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호메로스 서사시의 문장 가운데 하나가 얼마나 다르게 번역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끝없는 밤에 킴메르인의 도시에서 아킬레우스의 유령에게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다.
버클리의 축자역은 이렇다.


그러나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우뚝 솟은 도시를 약탈했을 때 프리아모스는 자기 몫과 탁월한 상을 챙겨 다치지 않은 몸으로 배에 승선했다. 군신이 미쳐 날뛰기 때문에 전쟁에서 흔한 일인데도, 프리아모스는 날카로운 청동에 맞지도 않았고 백병전에서도 부상을 입지 않았다.


버처와 랭의 공역 역시 축자역이나 고어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비탈진 도시를 약탈했을 때, 프리아모스는 본인 몫의 전리품과 고귀한 상을 획득하여 무탈한 몸으로 승선했다. 예리한 창에도 타격을 입지 않았고, 육박전에서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그런 위험은 다반사인데, 군신 아레스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광분하기 때문이다.


1791년에 출판한 쿠퍼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마침내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우뚝 솟은 도시를 약탈했을 때, 그는 넘쳐 나는 전리품을 짊어지고 무사히 배에 올랐다. 장창에도, 칼로 벌이는 근접전에서도 전혀 부상을 입지 않았다.
전쟁에서는 불같은 군신의 뜻에 따라
부상이 난무하는 일이 흔한 데도 말이다.


1725년 포프의 번역을 살펴보자.


신들이 우리의 무기에 정복이라는 왕관을 씌워 줬을 때 트로이아가 자랑하던 보루가 땅바닥에서 흙먼지를 일으 켰을 때
그리스는 용맹한 병사들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하여
무수한 전리품을 함대에 가득 실었다.
요란한 전쟁에서 이렇듯 큰 영광을 안고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귀환하였다.
비록 창은 강철 폭풍우로 사방에 비를 뿌렸으나 헛된 창 놀림은 부상 하나 입히지 못하였다.


아래는 채프먼의 1614년 번역이다.
드높은 트로이아의 인구를 줄이고,
수많은 노획물과 보물을 가지고 아름다운 선박에 무사하게 승선하니, 멀리서 던진 창도
근접전의 칼날도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부상은 전쟁이 흔히 남기는 표징인데,
( 그 사람은 피하지 않았으나) 전쟁의 흔한 대가를 놓쳤다.
백병전에서 군신은 싸우는 대신에 격노했다.


버틀러의 1900년 번역은 아래와 같다.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도시를 약탈했을 때 그는 자기 몫의 전리품을 받고 승선했는데, 멀리서 던진 창이나 백병전에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주지하듯이, 전쟁에서 이런 일은 대단한 행운이다.


처음 두 번역(축자역)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감동적이다. 약탈을 겸손하게 언급하고, 전쟁에서는 흔히 부상당할 수 있다고 담백하게 인정한 뒤에 돌연 전쟁의 혼란성과 군신의 광기를 연관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데, 내가 인용한 번역 중 하나는 "배에 승선했다."라고 불필요한 단어를 중복 사용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리고 전쟁에서 그런 위험은 다반사인데"라고 연결 접속사로 인과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세 번째 번역(쿠퍼의 번역)은 가장 무미한 번역이다. 축자역인데, 호메로스가 어느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포프의 번역은 유별나다. 포프의 화려한 표현법은 (공고라의 표현법처럼) 거창한 어휘를 무분별하게 기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데서 드러난다. 예컨대 주인공의 검은 배 한 척을 함대로 부풀리고 있다. 이런 과장은 도처에서 드러나는데,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순수한 웅변조요, ("신들이 우리의 무기에 정복이라는 왕관을 씌워 줬을 때") 다른 하나는 시각적인 것이다.("트로이아가 자랑하던 보루가 땅바닥에서 흙먼지를 일으켰을 때") 웅변과 시각적인 묘사, 이것이 포프 번역의 특징이다. 격정적인 채프먼의 번역 또한 시각적이나 그 방식은 웅변적이 아니라 서정적이다. 반면에 버틀러의 번역은 시각적인 것을 모두 배제하고,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차분한 뉴스로 만들고 있다.
이상의 여러 가지 번역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충실한 번역인가? 아마도 독자는 궁금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충실한 번역은 하나도 없거나 모든 번역이 충실하다. 만약 충실하다는 것이 호메로스의 상상력, 호메로스가 재현했으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와 사람들을 가리킨다면, 우리에게는 그 어떤 번역도 충실하지 않다. 그러나 10세기의 그리스인에게는 모든 번역이 충실할 것이다. 만약 충실하다는 것이 호메로스의 의도를 가리킨다면, 내가 인용한 번역 가운데 축자역을 제외한 모든 번역이 충실하다. 축자역은 현대의 관행과 대비할 때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렇더라도 버틀러의 차분한 번역이 가장 충실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책인지는 기억이 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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