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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확률로 알바한테 잘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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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유는 늘 말썽꾼이었다. 생애부터 순탄치 않았던 그는 온갖 금기와 위반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불경스럽거나 추잡스러운 행위와 신성하고 고결한 행위 사이의 떼어놓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포착하고자 했고, 신비주의적인 관점에서 모든 생명 너머의 힘을 파악하려 했다. 개중에서도 에로티즘, 곧 성적인 요소는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인데 그 집착의 원인을 바타유의 개인사에서도, 사상에서도, 저작의 재료에서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에로티즘은 너무 깊은 곳에서 우리 삶의 본질을 차지하고 있으니 바타유의 집착이 꼭 이상한 것은 아니리라. 바타유가 그런 일반적인 방식으로 에로티즘을 보느냐는 또 전혀 다른 문제 같지만 말이다.
<에로티즘>은 유성생식을 논하기도 전에 먼저 무성생식, 개체 A가 A'과 A''로 쪼개지는 순간을 생각해보도록 요구한다. 다른 이와 만나 자신과 다른 존재를 낳는 유성생식과 달리 폐쇄적인 방식이라고 여겨지는 무성생식조차 번식의 그 순간, 기존의 개체는 죽어 없어지고 기존과는 다른 두 개체가 나올 뿐이라며. 생명에게 있어서 생식이란 기본적으로 죽음이다. 온갖 힘을 끌어모아 생장하며 넘쳐나는 과잉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죽음. 엑스터시는 언젠가 죽을 서로 단절된 불연속적인 생명이 짧은 죽음을 체험하며 죽음 이후 이어질 연속성을 체험해보는 것에 가까우며 그 아주 가냘픈 체험에 홀리듯 사람들은 에로티즘을 찾아 헤맨다.
연속성이야말로 바타유가 생명 너머에서 엿보고자 하는 것인데, 화이트헤드가 온갖 개체의 생성과 변화 그 자체에 주목해 변화를 만드는 힘 자체를 신으로 본 것과 유사하다. 온갖 생명이 자신의 삶의 궤적으로 그려나가는 굵고 거대한 연속되는 생명력의 줄기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엑스터시의 순간에 잠시나마 자신이 속한 이 거대한 연속성을 느끼다가 아이를 낳는 순간 극대점을 찍고 그 뒤로 서서히 내려가며 죽어 연속성에 다시 매몰된다. 그러나 육신과 육신이 이끌리는 이 육체의 에로티즘, 탄생의 이유를 느끼며 경험하는 마음의 에로티즘 너머에는 연속성 자체를 사랑하는 신성의 에로티즘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타유는 신성과 금기 사이의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주목한다. 신성한 것은 금기의 형성과 함께 생겨나는 것인데, 사람을 통제하고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용성을 위해 생겨난 금기는 그 생성과 동시에 신성과 세속 사이의 선을 가른다. 금기의 이유, 금기를 판단하는 대상, 그 밖의 금기와 관련된 것에서 신성이 태어나며 이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세속적인 노동의 사회가 펼쳐진다. 그러나 금기는 늘 위반 가능성을 품는다. 금기의 위반은 금기를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며, 사람들은 금기를 위반하고 싶은 내적 충동을 안고 살다가, 그 충동이 폭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위반의 축제, 카니발.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고 모든 금기가 위반되며 여태 노동으로 쌓은 과잉된 축적물을 미친듯이 소모해대는 시간. 카니발은 늘 신성한 것이었으며 사람들이 미친듯이 먹고 마시며 불태울 때 느끼는 연속성은 엄숙한 종교 제의에서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명을 희생시켜 느끼는 연속성-불연속적 삶이 죽음으로 연속성과 이어지는 걸 목도하는 순간1)-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황홀한 신비체험은 황홀한 절정과 맞닿아 있으며 모든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근본적 금기인 성-특히 근친상간 금기-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신성의 에로티즘으로 나아가는 길을 암시하며 열어준다.
물론 그 길은 결코 깔끔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은 것이며, 삶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난다는 말처럼 역겹고 기독교의 신이 사탄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비도덕적이다. 하나의 불연속적으로 닫혀 있던 깔끔하고 예쁜 여자가 나신으로 열린 상태가 된다는 것, 그 깨끗한 것을 더럽힌다는 금기 위반 감각과 함께하는 것은 음부의 역겨움이다. 역겹게 느껴지는 온갖 생리적인 요소가 실제 생명 출산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생각할수록 그 역겨움은 커지며, 발가벗은 여자와 교합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신상을 품은 채 역겨운 똥덩어리에 손을 박아넣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의 위생과 도덕에 대한 집착은 이 모든 것들을 고갈시키고 있다.
어쨌든 에로티즘은 점점 우리의 몫이 아니게 되고 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서서히 그 증가세가 꺾여 줄어들기 시작할 예정이고, 에로티즘에 대한 칭송은 대체로 실제 육체보다는 최대한 가공된 요소를 논하는 추상적인2) 것에 가까워졌으며, 우리가 낳을 그 어떤 사람보다 지구의 온갖 자원을 갈아넣어 교육시키고 있는 인공지능이 훨씬 나을 것도 슬슬 분명하다. 늙은 인간이 그 뒤에 나올 인간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바타유식 소모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종 역시 그럴 시간이 찾아온 것이리라. 그래서 바타유의 진단에 공감하면서도 그 이상으로 나아갈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굳이 이를 억지로 바꿀 이유가 또 어딨을까?3) 우리에겐 이제 딱히 금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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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V, 인터넷 등의 매체에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또렷하게, 이 폭력의 순간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이 TV 뉴스로 마치 게임처럼 보도된다며 탄식을 흘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는 예기치 못한 대규모 사고, 총기난사나 칼부림, 그 밖의 다양한 죽음을 영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꺼져가는 생명과의 너무나 먼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에 비해 과도하게 넘쳐나는 이미지로 인해 이 폭력의 스펙터클은 본디 전달되었어야 할 것보다 너무나 빈약해졌고, 단지 그런 폭력적 감각에 대한 수용성을 낮추는 포르노로서의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폭력의 현장이라는 것이 원래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자. 스피노자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카니발스러운 광경이란, 폭도가 도시의 정치인을 붙잡아 죽인 뒤 그 시체의 일부를 사람들이 서로 나눠먹던 모습이었다. 사실 그리 특이하지도 않다.
2) 인터넷 시대에 힘입어 부상한 성 산업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알 수 있다. 자기들의 섹스 영상을 직접 찍어 검색하기 쉬운 태그를 잔뜩 선정해 올리거나, 이상적인 젊음을 최대한 화려하게 꾸며 온세계에 송출하다 빠르게 다음 젊음을 선보이거나, 애초에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듯 가상 캐릭터를 내세워 유사 연애로 돈을 끌어내거나 하는 일. (심지어 마지막의 원조격인 일본에서는 실제로 이를 유사-접대업으로 취급하는 플랫폼까지 있다) 이 모두에서 엿볼 수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가상성의 증가 추세다. 코로나는 이 현실로부터 가상으로 탈주하는 탈-육신 추세에 박차를 가했고, 해외에서 K-POP이 가지는 기묘할 정도로 강력해진 위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을 이해해야 한다. 생식의 불모성 이상으로, 우리는 상상 속의 생식조차 점차 불모성이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3) 별개로 바타유의 신비주의는 영 함께 하기 힘든 요소다. 바타유 본인은 자본주의의 붕괴라는 진단 외에 딱히 종말론적인 결론을 내린 바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바타유와 비슷한 결의 신비주의적 사상가-슈펭글러, 에볼라 등-가 현대 사회의 종말에 대한 주요 인사로 꼽힌다는 게 참 껄끄러운 구석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인류 집단을 아주 작은 집단들로 나눠 이 모든 집단에서 서로 다른 방식을 시험해보고 개중 가장 나은 것을 적용하며 세상을 집단 실험실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그래서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가장 적합한 장소로서 중국을 기대하는-닉 랜드조차 그 출발점은 참 기묘하기 짝이 없는 카발라 신비주의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섹스
바타유가 벤야민이 남긴 글들 도서관에 보관해서 지켜냈어 좋은 사람이야
그건 진짜 생각도 못했네 프랑스어로 있던 건가
바타유가 파리 도서관 직원인가 사서인가 어쨋든 관련이 있고 벤야민은 파리에서 글 쓸 때 파리도서관 죽돌이였는데 바타유랑도 친분이 있었다고 함 그래서 벤야민이 파리에서 도망갈때 맡기고 감 그리고 파리 도서관에서 짱박고 못찾은 벤야민 원고의 새로운 버전을 조르주 아감벤이 발견해서 발표하기도 함
집에있는데 읽어봐야겠네 번역이 워낙안좋다들었는데..그 씨뻘건책맞음?
맞긴 한데 번역이 좋다곤 못하겠음 적당히 읽을만은 함
???: 이름이 뭐에유? ???: 바타이유 독하하
??
참사가 포르노로써 기능하게 됐다는 건 공감 가능 이야기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