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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트 양식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칸초니에레』
라우라가 페트라르카를 밀어내는 듯한 모습의 삽화가 그려져 있다. 해당 그림은 이 책의 주제의식을 적절히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페트라르카가 1327년부터 일생동안 작성한 서정시 모음집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시선 정도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들은 묶어 수록될 만한 이유가 있다.
작품 전체에 대한 서문 역할을 하는 제1번 소네트를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 시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소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소재란 바로 페트라르카가 열렬히 사모하던 여인, 라우라(Laura)이다. 역주에서는 이 라우라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추정하고 있는데, 아주 흥미롭다. 역자에 따르면 위그 드 사드의 부인인 로르 드 노베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라우라의 부군인 위그 드 사드는『소돔의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로 유명한 그 사드 후작(알퐁스 드 사드)의 선조라고 한다. 왜 라우라와 그 부군이 모두 프랑스 귀족인가? 그 당시 페트라르카는 교황청이 있는 프랑스 아비뇽(본래 교황청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었으나 아비뇽 유수 이후로 옮겨지게 된다)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이 라우라는 단테로 치면 베아트리체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그러했듯이 페트라르카도 죽을 때까지 라우라를 사랑했다. 그리고 정확히 베아트리체가 단테에게 그러했듯이 라우라도 페트라르카의 사랑을 받아들인 적은 없다. 그의 작품 내에서도 계속해서 짝사랑의 씁쓸함이 묘사된다. 베아트리체와 라우라가 모두 요절했다는 사실 또한 공통점이다. 베아트리체는 25세에, 라우라는 38세에 사망했다.
사실 단테와 페트라르카 간의 인연도 없지 않다. 페트라르카의 아버지가 단테와 함께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정치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페트라르카는 이 시들을 전부 토스카나 방언으로 남겼는데, 이 역시 단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70번 소네트에서는 단테가 남긴 시의 한 구절을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답게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인용도 돋보인다. 제3번 소네트에서는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를 인용하고 있다. 또한 제23번 칸초네에서는 라우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오비디우스의『변신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대입하고 있다. 이외에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헬리콘(예술의 신인 무사 여신들이 거주한다는 산. 헤시오도스의『신들의 계보』에도 등장함.) 등이 빈번하게 언급된다. 옛 로마의 권위가 되살아나길 기원하는 작품도 있다(제53번 칸초네.) 당대의 분열된 이탈리아의 상황을 한탄하고 로마의 영광을 찾는 것 역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공통점이다. 이는 단테, 마키아벨리 같은 이들의 저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이 53번 칸초네에서 운명(Fortuna, 행운이나 요행으로 해석되기도 함.)은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와 거의 유사한 용례로 쓰이고 있다. 이외에도 102번, 114번 소네트에서 같은 용례를 보여준다. 128번 칸초네는 마키아벨리가『군주론』의 결구로 인용한 바로 그 시이다. 이 시는 당대 이탈리아에서 게르만 용병 위주로 벌어지던 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군주론』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또한 역량(Vertú, 덕성, 재능 등의 의미로도 쓰임.)이라는 용어 역시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놓치지 않는 점이 참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답다. 그는 그리스-로마 고전만큼이나 성경에 대한 비유도 자주 사용한다. 또 교황청이 로마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시도 실려있으며, 십자군의 재출병을 기대하는 시, 부패한 교회와 그 성원들을 매섭게 비판하는 시, 성모 마리아 찬가 등도 담겼다(제27번 소네트, 제28번 칸초네, 제136번 소네트, 제137번 소네트, 제138번 소네트, 제361~365번 소네트, 제366번 칸초네.)
또 향후에 출간된 그의 산문집들에서 보이는 목가적 성향을 내비치는 부분도 있으며(제99번 소네트.), 대표적인 수사학적 기법인 열거법을 보여주는 부분도 있다(제100번 소네트.)
표현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의외로 구체적인 표현법들은 조선시대 연가들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일부러 극단적인 대조법이나 과장법을 사용한 표현들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정말 없음직한 일이 일어날 때 나는 라우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것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와 같은 식이다. 당연히 그 표현의 의도도 같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어떤 문화권의 연애시에서든 '강렬한 사랑'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이야기이다.
인상적이었던 시는 제9번 소네트, 제11번 발라드 등을 포함해 여럿 있었다. 뒤에 인용되는 시들은 모두 사랑을 거절당한 페트라르카의 슬픔과 연관되어 있다. '그녀', '그대', '여인', '내가 사랑하게 이끈 것', '달콤한 적' 등은 모두 라우라를 가리킨다. 11번 발라드에서 "아모르가 (...) 뒤부터" 이후는 페트라르카가 라우라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로부터의 반응을 보여준다. 참고로 '아모르'는 그 자체로 사랑이라는 뜻이지만, 그의 시에서는 사랑의 신(큐피트, 에로스)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73번 칸초네에서 '그녀가 연민의 친구가 되게 할 방법이라도 알려달라'는 것은 그녀가 최소한 자신에게 연민이라도 품었으면 하는 바람을 뜻한다.
심지어 45번 소네트에서는 나르키소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으로, 누구도 사랑하지 않아 그 벌로 연못에 비친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자기애적인 성향을 일컫는 '나르시시스트'의 어원이다.)에 빗대어 자신을 무시하는 라우라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여인(라우라)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만을 바라보고 나(페트라르카)에게 거만하다는 내용이다. 121번 마드리갈도 그 맥락을 같이 하며, 라우라도 사랑의 고통을 느끼기를 바라고 있다. 59번 발라드의 '다른 사람의 잘못' 역시 유사하게 라우라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라우라는 유부녀였고, 페트라르카는 그녀의 연인조차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불만까지 토로할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여인 중에서 태양인 그녀는
아름다운 눈빛을 돌려 나에게
사랑의 생각과 행동과 말을 창조했지만,
그녀가 어떻게 눈빛을 돌리고 움직이든지
나에게는 봄이 전혀 없다오."(제9번 소네트, 11~14행.)

"욕망으로 내 정신을 죽인
아름다운 생각을 감추고 있었을 때는
연민이 가득한 그대 얼굴을 보았지만,
아모르가 그대에게 나에 대해 알려준 뒤부터
금발 머리칼은 베일에 둘러싸였고,
사랑스러운 눈길은 안으로 숨었다오.
그대에게서 가장 바라는 것을 빼앗겼으니,
베일은 나를 그렇게 다루면서,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괴롭게도
그대 눈의 달콤한 눈빛을 가리는군요."(제11번 발라드, 5~14행.)

"수많은 고통으로 찢어지는 나를 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아름다운
그대 눈은 경멸과 분노만 흘리는군요."(제44번 소네트, 12~14행.)

"(...)여인이여, 그대는 나를
나의 달콤한 거주지 밖으로 내쫓았으니,
(...)거울은 그대가 자신만 좋아하면서 나에게
잔인하고 거만해지도록 만들지 않았어야지요.
만약 그대가 나르키소스를 기억한다면,
그대와 그는 분명 같은 목표로 가고 있다오."(제45번 소네트, 5~6행, 10~13행.)

"맨 처음 내가 사랑하게 이끈 것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빼앗겼어도,
확고한 나의 의지는 없어지지 않는다오."(제59번 발라드, 1~3행.)

"아모르여, 내가 하는 말이 혹시
달콤한 적의 귀에 닿는다면, 그녀가
내 친구는 아니더라도 연민의 친구가 되게 할
그러한 방법이라도 최소한 알려주오."(제73번 칸초네, 26~30행.)

"보세요, 아모르여, 젊은 여인이 당신의 왕국을
경멸하고, 나의 고통에 신경도 쓰지 않고,
(...)당신은 무장하고 있는데, 그녀는
(...)나에게는 잔인하고, 당신에게는 오만하군요.
나는 포로이지만, 당신의 강한 활과
화살 몇 개가 아직 연민을 품고 있다면,
주인님, 당신과 나의 복수를 해주오."(제121번 마드리갈, 1~2, 4, 6, 7~9행.)

상술한 대로 그는 라우라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다는 것만은 거짓말이 아닌 듯하다. 이는 라우라가 병사한 뒤에 지은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이 당신 왕국에 복종하게 하는 영혼들을
당신은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묶지만,
단 하나의 매듭에만 나를 묶을 수 있었으니,
다른 매듭을 하늘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 매듭이 깨졌으니, 나는 자유를 즐기지 못하고
울면서 외친다오. "아 고귀한 순례자 여인이여,
어떤 신성한 판결이 나를 먼저 묶고, 그대를 먼저 풀어주었을까?(...)"
아모르여, 이제 분명히 나는
당신 손에 의한 새로운 상처가 두렵지 않고,
당신은 헛되이 활을 당기고 허공에 쏘니,
아름다운 눈이 감기면서 활의 힘이 무너졌지요.
죽음은, 아모르여, 당신의 법칙을 모두 풀어주었고,
내 여인은 이제 하늘로 갔으며,
내 삶을 슬프고 자유롭게 남겨두었다오."(제270번 칸초네, 91~108행.)

그는 20년 동안이나 라우라를 짝사랑하며, 숱하게 거절 당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포기하지 않았다. '하늘이 나를 단 하나의 매듭에만 묶을 수 있다'는 것은 오직 라우라만이 나(페트라르카)의 운명의 사랑이라는 뜻이다. '내 삶은 슬프고 자유롭다', '나는 자유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라우라가 죽어 사랑의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은 슬픈 자유라서 전혀 즐겁지 않다는 뜻이다. '아모르가 헛되이 활을 당긴다'는 것은 자신이 라우라 이외에는 그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뜻이다. 전술한 대로 그는 라우라의 사망 이후에도 죽는 날까지 그녀 이외의 여성을 사랑하지 않았다(이는 제206번 칸초네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그는 '다른 여성을 사랑한 적이 절대로 없다'고 명시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단테도 결혼을 했지만 페트라르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또한 은거 후에 작성한 산문들에서도 여전히 라우라에 대한 언급이 있다. 라우라가 죽은 뒤에도 페트라르카가 그녀를 잊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비록 그가 집착적이긴 했어도, 사랑에 관해 누구보다 충실히 신의를 지킨 셈이다.

덤으로 이 글도 월간 독갤 투고를 위해 작성했는데 너무 부실한 듯하다. 더 쓸만 한 것이 있다면 적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모르겠다. 어쩌면 라우라 사망 이후 촌락에 은거하며 집필한 페트라르카의 산문들을 바탕으로 쓰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전에 슈티르너를 다룬 투고에서 스스로 정의를 내린 '찐따' 개념에는 그쪽이 더 맞는 것 같다(지금의 글에서 다루고 있는 '찐따'성은 아무래도 흔히 생각하는 그것인 것 같다. 이전 투고에서 다룬 관점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산문집 중『고독한 생활』에서는 사회에서 빠져나온 자신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적었다고 들었다. 또한『종교적 여가』에서는 자신의 은거를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당시 사회에 해명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에 이 두 저작을 읽어봤으면 분명히 그 둘을 바탕으로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산문집 셋을 모두 읽고 다시 글을 준비하기에는 이제는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을 투고하기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