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가 금지어라니)
나는 내 허기를 생각한다. 하루 동안 충족되면서 더 집어삼키려는 욕망을 잃는 그런 허기가 아니다. 나는 너무 많이 읽어서 만족할 줄 모르지 않는다. 너무 많이 읽어서 생각이 각 시대의 관례보다 앞서간다고 별안간 좌절하지 않는다. 생각이 언어 속 낱말들의 단순한 자기도취적 반짝임일 뿐이라고 판단한 적도 결코 없다. 언어는 초연하지도 않고, 비개인적이지도 않으며, 도구적이지도 않고, 비역사적이지도 않고, 신성하지도 않다. 나는 생각한다. 생각의 허기란 채워지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의 혐오가 -시간에 대한 명백한 두려움에 장막을 씌워 가리려고 애쓰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인도주의적이며 종교적인 격변들을 겪고 난 이후 이 시간의 생각이- 머리를 허기지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낯선 무언가를 향한 호기심의 충동을 느낀다.
-파스칼 키냐르, 수사학-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베드로가 안뜰에서 여자에게 말한다. 그는 반복한다. Nescio quid dicis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여자는 얼어붙을 듯한 4월의 밤 끝자락에서 두건을 다시 올려 쓴다. 여자는 말한다. "당신 말투에서 당신이 누군지 드러나오." Tua loquela manifestum te facit.
나는 그 말투란 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네. 이것이 베드로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언어가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오. 베드로는 반복한다. 이것이 눈물의 이유다. 나는 베드로의 말을 반복할 뿐이다. Nescio quid dicis. 나는 당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알지 못하오.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언어는 명백하다.
나는 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새벽빛은 밝아 온다. 나는 언어가 드러내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해를 부르는 거칠고 끔찍한 수탉의 두 번째 울음이 목청을 높인다.
자연은 새벽녘, 수탉의 형상으로 짖는다. Latrans galhs 수탉이 운다.
아직 밤이 머물러 있는 현관 아래에서, levit amare. 그는 쓰라린 눈물을 흘린다. amare는 '사랑하다 aimer'라 는 뜻이다. 동시에 쓰라리게amèrement'라는 의미도 갖고있다. 그가 말할 때, 누구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파스칼 키냐르, 음악 혐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존재한다. 타인을 통해 태어난다. 타인을 통해 언어에 이른다. 타인을 통해 지식에 접근한다. 우리는 자신에게서 스스로를 만들어내는 창조자가 아니다.
우리는 ab a@lio (타인을 통한) 피조물이다.
수태 시에는 두 타인을 통해.
분만 시에는 타인의 성기를 통해.
그 나라 특유의 자연언어를 습득할 때 타인의 입을 통해,
독서할 때는 타인의 시선을 통해.
독서의 심층에서 우리는 타인의 심층에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언어에 도달하기 위해 타인을 통하는 까닭에, 우리는 타인을 통해 타인의 기능을 밝히고 그 비밀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라틴어는 사고할 권리droit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라틴어-단순히 프랑스어 옆에 놓인-는 어머니 안에서 태아가 이미 생각하듯이 이미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틴어는 시간적으로(어원적으로가 아니라) 모든 형태의 프랑스어의 빗장을 푼다. 친밀한 것, 외설적인 것, 사악한 것, 날것, 지옥, 기원을 말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세금droit. aba@lio (타인을 통한) 것인 기쁨. I am addict (나는 중독자'다). 나는 라틴어로 다시 말한다. Addictus sum. 인류(모든 포식자 들에게서 그들의 습성, 사슴의 뿔bois, 깃털, 모피, 가죽, 뿔, 어금니, 이빨을 빼앗는 포식자)는 언제나 옛 어법의 허락을 필요로 한다.
-파스칼 키냐르, 세 글자로 불리는 사람-
키냐르 책 중에 문장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책 추천 좀
읽기 쉬운 건 세 글자로 불맄느 사람 미문 많은 건 수사학
참 성적인 밤도 읽기 편함
@시지프신화 책 소개 보니까 재밌을 듯 ㄱㅅㄱ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