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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무엇이고, 신이 아닌 것은 무엇이며, 그 사이에 있는 것은 또 무엇인지, 인간 중에 누가 알아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에우리피데스, 헬레네-


(구@원이 금지어네요..)



신곡을 읽고 분명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을 했지만, 이걸 글로 풀어서 설명하자니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감상이 흩어져버릴 거 같아서 따로 적었던 메모들을 토대로, 주요 인물들에 대한 해석이라도 올리겠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인물이지만 모두 단테의 한 얼굴이기도 하니 단테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베르길리우스


첫 번째 인물은 베르길리우스입니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시인입니다. 그는 아이네이스라는 서사시를 쓴 인물로 단테의 ‘스승이자 영감을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지옥 제1곡 85~87행). 그는 베아트리체(아가페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연옥 제3곡 125~132행.)의 요청으로 길을 잃어 위험에 처한 단테의 앞에 나타납니다. 이후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을 거쳐야 하는 단테에게 지옥을 소개해 주며 위험으로부터 지켜줍니다.

지옥을 올라가며 단테는. 거의 매 순간 겁을 집어먹는데, 시구를 따로 찾아볼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단테는 지옥이 처음이고, 아직 숨이 붙어있는데도 끌려왔으니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저는 이런 단테가 감각을 표상한다고 느꼈습니다. 단테의 지성은 베아트리체가(연옥 제6곡 43~45행 "네 지성과 진리 사이의 빛이 되어야 할 그 여인이 너에게 설명해 줄 때까지는 그렇게 섬세한 의혹에 매달리지 마라.") 오기 전까지는 온전하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이성적 판단 이전에 감각적으로 공포를 느끼듯, 지옥의 형상에 두려움을 느낄 뿐입니다. 그래서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도움 없이는 지옥을 헤쳐나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보다 우월합니다. 

단테는 천국을 향해 가는 반면,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변옥에 배정받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이성은 칭찬받아 마땅하나, 그는 자신이 시인하듯 살아생전 하느님을 믿지 않은 죄로 (연옥 제7곡 8행) 지옥에 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베르길리우스가 신들을 노래해서 벌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의 섭리를 형상화한 건 단테 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죄는 믿음의 부재 그 자체입니다.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아가페적 사랑과 결합한 지성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디세우스


지옥편 제26곡의 오디세우스는 비중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성을 가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도 베르길리우스처럼 지옥에 갇혀있는데, 트로이 목마 때문은 아닙니다. 단테 시대에는 오디세이아의 원문을 읽을 수 없었고, 다른 시인들에 의해 간접적으로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곡에서 오디세우스가 저지른 죄는, 휴브리스(신에게 도전하는 오만)입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악덕과 가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서’ 끝없이 항해했고, 기어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고 맙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고대인에게 세상의 끝으로 여겨졌고, 이를 넘어선 지역은 카오스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합니다.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 보라.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과 지식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지옥 제26곡 118~120행) 아무튼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가던 오디세우스는 산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산은 연옥의 산으로 살아 있는 인간은 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연옥 제1곡 131행)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이를 알지 못했으니, 오디세우스의 배는 처참하게 난파되고 맙니다. 여기서 작가 단테는 그의 배를 말 그대로 처참하게, 무자비하게 난파시킵니다. 보르헤스는 여기서 단테가 오디세우스를 힘 있게 묘사했고, 그 이유는 단테 자신도 그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말하는 보르헤스 134p) 둘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뒤에서 밝히겠지만 우리는 단테가 베아트리체에 의해 인도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카토


그 전에 먼저 카토 얘기를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소 카토는 공화정 말기의 스토아 철학자입니다. 카토는 카이사르에게 맞서 공화정을 수호하려고 맞서 싸웠으나, 끝내 우티카에서 패배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승전 후 카토에게 관용을 베풀었으나, 카토는 끝내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자살합니다. 

단테가 카토를 연옥의 문지기로 둔 이유는 카토의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단테는 연옥과 천국편에서 여러 번 자유 의지를 옹호하는데 예시로 이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연옥 제16곡 67~72행 "살아있는 그대들은 온갖 이유를 저 위 하늘로 돌리지요. 마치 거기에서 모든 것을 필연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대들의 자유 의지가

소멸하고, 선에 대한 행복이나 악에

대한 형벌에 정의가 없어질 것이오."


천국 제1곡 130~135행 "그렇게 창조물은 좋은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돌아설 힘이 있기 때문에 (돌아설 힘은 자유의지입니다)때로는 그 길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마치 구름에서 번개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듯이, 거짓 즐거움으로 인해 최초 충동이 땅으로 가기도 하지요." (최초 충동은 원초적 의미입니다)


연옥 제17곡 91절~102행 "그분은 시작하셨다. 아들아, 창조주나창조물은 사랑이 없었던 적은 없으니, 알다시피, 자연이나 영혼의 사랑이다. (자연의 사랑은 모든 창조물이 갖는 본능적인 사랑이고, 영혼의 사랑은 인간 고유의 이상적인 사랑으로 인간이 자유 의지로 추구한다.)자연의 사랑에는 언제나 오류가 없으나, 영혼의 사랑은 그릇된 대상 때문에, 또는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서 잘못될 수 있다. 만약 사랑이 첫째 선을 지향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 둘째의 선에서 스스로를 절제하면, (지상의 선)

사악한 쾌락의 원인이 될 수 없지만, 만약에 악을 지향하거나, 아니면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하게 선을 지향 하면 창조물은 창조주의 일과 거스르게 된다."


위와 같이 단테는 모든 창조물에 최초의 충동이 있으며, 그것을 의지로 이끌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의 사랑은 자유의지에 의해 그릇된 대상을 향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절제가 요구됩니다. 단테는 우리의 의지가 사악한 쾌락에 이끌리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단테는 이성, 참된 이성에 근거한 의지를 통해 선을 행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토를 연옥의 안내자로 정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연옥은 의지를 통해 회개하는 곳이고, 카토는 자신의 삶을 통해 자유의지의 극단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토는 비록 그리스도 이전에 살았고, 하느님을 믿지 않았지만, 연옥에 배정된 것입니다. 물론 카토는 믿음이 없어 천국에는 갈 수 없습니다.


베아트리체(아가페)


천국은 신곡의 세 파트 중에서 제일 재미없는 부분입니다. 그걸 본인도 아는지, 직접 독자에게 천국의 내용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천국 제2곡 1~6행) 천국에서는 앞선 두 파트와 달리 끊임없이 이성을 통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 점이 의아했습니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지옥에 두었던 걸로 미루어 보아 구@원에 있어 이성은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단테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천국 제2곡 40~42행" 우리 인간의 본질과 하느님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었는지 본질을 알고 싶은

열망은 분명히 더욱 불타오를 것이다."


천국 제14곡 10~12행"이 사람은 아직 생각이나 목소리로 (단테)

그대들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다른

진리를 뿌리까지 찾아보고 싶어 합니다."


앞서 살펴본 두 인물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테는 이성을 신적인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알고자 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 지점에서 파스칼의 팡세가 떠올랐습니다.


"신으로부터 무엇을 받기 위해서는, 외적인 것을 내적인 것에 연결해 놓아야 한다. 


무릎을 꿇거나 소리를 내어야 하는 기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려 하는 오만한 사람을 피조물로 복종시키기 위함이다. 


이러한 외적인 것으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것은 미신이지만, 그것을 내적인 것에 연결시키지 않으려 하는 것은 오만이다."

-블레즈 파스칼, 팡세-


외적인 것을 내적인 것에 연결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단테는 이성을 사용해도 좋다고 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테는 지옥편 2곡 99행에서 베아트리체가 베르길리우스(이성)에게 단테를 도와달라 했다고 묘사합니다. 베아트리체는 분명 사랑을 의미하긴 하지만, 천국을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듯이 이성 간의 성애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신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기 위해 온 것입니다. (연옥 제30곡 125~132행) 천국이 지루한 이유는 단테가 아가페적 사랑(베아트리체)을 통해 끊임없이 선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타티우스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잘 보여주는 예시로 연옥편 제20~22곡의 스타티우스가 있습니다. 그는 서기 1세기의 로마 시인으로, 베르길리우스를 깊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스타티우스도 베르길리우스보다 축복받은 존재이니, 그가 연옥의 산에서 회개를 마치고 천국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그가 서사시를 쓸 때 ‘무사 여신들의 도움을 받는 것’( 연옥 제22곡 58~60절)을 지적하며 어떻게 믿음을 얻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네이스의 구절을 일종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개종했다고 합니다. 스타티우스는 서사시를 썼고(테바이스),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단테의 거울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티우스는 로마의 기독교 탄압 때문에 숨어서 신앙심을 발휘했으니, 단테에게 있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인물이기도 합니다.





알레프


보르헤스의 알레프를 처음 읽었을 때, 경이로움과 깊은 통찰에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걸 놓쳤었는데, 알레프가 일종의 신곡이라는 것입니다. 

단테는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 자신은 아직 구1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인물이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신곡을 쓰고 묘사하는 작가로서 작품에 등장합니다. (보르헤스는 알레프에서 의도적으로 “나야 나. 보르헤스야”라고 언급합니다.) 그가 기억에 의존해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여러 행에서 알 수 있는데 연옥 제20곡 145행, 연옥 제30곡 58행 천국 제4곡 40~42행 천국 제10곡 73~75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단테는 자신의 기억력, 언어, 인식의 한계를 언급합니다. 보르헤스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그 거대한 찰나에서 즐겁고도 끔찍한 수많은 행위들을 보았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서로 겹치거나 투명하지도 않게 동일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만큼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없었다. 내 눈은 동시에 그런 것들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연속적 순서로 글로 옮길 것이다. 바로 언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이 닿는 한 뭔가를 포착해 볼 작정이다."


-보르헤스, 알레프-


단테는 엠피레오를 목도했고 그것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며 자신의 기억도, 언어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단테는 우리에게 구@원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사랑을 통해 동굴 속에서 벗어난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사랑하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무한한 알레프인 신곡은 구@원, 이성, 자유, 질서, 언어, 정치, 역사를 아우릅니다. 하지만 단테가 그 중심에 놓은 건 아가페, 신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