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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에머슨의 에세이를 읽고 홀린 듯이 「월든」을 샀다. 전역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서야 「월든」을 읽었다. 사실 기대했던 것만큼의 감흥은 얻지 못했다. 월든 호수 주변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름다웠고, 가끔은 주변의 생활사에 대한 서술에 나도 덩달아 재미를 느끼기는 했다. 하지만 극적인 이야기가 있는 책들에 길들어있는 나에게 「월든」은 너무도 얌전한 책이었다. 소로의 사상에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다. 소로가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레 적어둔 영수증을 읽어도 당대 달러의 가치를 잘 모르니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가끔은 지나치다 싶은 구석도 있었다. 집에 들어온 수천 마리 말벌을 쫓아내지 않고 피난처를 찾은 손님으로 여기며 기뻐하는 모습은 정말 이상하게 보였다. 갸륵하기는 하지만 나는 맨정신으로는 그런 짓은 못한다. 차라리 말벌이 아니라 꿀벌이라면 모를까.
다만 「월든」을 읽은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다. 소로의 소소한 일상들로부터 크지는 않지만 요긴한 교훈들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첫 에세이인 「경제」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글의 주제는 겸손과 검소함이다. 우리는 생활의 편의를 위해 여러 자원들을 낭비하고, 돈에 쪼들리는 신세다. 그리고 돈을 잘 버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며 마치 인생을 게임처럼 공략이 있는 무언가로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자기계발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행이기도 했다.) 소로는 이런 풍조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는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이 입은 외투와 바지에 주목한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번다면 물론 당장의 삶은 안락해질 것이다. 이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락함을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켜야만 한다면, 그 결과로 얻는 안락함을 진정한 안락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수단을 하나 골라서 거기에만 매달리면 그만큼 삶의 범위는 좁아진다. 살면서 볼만한 것들, 느낄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익을 주는 것'만 골라서 보려면 다른 즐거움을 놓치기 십상이다. 결국 소유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즐거움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당장 손에 들어오는 것에 빠져서 자신이 불행한 줄도 모른다. 그러면서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려고 하니,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사람을 버는 꼴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도구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소로는 인간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굴레로부터 해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수단이 아니라 목적에 의의를 두며 주체적인 삶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인격을 도야하고 목표를 이루는 것에 주력해야지, 집의 가구에 광택을 내는 일에 주력해서는 아무런 의미도 얻지 못한다. 물론 살면서 꼭 필요한 것들은 정말 많다. 안락함도 어떤 때는 사치지만 어떤 때는 에너지 낭비를 줄이기 위한 건전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소로도 독자에게 자신의 삶을 따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소로는 외부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그 안락함을 구현해 내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스스로 한 활동들, 예로 집을 짓고 난로를 짓고 농사를 짓는 모습을 소상히 그린다. 물론 그것들을 해내기 위해 큰 수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에게 얽매이게 만드는 돈이나 노동력 같은 수단들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결실을 맺었다는 점은 유념할만하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능력이 충분히 있으니, 우리는 해보기도 전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저 삶 자체를 하나의 목표로 두고 느린 발걸음으로 조금씩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향상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보다 더 우리의 용기를 북돋는 것은 없다. 당신의 운명을 읽고, 당신 앞에 무엇이 있는지 똑바로 보면서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가라. 우리 인간은 자기 내면에서 삶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까지 해도 결국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스스로 모든 것을 일궈나가는 일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소로는 자신이 지금 느끼는 불편함이 정말로 불가피한지 되물으라고 권한다. 불편함은 관점을 바꿈으로써 회피할 수 있다. 어떤 것의 결핍이 정말로 일상을 지속하는 데 지장이 있다면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없이도 살 여지가 있다면, 우리의 걱정은 그것만큼이나 불필요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결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일으키는 환각에 적응하는 것이다. 삶의 조건을 줄여나갈수록 역설적으로 삶은 쉬워진다. 목표를 위해 고려할 것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사소한 일로 낭비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생활하자! 일을 100가지나 1000가지로 늘리지 말고 두세 가지로 줄이자. 간소화하고 또 간소화하자."
소로는 맺음말에서 요즘 유명한 '뇌썩음(Brainrot)'의 어원이 되는 말을 남긴다. "영국이 감자역병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데 어째서 훨씬 넓게 퍼지고 치명적인 뇌 썩는 병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미래에도 자신의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삶이 초라해도 받아들이고, 또 살아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이 말은 꼰대의 잔소리로 보일 여지도 있다. 결국 소로의 시대와 우리 시대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다르다. 모든 것과 타협을 이루고 옛날처럼 배고프지만 총명한 정신으로 살라는 말이 오히려 배부른 소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혹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가 봄바르딜로 크로코딜로를 이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이로운 것은 분명 사실이다. 삶을 살다가 궁지에 몰렸다면, 일단 그 궁지가 정말 궁지가 맞는 것인지 통찰하고, 자신의 욕심을 줄이고 진정한 목표에 다가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뇌는 썩지 않고 총명하게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이며, 직접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도 삶의 의미와 보람을 되찾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수단의 미니멀리즘은 목표를 위한 맥시멀리즘이다. 이것이 「월든」으로부터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월든」에서 제시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솔직히 어렵다. 앞서 말했듯이 말벌도 친구로 여기는 소로의 자연주의는 다소 과격한 면이 있다. 시대에 어긋나는 면도 있다. 오늘날에는 귀농이 도시 생활보다 더 큰 비용이 든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으니, 현대에는 월든 호숫가(그것도 친구인 에머슨의 사유지)에 들어가 노동을 풍류처럼 즐길 수 있었던 소로의 시대상과 비교하기 정말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로의 검소함은 시대를 초월하는 유익한 롤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내 방에도 분에 넘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고도 다음에 살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얼마나 조급해지고는 하는가. 나는 스스로를 딱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소로의 삶을 보니 나도 꽤 과분한 욕심을 많이 부렸다는 것을 느끼고 반성하게 된다. 나도 조금씩 소비를 줄이며 수단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자기 갈 길만 충실하게 가는 사람이 되어가야겠다고 느꼈다. 결국 인생 최후의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병상의 푹신함이 아니라 그간 걸어왔던 길이 아니겠는가. 이 점을 생각하며 앞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짐을 조금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줌마 아저씨들 시골생활 꿈꾸게 하는 쵁
소로의 사상에 대해 보고 싶으면 사실 시민불복종이 더 적합함
나중에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