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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2권에서는 전쟁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만 귀족들의 일상이 나오는데, 포성만 없을 뿐 서로의 기싸움이 전쟁터나 다름없다. 심지어 서로 권총 결투를 하기도 하니 안전하다고 하기도 민망한 노릇이다. 새삼 이기심이 있는 모든 곳이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전장을 떠난 주역들이 각자 사회라는 은밀한 전장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무엇을 배우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이들의 인생관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자문을 많이 던졌다.


똑같이 전장에서 부상을 당했음에도 니콜라이에게는 아직 명예욕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고, 안드레이는 아예 세상사에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 당장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니콜라이에게는 돌로호프에게 뜯긴 돈, 한껏 기울고 있는 가세 등의 사정이 있다. 안드레이는 마음이 극히 혼란스럽기는 해도 사는 데 지장이 있는 상태는 아니다. 다만 지금 당장의 전망은 니콜라이 쪽이 좋아 보인다. 니콜라이는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흔들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행복은 자기 손으로 쥐어야 한다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안드레이는 행복을 자신이 아닌 나타샤로부터 찾으려다 이내 내려놓았다. 물론 꼬장꼬장한 아버지의 방해공작이 있었고, 사건 자체는 전적으로 나타샤의 잘못이다. 다만 안드레이는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자신의 권리를 쉽게 내려놓는다. 그 한없이 가벼운 로맨스가 안드레이의 모든 면모를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태도를 견지한다면 안드레이는 앞으로 어떤 형태의 행복도 손에 넣지 못할 것이다. 과욕이 해롭다고들 말하지만 손에 쥔 것을 그냥 놓아버리는 것도 바보짓이다.


한편 나타샤에게는 정말 크게 실망했다. 1권에서 처음 만난 나타샤는 철은 없어도 주변을 밝게 만드는 아이였다.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모든 존재로부터 사랑을 돌려받는 이상적인 소녀였다. 그런데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 즉 쉽게 사랑한다는 것이 그렇게 큰 폭풍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소냐와 말싸움을 할 때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타샤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풍기는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즉 사람과 만날 때 사람 자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당장 내뿜는 자극에 끌리는 것이다. 이런 여인이 특히 위하다. 혼자만 파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이성마저 결여된 순수함은 사람을 욕망의 노예로 만든다는 점을 나타샤를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2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피예르였다. 피예르는 1권에서 탐탁지 않은 결혼을 하고 그 대가를 철저히 치르고 있다. 하지만 피예르는 그렇게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것이다. 처음에 피예르는 프리메이슨 활동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처음에는 약간 오해를 해서 자기 자신이 아닌 프리메이슨 단체 전체를 위해 헌신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어 원래의 목적대로 자신을 정화하고 완성하기 위해 활동하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예르의 삶이 앞으로는 좀 순탄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피예르는 감수성이 내 생각보다 훨씬 예민했다.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의 교리와 별개로 그가 믿는 신념, 가령 사후세계보다도 당장의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차이들을 점점 더 많이 인식하게 되자 프리메이슨 활동으로부터 보람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한때 피예르는 프리메이슨에 심취해서 안드레이가 감화하기까지 했다. 맹목적으로 지역 사회에 헌신하며 자아를 버리려던 안드레이에게 "만약 하느님이 있고 내세가 있다면, 진리도 있고 선도 있으며, 인간의 최고 행복은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설득할 때는 나도 함께 그의 언변에 경도됐다. 다만 그렇게 말하던 자신의 낙원을 내심 부정하는 꼴이 되니, 감동을 많이 투자한 만큼 실망이 더 크게 돌아왔다. 결국 피예르는 방탕한 생활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 그는 갱생할 여지가 있다. 아내가 아니기는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정의로운 일을 분간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에 심취한 동안 그는 자신을 잘 통제했다. 비슷한 강도의 동기가 있다면 다시 그는 바른길로 돌아올 것이다.


아무튼 주역들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고비가 깊어서 순탄하게 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아무튼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 자신은 정말 극적인 사건을 겪고 있지만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은 극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다. 나타샤가 커다란 사고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녀의 순수한 노랫소리가 많은 남자들에게 행복을 주었다. 특히 안드레이가 막연한 자선 활동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정한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었다. 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에 있던 것이다. "인생이, 기쁨으로 충만한 모든 인생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데, 나는 이 막히고 비좁은 틀 안에서 무엇을 두려워하고 조바심내고 있을까?"라고 안드레이는 자문한다. 옳은 질문이다. 로스토프 집안도 사정은 한껏 불행하지만 집에서 그들끼리 바깥사람에 대한 복잡한 이해관계나 치정 관계를 잊고 노래를 부를 때는 철저히 행복했다. 피예르도 깊은 의심 없이 당장 끌리는 신앙을 철저히 연구할 때 가장 멋졌다. 이 모든 사건들은 극적인 형태로 시작되지 않았다. 각자가 일상 속에서 마주한 찻잔 속의 폭풍이 극적인 깨달음을 낳았을 뿐이다.


결국 행복은 전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 속에 있는데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전쟁과 평화」 2권을 통해, 나는 행복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본인의 힘으로 행복해지려는 의지'와 '주어진 것들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일상을 지속할 만한 보람찬 활동을 찾아 몸을 던지며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좋은 일을 실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완성시키는 동시에 타인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행복의 본모습이다. 전쟁터에서 영웅이 되는 것도 물론 행복한 일이지만, 포탄이 떨어지지 않는 집에서도 마음을 굳게 먹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한 순간을 붙잡아라. 사랑받고, 사랑하라! 이것만이 이 세상에서 진실이며, 그 밖의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이것만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이다."


이런 신조가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나도 사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기 때문에 굳이 '- 것 같다'라고 문장을 끝맺었다. 행복이 너무 잘 숨어서 당장의 불행을 가릴 수 없다면, 행복이라는 선물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파멸할 수 있다. 이는 가혹한 처사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경험들은 자아를 단련시킨다. 결국 인생이란 자기 한 명의 뜻이 아니라 더 많은, 더 큰 뜻들에 의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 뜻들에게 치이며 상처를 입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점점 내려놓으며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연습을 한다면, 분명 그 연습에는 의미가 있다. 연습 끝에 어떤 충격에도 견고해지는 마음을 갖게 되어, 어떤 풍파든 버틸 수 있다. 언뜻 보면 결국 세상에 데여 싸우기를 포기한 절망스러운 행복으로 보이기도 한다. 톨스토이도 실제로 그런 식의 말을 한다. 하지만 삶에 마음이 풍화되다가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면, 되도록 일찍 뿌리를 내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결국 체념은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고안해내는 삶의 방식이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고, 그저 나쁜 일을 하거나 조바심 내거나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살아내면 될 뿐이다." 물론 삶이 위기에 처해있으면 극복하기 위해 조바심을 억지로라도 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처한 위기가 정말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인지 차분히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일희일비하지도 말고 동요하지도 말며, 짐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최선을 다해 걷겠다고 마음먹는다면, 결국 길은 트이게 될 것이다. 설령 실제로 인생이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각박할지라도 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곧 주역들은 전장으로 돌아갈 것 같다. 2권 말미에 '1812'라는 익숙한 숫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덕분에 그 숫자를 기억하고 있다. 2권에서 주역들이 고생길을 걷는 동안 프랑스도 러시아도 서로 매를 벌고 있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한쪽은 믿기지 않을 만큼 굽신대고 다른 한쪽은 믿기지 않을 만큼 그걸 당연히 여기고 있어서, 1권에서의 숭고한 희생들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니 씁쓸해졌다. 앞으로 닥쳐올 위기에서 주역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세계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전쟁사를 잘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로운 것 같다. 최종 결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기대를 계속 품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기대감을 안고 내일부터 3권에 바로 돌입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