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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강한 스포일러 경고를 붙일 필요성을 느껴 이를 미리 적고자 한다. <엘리펀트 헤드>는 괴상한 설정과 정교한 복선 및 트릭을 강점으로 하는 본격 추리 소설이고, 꼭 그 설정과 트릭에 감탄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이것 없이 <엘리펀트 헤드>를 보면 매우 맥빠지고 가볍게 쓴 소설에 가깝다. 작중 인물에 대한 설명과 대사는 매우 가볍고 너무 비현실적인 인물 묘사가 가득해 초반부를 읽을 때도 그렇고, 추리소설의 트릭과 별개로 봤을 때 이 글이 좋은 글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추리소설에서 핵심은 그쪽에 있는 것이고, 핵심만 봤을 때 <엘리펀트 헤드>가 나쁜 글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렇기에 이 감상에서 주로 이야기하려는 것도 그 핵심이며, 이 핵심을 짚고 넘어가는 것만으로 <엘리펀트 헤드>를 읽을 때의 대부분의 재미가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에 미리 강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고문을 보고도 시선을 실수로 더 내려버린 사람을 위해 미리 변죽을 울려두자면 내가 보기에 <엘리펀트 헤드>의 핵심은 매우 컴퓨터 친화적인 설정에 있다. 관련 전공자라면 바로 알아봤을 텐데, 멀티프로세서에서 동시성의 악몽이 의식과 양자역학이라는 유사과학적인 탈을 쓰고 펼쳐지고 있으니까.


다시 소설로 돌아가보자. <엘리펀트 헤드>의 핵심 설정은 의식을 가르는 약물 시스마다. 시스마를 주사하면 그 복용자의 의식은 둘로 갈라지는데, 각각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 한 의식은 주사보다 몇 시간 전의 과거에서 눈을 뜨며, 또 다른 한 명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는 데에 성공했는지는 주변을 파악하는 것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갈라진 의식들은 다른 때는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각자의 세상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꿈속에서는 서로 만나 얘기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세계는 분리된듯 하면서도 분리되지 않았는데, 한 주인공이 등장인물 A의 목을 잘라 죽였다고 하면, 또 다른 주인공의 세계에서도 A가 바로 그 시각에 목이 절단되어 죽는다. 또한, 과거로 돌아간 세상은 다른 모든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시스마만큼은 그 과거에서도 이미 사라져 있다. 주인공 기사야마가 가진 시스마는 두 개, 그래서 총 네 사람의 의식이 각각 생겨난다. 한 차례 갈라진 두 의식이 각각 하나의 미사용 시스마를 갖고 있어 서로 또 갈라질 수 있으니까.


첫 번째 분리:

+ 기사야마0 [+1, +2]

➡+ +1 사용

├── + 기사야마0 (현재) [+2]

└── + 기사야마1 (과거) [+2]


두 번째 분리:

+ 기사야마0 (현재) [+2]

➡+ +2 사용

├── + 기사야마0 (현재) [ ]

└── + 기사야마3 (과거) [+1] (기사야마0의 +1 사용 이전 과거로 갔기에 +1이 다시 존재)


세 번째 분리:

+ 기사야마3 (과거) [+1]

➡+ +1 사용

├── + 기사야마3 (자신의 현재=기사야마0의 과거) [ ]

└── + 기사야마4 (더 과거) [ ]


네 번째 분리(시간 순서 무관):

+ 기사야마1 [+2]

➡+ +2 사용

├── + 기사야마1 [ ]

└── + 기사야마2 (과거) [ ]


여기까지가 <엘리펀트 헤드>의 설정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소설의 핵심 트릭이다. 시스마는 분명 시간 역행 이후 과거에서 사라져 있지만, 첫 번째 시스마를 사용한 후 두 번째 시스마를 써 첫 번째 시스마를 복용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첫 번째 시스마는 아직 남아 있다. 이를 사용하면 시스마를 다시 쓰는 것이 가능해지며, 원래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다섯 번째 의식이 생길 수 있다. 곧, 기사야마0이 시스마1을 써서 현재에 남은 기사야마0과 과거로 돌아간 기사야마1이 되었고, 기사야마1이 시스마2를 써 기사야마1과 과거로 돌아간 기사야마2로 분리된 것과 별개로 기사야마0 역시 시스마2를 써서 기사야마0과 기사야마3으로 나눠졌는데, 이 과거로 돌아간 기사야마3에게는 시스마1이 아직 남아 있어 다시 이를 써 기사야마3과 더 과거로 돌아간 기사야마4가 생겨난 것이다. 서로의 세계에서 기사야마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누군가가 죽었을 때 다른 세계에서도 같은 사람이 죽는 현상을 최대한 막고자 협의를 맺었지만, 정작 각각의 기사야마는 운전 동승자나 임신한 아기 같은 또 다른 사람들을 간접적인 도구로 삼아 이 사람들의 죽음이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특정 시각에 맞춰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목표로 한 사람을 죽이곤 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왜 멀티프로세서를 언급했는지 알 수 있을 테다. 의식이 갈라지는 과정은 사실상 운영체제에서 한 프로세스가 자식 프로세스를 만드는 fork 과정과 거의 동일하며, 컴파일러가 프로그램을 실행 가능하게 만들고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명령어 실행 순서는 프로그램에 적힌 대로가 아닌, 더 빨리 처리할 수 있거나 다음 명령을 처리하기 전에 반드시 끝나 있어야 하는 의존성을 따라 재배치되어 최적화 단계에 따라 fork로 분리된 자식 프로세스가 fork 이전에 했어야 할 일을 그 뒤에 하게 되는 일도 빈번하다. 각 의식이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되 그 세상의 인물들이 동일한 죽음을 겪는 일은 각 인물들이 일종의 static 변수-곧, 모두가 공유해 한 곳에서의 변화가 다른 곳에 적용-에 가깝다. 여기서 의식 분리의 핵심 트릭인 시스마1이 남아 있는 현상은 사실상 copy-on-write 정책을 따라 아직 시스마1의 변화가 다른 코어에서 메모리로 옮겨지지 않아 삭제되지 않은 메모리를 참조하는 기초적인 동시성 문제로, 보통은 과거로 가도 약이 사라지지 않거나, 더 과거로 가도 약이 이미 없다는 식의 설정을 짠다. 덕분에 <엘리펀트 헤드>를 읽고 어이가 없어 예전에 본 멀티프로세서 교재를 다시 들춰봤을 정도다. 정작 저자는 법학부 출신인 듯하지만 말이다.


일본에서 SF 소설을 읽을 때면 유독 컴퓨터공학/과학스러운 설정 및 묘사가 자주 보이곤 하는데, 이게 단순히 의식의 분리에 대한 설정에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게 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른 의식 관련 SF에서 딱히 그런 뉘앙스가 느껴진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츠츠이 야스타카의 <파프리카>나 이를 영화화한 곤 사토시의 <파프리카> 및 여기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 <인셉션>에서 풍기는 컴퓨터스러운 설정을 그렉 이건의 <쿼런틴>이나 <인셉션> 감독의 다른 작품 <테넷>에서는 찾아볼수도 없다. (물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엑시스텐즈>처럼 이 설정의 극한까지 다다른 작품도 있다) 또한 비슷하게 시간 역행과 양자역학적 의식을 다루는 일본의 <슈타인즈 게이트>를 생각해봐도 <엘리펀트 헤드> 설정의 특이성이 분명하다. 여기선 말 그대로 관측이 중요하지, 사람에게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식의 설정은 없다.


이게 나쁘진 않지만, 좀 미묘하긴 하다. <엘리펀트 헤드>가 보여주듯 현실의 구조와 컴퓨터과학의 자료구조를 끼워맞추기 위해서 그런 건지 단순히 자의적이라기엔 조금 더 나아간 방식으로 현실과 비-현실, 공유되는 것과 공유되지 않는 것을 나누느라 말이다. 의식이 나눠진 세상에서 다른 모든 물건은 제각기 다르게 움직이는데 오직 '사람'만은 서로 같은 운명을 가진다고 설정할 만한 이유가 있을까? 양자역학식 인간 의존성 관측 운운하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안녕 샤를로테>가 떠올랐다가 바로 지워버렸다-솔직히 좀 억지다. 사람이라서 중요하다고 하기에는 <엘리펀트 헤드>가 사람을 얼마나 도구로서만 다루는지를 따져봤을 때 설득력이 더 사라진다. 사람이 그렇게나 중요한 소설이었으면 아버지가 딸을 임신시켜서 임신한 아기를 조산시켜 터뜨려 죽여 아직 아기를 품고 있는 다른 세상의 딸을 죽이는 트릭 따위를 쓰진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꽤나 재밌는 괴작이기는 하다. 두 번 볼 이유는 없지만 첫 번째만큼은 취향만 맞다면 꽤나 재밌을 그런 소설. 이게 그렇게나-무려 2024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고평가를 받을 만한지는 솔직히 의문이지만. 사이코패스 의사 주인공이 혹시라도 불륜을 저지를까봐 자기 성욕을 처리하기 위해 아내의 스토커(남자)를 납치해 거세시켜 딸의 이름을 붙이곤 더치 와이프로 쓰는 걸 보며 탄식하며 책을 내던지려 했다가, 심지어 이런 식으로 다른 딸의 남자친구와 호텔에서 만났다가 그 남자친구와의 연이 가정 붕괴를 야기할 땐 정말 책을 덮었다. 이런 괴상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됐을 정도로 일본 본격 추리판이 고갈된 걸까? 아니면 반대로 이런 글보다도 덜떨어진 글만 남아버린 걸까? 나는 모른다. 만화나 애니로 봤으면 조금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