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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중세 기사도 서사시 중 하나인『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읽어봤다. 아마도 이 작품은 유명 작곡가인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리메이크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오페라라고 하면 '음악극'이다. 즉, 바그너의 경우 희곡과 유사한 형태로 그것을 개작한 것이다. 반면 이 슈트라스부르크 버전의『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사시이다. 같은 전설을 기반에 두고 있지만 이야기의 형태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주제의식 면에서는 여전히 일치를 나타내고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도 그렇지만, 원작에서도 '사랑'과 '고통'의 관계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작가의 서문에서 사랑과 고통,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의 연관성은 명시적으로 제시된다. 슈트라스부르크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감미로운 쓰라림과 사랑스러운 고통, 그들의 샘솟는 기쁨과 그리움과 고통, 그들의 행복한 삶과 애달픈 죽음, 그들의 행복한 죽음과 애달픈 삶이 함께했지요.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으며, 그런 세상에 속해서 살려 합니다. 그들과 함께 몰락해가건 행복해지건 간에요."
"마음속 사랑의 감정이 그리움으로 점점 더 활활 타오를수록 더욱더 강렬하게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고통은 사랑을 가득 담고 있으며, 이런 고통을 느끼면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고귀한 마음을 지닌 이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사랑의 감정이 이뤄지기 때문이지요."
(서문 중.)
우리는 그에게서 열정적인 사랑과 그것에 동반되는 고통 및 비극적 결말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사랑은 불타는 그리움을 피하지 않을 때 진정으로 이루어진다'는 두번째 인용문에서의 견해를 보면 특히 그러하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정리한 이 작품 전반에서 엿볼 수 있다.
주인공 트리스탄의 일대기 역시 선친들의 사랑이 비극적으로 끝난 후에야 시작된다. 트리스탄의 부모인 파르메니에의 리발린과 블란셰플루어는 콘월의 마르케가 주최한 연회에서 우연히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한다. 블란셰플루어는 마르케의 누이인데, 이러한 관계는 트리스탄의 이후 행적과도 큰 연관이 있다. 아이가 생긴 둘은 리발린의 영지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운명은 수렁으로 빠지고 만다. 리발린의 영지를 브리타니아 측에서 침공해온 것이다. 이 전쟁에서 리발린은 영지의 일부를 빼앗기고 전사하게 된다. 홀로 남겨진 블란셰플루어 역시 리발린에 대한 그리움으로 신음하다가 출산 중에 사망한다. 트리스탄은 부모의 죽음과 함께 태어난 셈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슬픈 사람'을 뜻하는 트리스탄(슬픔을 뜻하는 트리스트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성난 사람'을 뜻하는 오디세우스와 비슷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이 되었다. 역자에 따르면 이 이름은 트리스탄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상징하는 이중적인 의미 역시 지니고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비범했던 트리스탄은 여러 위험을 거쳐나가면서도 대성한다. 그는 리발린의 가신 루알에게 맡겨져 훌륭한 교육을 받고 영웅으로 성장한다. 기사 서임(당시 귀족 자제들은 정식으로 기사가 되어야 성인의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후에는 부친의 복수를 위해 브리타니아의 모르간을 암살하고 빼앗긴 영지를 탈환하였다. 또 삼촌 마르케의 영지인 콘월을 아일랜드의 지배로부터 해방하였다. 귀족들의 강요에 못이겨 아일랜드에 가서는 콘월과 아일랜드를 다시 화해시키고, 아일랜드 공주 이졸데와 콘월 왕 마르케 간의 혼약까지 끌어낸다. 이렇듯 그의 삶은 명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실수로 삼촌의 약혼녀인 이졸데와 사랑의 미약을 나눠마시는 사고가 일어난 이후 그의 삶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것은 아일랜드의 왕비였던 이졸데의 어머니가 준 것으로, 나눠마신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효과를 지녔다. 당연히 본래 이졸데와 그 부군이 될 마르케를 위한 물건이었다. 그런데도 이 사단이 난 이유는 어머니가 이졸데의 충신인 브랑게네에게만 그것이 미약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졸데와 트리스탄, 그리고 그것을 건내준 시종은 모두 그 음료의 정체를 알지 못 했다. 그리하여 서로 사랑하게 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궁정으로 간 뒤에도 그것을 이어나간다. 마르케를 포함하여 궁정의 사람들은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지만, 그들은 여러 가지 꾀를 부려 위기를 모면한다. 심지어는 마르케가 심증만으로 그들을 추방했을 때, 신의를 보이는 척 연기까지 하여 궁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듯, 결국 그들은 밀회 중에 마르케에게 적발되게 된다. 그가 증인들을 부르러 자리를 비운 사이 트리스탄은 이졸데에게 작별을 고하고 콘월을 빠져나간다. 물증이 없었던 탓에 이졸데는 처벌 받지 않았다. 트리스탄은 다시 파르메니에로 되돌아간 뒤, 시름을 잊기 위해 카르케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한다. 그는 승전했으며, 그것을 계기로 카르케 왕과 동맹을 맺는다. 왕의 누이 이름 역시 '이졸데'였는데, 그는 트리스탄과 자신의 누이를 결혼시키고자 애쓴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콘월에 두고온 자신의 연인 이졸데를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한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앞 부분에서 이야기한 대로 '사랑'과 '고통'의 관계에 맞춰 해석하는 것이 적합할 듯싶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으로 인해 사랑에 빠진다. 그들이 상기한 부정들을 범하게 된 계기부터가 자의적이지 않았다.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책임은 감면될 수 없다. 하지만 그 계기는 그들이 원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통스러운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게 된 그들의 삶은 어떤가? 명백히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사랑은 금지된 영역에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숨어있어야 했다. 연인임을 드러내는 순간 신변의 위협을 받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 말인 즉슨 그들의 결합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서로의 동반을 바라던 그들로서는 언젠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사실상 확정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인이 되려고 했으니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들의 운명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해 원흉이 있다면 누구일까? 아마도 브랑게네일 것이다. 그녀는 이졸데의 어머니에게 콘월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미약에 손대지 못 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렇다면 운송 중 미약의 관리 책임은 브랑게네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자리를 비운 동안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와인으로 착각하고 마셔버렸다. 이 경우 브랑게네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게을리한 것이므로 추상적 과실의 책임을 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브랑게네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데에는 분명히 그녀의 탓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그 운명에 휘말려서 크나큰 고통을 받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한 가지 충격적인 제안을 하는 것으로 사실상 복수나 다름없는 짓을 하게 된다. 그 제안이란 바로 (트리스탄에 의해 숫처녀가 아니게 된)이졸데를 대신하여 브랑게네가 마르케와 첫날밤을 보낸다는 것이었다. 두번째 건에서는 아무리 미약 때문이라고 해도 더 이상 일반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이졸데가 입막음을 위해 브랑게네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마르케의 경우는 어떤가? 그는 이 모든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마르케에게는 그 어떤 과실도, 책임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미약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 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에 빠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할 여지도 없다는 말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조카와 부인이 자신을 속이고 부정을 꾀했다는 결론 이외에 무엇이 도출될 수 있을까?
나는 단순히 이 이야기의 모든 비극적 전개를 운명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미약을 마시고 사랑에 빠진 것은 불가항력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의 부정을 숨기고자 발생시킨 해악들까지 모두 불가항력인가?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구체적인 사건들의 책임 소지들은 미약 사건과는 별개의 차원에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필연적으로 그런 해악들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약 사건으로 인한 영향은 단순히 유인에만 관련이 있을 뿐 책임까지 감면해주지는 않는다. 그들이 서로 호감을 지녔다는 사실 자체는 어떠한 자기관계적이지 않은 해악도 발생시키지 않았다. 반면 그들이 사랑으로써 행한 일들은 타자에게 다양한 해악들을 발생시켰다. '불륜', '모략' 등의 이름으로 불릴 만한 일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들 스스로가 받은 고통보다도 오히려 외부에 발생시킨 것이 더 크다고 보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작품 중 하나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감상점들 이외에도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몇 있었다. 특히 서문에서 후원자의 이름으로 아크로스티콘을 보여준 대목이 그러했다. '아크로스티콘'이란 각 문장의 첫 단어를 세로로 읽었을 때 특정한 단어 또는 문장이 형성되는 기법을 말한다. 속된 말로 '세로드립'이라고 보면 된다. 슈트라스부르크는 재치있게 세로드립을 통해 후원자에게 헌정사를 남긴 셈이다.
저자는 이외에도 이야기 내내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그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는 전반적으로 서술에서 본인의 해설–트리스탄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전한다. 해설 중에는 간혹 이야기와 큰 관련이 없는 저자 자신의 견해가 끼어있어 흥미롭다. 특히 8장의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그는 그곳에서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 및 이전 시대의 시인들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늘어놓는다. 어떤 이는 칭송하고, 반대로 어떤 이는 조롱하기도 한다. 이러한 서술은 얼핏 봐도 트리스탄의 이야기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이라서 더 기억에는 남는 듯하다. 물론 완성도에 대한 평가에서 이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반영하는 이들도 존재하리라 생각하지만 말이다.
서사시치고는 설명의 밀도가 상당히 높다는 것도 인상적인 점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베오울프』등의 일부 서사시들의 경우 묘사가 부실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 간혹 있다. 그러나 이 서사시에서 그러한 면모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당히 충실한 묘사를 동반하는 터라 읽기에도 난해하지 않다. 국역본 기준 480쪽 정도인데 상기한 특징 덕분에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현대 소설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으로 읽기 편하다고 본다.
묘사에 관련해서는 트리스탄이 기사가 된 이후 있었던 전투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그의 운명과는 별개로, 영웅으로서의 용력이 강조되는 부분은 꾸준히 등장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그 영지를 탈환하기 위해 브리타니아에서 전쟁을 벌이는 장면은 굉장히 입체적인 서술이 특징이다. 파르메니에 측의 원군이 도착하며 전세가 역전되는 장면이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모롤트와의 결투 장면 역시 인상적이다. 확실히 일대일 전투 특성상 다수 간의 교전을 그리는 전쟁 장면보다 박진감이 더해지고 있다. 특히 부상을 입고 위기에 빠져있던 트리스탄이 다시금 의지를 다지고 전투에 임하는 장면은 아주 흥미롭다. 아일랜드에서 용과 맞서는 장면 또한 그러하다. 상기한『베오울프』같은 경우도 용과의 교전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묘사의 자세함이나 흥미로운 표현들과 같은 부분은 명백히『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더 우수한 듯 싶다.
작품이 집필되던 당시의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15장에서 트리스탄과 궁정 집사관 간 송사를 결투로 해결하려고 한 부분이 대표적일 것이다. 몽테스키외에 따르면(『법의 정신』의 제 28편-프랑스인의 시민법 기원과 변천 중 제 23장-'결투재판의 법규'.) 중세 유럽에서는 증거가 불충분한 귀족 간의 항소 등을 결투재판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해당 저작을 읽었을 당시에는 그것이 정말인지 궁금했었는데, 실제로 중세에 쓰인 작품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을 보니 사실이었던 듯하다. 물론 몽테스키외도 그러한 사법 제도의 존재를 사료를 통해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그가 근거로 사용한 게르만족 및 프랑크 왕국 법전들과 보마누아르의 저작 등은 번역되지 않았기에 나로서는 알아보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중세시대의 작품답게 그리스도교적인 알레고리도 꽤나 포함되어 있다. 특히 트리스탄과 같은 인물들의 행보 및 등장하는 숫자들을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들과 대응시킨다던가 하는 면들이 그렇다. 이러한 경향은『베오울프』와 같은 다른 중세 서사시들에서도 익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