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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어플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됐는데, 메모는 삼성 노트나 옵시디언을 사용하고, 북적북적은 그냥 무슨책 읽었는지 기록할 때만 쓸 것 같음.
건전지 아까워서 트리오키보드 껐다켰다하는데, 다시 연결될 때마다 어플이 초기화면으로 돌아가더라? 그래서 걍 삼성노트씀. 옵시디언 갤 평가 보니까 써보고 싶어지네.
책 읽다가 페이지마다 든 생각들을 메모했는데, 꽤 많다.
책은 이야기를 하다가 작대기를 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의식의 흐름 기법 검색했는데 와...
나는 내가 이런식으로 말해서 다른 사람이 들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을 안해봤다? 근데 버지니아 울프를 보고 알게됐다.
이런식으로 말하면 절대 안되겠다고. 더 생각하고 말해야겠다고.
78페이지에 "더욱이 백 년 후에는,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이라고 말입니다."라고 나오는데,
1928년의 강의 내용을 2025년인 지금 세상에 빗대어 보니 가공할만한 앎과 통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그림을 볼 때나 사람을 볼 때 이미지를 떠올리지. 행동을 동반한 이미지는 간결하게 한 장면이 기록된다. 움직이는 이미지도 있고 말이야.
울프가 말한 “여성들이 특별한 성격으로 나온다.”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성별이 무엇을 봤을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오를지 궁금하게 만든다.
감전된 후 눈 앞에서 여러 색상들이 혼합된 그런걸 볼까? 뇌전증 환자(본인)가 발작하기 전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듯 혼재되어있는 그런 이미지를 볼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와 서사를 간직하고 살까? 정말 궁금하다. 최근 읽었던 소설들을 기억해보면,
'자기앞의 생', '달과6펜스',성석제의 '투명인간'이 당장 떠오르는데, 젊은작가상이나 최근 나온 여성 작가의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느낌.
그리고 요즘 다양성 관련 컨텐츠에 질리는 것도 울프가 본 동성애에 대한 감탄과 연결지을 수 있는 것 같다.
수직컨텐츠, 여러 다양성을 띈 사람들은 이미 미디어를 통해 너무 많이 접해버렸다.
그래서 그 인물을 더욱 깊고 폭넓게 볼 수 있게 수평컨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여겨져.
난 이미 그들의 존재를 알기 때문에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느낌이 현재는 전혀 들지 않는다. 더 연구해서 문학계가 수평컨텐츠를 많이 뱉어주면 좋겠다.
179페이지에 "소설의 미래나 시의 죽음에 대해 또는 보통의 여성들이 자신의 마음을 완벽하게 표현해주는 산문체를 발전시켜나가는 일에 대해 지푸라기만큼이라도 상관을 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라고 나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더 표현하게 할 수 있을까?
오늘 30대 피아노 강사 브이로그를 봤는데, 그 사람은 아동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성인을 대상으로도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더라고.
정보를 구체화해서 전달하는 것, 자신의 정보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해.
그런 방식으로 본다면 지금 변해가는 사회 구조는 어느때보다 소설의 미래와 시의 미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소설과 시의 전달 방식이 정보 전달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세상. 이런 생각을 하고 평소에 보는 롤 영상을 보니 마음이 두근두근 해졌다.
"잘하네."하고 넘겼던 영상들이 플레이 하는 사람의 생각을 비추듯 클릭 하나하나에 그의 뜻이 전달되는 듯한 이 느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듯 하는 시와 다를게 없었다. 아...
이런 정보 전달의 아름다움을 왜 그 전까진 몰랐을까?
195페이지에선 "누가 되었든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와.
이 문장은 자신이 짊어진, 작가가 짊어진 책임을 독자에게 보이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로 읽혀져.
작가와 작품은 현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해 보여줘야 한다는 말 같아.
하지만 시대를 포착하지 않고 자신의 열등감을 포착한다는 것은 관객으로의 책임 위탁이며, 자신을 도와달라는 프로파간다와 다를게 없는 것 같아.
따라서 간디의 비폭력 운동같이,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사상같이 자신의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커다란 어깨 위 누름돌을 내려놓을 생각하지말고 전달해야한다.
하지만 이는 정말 쉽지 않아.
예전에 청소년 대상 사회복지과 교수님께 친구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어.
교수님은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고 했지만, 난 그걸 무시했고, 그 친구는 더 악화됐었다...
이 경험은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작가의 생각을 보는 독자는 그만의 속도에 맞춰 감화되는 것 같아.
202페이지에 지적 자유는 현재 어떻게 억압되는가에 대해 나오는데, 아서 퀼른 경은 경제적 자유로서 억압된다고 했어.
현재 지적 자유는 생존권의 취득보다는 생존권 취득과 연계된 ‘상대적 정신적 빈곤’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
창작과 거리가 먼 자아를 만드는 빈곤 말이야. 우린 지적 자유를 위해 대화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더 많은 사람이 창작할 수 있게 말이야.
읽다보니까 214페이지에 바로 위에 글에 대한 답변이 나오더라고.
"우리가 자유의 습관과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써 내려가는 용기를 가진다면,"
이 문장이 이 책의 정수같아. 자신이 속하고 있는 사회를 위해, 자신을 위해 몸바치는 것 말이야.
왼쪽 책 친구가 빌려줬다. 친구 도서관 갔는데 코스가드 책이 딱 있더라. 그리고 모비딕도 이야 아주그냥 으아
그리고 당근으로 6천원에 오른쪽에 있는 마의산 샀다 개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