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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3권은 정말 훌륭했다. 무의미한 기싸움, 흔들리는 질서, 애국심을 가장한 욕심, 전장에서도 피어나는 자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소재들이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이번 3권을 통해 「전쟁과 평화」는 내게 보석 상자나 다름없는 책이 됐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 읽은 쪽수가 1500을 넘었는데도 조금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나 카레니나」보다도 더 재밌게 읽고 있다.


일단 안드레이에 대한 사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나는 2권을 읽고 안드레이를 과소평가했다. 그가 스스로 빠진 진창에서 영영 나오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니콜라이 못지않게 안드레이도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그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대로라면 생각이 많은 안드레이는 「전쟁과 평화」 속 어떤 인물보다도 뚜렷한 실존자라고도 평할 수 있겠다. 안드레이는 장고 끝에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포화 속에서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의 마음을 되살릴 수는 있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각박한 곳이다. 적어도 전쟁이라는 미친 짓이 벌어지는 한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가려 애쓴다. 그것은 사람들이 전쟁의 존재를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야성을 초월하는 무언가를 마음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가 바로 사랑이다. 형제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 나아가 불쌍한 자에 대한 연민. 더 나아가 원수에 대한 사랑.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어렵지만 그만큼 더 달콤하다. 아무것도 아닌 몸짓이 의미를 지니고, 아무 의도도 없던 말에 의미가 솟아난다. 세상은 사랑을 통해 풍요로워진다. 서로 사랑하라는 신의 명령이 이 땅의 모든 이의 마음에 닿는다면, 전쟁 같은 미련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이상향이 따로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안드레이는 이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정말 어려운 첫발을 내딛는다. 안드레이가 나타샤를 용서할 때, 나타샤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안드레이에게 다가갈 때, 나는 정말로 큰 감동을 느꼈다. 둘의 사랑이 단순한 흥미를 넘어 숭고함을 덧입는 순간이었다. 나도 저렇게 용서할 수 있는 아량을 갖는다면 삶이 훨씬 행복해질 텐데. 아니, 아량은 핑계다. 안드레이도 그럴 아량이 처음부터 있지는 않았다. 닮으려는 의지가 결국 중요할 것이다. 여러모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피예르는 3권에서도 놀라운 행보를 보인다. 이제 피예르를 방황하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는 없게 됐다. 피예르는 조국과 민중을 위한 희생을 목표로 삼는 자로 변모했다. 너무 심신을 아끼지 않는 것 같아 독자로서 걱정스러울 정도기는 하지만, 피예르의 용감한 결단에 나도 용기를 얻게 된다. 다만 희생 자체를 인간의 미덕으로 보는 것에는 반대한다. 희생은 돌이킬 수 없다.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에 취해 스스로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한 일이다. 피예르는 3권 말미에서 자신의 계획을 철회하고 올바른 일을 행했다. 하지만 이전의 계획이 빌미를 남겨서 위기에 처했다. 피예르에게는 아직 못다한 연구가 남아있다. 사람들을 억지로 결합하는 방법이 아니라 연결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연구 계획이었다. 다른 일들이 얽혀서 연구를 잠깐 중단하게 됐지만, 한편으로는 그 연구가 끝나기까지 피예르가 살아있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 피예르가 아이를 구하는 장면에서 나는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멋지게 보였다. 부디 옐렌, 나폴레옹 같은 '세상의 작은 부분들'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라는 우주를 규명해내기를 바란다. 피예르라면 분명 훌륭한 통찰을 보여줄 것이다.


3권 전체로 볼 때 비중은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큰 잔향을 남긴 인물들도 많았다. 마리야가 (본인이나 나나 내심 죽기를 바랐던) 아버지와 오빠의 빈자리를 메우고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우선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넘겨받은 힘으로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는 모습이 멋졌다. 비록 우매한 농민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신 내가 진심을 느꼈다. 방에서 기도하던 소녀가 가주의 대리인이 되어, 자신이 기도하던 사랑을 직접 실현해 내려는 자세 자체가 멋졌다. 니콜라이는 3권에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지만, 니콜라이의 눈으로 본 전장과 그 배후의 풍경이 나에게 전해져서 그와 굉장히 오래 있었던 기분까지 든다. 니콜라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명예를 좇아야 하는 처지였고, 전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니콜라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성과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시작이 누구 탓이건, 전쟁은 결국 살인이다. 적 여러 명을 죽인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지만, 사람 여러 명을 죽인 것은 분명 끔찍한 일이다. 물론 전쟁통에 도덕적 감수성에 젖는 것은 살인보다도 더 끔찍한 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깊이 생각하는 훈련보다 오히려 생각하지 않는 훈련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로우리라 본다. 결국 전쟁이라는 바보짓이 어서 멸종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한편 「전쟁과 평화」 3권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은 다름 아닌 톨스토이 본인이었다. 그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집중하던 톨스토이는 3권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주장이 제법 길게 나오지만, 정수는 이 문장들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단계의 높은 곳에 설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또 개개 행동의 숙명과 필연성이 더 명백해진다. 왕은 역사의 노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어떤 사건을 두고 '특정한 누구' 때문에 일어났다고 쉽게 단정 짓고는 한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 사건이 일어날 환경을 조성한 자들, 특히 그 자가 그렇게 움직이게끔 영향을 발휘한 자들까지 고려해야 역사를 진정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역사는 복잡계여서 그 흐름이나 주요한 사건들을 특정 누군가의 의지로 환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견해는 나폴레옹을 맹렬히 공격한다. 나폴레옹은 분명 비범한 자였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의 모든 부분이 나폴레옹의 의지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커다란 오만이다. 나폴레옹이 명령서를 쓴다고 해도 결국 전투는 병사들의 손으로 이뤄진다. 이 병사들 개개의 의지와 감정이 국소적인 전투를 바꾼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다시 돌아와 나폴레옹이 새로운 판단을 하게끔 만든다. 이 새로운 판단은 나폴레옹이 애초부터 계획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폴레옹이 병사들에게 제시한 상황 속에서, 병사들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나폴레옹에게 돌려주고, 나폴레옹은 그렇게 강제된 상황 속에서 또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고, 그만큼 자유보다는 제약이 더 많다. 세계는 수많은 우연들의 장이고, 역사는 그 우연들이 합쳐져 만들어낸 가공의 파도다. 그 안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듯 보이는 사람도 결국에는 흐름에 떠내려가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톨스토이의 견해에 크게 공감했다. 예를 들어 나는 정치인들의 행보를 주목하지만 그들이 당선되게끔 만드는 표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공약을 표를 대가로 약속했다는 것은 잊고 정치인들의 모든 행보가 순수하게 그의 신념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쉽게 믿고는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불완전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던 것 같다. 좁게 보면 정치인들이 판단을 내리고 행정력을 발휘하지만, 넓게 보면 정치인들의 힘을 발휘하기 위해 민중들이 일사불란하게 받쳐주어야 한다. 오늘날 독재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쇠퇴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으리라. 결국 훌륭한 정치인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흐름을 읽는 사람이다. 「전쟁과 평화」 속 묘사로는 영웅의 기백이 보이지 않는 쿠투조프가 나폴레옹을 결국 이길 것으로 예정돼있는 것도 이런 맥락일 테다. 쿠투조프는 기개는 부족하지만 그만큼 노회한 인물로, 전장의 규칙을 정말 잘 알고 있다. 결국 자신의 명령이 아니라 그 휘하의 사람들의 의지가 합쳐진 흐름이 일을 결정할 것을 쿠투조프는 알고 나폴레옹은 몰랐던 것이다. 나도 만약에 부하들을 통솔하는 사람이 된다면 나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오만에 빠지지 말고 내가 큰 흐름의 가장 꼭대기에 있을 뿐임을 기억해야겠다.


이제 마지막 권인 4권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전쟁 자체의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그 결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리고 「전쟁과 평화」 속 주역들은 끝내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 정말 궁금하다. 전쟁 후에 그들의 평화는 어떤 모습일까?