서, 합리적 절차를 다소 무시한 듯한 연구 결과도 일단 최대한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학계 건전성 평가는 어떻게? 파이어아벤트는 그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니 사실상 이를 포기하는 쪽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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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유사과학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여기에 파이어아벤트가 얼마나 기여를 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파이어아벤트의 공격은 분명히 먹혀 들어갔는데, <과학혁명의 구조>가 과학 지식의 절대적인 위치를 흔들어놓았다면 <방법에 반대한다>는 과학을 서양 철학 및 가치관에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물이라는 통념에서 찢어냈기 때문이다.3) 문명 근대화의 단계와 과학의 발전 사이의 관계보다는, 과학적 세계관이라는-사실 파이어아벤트가 푸념하듯 현대 유럽 대중에게도 그리 친숙하지 않은-독자적인 세계관과 과학의 발전이 훨씬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니 과학의 위세를 빌어 다른 서구적 가치관을 강요받을 필요는 정말 없는 셈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늘 남아 있지만, 물론. (사실 늘 그게 더 문제였기도 하다)


다만 파이어아벤트를 조금 너무 빨리 읽었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아직 포퍼나 라카토스를 읽어본 적은 없는데, <지적 사기>를 읽고 <방법에 반대한다>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아쉬움이 느껴질 것 같아서 그렇다. 포퍼의 반증주의는 너무 많이 반박되었고, 라카토스의 애매한 절충안을 굳이 따를 필요가 있을까 싶다보니 아무래도. (그렇다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같은 걸 읽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일단 빠른 시일 내로 <과학혁명의 구조>를 재독하고 이언 해킹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를 읽어본 뒤에, 여전히 이 분야에 관심이 남아 있다면 아마 한두 권은 직접 읽어보지 않을까. 확신은 없다. 다만 라카토스의 <수학적 발견의 논리>는 제외하고. 이 책은 <수학의 확실성>과 비슷한 맥락에서-수학사에서 지식이 어떻게 발견되고 정당화되었는가?-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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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서도 배우는 렌즈 초점 공식은 케플러가 1610년에 제시한 것인데,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이는 이 공식은 물체가 초점 근처에 위치할 경우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실제로 당시 케플러의 광학 책을 읽은 이들 중 안경을 사용하며 당연하게 확인한 이 반례를 케플러에게 서신으로 따진 사람들도 꽤 있는 모양이다. 현재 안경사들은 보다 현실적인 렌즈에서 렌즈의 굵기를 포함하여 굵은 렌즈 공식이라는 더 보완된 공식을 쓰는 듯한데, 찾아보니 좀 더 엄밀한 물리 영역에서는 렌즈에 투과된 빛이 파장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굴절하는 것을 푸리에 급수로 분석하는 푸리에 광학을 쓰는 모양이다.


2) <방법에 반대한다>에는 중국어판 서문도 있는데, 당시 서양에서의 마오주의-중국 열풍을 반영하듯 이 서문에는 중국만의 과학을 발전하길 기원하는 말이 담겨 있다. 본문에서는 중국의 동종의학과 침술을 주류 서양 의학에 대항할 수 있는 이론의 예시로서 찬양하기도 한다. 대체 이 사람들이 중국에 얼마나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 느낄 때마다 참 당혹스럽다. 제정분리처럼 국가가 과학과도 분리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성공 사례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들고 있으니 더더욱...... 아이러니하게도 파이어아벤트는 소련에서 리젠코가 주도한 농업을 과학이 정치에 개입한 재앙으로 언급한다. 시대적 한계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3) 물론 <마술, 과학, 인문학>이 분석하듯,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학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여기는 시기의 원생과학protoscience은 당시 유럽의 지적 사조와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아는 형태의 과학이 딱히 당시 유럽 이외의 장소에서 출현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원생과학의 생산성에 대해서는 <대분기>가 지적하듯,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는 코페르니쿠스가 플라톤주의적인 형이상학적 이유로 지동설을 주장했던 것처럼, 현재의 과학을 수학적인 심미안의 관점에서 훨씬 선호하는 편이다. 사실 수학도 그렇다. <수학의 확실성>에서 보여주는 '엄밀하지 않은 수학'의 다양한 역사를 보면, 파이어아벤트가 수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것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할 만한 사례라는 걸 알면서도, 꽤나 당혹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