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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달 말에 도전 삼아 「전쟁과 평화」를 읽기로 결심했다. 마침 세계정세가 전쟁으로 어지러운 상황이라 전쟁에 관한 통찰이 반드시 필요했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읽고 충분히 유익한 깨달음을 얻었으나, 당초의 생각대로 더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사흘을 쏟아 1권을 읽었다. 책을 덮으며 최고의 판단을 했다는 직감이 들었다. 일단 이야기 자체가 재밌다. 전장의 급박한 상황, 머리싸움이 치열한 귀족 사회 모두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읽을만한 소재다. 그 안의 사건들로부터 등장인물들의 심리가 급격히 바뀌는 것을 보는 것도 묘미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결국 「전쟁과 평화」의 주역들이 상류층이어서 평민이나 평범한 병사에게 전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꼼꼼히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세 권이나 남았으니 남은 세 권 동안 평범한 민중이 공감할 만한 무언가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신기하게도 그 시절 러시아의 군대나 현대의 한국 군대나 돌아가는 꼴은 비슷한 것 같다. 마침 기가 막힌 비유를 본문에서 찾았다. "시계의 장치와 마찬가지로 군의 장치도 일단 그 속에서 일어난 운동은 최후의 결과에 이를 때까지 절대 저지할 수 없으며, 또 아직 운동이 전달되지 않은 장치의 곳곳은 움직이기 직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정지해 있다. 이와 이가 맞물리면서 축을 따라 톱니바퀴들이 삐걱거리고, 도르래는 휙휙 소리를 내며 빨리 돌아가는데 바로 옆의 톱니바퀴는 백 년이라도 꼼짝도 않고 있을 것처럼 멈춰 있다. 그러나 이윽고 때가 와서 지렛대가 걸리면 톱니바퀴는 당장 운동에 정복되어 짤칵짤칵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기 시작하고, 결과도 목적도 모르는 채 하나의 운동에 합쳐져버리는 것이다." 나는 군대에 고작 18개월 몸담은 사람이지만, 18개월 동안 정말 희한한 꼴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보고를 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우리 분대를 '말하는 목각인형'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보고가 닿는 즉시 높으신 분들이 서로 얘기해서 대책을 짜면 그나마 나을 것 같은데, 희한하게도 그 사람들도 '더 높으신 분들'을 찾든지, 아니면 자기들끼리 의견이 갈리다가 아무 의견도 내지 않은 채로 시간을 흘리든지 해서 조치가 즉각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고비가 지나고 욕을 먹는 것은 애꿎은 상병, 병장 계급의 병사들이다. (물론 그것도 내리갈굼이기는 할 것이다.) 여하튼 우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있음에도 무능한 사람들에게 우리를 내맡겨야 한다는 원칙이 정말 싫었다. 어차피 휴전 중인 상황에서는 기분만 나쁘고 끝나지만, 실전이었으면 높으신 분들이 벙커에서 탁상공론을 하는 동안 우리는 부사관들과 함께 죽을 것이다. 비참한 것을 넘어 우스운 꼴이다. 그런데 이 우스운 꼴이 나폴레옹 전쟁 때에도 있던 유서 깊은 전통이라니, 아무래도 전쟁은 상식이 박힌 사람이 할 짓은 못 되는 것 같다. 단순히 전장이 끔찍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전장에서 믿지 못할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력을 내맡겨야 한다는 것도 끔찍하다!


군대 이야기를 꺼내면 흥분하는 군필자의 본능을 참지 못하고 윗문단을 길게 쓰고 말았다.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면, 등장인물들의 야망이 좌절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출세욕은 건강한 욕구라고 생각한다. 비열한 수단을 쓰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등장인물들에게 전쟁은 출세의 욕구를 실현하는 자리다. 전쟁이라는 장소 자체는 찝찝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영웅처럼 활약하는 모습을 곧 보게 되려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역 두 명이 부상을 당했고 심지어 한 명은 포로가 됐다. 당찬 포부로 말을 타고 출발하다가 포탄과 시체를 보고 마음이 꺾여가다가 결국 피웅덩이에 빠지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포탄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당연한 법칙인데 나는 왜 주역들은 예외라고 생각했을까?


출신이나 행운은 사람을 가린다. 그러나 죽음만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비참할 정도로 작아진다. 죽음 이후에, 우리가 치열하게 걸었던 흔적은 점차 사라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살 이유, 꿈을 꾸며 피땀을 흘릴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애국심이라는 것도 결국 나라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빛내보려고 발버둥 치는 일을 포장하는 단어는 아닐까? 이런 허무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지금까지의 길이 헛되지 않다는 보증이, 안심하고 삶을 위해 분투하게 만들 계기가 필요한 모양이다. 다만 그것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의 모양을 바꿔주지는 못한다. 포탄은 기독교인도 반기독교인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불행한 평등이 어쩌면 삶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결국 군대 안에서는 상부에서 시작하는 톱니 운동을 기다리고, 군대 밖에서는 더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운명이라는 톱니 운동을 기다린다. 우리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바꾸려고 대책 없이 분투하기보다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 알 수도 없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다. 당장은 자기가 왜 이런 처지에 놓여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슬픈 기분이 나를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강제된 상황 속에서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것만 확실히 해나가다 보면 시간은 지나갈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나중에 그때 그 난관에서 무언가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리야는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맞지 않는 배필을 억지로 붙잡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하느님의 섭리를 생각한다면 이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느님의 의지 없이는 머리카락 한 올도 사람의 머리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 것인데." 문장을 적는 동안 공교롭게도 내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한 올 떨어졌다. 나는 신이라는 참견 많고 거창한 존재가 있어서 내 머리카락에 방금 떨어지라고 명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떨어진 머리카락을 내 의지로 다시 심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 목숨도 세계 입장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처럼 하찮은 것이다. 나 자신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해 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전장 한가운데로 떨어진다면? 끔찍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그만하자고 울부짖어봤자 전쟁을 끝낼 빨간 머리는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거기서 이겨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전쟁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죽음이 직접 오기까지 죽음의 징조들을 돌파하며 내 길을 개척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신'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제하기는 했지만, 이게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가 내게 준 교훈이다. 주역들도 이런 생각으로 앞으로 남은 전투에도 임할 것 같다. 그들의 무운을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편 인물들의 동향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결국 「전쟁과 평화」는 전쟁 소설인 만큼 국가 사이의 동향을 보는 재미가 크다. 「전쟁과 평화」 자체는 픽션이지만 배경은 철저히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공부거리가 되는 것 같다. 나폴레옹은 편지만 보내다가 1권 말미에야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잠깐 등장해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마냥 악인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묘한 카리스마를 풍기는 인물로 보였다. 나폴레옹은 침략을 당한 국가들에게 전쟁광이자 학살자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엄한 상관이기는 해도 악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가 결부돼있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개인의 명예와 공동의 이익은 서로 결부되어 전쟁의 원인이 된다. 아닌척해도 결국 모두가 이해득실을 계산해서 전쟁에 임한다. 당장 구렁이보다도 유연한 프로이센이 실제로 그러했다. 물론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정말 큰 행동이지만, 이기기만 하면 역사서에 승자에게 유리한 서술을 잔뜩 덧붙일 수 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 


결국 전쟁의 주제는 이념이나 역사가 아니라 당장의 패권이건만,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은 포장된다. 심한 경우에는 국민 전체가 선동되어 세계의 왕따들끼리 뭉쳐 자기들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꼴이 된다. 2차 대전의 추축국들이 실제로 그런 꼴이 아니었던가. 기독교 교리를 학교에서부터 배우는 사람들이 그런 얄팍한 빌미에 홀릴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운데, 실제로 사람들은 거기에 당한다. "인류는 우리에게 사랑과 모욕에 대한 용서를 가르쳐주신 구세주의 율법을 잊고 서로를 죽이는 기술 속에 자기들의 주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상당한 안드레이는 자신의 좌절된 야욕과는 상관없이 평온한 하늘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는다. 자기 것을 취하려고 서로를 죽이고 속이는 일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결국 이념이든 역사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 발 디딘 땅에나 신경 써야 하는데. 그래서 나폴레옹은 인품이 어떻든 세계사의 악당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프랑스 혁명의 가치를 퍼뜨린다는 명목으로 그가 짓밟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그 발자국에 과연 얼마나 거창한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무의미한 소요가 결국 걷잡을 수 없는 규모로 유럽을 휘젓고 있으니, 「전쟁과 평화」 속의 러시아인들은 나폴레옹을 신이 내린 시련으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싸워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운명의 섭리를 발견해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 주역들이 각자 이 시련을 통해 무엇을 깨달으며 어떻게 변해가고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된다.


전체 4권 중에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권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 새로운 통찰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톨스토이는 「크로이처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분명 「전쟁과 평화」도 곱씹을 것들, 그리고 배울 것들을 풍족하게 품고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