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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원리에 고집을 집요히도 부리는 인간과의 논쟁은 무엇보다도 가장 짜증나는 일이다.
—데이비드 흄
흄은 이 말을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기 위해 했지만 찐따에 가장 부합하는 말일 것이다. 그는 이들을 설명하며 그들한테 기대되는 건 똑같이 자기 의견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고, 똑같이 자기 상대를 무시하고, 똑같이 궤변과 거짓말로 우기려 부단히도 열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 앞선 두 부분은 찐따와 가장 어울린다. 즉, 개인적 양상을 드러내며, 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세계에 빠져 다른 이들을 배척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개인성을 찐따의 면모로 보아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이 개인성, 즉 찐따성은 흄이 살던 18세기에도 존재했지만, 그 전에도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적인 문학 「일리아스」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노여움을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을!
일리아스의 시작은 가장 사적인 감정인 분노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시작인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에게서 시작되었다. 그가 아킬레우스의 아내 브리세이스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노여움을 품고 브리세이스를 데려간 이유는 아폴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크뤼세스의 딸을 풀어주는 대가였기 때문이다. 아폴론의 사제 크뤼세스가 빼앗긴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 하자 아가멤논은 노여움을 품고 그를 모욕하며 쫓아내었으니, 그는 노여움을 간직하고서 아폴론께 기도하자, 신은 노여움에 휩싸여 아카이아인들을 죽였던 것이다. 일리아스는 이렇듯 노여움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작품 외적으로 이 전쟁의 원인은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파리스가 데려갔고 이에 아카이아인들은 약속을 지키려 트로이아와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지만, 좀 더 살펴보면 그 이야기 속 내막이 있다.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에 노여움을 품은 에리스는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바친다라 적힌 황금 사과(호메로스 시대엔 없었다는 말이 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대결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일리아스 24권 25행에서 30행 참고)를 결혼식장에 던진다. 이에 헤라와 아테네, 아프로디테가 이를 두고 싸웠고 급기야 제우스에게 결정하라 넘긴다. 제우스는 이를 인간 파리스에게 넘겼고, 여신들은 각자 선물을 약속한다. 헤라는 왕권을, 아테네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의 결혼을 제시한다. 모두 매력적인 제안이었으나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택한다. 일리아스에서 헤라와 아테네는 트로이아에 노여움을 계속해서 품고 있는데 이런 연유다. 아폴론이 쏜 전염병이 번져 수많은 다나오스인들을 죽였듯, 분노는 점차 번져 아킬레우스에게까지 도달한 것이다. 결국 아킬레우스는 노여움에 휩싸여 자신은 이 전투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막사에 틀어박힌다. 그리고 그들이 아가멤논을 위해 브리세이스를 데려가자 그는 바다를 보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의 울음에 어머니 테티스가 나타나고 그는 울분을 토한다. 이에 테티스는 노여움에 빠져 제우스에게 간청한다.
그러니 당신께서라도 그 아이의 명예를 세워주세요, 올륌포스에 계신 분이여,
조언자 제우스시여! 아카이아인들이 제 아들의 명예를 존중하고
더더욱 우러를 때까지, 트로이아인들에게 힘을 내려주소서!
이렇게 아카이아인들은 아킬레우스 없이 전쟁을 나서게 된다.
한편 트로이아인들 또한 전쟁에 나선다. 그러나 파리스는 이에 겁을 먹고 내빼나 이를 헥토르가 질책한다. 이에 파리스는 헥토르의 질책이 정당하다며, 자신과 메넬라오스와의 결투를 통해 전쟁을 끝내자고 한다. 양군 모두가 이를 인정하고 신께 서약해 결투가 시작된다.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에게 지고 목숨이 빼앗길 뻔하나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도망친다. 아프로디테로 인해 헬레네는 집으로 가 파리스를 만나고 질책한다. 여기서 헬레네는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에게 죽었어야 했다고 질책하나, 마지막에 이르러 그와 싸우지 말아달라고 한다. 그녀는 내심 파리스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파리스와 화해하고 동침한다.
이처럼 호메로스는 트로이아인들의 가족을 계속해서 보인다. 이 몸서리치는 전쟁과 대조되는 가족의 모습을 어째서 시인은 노래한 것인가? 날 선 청동에 찔려 내장을 드러내고 뇌수를 뿜으며, 칼에 목이 잘리는, 그야말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헛되어 아스러지는 전쟁을 계속 보게 되어 지칠 독자를 위한 환기일까? 물론 그것도 있지만 독자의 몰입을 위한 것일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돈키호테를 볼 때 처음에는 웃음을 터트린다. 그가 난동을 부리며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나설 때나 산초에게 자신의 기사도 지식을 뽐낼 때 우리는 그를 미친 노인으로 바라보며 그 행동의 우스움에 자지러진다. 그러나 후에 우리는 다른 모습이 된다. 산초가 꿈을 포기하며 자신의 주인을 나설 때 이것이 단순한 희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며, 돈키호테가 자신의 꿈을 잃어버렸을 때 하얀 달의 기사에 격분하고, 산초가 그를 달랠 때 희망 어린 슬픔을 느끼며, 그가 죽을 때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앞에서는 웃었으나 뒤에서는 우는 기이한 광경이다. 이는 우리의 몰입과 관련이 되어 있다. 1권에서는 돈키호테의 미친 모습과 산초의 바보 같은 면만을 부각한다. 돈키호테의 표절 작가가 자신만의 속편을 만들었을 때 돈키호테가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의 광인으로써 부각하고 산초의 먹보 특성을 붙이는 등 우스운 희극으로 만들었던 데에는 그가 이를 단순한 희극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르반테스는 그들의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들에게 인간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다시 해석하고, 돈키호테의 광기를 꿈을 향한 발돋움으로, 산초의 바보 같은 면을 충직과 순수로 바라본다. 그들에게 입체성이 부여된 것이다. 호메로스 또한 가족을 통해 트로이아인들에게 입체성을 부여시키고 우리는 그들에게 몰입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개인적인 아카이아인들보다 공동체적인 트로이아인들에게 더욱 공감이 가며, 이를 통해 전쟁은 단순한 명예의 장소만이 아닌 무거운 멍에의 장소임을 알게 된다.
제우스는 파리스의 도망에 메넬라오스의 승리로 전쟁의 끝을 맺자 제의하나 헤라는 이에 반발하였고 트로이아의 파멸을 주장한다. 제우스는 이에 노하나 결국 받아들이고 아테네를 보내 트로이아의 궁수 판다로스를 부추겨 서약을 깨게 한다. 그리하여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죽인다. 그 가운데 디오메데스는 아테네의 가호 아래 많은 이들을 죽였으며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이아스도 죽일 뻔하나, 그의 어머니가 살린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그녀에게도 상처를 입힌다. 이에 아프로디테는 원한을 품고(그래서 전쟁 후에 그는 자기 아내에게 배신을 당하고 나라에서 나간다. 오뒷세우스와는 대조된다) 제 오라버니(일리아스에서는 이들이 남매 관계다) 아레스에게 간청해 그가 트로이아 쪽으로 배신하게 한다. 아레스는 수많은 아카이아인들을 죽인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그런 아레스조차 물리친다. 헬레노스는 이에 헥토르에게 도시로 돌아가 아테네 신전으로 가 제물을 약속하고 전장에서 디오메데스를 떼어놓으라 간청하라 한다. 헥토르는 이를 받아들이고 도시로 떠난다. 그가 어머니를 만나자 그녀는 쉬었다 가라고 하나 거절한다. 그는 어머니께 헬레노스의 말을 알리고 파리스를 만나러 간다. 그는 파리스를 질책하며 전쟁에 참전하라 하자 파리스도 이를 받아들인다. 헬레네도 쉬었다 가라 하나, 전우들이 싸우고 있다며 이를 거절하고 자신의 아내 안드로마케와 아들 아스튀아낙스를 만나러 간다. 안드로마케는 그를 보자 울면서 전쟁에 나서지 말아달라 한다. 그는 책임감에 이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는 아이를 안으려 하나, 아이는 투구의 말총 장식에 겁을 먹어 울음을 터트리고, 이에 부모들은 웃는다. 헥토르는 투구를 벗고 아이를 안고 달래며 안드로마케에게 아이를 안겨준다. 그는 아내를 말로 안심시키고서 파리스와 함께 다시 전장에 나선다.
헥토르를 보자 아이는 투구의 말총 장식에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린다. 그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투구를 벗고 아이를 안는다. 그리고 다시금 전쟁을 나설 때 투구를 쓴다. 그의 수식어 중 하나가 "빛나는 투구의"라는 것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그의 두려운 면모는 어쩌면 전쟁 중일 때만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가 투구를 벗고 있을 때는 영락없는 화목한 한 가정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가 투구를 쓰고 있을 때는 다르다. 그는 트로이아를 대변하는 자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여인들이 제 남편과 자식, 오라비가 무사한지 물으나 그는 신전으로 가라는 말만 할 뿐이다. 그런 그의 모습은 냉정해 보인다. 어머니와 제수, 아내의 권유에도 그는 서둘리 전장으로 간다. 그는 뿌리치며 이리 말한다. 제 전우들이 싸우고 있으며, 만약 자신이 전장에서 빠진다면 전우들과 여인들을 볼 낯이 없단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끼며 전장으로 나선다. 이는 아킬레우스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아가멤논에게 노여움을 품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가족들의 전쟁에서 쉬라는, 나서지 말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전장으로 향하는 헥토르와 동료들의 전쟁을 나서라는 권유를 물리치고 자신의 막사에 틀어박힌 아킬레우스, 자신의 직책에 책임감을 느끼는 헥토르와 자신의 힘에 책임감이 없는 아킬레우스, 트로이아를 지키기 위해 나선 헥토르와 트로이아를 파괴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 나선 아킬레우스, 이 둘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헥토르는 호메로스가 만들어낸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일리아스만을 위해 존재하고, 호메로스 이외의 다른 신화에서는 흔적이 없거나, 거의 없다. 즉, 그는 아킬레우스의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이른바 안티테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킬레우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를 이해할 필요가 높아 보인다.
아테네와 아폴론이 싸움에 관여하지 않기로 하자, 헬레노스는 헥토르에게 아키이아인들 중 가장 강한 자와 결투를 하라 제안하고 헥토르는 이를 받아들이고 아카이아인들에게 말한다. 이에 제비뽑기로 아이아스가 나서 결투를 하나, 전령들에 의해 중재되고 그들은 서로의 무구를 바꾸고서 돌아간다. 양군은 쉬고서 회의를 한다. 네스토르는 시신들을 화장하고서 무덤을 짓고 방벽을 쌓자 하고, 아가멤논도 이를 받아들인다. 한편 안테노르는 헬레네와 재산까지 더해 주라 하나, 파리스는 헬레네를 주는 것은 거절한다. 그렇게 이 제안과 시신을 화장할 때까지는 전쟁을 멈추자는 말을 아카이아인들에게 말한다. 아카이아인들은 전자는 거절하나 후자는 받아들이고, 그렇게 잠시나마 어색한 평화가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금 전쟁이 일자, 헥토르는 무서운 기세로 날뛰니, 아카이아인들은 도망친다. 헥토르에게 아카이아인들이 제압될까 걱정한 헤라와 아테네는 그들을 도우려 하나, 제우스가 이를 저지한다. 도망친 아가멤논은 아카이아인들에게 철수하자 하나, 디오메데스는 이를 질책하고 네스토르는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자 한다. 이에 아가멤논이 수많은 제물을 제물을 약속하고 브리세이스 또한 돌려주겠다 한다.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가 이를 전하나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사서지 않겠다고 말한다. 포이닉스가 눈물로 호소함에도 소용은 없다. 이를 그들이 아카이아인들에게 전해주니, 그들은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우리끼리 전쟁을 지속하자 하니, 아카이아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아킬레우스는 노여움에 휩싸인다. 이는 아가멤논이 자신의 아내 브리세이스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가멤논이 금은보화를 비롯한 재물과 원인이었던 브리세이스(손도 대지 않았다고 그는 맹세한다), 심지어 자신의 딸까지 주겠다고 했음에도 그는 거절한다. 이는 의아한 일이다. 자신의 명예도 되찾고 수많은 선물을 얻음에도 이를 거절하는 모습은 말이다. 이를 알기 위해선 아킬레우스라는 인물을 알아야만 한다.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그는 어머니 테티스 여신과 아버지 펠레우스의 인간 아들로 태어난다. 어머니는 그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려 하나 펠레우스의 방해로 실패한다. 트로이아를 둔 전쟁이 있을 때 그는 아홉 살이었고 테티스는 그가 전쟁으로 가면 죽을 운명임을 알았기에 여장을 해서 막았으나, 결국 사실이 세어나가 오뒷세우스가 나팔을 불었고 그는 전쟁이 난 줄 알고 무기를 집어들었으나(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이와 다르다. 방물장수로 둔갑한 오뒷세우스가 여러 물건을 늘어 놓았는데, 여자들은 화장품 등에 관심을 보인 반면, 그는 무기에 관심을 보였기에 탄로가 났다) 이를 통해 그를 발견한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로 데려간다(칼카스가 그 없이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테티스는 그가 명예를 얻고 요절하거나, 전쟁을 등지고 장수할 수 있다 알려준다. 그 자신도 명예욕은 있었으나 아가멤논을 위해 싸운 것이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그에게서 명예의 선물을 앗으니, 그가 분노한 것은 빼앗긴 브리세이스가 아닌, 잃어버린 세월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아직까지도 노여움을 품는다. 그는 더 이상 남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아가멤논의 개인주의가 퍼져가 그에게 도달한 것이다. 즉, 그의 찐따성이 분노를 일으킨 것이 아닌, 분노에 의해 그의 찐따성이 발현한 것이 그의 행보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답변일 것이다.
야밤에 디오메데스와 오뒷세우스는 정찰을 나갔다 큰 수확을 거두고 돌아온다. 새벽이 찾아오고 그들은 다시 전투를 벌인다. 처음엔 아가멤논이 트로이아인들을 학살했으나, 제우스는 이리스를 시켜 아가멤논이 상처를 입어 퇴각하면 헥토르에게 밤이 찾아올 때까지는 살육할 수 있게 해주겠다 전한다. 코온이 그를 상처 입혀 퇴각하자, 헥토르는 살육하기 시작한다. 디오메데스와 오뒷세우스가 그를 막으려 하나, 파리스가 디오메데스의 발을 맞추니, 그는 전장에서 물러난다. 오뒷세우스가 홀로 남자 아이아스가 그를 도우러 가, 그를 전장에서 떨어지게 한다. 한편 파리스는 의사 마카온을 맞췄고, 네스토르는 그를 데리고 퇴각한다. 아이아스 또한 배들이 걱정되어 물러나면서도 싸운다. 그를 도우러 에우뤼퓔로스가 오나 파리스에게 맞는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퇴각하는 마카온을 보고 그가 맞는지 확인하라며 파트로클로스에게 시킨다. 파트로클로스는 네스토르를 만난다. 네스토르는 그의 아버지를 언급하며 그가 아킬레우스를 조언하는 위치임을 상기시킨다. 노인은 그가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길 바라나 불가하다면 그라도 나서달라 말한다. 그는 에우뤼퓔로스마저 다친 것을 보고 심란해한다. 한편 풀뤼다마스는 전차를 놓고 헥토르를 중심으로 진격하자 하고, 헥토르 또한 이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헥토르 일행을 제외한 트로이아인들이 진격하나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으니, 독수리 뱀을 쥐고 왼쪽으로 날아왔으나 뱀이 물어 독수리는 뱀을 놓고 갔기 때문이다. 풀뤼다마스는 이를 보며 실리를 얻지 못할 테니 퇴각하자 하나 헥토르는 이를 거절하고 진격한다. 아이아스는 이를 방어한다. 한편 제우스가 한눈판 사이 포세이돈은 아카이아인들을 도운다. 헤라는 포세이돈을 돕기 위해 아프로디테를 속여 애욕을 일으키는 띠를 받고 휘프노스에게 아내를 약속해 끌어들인 뒤, 제우스 앞에 나타난다. 제우스는 욕정에 휩싸여 헤라와 사랑을 나눈 뒤, 휘프노스에 의해 잠에 든다. 그 사이 아카이아인들은 반격하고 헥토르는 아이아스에 의해 중상을 입는다. 그러나 제우스는 잠에서 깨고 헤라에게 화를 내나 헤라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다. 제우스는 아폴론을 불러 헥토르를 회복시키라 하고 자신의 계획을 알린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를 죽일 것이고, 아킬레우스는 분노해 헥토르를 죽일 것이며 그때까지는 누구도 다나오스인들을 도울 수 없을 것이라고. 포세이돈은 이에 반발하나 결국 돌아간다. 회복한 헥토르는 수많은 다나오스인들을 죽인 뒤, 배에 불을 붙이려는 그를 아이아스가 막아 본다. 이에 파트로클로스는 눈물을 흘리며 아킬레우스에게 참전해 달라 말하며 혹은 자기라도 참전하게 허락해 달라 간청한다. 그는 전자는 거절하나 후자는 허락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파트로클로스가 참전하자 사르페돈을 죽이는 등의 활약을 한다. 그러나 아폴론이 그를 젼차에서 넘어트려 에우포르보스가 그를 찌르고 헥토르가 그를 죽인다. 그는 죽기 전 헥토르에게 말한다.
내 너에게 또 하나를 말해주리니, 너는 이것을 헤아림 속에 새겨
넣어두어라. 단언하건대, 이제 너 자신도 그리 오래 이 땅을 딛지는
못하리라. 이미 너의 곁에는 죽음이, 강력한 운명이 다가와 서 있다.
아이아코스의 흠잡을 데 없는 손자 아킬레우스의 두 손에 제압당할 테니까.
헥토르는 이에 대답한다.
파트로클로스, 어째서 너는 지금 내게 그렇게 철저한 파멸을
예고하느냐? 누가 알겠느냐, 머릿결도 고운 테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가
내 창에 먼저 쓰러져 그 목숨을 잃게 될지!
헥토르는 그의 무장을 벗기고 시신을 능욕하려 하나, 그의 말들이 시신을 데리고 간다.
11권부터 17권의 내용은 가히 헥토르를 위한 것이라 보아도 문제없을 것이다. 여기서의 헥토르는 흡사 쓰러지나 계속해서 일어나는 불굴의 용사 같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헥토르의 또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의 개인성, 즉 찐따성이다. 그는 후에 나오듯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능욕하고 개떼와 새떼의 먹이로 배불리려 한다. 이것은 국가를 위한, 이른바 대의적인 행동인가? 물론 파트로클로스에게 사르페돈 같은 장수들이 많이 죽긴 했다. 그렇기에 헥토르가 그의 시신을 능욕하려 할 때 장수들이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행동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다. 트로이아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의 이런 모습은 아킬레우스적이다. 앞서 보았던 그와는 대조적이다. 그의 이런 모습에 모순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멜빌이 말했듯, 이런 일관성의 부재는 입체감을 만들며 헥토르란 인물의 해석을 넓혀준다. 사실 그간 헥토르의 모습에는 개인성이 있었다. 헥토르가 파리스를 꾸짖는 장면이나 풀뤼다마스의 조언을 거절하는 장면에서 말이다. 전자의 행동에는 합리성이 있었다. 파리스는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니 말이다. 그리고 꾸짖고 나서 그는 파리스를 독려한다. 이런 면모에서 그의 개인적 면모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처음부터 죽여버렸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전쟁의 원인은 헬레네를 돌봐주고 파리스를 격려하는 장면에서 그에게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후자의 행동은 자신의 오만함에 젖어 행한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합리성이 있긴 하다. 제우스가 그에게 승리를 약속했으니까 말이다. 단지 헤라와 포세이돈의 방해만 없었어도 쉬이 이뤄졌을 것이고, 그들의 방해에도 결국은 이뤄졌으니. 그의 모습은 아킬레우스와도 비슷하다. 아킬레우스 또한 자기 사람에게는 따뜻하다. 파트로클로스에게 참전을 허락해주고 그의 무사를 비는 장면과 포이닉스에게 자기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분노에 휩싸인 것도 타당성이 있다.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능욕하려는 것과 후에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끌고 다니는 것은 비슷하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닮은 면이 있다. 즉, 찐따성은 보편적인 속성이라는 것이다. 헥토르는 그간 단지 숨겨왔을 뿐이고 아킬레우스는 드러냈을 뿐이다. 헥토르가 파트로클로스에게 대꾸하는 말에서 그의 오만함과 자신감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아킬레우스를 쓰러트릴 수 있으리라 자부하는 것이다. 제우스는 그에게 연속된 승리를 보였고, 그렇기에 그가 그리 행동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승리가 확정되자 그는 자신의 찐따성을 보인다. 그간 그가 찐따성을 숨긴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위치로 추측할 수 있다. 그는 트로이아의 왕자다. 동시에 트로이아를 지키는 방벽이다. 그는 한 가정의 아버지다. 수많은 여인들의 아버지와 남편, 오라비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다. 그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트로이아 안에서 싸우면 전우들과 여인들의 낯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개인성을 억누르고 계속해서 싸웠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승기가 눈 앞에 보이자 억눌린 개인성이 풀려 그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오만에 의해 개인성은 더욱 날뛰어 찐따성으로 변모한다. 그렇기에 그는 실책을 저지르며 풀뤼다마스의 조언을 거절하고 과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에 그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책임을 지려 아킬레우스를 기다린다. 이렇듯 헥토르는 완벽이란 단어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렇기에 헥토르에게 몰입이 가며 정이 가는 것일 것이다.
양군은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두고 싸운다. 한편, 안틸로코스는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의 전사를 알린다. 아킬레우스는 통곡하고, 그의 통곡에 어머니 테티스가 온다. 그는 자신의 운명에 각오를 다지니, 그녀는 그에게 헤파이스토스의 무구를 주기로 한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이 들것에 뉘어진 것을 보고 따라가는 한편, 헤라는 일몰을 강제한다. 풀뤼다마스는 공성전을 벌일 것을 제안하나 헥토르는 거절한다. 테티스가 찾아오자 헤파이스토스는 은혜(그가 장애를 타고 태어나자 헤라는 그를 내던져 버리나 테티스와 에우뤼노메가 그를 구해주고 길렀다)를 갚으려 하니, 그녀는 단명하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무구를 만들어달라 하고 헤파이스토스는 그에게 죽음을 피하는 게 아닌 무구만을 줄 수 있음에 한탄하며 제작한다. 테티스는 무구를 받고서 아킬레우스에게 건네준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서둘리 화해하고 선물을 받으나 무엇도 먹지 않는다. 한편 제우스는 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 한다.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부추겨 아킬레우스와 싸우게 한다. 아이네이아스의 창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뚫지 못했고 아킬레우스의 창 또한 아이네이아스가 피한다. 포세이돈은 아이네이아스를 대피시키고,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인들을 죽인다. 아폴론의 말에 따라 사람들과 섞여 있던 헥토르는 이를 두고 보지 못해 나선다. 아킬레우스에게서 아폴론이 그를 구해주니, 아킬레우스는 그 대신 다른 트로이아인들을 학살한다. 아킬레우스는 그들의 간청에도 죽이고 더 나아가 스카만드로스강을 욕보이니, 강은 그에게 진노를 품고서 죽이려 한다. 그러나 헤라가 헤파이스토스를 보내 강을 끓게 하고, 이에 강은 항복한다. 아테네와 아레스가 싸워 아테네가 이기고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싸우려 하나 아폴론이 기권하자 아르테미스는 분노하나, 그런 그녀를 헤라가 제압한다. 레토와 헤르메스가 싸우나 헤르메스가 기권한다. 성벽이 열리고 트로이아인들이 도망친다. 아게노르는 멀리서 오는 아킬레우스를 보고 겁을 먹으나 기백을 세운다. 아킬레우스는 그를 죽이려 하나, 아폴론이 그로 변장하여 따돌린다. 트로이아인들이 도시로 들어서나 헥토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류에도 밖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나타나자 그는 두려워 도망치고 아킬레우스는 그를 쫓는다. 추격전이 끝나지 않자 아테네는 데이포보스의 모습으로 헥토르와 함께 싸우겠다고 하자 헥토르는 마음을 부여잡고 아킬레우스와 맞닥뜨린다. 그는 서로의 시신을 욕보이지 말자 하나 아킬레우스는 거절한다. 아킬레우스가 날린 창을 피하고 자신의 창을 던지나 빗나간다. 이에 데이포보스에게 창을 달라 하나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헥토르는 당황하나 자신의 칼로 덤비나 아킬레우스의 창이 그를 꿰뚫는다. 헥토르는 자신의 시신을 트로이아에 돌려달라 간청하나 아킬레우스는 거절하며 개떼와 새떼의 먹이가 될 것이라 말한다. 헥토르는 대답한다.
그래, 나 이제 너를 잘 알겠고, 무슨 일이 닥칠지 보이는구나.
너를 설득할 순 없는 일이었다. 네 횡격막에 도사린 기백은 진정 무쇠로
만들어졌으니까. 그러나 네 아무리 대단하기로서니, 파리스가, 그리고
포이보스 아폴론께서 스카이아이 문에서 너를 죽이게 될 그날, 널 향해
신들이 품은 분노의 탓이 내가 되지는 않도록, 이제 헤아려보아라.
헥토르가 이리 말하고 죽자 아킬레우스가 대답한다.
죽어버려라! 내 죽음이라면, 제우스와 죽음을 모르는 다른 신들이
이루고자 원할 때, 언제라도 내 받아낼 테니까!
아킬레우스는 그를 죽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그에게서 무장을 벗기고 시신을 전차에 매단 채 끌고 다닌다. 이 모습에 부모는 울부짖고 트로이아인들이 통곡한다. 아내는 그를 기다리며 목욕물을 받고 있었으나 통곡에 놀라 나오니, 그의 모습을 보고 실신한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남은 아이와 자신의 처지에 눈물을 흘린다. 한편, 아킬레우스는 돌아와 모두들 자는 사이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신음하다 잠든다. 잠든 그에게 파트로클로스가 다가오니 자신을 그와 같은 묘에 넣어달라는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반드시 그러겠다 말하며 그를 안으려 하나 그의 손아귀에는 무엇도 남지 않는다. 아가멤논은 그를 화장하기 위해 나무를 가져오도록 했고 무더기로 쌓아 올리니,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머리를 자른다. 그리고 짐승들과 트로이아인 12명을 그곳에 넣었다. 한편, 헥토르의 시신은 아폴론과 아프로디테가 지켜주고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보아레스와 제퓌로스에게 기도해 불이 타도록 하였다. 파트로클로스의 시신을 수습한 뒤 아킬레우스는 그들을 위해 대회를 연다. 대회가 끝난 뒤 모두 잠을 자나 아킬레우스는 잠에 들지 못한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묶어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을 둘러 도나, 아폴론이 헥토르의 시신을 지켜주었다. 제우스는 시신을 프리아모스에게 선물을 받고 돌려주라 한다. 테티스는 몸값을 받고 돌려주라 하고, 아킬레우스는 누구든 가져가라 한다. 이리스는 절망하고 있던 프리아모스에게 나타난다. 그녀는 나이 지긋한 전령과 그만 아킬레우스에게로 가 몸값을 주고 받아오라 한다. 프리아모스가 이를 헤카베에게 말하자 그녀는 반발한다. 그러나 프리아모스는 체념한 채로 시신만 받아 올 수 있다면 아킬레우스에게 죽어도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는 제물을 담고서 가기 전에 제우스에게 길조를 보여달라 하니, 제우스는 독수리를 보인다. 그는 가는 도중 변장한 헤르메스를 만나고 동행한다. 헤르메스가 정체를 밝히고 그를 몰래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도달하게 한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의 무릎을 붙잡고 두 손에 입맞추며 얘기한다.
내가 지금 아카이아인들의 배들까지 온 것도 그 애 때문이오, 그대에게서
그 애를 돌려받고 싶어서. 몸값은 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져왔으니
제발 신들을 두려워하시구려, 아킬레우스, 부디 그대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도 가엽게 여겨주오. 아니 더한 연민이라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바로 나라오. 이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도 감히 하지 못할 일을,
내 새끼들을 죽인 사람의 입가에 손을 뻗어가며 내 무릅썼으니.
아킬레우스는 이 말에 제 전우 파트로클로스와 제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리고 운다. 그들은 같이 밥을 먹으며 11일 동안 쉬고 그 후에 다시 전쟁을 벌이자 약속하며 잠에 들었으나, 헤르메스는 프리아모스를 깨워 트로이아로 가게 하였고, 트로이아인들은 울으며 그를 추억한 뒤 장례식을 준비해 연다. 이렇게 기나긴 서사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에서 시작해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노여움을 품어 전쟁에 나서지 않고 자기 연민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그는 노여움을 거둔다. 거둔다는 표현보다는 상관이 없어졌다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가 진정으로 노여움을 거두었다면 제물과 브리세이스를 받은 것에 기뻐했을 테니. 그는 그것들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전쟁과 그 속에서 헥토르를 죽이는 것이다. 불이 나무 한 그루를 태울 때 우리는 신경 쓰나 숲을 태울 때는 나무 한 그루에 신경 쓸 수 없다. 그처럼 그의 노여움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그의 개인성도 위축되는 것이 아닌 더욱더 거세게 날뛰어 끝내 인간성마저도 잡아먹는다. 그에게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그가 전에는 적군을 포로로 삼는 등의 행위를 했지만 그가 다시금 나설 때는 모두 죽여버린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그의 노여움의 대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헥토르인가? 그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가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능욕함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파트로클로스 때문인가? 그렇다면 그가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시신도 같은 자리에 넣겠다 약속까지 하고서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묶고서 끌고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뤄지지 않으면 울고불고 떼를 쓴다. 아킬레우스의 행동은 이와 다를 바 없다. 그의 분노는 운명을 탓하고 있다.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결국 죽는다. 파트로클로스도 헥토르도 그리고 아킬레우스도 죽을 운명이다. 그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장례까지 치뤘지만 그의 죽음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이는 그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트로이아인들을 죽일 떄 그는 살려달라 간청하는 그들을 비웃으며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파트로클로스도 죽었다 말한다. 일리아스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이런 문장이 있다. 제 운명을 통곡하고서. 아킬레우스가 울부짖은 까닭은 운명이다. 아킬레우스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헥토르를 죽였으나 아직 완전히는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파트로클로스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그렇기에 그의 개인적 양상은 심화되어 이런 기이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헥토르 또한 제 운명을 안다.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것도, 자신의 죽음도, 제 처자식의 비극도 예감한다. 그의 독백에서 그의 두려움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동시에 그는 희망을 품는다. 자신의 운명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그가 밖에서 아킬레우스를 기다린 것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킬레우스가 막상 나타나자 그는 겁을 먹어 도망친다. 그가 다시 아킬레우스 앞에 나설 때 그의 옆에는 데이포보스 모습의 아테네가 있었다. 그가 헥토르가 가장 아낀 형제라는 점에서 이는 의미심장하다. 그가 지켜야 했던 것 중 가족이 있었다는 걸 보면 말이다. 마침내 그가 속아 죽었을 때 그는 자신의 소박한 소망을 말하나 아킬레우스가 거절함으로써 신들과 인간 앞에 버려진 처지로 능욕까지 당하고, 그의 가족 앞에 드러날 때 우리는 슬퍼한다. 이는 우리가 헥토르에게 몰입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이 순간을 위해 헥토르의 가족들과 그의 독백으로 우리를 몰입시켰던 것이다. 포는 그의 작법의 철학에서 디킨스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케일럽 윌리엄스를 고드윈이 쓸 때 그가 그물에 걸리는 장면으로 2권을 쓰고 그 후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 1권을 쓴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쓴 이유에 대해서 포는 대단원을 먼저 씀으로써 인과관계를 확실히 하고 이야기가 필수불가결의 결말로 향한다는 것이다. 호메로스가 이 대목을 먼저 쓴 것인지는 모른다. 이는 독자의 관심사도 아닐 뿐더러 자칫 과거의 호메로스 분석론자들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의 헥토르가 아스튀아낙스를 안는 장면과 헥토르의 독백은 이 장면을 위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몰입을 쉽게 하여 그를 하나의 인물이 아닌 인간으로 만들어 우리 앞에 내놓았고 그를 죽여 이야기의 극적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헥토르의 시신의 대우에 크나큰 비애, 혹은 분노를 품고 아킬레우스가 시신을 돌려주기를 바라며 후에 신들이 그러자고 할 때 개연성의 부재가 아닌 당연함을 느낀다. 이로써 이야기는 포가 말했던 필수불가결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호메로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받아오는 역할로 프리아모스를 뽑는다. 아킬레우스는 앞서 신들의 명령 때문에 누가 오든 시신을 주겠다고 하나 노여움은 여전하다. 그의 개인성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앞에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가 오자 그의 개인성은 흔들린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낀 파트로클로스를 잃은 슬픔을 혼자서만 겪는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가 장례식에서 사람들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도 자신이 가장 아낀 아들인 헥토르의 죽음을 겪는다. 그리고 프리아모스는 그에게 펠레우스를 생각하라 한다. 펠레우스도 매일 돌아오지 않을 자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와 비슷한, 혹은 더하면 더한 불행을 겪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찾아와 아들을 죽인 손에 입맞춤까지 하며 간청한다. 운명은 그에게 잔혹한 것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도 잔혹한 것을 부여했다. 그의 시선은 확장되어 다른 이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러나 죽음 뒤에 남겨진다는 것은 보편적이다. 그의 개인성은 허물어져 프리아모스를 공감하며 마침내 자신과 파트로클로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운다. 그의 분노를 통한 개인성을 허문 것은 수많은 선물들도 명예도 아니다. 그저 한 아버지의 눈물 어린 간청이었을 뿐이다. 아킬레우스는 그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고 화합한다. 그는 마침내 남을 위해 행동한다.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장례식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고 그동안은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장례식이기도 하다. 그는 후에 헥토르가 말했듯 파리스의 화살에 죽으니까. 그는 자신이 이제 죽을 것임을 아나 거기에 분노하지는 않는다. 그는 운명을 받아들였다. 아킬레우스의 노여움으로 시작해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끝나는 일리아스는 분노 어린 찐따성에서 연민 어린 인간성의 회복과 화합으로의 기나긴 여정일 것이다.
어떰? 월간 독갤에 실릴 수 있음? 별로면 지금 읽던 소피스트 단편 선집 때려치우고 아이스퀼로스 비극이나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으로 정상화를 하겠음
버거는 내 거다
아킬레우스 햄 좆찐따이긴 해요... 그래서 막판 각성 했으니까
사실 나도 원래 계획했던 건 일리아스로 찐따 드립치는 감상문이었는데 쓰다보니 막혀서 포기함. 쓰느라 힘들었겠구만.
그의 분노를 통한 개인성을 허문 것은 수많은 선물들도 멍예도 아니다. 그저 한 아버지의 눈물 어린 간청이었을 뿐이다 <— 문장 맛있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