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앙에 대한 비판적 표현은 '없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로 대표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란 공간을 통해 무엇이든 알 수 있을것 같고, 인류의 진보가 모든 불가해를 해결할 수 있을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에서 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한탄하는 것에서 사람에게는 무한과 영원성에 대한 희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무한과 영원성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척도로 잴 수 없는 그 너머의 것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이 과정에는 키르케고르가 이야기하는 절망과 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로까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전반부에서는 인간이 겪는 다양한 절망의 형태를, 후반부에서는 죄의 형태를 이야기햐면서 당시의 사람들이 어떠한 절망에 빠져있으며 어떠한 죄를 저지르고 살고 있는지, 이러한 것들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진정한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서술한다.
그는 인간 이성의 극한을 통해 세상을 보고자 하는 철학자들의 방식을 사용하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것들이 영원성의 개념을 자신이 아는 범위 밑으로 끌어내린다는 점에서 진실로 닿을 수 없는 것이고 자신의 오만을 드러내는 방식의 하나임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헤겔뿐만 아니라 후대에 이어지는 니체를 더 강하게 느끼게 되는데 키르케고르는 이러한 철학을 기독교 내부로까지 가져오려는 당시대의 기독교계에까지 비판을 넓힌다.
여기서 키르케고르는 단순히 무한한 신에 대한 찬양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유한한 스스로를 바라보고 진정으로 영원성과의 격차를 느껴 스스로의 안에 무한을 피워내는 것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않은 진정한 신앙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점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물질적인 면, 혹은 거대담론에 매몰된 사람들에 대한 자기각성의 촉구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다만 전반부의 절망을 분류하는 부분의 경우 신앙적인 부분을 포함하더라도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란 점에 반해, 후반부의 죄에 대한 서술은 기독교적인 원죄의식에 기반하고 있단 점에선 쉬이 받아들여지긴 어려운 부분도 존재한다.
신앙인이 아닌 입장에서 그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받아들일 수는 없더라도(그의 입장에서는 이미 죄라 서술하였지만) 여러모로 와닿는 설명들이 있었다는 점, 기독교계가 이야기하는 현세의 부질없음에 대한 기반 이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자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돈, 명성, 지위 등을 가질 수 없는 자신에 절망하고 그것들을 갈구하거나 혹은 본래 그런것이라며 염세적이 되거나, 더 나아가 무언가 영원할 것이라 믿는 것에 자신을 투신하거나 한다. 키르케고르의 입장에서는 이들 모두 죽음에 이르는 병-절망에 걸려 있는 상태이며 그들에게 진실된 영원한 것을 품을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를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무언가 영원한 것,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들의 절망은 변증법적으로 볼 때 진정한 신앙의 길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는 결국 사람들에게 자신을 진정으로 깨닫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같이 불안이 가득한 시대에는 필요한 글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었다 해서 내가 신앙인의 길로 당장 들어가진 않겠지만(무엇보다 단순히 예배에 나가는 것만으로는 그가 말하는 신앙이라 할 수 없겠다.), 훗날 신앙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다시 한 번 키르케고를 읽을 생각은 할 성 싶다.
+)추가적인 글의 이해를 위해 박찬국 씨가 쓴 '죽음에 이르는 병 읽기'를 참고하였는데, 1장에 대한 설명은 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성경용어의 서술(하느님, 라자로)이 카톨릭 기반으로 되어있는데, 키르케고르를 생각했을 때 합당할지는 의문.
+2)쉬이 이해되지 않는 서술에 있어 gpt를 통한 설명을 부탁하고 있는데, 큰 발전을 느끼고 있어 검색 엔진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느끼게 된다. 의문점에 대해 바로 물어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하는 듯 싶다.
현세가 부질없다는 논지는 그냥 기독교를 잘못 이해한 무한성의 절망이지않나
당연히 키르케고르의 입장에선 오독인데, 선교하는 사람들이 이런식의 사고에 기반해서 하는구나...하고 이해했단 말이긴 합니다.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라 별로였음
절망을 분류하는 부분은 재밌었어요.
서평만 봤을땐 기독교 부분 제하고 읽더라도 의미있네 근데 기독교를 빼면 키르케고르 주장이 의미 없어진다는게 모순이지만.
후대의 실존주의들은 어떤 부분을 취했나...라는 부분으로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잘읽엇어
혹시 역본 뭘로 읽었음?
세창출판사 이명곤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같은 분이 쓰신 키르케고르 읽기 란 책도 있는데 이건 비치된 도서관도 좀 드물어서 아쉽네요.
혹시 육문사라는 곳에서 나온 박병덕 역과 비교해 보셨나요? 하나 읽으려고 하는데 고민되네요
이명곤 역이 그나마 최근에 나온거라 읽은거라...비교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부분(1부)는 먼가 재밌게 읽혔는데 뒷부분에서 종교적 실존얘기할때 '걸려넘어지는'게 많았었던 기억이 ㅋㅋ 잘 읽었습니다
뒷부분은 원죄의식 기반으로 쓴거라 그런게 좀 더 있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