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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몇 년 전부터 보려고 했던 만화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난해한 전개와 대사의 분량에 부담을 느껴, 끝내 손에 들지 못했다.
그러다 요즘 다시금 회자되는 분위기에 마음을 다잡고, 하루 만에 정주행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만화를 두고 이렇게 평한다.
지독하게 암울하고 답답하며, 희망이라곤 없고 정신을 갉아먹는 작품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 만화를 끝까지 읽고 난 뒤, 처음 떠오른 감정은
"푼푼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유년기부터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푼푼의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다.
그들 모두 각자의 아픔을 품고 있지만, 푼푼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고, 대체로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푼푼은 그 관계들 속에서도 깊은 공허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자락에 다다라, 그 공허함이 타나카 아이코에 대한 집착이자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피를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이야말로 이 만화의 정점이자 클라이맥스라고 느꼈다.
거의 도망에 가까운 여행을 함께하며,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이 사랑의 방식은 오히려 나를 깊은 피폐함으로 이끌었다.
그것은 결코 아름답다 할 수 없는,
감정의 폭주이자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마치 불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격렬히 타오르는 전소의 상태처럼.
그들은 이미 모든 것을 불태웠고, 스스로도 그 결말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푼푼은 지인들과 함께 나란히 서 있다. 그 모습은 생각보다 행복해보이기까지 하다.
많은 이들이 그 장면을 푼푼에게 내려진 가장 고통스러운 결말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 푼푼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푼푼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자라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였고, 여전히 여렸다. 똑같은 모습을 하며.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 이 마지막 장면이
푼푼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평온하고, 가장 따뜻한 결말이라고 느꼈다.
푼푼은 앞으로도 살아가며,
그 모든 과거를 "그래도 다행이었다"고 여길 것이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로.
어쩌면,
아이코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푼푼이 그를 따라 동반자살을 택했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푼푼의 유일한 ‘성장’으로 해석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담으로 이 만화를 읽은 사람들에게는 『악의 꽃』이라는 만화를 추천하고 싶다.
비슷한 정서와 분위기를 지니되,
그 결말은 훨씬 더 깊은 사유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만화는 읽으면서 아이코의 입장이 되보려고 하는걸 추천한다.
아이코의 감정, 아이코의 행동, 아이코의 반응 등을 몰입해서 본다면
네가 맞이하는 피폐함과 하강감 그리고 불쾌함은 단연 최고를 맞이할거다.
푼푼이나 악의꽃 같은 만화들 답답해서 못보겠더라
뭐랄까 거부감이 심하죠 그래도 살다보면 언젠간 읽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보지에 코 박고 깊숙히 숨을 들이쉰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던 만화
굿 바이브레이션!
두머 문학의 당당한 일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